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론(救援論) 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0/10/26 [16:38]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구원받았습니까?“

 

이 질문은 구원파가 포교활동을 벌이면서 제일 처음 묻는 질문이다. 오래전부터 구원파를 비롯한 많은 이단들은 ‘구원’이라는 진지한 질문을 빌미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게 해왔다.

 

구원이라는 개념은 모든 종교를 불문하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사람들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고유한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왜 구원이 필요한가? 그것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최첨단의 과학을 가지고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아직도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질병이나 재난이나 죽음 등은 종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고통과 악과 죽음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해방될 수 있다면 구원의 개념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과학문명이 발달하여 우주를 왕복하고 복제 인간을 만드는 등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에는 질병과 고통, 재난과 죽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여전히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과 악과 재난과 죽음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제한성과 불완전한 구조는 인간의 죄악으로부터 기인했다고 성경은 가르친다(창 3:16-19; 롬 6:23, 7:15-23).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인류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근세기에 두 번에 걸쳐 일어난 세계대전은 인간의 근본 문제인 악과 고난을 인간의 이성과 능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인간 스스로 일어날 가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철학자들도 전쟁의 참화에서 충격을 받아 인류와 문명의 구제책으로 생의 철학, 실존주의 철학사조를 일으켰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인간을 향해 “피투된 존재” 즉, “던져진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마치 허무와 불안 가운데 던져지고, 내팽개쳐진 고독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모습이 언제나 까닭 모를 고독과 불안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어찌 보면 마치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조각 나룻배 마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표류하는 존재이다.

 

사실 우리 인간에게 드리워져 있는 이 까닭 모를 심연의 깊은 그림자는 고향을 잃은 인간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두려움 가운데 숨어 있었던 아담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구원할 힘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은 애초부터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범죄하여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지 않으셨을 것이다.

 

구원이 필요한 인간

 

성경은 이 땅에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을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죄악과 그로 인해 비롯된 여러 가지 왜곡과 한계들- 고통, 질병, 재난, 악, 죽음- 에 있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지만 타락하여 이 땅에 뒤틀림과 왜곡들을 가져오게 하였고 인간은 심판을 받고 유한한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절대 필요한 존재가 된 것이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자기 의지에 반하여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 무한한 존재로 지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악으로 인해 유한한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한됨과 무력함과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은 인간에게 가장 의미있고 필요한 일인 것이다. 분명히 모든 인간은 구원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 구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어떤 인간도 참된 만족과 해방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성경은 인간을 향해 구원받아야 할 존재라고 정의한다. 성경을 보면 타락한 인간은 죽음과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실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인간의 창조와 또한 실패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그 민족을 통해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원복음

 

이처럼 창세기 3장 15절은 타락하여 두려움에 빠진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최초의 복음을 제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우리가 이것을 원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기 때문이다. 여자의 후손, 다시 말해 인류의 구원 자, 메시아를 보내 인간을 타락으로 내몰게 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사탄을 멸절하겠다는) 약속이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한된 인간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으로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우리의 구원은 철저하게 “우리를 위해(pro nobis)” “우리 밖으로부터(extra nos)” 구원의 힘이 와야 한다.

 

이분이 바로 원복음에 예시된 예수 그리스도시다. 약속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인류에게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치르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은 “우리를 위한,” “우리를 대신한” 사건이었다(사 53:5; 롬 5:8).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대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 (부활)은 하나님의 방법,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옳다는 것을 세상에 선포하신 대선언이라 할 수 있다.

 

구원론이 기독론 다음에 오는 이유

 

조직신학 차례에서는 기독론 다음에 구원론이 온다. 그 이유는 기독론에서 다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성령론을 따로 다루지 않고 구원론에서 성령론을 함께 다룬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어떻게 우리 인간에게 적용되는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성령의 주된 사역이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구원론의 오류 풍토

 

한국교회의 구원론에서 특히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구원을 단순히 죽어서 가는 사후세계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왜곡된 시각이다.

 

구원은 죽은 후의 천국의 삶을 영원히 보장하는 것 이상 현재의 삶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사실 성경이 일목요연하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사후에 벌어질 일 보다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어떻게 주님과 동행하며 살것인가?에 더 집중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어서 천당가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다. 오히려 성경은 지금 현재 이 땅에서의 삶을 복음으로 변혁하라고 선포하기 때문이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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