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불순종
 
최주호/크리스찬리뷰

 

 ©Lewis Wilson    


‘신입 사원일 때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란 책은 비서학을 전공한 저자가 전문 경영자의 비서로 어떻게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실질적인 팁과 노하우를 알려준다.

 

저자가 관중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한다.

 

“일은 생각함으로써 생기고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말의 뜻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결과는 훨씬 좋다는 것이다.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정신적 보상도 클 것이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력이 성장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런 예를 들고 있다. 비서 교육을 할 때 자주 인용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상사가 당신에게 인삼을 캐오라고 했는데 도라지를 캐오면 당신은 해고, 인삼을 캐오면 당신은 비서,산삼을 캐오면 당신은 뛰어난 비서.”

 

그런 다음 잠시 쉬었다가 덧붙인다.

 

인삼을 캐오라고 했는데 도라지와 인삼, 산삼을 캐 와서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당신은 전략 비서”

 

비서라는 직업은 단지 지시받은 일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내린 사람과 소통하면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내고 어떤 것이 최상의 선택인지를 고민하는 비서가 클라스가 남다른 전략을 생각하는 비서라는 말이다.

 

전략이란 본래 군사학적으로 쓰이는 용어로써 전쟁을 할 때에 미리 큰 틀을 정하고 그에 맞추어 전쟁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바탕으로 순간순간 벌어지는 일을 대처하는 것이 전술이다.

 

내가 왜 오늘 이렇게 장황하게 전략을 말하는가 하면 오늘부터 시작할 요나서가 바로 전략적으로 불순종하는 요나의 모습을 그리기 때문이다.

 

그냥 불순종이 아니라 전략적인 불순종이다. 요나가 그냥 싫어서 불순종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는 모습이 마치 의도를 갖고 하나님께 시위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요나는 전략적인 불순종을 감행한 선지자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와야 할 것 같다. 왜 요나는 그렇게 했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요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전략적으로 불순종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요나서 1장을 함께 보자.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우리가 보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2절의 말씀과 요나가 불순종으로 반응하는 3절의 말씀 사이에는 아무런 갭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두 절 사이에는 이런 숨겨진 대화가 있다.

 

행간을 읽는 능력으로 보아야 할 것이 있다.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4: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좀 길게 구절을 언급했지만 요나가 볼멘 소리로 니느웨가 멸망되지 않자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소리를 던질 때에 이럴 줄 이미 알았다고 하는데 자신이 고국에서 있을 때에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는 그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다시스로 도망갔던 것 아니냐는 말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지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다. 이 말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의 패턴을 알기에 그 분이 아 하면 어 라는 바른 대답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다. 마치 처음에 언급한 전략 비서처럼 말이다.

 

실은 요나는 이미 자신의 예언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배운 사람이다.

 

열왕기하 14장에서 요나는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번영이 하나님의 전적 사랑의 결과라는 사실을 전한 선지자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만약 선지자를 어느 곳에 보낸다면 비록 그 메시지가 심판의 메시지로 보일찌라도 아직 하나님이 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과 그들을 향해 소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바로 내로남불의 문제인데 나에게 하나님의 그런 사랑이 주어질 때는 기뻐서 감사할 수 있지만 나의 라이벌에게 그런 사랑이 주어진다면 불만과 분노가 생긴다는 것이다.

 

난 많은 신앙인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모세를 향해 자신의 성품에 대해 선포한 하나님은 유대인이라고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출 34: 6-7)

 

그렇다면 요나의 전략적 불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일부러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행동이다. 이게 말로는 참 표현하기 힘든 부분인데

마치 이런 생각으로 도망간 것이 아닐까?

 

"그냥 차라리 나 한 사람 확 사라져 버리면~ 정말 내가 꼴보기 싫은 그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사랑의 메시지를 듣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적어도

우리 이스라엘은 계속 잘 살게 되지 않을까?"

 

이런 요나의 마음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르는데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감행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요나서의 결말을 너무나도 잘 안다.요나가 알고 있었던 그 하나님은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던 악한 이스라엘도 조건없이 사랑하신다면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악당 국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향해서도 동일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더 있다.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 편에 서야 할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해 전략적인 불순종을 감행하고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불경스러운 말을 던져도 끝까지 요나를 사랑으로 설득해 나가셨다.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하나님은 니느웨도 요나도 다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영어로 표현한다면 Steadyfast & Everlasting Love이다. 변함없이 영원 무궁한 사랑…

 

그렇기에 그 사랑 앞에서 무시무시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도 막장 인생을 살았던 창녀도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살던 세리도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정말 뺀질뺀질 하나님 앞에서 이리 도망갔다 저리 도망갔다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나 같은 죄인도 무릎 꿇게 만들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다. 요나가 아무리 전략적으로 불순종을 감행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를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인데 사랑의 책인 아가서는 이렇게 그 사랑을 표현한다.

 

“너는 나를 도장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같이 잔인하며 불길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알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6-7)

 

오늘은 그 사랑을 더 느끼고 싶은 날이다.

 

정말 맛있는 토마토가 열렸다~

 

 

최주호|멜번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최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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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9 [14:5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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