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맥(脈)을 이어갈 것인가?

광복회 호주지회 황명하 회장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0/11/30 [14:53]

 

▲ 광복회 호주지회를 이끌고 있는 황명하 회장. 그는 광복군 황갑수 선생의 막내 아들이다.     © 크리스찬리뷰


일본인(日本人)에게 고(告)함

 

오등(吾等)은 마침내 일본의 진영을 탈퇴하였다.

 

그것은 일본과 관계있는 모든 것과 결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일본은 반드시 패망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지금 일본은 너무나도 전 세계의 원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속에 고립하여 존립할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더해서 대동아건설의 미명하에 한국인과 한국인을, 중국인과 중국인을 서로 피흘려 싸우게 하는 동족상잔의 극악한 음모를 목격하면서 우리의 분노는 뇌천(腦天)에 달함을 어찌하랴! (중략)

 

여기에 이르러 우리들은 결연히 일어나서 한국 임시정부로 달려가 연합국과 결맹하여 신명을 바쳐 일본의 군벌들과 싸울 것을 결의했다. 머지않아 그대들 본토에서도 이 대륙에서 감행하고 있는 전장의 잔인한 양상이 모두 연출될 것이다. (중략)

 

일본인이여 세기의 심판을 기다리라!

 

광복군의 후손

 

제81회 순국선열의 날을 일주일 앞두고 광복회 호주지회 황명하 회장을 마스필드(Marshfield) 랜치(Ranch)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광복군 황갑수(黃甲秀) 선생의 막내 아들이다.

 

황갑수 선생은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으로 유학하여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바로 동대학 경제학부에 다시 진학하여 공부하던 중, 1944년 1월 20일 일제에 의해 강제 징병을 받고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전선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4개월 후 1944년 5월 18일 다른 학도병 출신 5명의 동지와 함께 일본 군대에서 탈출, 한국 광복군 제 1지대 제3구대 창설요원이 되어 광복군 정위(대위)로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광복을 맞이하게 된다.

 

위의 ‘일본인에게 고함’은 황갑수 선생이 1944년 7월경에 쓴 피끓는 격문이다. 이 격문을 적진에 살포하여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광복군을 모집하는데 많은 성과를 올렸다.

 

황갑수 선생은 2009년 89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황갑수 선생 슬하의 4남 2녀의 자녀 중 막내 아들인 황명하 회장이 현재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광복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잖아요, 많은 자녀가 있어도 다 성격도 틀리고 관심 영역도 다르고, 제가 광복회 활동을 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버님이 저를 가까이 두시고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광복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라왔어요. 흰 천에 먹물 배이듯 그 영향이 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맥을 이을 것인가?

 

황 회장은 1988년 8월에 이민을 왔다. 이민와서 그는 여러 직업을 거쳤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Avery Dennison RBIS Pty Ltd에서 프린팅 기사로 일을 했다. 이 회사에서 각종 브랜드 상표들을 프린트하는 기사로 일을 하다가 아직 은퇴를 할 나이가 되지 않았지만 퇴사를 당하게 되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데에는 광복회 활동과 관련이 깊다.

 

“2008년부터 제가 광복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도 생계 때문에 여전히 직장은 다니고 있었죠. 제가 프린팅 기사로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일을 깔끔하고 정확하게 잘해서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힘들긴 하지만 제가 숙련되어서 나름 시간 활용도 할 수 있고 제 책상 위에는 프린팅 사이사이 광복회 일을 하기 위해서 여러 서류나 신문들이 항상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깔끔하게 일을 잘 하니까 다른 매니저들은 저를 이해하고 그것들을 봐주었어요.

 

그런데 매니저가 새로 바뀐 거예요. 독일에서 온 매니저였는데 저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 전에는 기계를 돌려놓고 중간중간 남는 시간에 원고를 메모도 하고, 신문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광복회 일을 거의 혼자 하다 보니 원고도 가지고 나와서 쓰기도 하고, 신문을 보면서 참고도 하고 했거든요.

 

그런데 새로온 매니저는 프린팅 일 외에는 다른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게 했어요. 심지어 앉지도 말라 서서 일을 해라. 그것 때문에 한 번은 심하게 다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퇴사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광복회 일 때문에 퇴사를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일손이 부족하긴 하지만 광복회 호주지회가 처음 세워질 때는 모든 일을 그가 혼자서 다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생활하랴, 광복회 일을 하랴, 늘 시간이 부족해 광복회 일을 직장에 가지고 와서 짬짬이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새로 온 매니저가 좋게 보지 않고 그를 퇴사시킨 것이다.

 

그에게는 이렇게 퇴사까지 당하면서도 광복회 일에 매달린 이유가 있다.

 

“물론 아버님 영향이 제일 컸습니다. 제가 자라면서 아버님께서 일본 군대에서 탈출한 이야기며, 광복군으로 중국의 여러 도시들을 옮겨 다니시며 고생했던 이야기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이 컸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이민을 오게 되고 얼마간 잊고 지내다 2008년 승원홍 씨가 한인회장을 할 때였습니다. 한인회 3·1절 행사에 호주에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때 초청을 받아 갔는데 호주에 독립군 가족들이 네 분 계시더라고요. 행사 후에 그분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이고 뜻이 통하니 정기적으로 밖에서 따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50대 초반이었으니까 제일 젊었어요. 그래서 제가 연락책을 맡았고 그렇게 모이다 보니까, 잊고 지냈던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이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 재호주 광복회 발족모임.(카바리타공원 2008. 11. 15)  ©광복회 호주지부    

 

마침 교민 언론사에서 저에게 호주에 있는 한인 2세 청소년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도 받고 그러다가 우리가 이민자로 호주에 와서 살고 있지만 자랑스러운 한국민족으로 호주 동포사회와 자녀들에게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2008년에 건국절 논란이 극심할 때라 민족정기 선양을 위한 단체의 필요성을 느껴 본격적으로 광복회 호주 지회를 세우고 광복회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교민사회 안에 조상의 뿌리와 민족의 역사도 모르는 어정쩡한 젊은이가 생겨나지 않도록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일어났다고 고백한다.

 

그러면 이러한 한국인의 맥을 누가 이어갈 것인가? 정신이 번쩍 든 그는 이 일에 부름 받은 일종의 소명의식을 느꼈다.

 

▲ 제3회 청소년 민족캠프 입소식 기념촬영 (나마루센타 | 2017. 9.28)  ©광복회 호주지부  

 

▲ 창립 9주년(광복회 호주지회 출범 4주년) 정기총회 및 신년인사회 기념 (2018)  ©광복회 호주지부     

 

▲ 제78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 기념(시드니한인회관 | 2017. 11.17)  ©광복회 호주지부     

 

▲ 제70주년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기념사를 전하는 황명하 회장 (라트비안극장 | 2015. 8.15)  ©광복회 호주지부     

 

청소년 민족캠프

 

그가 광복회 호주지회 회장이 되고나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애착을 쏟는 부분이 있다. 바로 한인 2세 청소년들에 대한 민족교육이다.

 

“오래전 시드니 노스지역의 킬라라 하이스쿨에서 있었던 샛별학교(한국인 입양아 학교) 개교 20주년에 초대되어 갔었어요. 저희들은 보통 직계조상에 대해서도 관심이 적잖아요.

 

그런데 다른 나라의 아이를 입양해서 그 나라의 언어와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일에 호주인 부모들이 마음을 쏟는 것을 보고 마음에 감동이 일었습니다.

 

한국인 아이를 입양한 호주 부모들이 입양된 자녀의 뿌리를 찾아 주려는 마음과 국적을 초월한 사랑을 보며, 그때 든 생각이 우리 교민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히 이민자들을 뿌리가 뽑혀 다른 땅에 심기운 자들로 표현하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이민자로 와서 사는데 우리 자녀들, 2세들이 우리 조상의 뿌리와 민족 역사도 모르고, 한국인도 그렇다고 호주인도 아닌 어정쩡한 젊은이로 자라가는 게 마음에 제일 걸렸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민족교육과 역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한인 2세 청소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와 역사의식 함양의 목표를 걸고 2015년에 시드니한국교육원과 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그해 9월 나마루 수양관에서 바로 ‘청소년 민족캠프’를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진 청소년 민족캠프가 매해마다 끊이지 않고 6년째 이어지고 있다.

 

황 회장은 올해는 코로나19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온라인으로 진행을 했는데 오히려 한국과 미국 등 다국적으로 청소년들이 참가를 해서 ‘역시 도전이 해답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청소년 민족캠프’는 해마다 약 60여 명의 학생들이 2박 3일간 합숙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해 왔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부득이 온라인 캠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청소년 민족캠프에 범 세계적으로 84명의 청소년들이 호주 여러 주와 한국에서까지 참여하여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 청소년 민족캠프는 “나라사랑 민족캠프, 21세기 독립운동”이라는 기치 아래, 온라인의 특성을 살려, 8월29일(토)부터 9월 26일(토)까지 매주 토요일에 2시간 30분 동안 온라인 교육 5회와 10월 24일(토) 소집교육을 실시하여, 강의 10회, 체험학습 1회, 조별토론 5회 및 조별발표회 2회 등이 6주간에 걸쳐 영상으로 진행되었다.

 

▲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가 지난 11월 18일 에핑클럽 그랜드 볼룸에서 열려 제6회 민족캠프 발표회 및 시상식을 함께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강의 프로그램을 보면 ‘1910년 경술국치가 대한민국에 남긴 것” “한국 광복군 일본 제국주의에 선전 포고하다” “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호주선교사와 부산 3·1 만세운동”등 주옥같은 강의가 국내외 전문가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광복회 호주지회가 활동해 온 지난 10년 동안 청소년 민족캠프를 비롯한 각종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인 2세 청소년의 숫자가 1천600명이 넘는다. 이 청소년들은 KAYN(Korean Australian Youth Network: 호주 한인 차세대 네트워크)을 통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네트워킹을 갖고 서로 격려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견고히 다지고 있다.

 

그동안 광복회 호주지회는 호주에 사는 한인 2세 청소년들에게 한국역사부터 시작해서 통일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강의와 체험학습을 ‘청소년 민족캠프’및 ‘해외 독립운동사적지 현장 답사’를 통하여 한민족 정체성, 재외 동포 청소년의 역할을 인식시키며 민족교육을 강화시켜 왔다.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

 

황 회장은 2008년 3·1절 행사에 참석한 후 민족정기 선양과 한인 2세 청소년들의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후 1년 동안 동포 언론사에 ‘독립지사 시리즈’를 연재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찾아 다니며 2009년 재호주광복회를 창립하여 꾸준히 활동해 왔다.

 

그러다가 황 회장의 노력으로 최초의 광복회 해외지회로 2014년에 한국 광복회로부터 ‘광복회 호주지회.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현재 광복회 해외지회는 호주 시드니, 미국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워싱톤 등 다섯 곳만 존재한다).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는 광복회 호주지회가 해마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개최하는 행사라 할 수 있다. 기자도 초대를 받아 몇 번 참석을 했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1부 기념식보다 2부 청소년 민족캠프 발표회라 할 수 있다. 매해마다 개최되는 청소년 민족캠프에 참가했던 청소년들이 참석하여 그들의 체험 이야기도 듣고 참가했던 청소년들을 격려하기 위해 시상도 곁들어 진다.

 

▲ 제6회 청소년민족캠프에서 대상을 수상한 태초애 양(시드니대학)에게 국가보훈처장 상을 홍상우 총영사가 수여하고 기념촬영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청소년 민족캠프를 참석했던 학생들은 호주에서 2세로 태어났거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호주로 이민을 와서 한국을 잘 몰랐지만 캠프를 통해 자기들의 몸 안에 한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한다. 청소년 민족캠프에 자녀들을 보냈던 부모들도 한결같이 캠프에 참가하고 온 후 자녀들이 달라졌다고 기뻐한다.

 

“제가 여러 학부모들을 만나 보는데, 청소년 민족캠프에 자기 자녀들이 참가한 후 아이들이 그전에는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거나 한민족인 것을 부끄러워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한민족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모두들 감사하다고들 합니다.”

 

올해로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가 제81회가 되었다. 해외에서 순국의 날 기념행사를 매해 지속적으로 치르고 있는 나라는 카자흐스탄과 호주밖에 없다.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지역은 다 아는 대로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의 후손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가 많이 알려졌지만, 홍범도 장군의 활약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좌진 장군은 봉오동 전투에는 참가를 안하고 청산리 전투에만 참가했습니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청산리 전투에도 참가해 공을 세운 분입니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자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반공을 국시로 하는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아무래도 홍범도 장군보다는 양반 출신의 김좌진 장군을 앞세우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기자도 작년에 ‘봉오동 전투’를 탑 라이드 영화관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열악한 무기였지만, 나라를 빼앗긴 젊은이들이 구국의 신념으로 목숨을 바쳐 일본군들을 무찌르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KAYN(Korean Australian Youth Network)

 

순국선열의 날 행사를 여러 차례 참석하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청소년들의 참여이다. 모든 행사에 청소년들이 사회를 비롯해 음향과 서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봉사를 맡아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광복회 호주지회의 가장 큰 자산은 그동안 청소년 민족 캠프 등 차세대 프로젝트에 참여한 1천600여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다.

 

이 한인 2세 청소년들은 KAYN 네트워크를 통해 대학 졸업 때까지 서로 긴밀하게 연락을 나누며 광복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자기들이 행사를 기획하고 각 분야에서 섬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KAY Leaders (Korean Australian Young Leaders)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광복회 호주지회는 2008년 황 회장이 홀로 이곳저곳을 발로 뛰며 맨땅에 개척해서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황 회장 혼자가 아니다. 많은 차세대 동역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니 지금은 이 차세대 청소년들이 광복회의 맥을 이어가는 주역들이라 할 수 있다.

 

“제가 광복회 일을 하며 가장 보람 있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KAYN을 세운 일입니다. KAYN을 통해 차세대 청소년들이 서로 네트워킹을 갖고 광복회 일을 포함, 앞으로 호주 한인 디아스포라로서 할 일들을 자기들 손으로 이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들이 KAYN 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정신과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익혀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올바른 인성을 지닌 글로벌 인재로 성장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청소년 민족캠프는 KAYN의 젊은이들 손으로 운영되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지금도 청소년 민족캠프에 KAYN에서 많이 참여해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저같은 구닥다리는 이제 물러가고 차세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모든 행사와 진행이 철저하게 KAYN 젊은 리더들에 의해 진행 되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KAYN이 세워진 이후 광복회의 맨파워는 한층 강화되었다. 이들이 바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글로벌 인재들이고 디아스포라 한민족의 미래의 주역들로 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독립군

 

청소년 민족캠프의 기치가 바로 ‘21세기의 독립군’이다. 고국 대한민국에서도 갈수록 청소년들이 민족의식이 떨어지고 통일에 대한 의지도 없어지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하물며 해외에 살고 있는 이민자 자녀 2세들에게는 더 관심 없는 주제가 바로 한민족 정체성, 한국의 역사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지난 10년 이상 광복회 호주지회가 묵묵히 해오고 있는 것이다. 맨 처음 청소년 민족캠프를 실시했을 때에는 많은 2세 청소년들이 ‘애국지사’가 뭔지, ‘순국선열’이 무슨 말인지, ‘독립지사’는 무얼하는 사람인지조차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청소년 민족캠프를 참가하고 KAYN에서 활동하고 있는 2세 청소년들은 그 누구보다도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코리안 오스트레일리안으로 세계를 품는 비전 메이커들이 되었다. 그들이 바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21세기의 독립군’들이다.

 

지금은 비록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진 않지만, 차세대 지도자들로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내고 자랑스러운 한국인 디아스포라들로 세계를 섬길 인재들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광복회에서 호주 교민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다.

 

“청소년 민족캠프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학생 모집에 교민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광복회가 호주사회에서 제법 알려졌지만 여전히 자기 자녀들을 민족캠프에 보내는 일에는 관심이 많이 적습니다.

 

사실 미주 광복회나 미주 한글학교 등의 관계자들은 저희 호주 학생들이 복받은 학생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보다 이민 역사도 길고 독립 유공자 후손 자녀들도 훨씬 많은 미국이지만 호주의 청소년 민족캠프 같은 옹골찬 프로그램들이 없다고 합니다.

 

보훈처로부터 예산도 받아 놓고, 저희 호주에서 하는 민족캠프를 벤치마킹하고 싶다고 해서 제가 자료도 다 보내줬습니다. 하지만 올해 코로나 사태도 있고 해서 아직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희 호주는 벌써 6년차가 넘어가고 있잖아요. 청소년 민족캠프에 다녀온 학생들은 일단 정체성 변화도 있지만 차세대 글로벌 인재들로 자라날 비전들을 얻고 옵니다.”

 

호주 선교사 독립군 훈장 추서

 

2021년 10월이면 한국-호주 수교 60주년이 된다. 이에 광복회 호주지회는 크리스찬리뷰와 함께 호주 선교사중 1919년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호주 선교사의 독립유공자 공훈 신청을 추서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관련된 내용을 찾고 있다.

 

▲ 제8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에서 황명하 회장이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현재 외국인 독립유공자가 70명이나 되는데 안타깝게도 호주인은 1명도 없다. 그동안 호주에 있는 한인들이 관심을 갖지 못해 발굴되지 않은 연유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호주의 선교사들은 주로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활동하였는데 일신여학교는 그때 호주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이다.

 

호주 선교사 Miss Belle Menzies는 1905년 부산 일신여학교 초대교장으로 봉직했고, 1919년에도 부산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Miss Margaret Sandeman Davies는 1919년 3 ·1 만세운동 당시 교장으로 봉직하고 있었고 일신여학교는 김응수, 송명진, 이명시 학생 등 다수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했다. 부디 관심들을 갖고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갖고 있거나 내용들을 알고 있는 교민들은 연락들을 주기 바란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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