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석쇠 대표 유병민 형제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찬송가의 가사를 연상하며그가 운영하는 식당이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영원한 기업’이 되기를 소망하는 석쇠 대표 유병민 형제.     © 크리스찬리뷰


지난 10월 10일, 톱 라이드(Top Ryde)에 새롭게 개업한 석쇠 2호점(Grilled Korean BBQ 2) 유병민 대표(시드니주안교회, 37)를 만났다. 석쇠 2호점이 새로 문을 연 곳은 원래 월남쌈으로 유명한 마루(Maroo) 식당이 있던 자리다. 그 식당을 유병민 대표가 인수하여 리노베이션을 하고 새로운 한국식 BBQ 및 한식 전문점으로 문을 연 것이다.

 

유병민 대표를 만나기 전 대표라는 선입견 때문에 나이가 지긋이 든 중년 남자를 상상했다. 그런데 웬걸, 직접 만나서 보니 뜻밖의 미소년? 얼굴을 한 젊은 형제였다. 호칭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처해서 물어보았다.

 

“그냥 형제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아직 집사 직분도 아니고, 대표도 부담스럽고 그냥 형제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수수하게 대답하는 그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얼굴은 아직 앳띠게 보이는 20대이다. 누구도 그를 30대 후반의 중년의 문턱에 다다른 아저씨로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시드니에 온 것은 2009년, 11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벌써 두 곳(석쇠 1호, 석쇠 2호)의 식당과 한 곳의 화원(Florist)을 운영하는 소위 세상말로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기자는 그의 겸손함과 신앙에 매료되어 강한 도전을 받았다. 그의 인터뷰를 추천받게 된 것은 그가 소위 잘나가고 사업에 성공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실제 그는 인터뷰를 부담스럽게 생각해서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추천자가 겨우 설득하여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그는 지나칠 정도로 선교에 올인한 선교 후원자이다. 그의 목표는 그가 이룬 기업이 1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다.

 

현재 그는 그가 개업하는 기업마다 선교사를 매치하여 어려운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것이 그가 기업을 운영하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유병민 형제는 그의 식당을 기업으로 표현하길 좋아한다. 찬송가 ‘나의 영원하신 기업’을 연상하여 그가 개업한 식당이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실제의 ‘영원한 기업’이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아버지의 기도

 

“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아버지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친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집에서 구역예배를 드리면 목사님 멱살도 잡고, 상을 엎을 정도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셨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예수님을 영접하셨어요.

 

▲ 신도시 울리 크릭에 위치한 석쇠 1호점. 초저녁부터 고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 빈 좌석을 기다리는 사람     ©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사업도 실패하고, 목수 일을 하시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다리에 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빚도 많고 장애도 있다 보니 살림이 늘 어려웠습니다.

 

학교에서 누나와 함께 소풍을 갈 때 김밥 천국에서 천원짜리 김밥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어려웠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신앙을 갖고 나서는 저희를 위해 늘 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때 늘 아버지께서 기도하는 제목이 ‘우리 아들 유학시켜 주세요, 엄마가 살아있을 때는 공부를 잘하던 애가 엄마를 잃고 학업에 열중하지 못하고 삐딱한 길로 갑니다.’ 그때 저는 연예인이 꿈이었고 영화배우 지망생이었습니다. 소속사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아버지의 기도가 다 지금의 아내를 통해 이루어진 거에요. 저희 집은 유학을 보내줄 형편도 안되고, 항상 빚에 쪼들리고 어려웠는데 아내를 한국에서 만났어요. 제 아내는 호주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한국에 나와 대학에서 강의 준비를 하던 때였어요.

 

그때 저를 만났는데 장모님이 무척이나 반대가 심했습니다. 당시 저의 형편이 가진 것도 없고 집도 못 살고, 대학도 졸업 못한 제가 금지옥엽 키운 외동딸하고 사귀니까 당연히 반대가 심하셨죠. 그러니까 제 아내가 ‘내 남자 친구가 학벌이 부족하고 돈도 부족해서 반대한다면 내가 가르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만들겠다.’

 

그래서 아내가 저를 데리고 호주로 온 거에요. 그리고 아내가 저를 서포트 하기 위해 새벽일을 다니면서 4년동안 저를 공부시키며 도와주었습니다.”

 

병민 형제의 아내는 이미 호주에서 공부하며 영주권을 취득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주에 와서 그의 남자 친구를 자신의 힘으로 공부시켜야겠다는 결심을 쉽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게 어디 쉬운 결정인가?

 

그의 아내는 새벽에 일을 나가면서 병민 형제의 학업을 4년 동안이나 도왔다. 병민 형제는 시드니에서 쉐프(chef)과정과 매니지먼트 공부를 했다. 그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에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학업과 호주에서의 힘든 삶을 감당했다.

 

그러나 이런 순애보가 어디 있는가? 남자 친구를 위하여 4년이란 세월을 새벽에 일을 다니면서 헌신적인 사랑을 한 그 풋풋한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한 스토리 같아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병민 형제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기를 놓고 기도를 할 때 그는 그 기도들을 무시하고 믿지 못 했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방황도 하고 연예계도 기웃거렸다.

 

그러다 아내를 만나는 바람에 그의 인생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끌려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이것이 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던 일이고 아버지의 기도가 아내의 헌신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고 있는 함춘환(오른쪽), 김성혜 선교사가 시드니주안교회 목요찬양 집회에서 간증하고 있다.(2015. 5)     © 크리스찬리뷰

 

우연한 만남, 회복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

 

그는 신앙은 있었지만, 일차적인 목표가 학교를 빨리 졸업하고 최대한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처가에서 아내와 결혼을 반대했던 것이 돈도 없고 대학도 졸업 못한 변변치 못한 신분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교회 나가는 시간이 아까워 교회도 가지 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제가 일하는 식당으로 어느 날 아는 후배가 박카스를 들고 찾아온 거예요, 그러더니 ‘형, 회복해야 해!’ 이렇게 말을 하고 가는 거예요. 그 말이 마음에 걸려 교회에 나가긴 했는데 그래도 완전히 결단을 하지 못하고 낮 시간은 빼기 어려우니까 저녁예배만 가게 되었어요.

 

그때 시티 주안교회 예배를 나가게 되었는데 신기하게 저녁예배에 선교사님들이 주로 오셔서 설교를 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시는 함춘화 선교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영상을 보여주는 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그리고 제 입에서 ‘주만 바라볼지라’라는 찬송이 끊임없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 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 같아요. 말씀이 끝나고 예배가 끝났는데도 눈물이 멈춰지지 않는 거예요. 예배 후에 함춘환 선교사님이 교회 문 앞에서 인사를 하는데 제가 엉엉 울면서 ‘선교사님 계좌번호 좀 주세요!’ 그리고 그때 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보내드렸어요. 그리고 마음이 너무 뜨거워져서 그후 바로 아내랑 인도네시아로 갔어요.”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그날 예배시간에 함춘환 선교사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그의 생애를 바꾸어 놓는 혁명적인 계기가 된다.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가 그동안 모은 돈을 아낌없이 선교사에게 후원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의 선교현장을 보고 그를 만나고자 아내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달려간 것이다.

 

“제가 아내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가서 선교사님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이야기도 나누고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드리고 왔습니다.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성경책이거든요. 아버지는 항상 저에게 너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하셨어요.

 

아버지가 목수일을 하시니 공사현장에서 일을 많이 하셨어요. 그때 같이 일하는 분들이 막일을 하시는 분들이니, 모두들 피곤하니까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을 일찍 먹고 한 30분씩 누워서 쉬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때 풀이 있는 곳에 가셔서 네잎 클로버를 찾으셨데요. 그리고 찾은 네잎 클로버를 말리셔서 성경책 구절구절마다 끼워 놓으신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는 저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그 네잎 클로버 성경책을 저에게 주신 거예요.

 

그때 제 마음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함춘환 선교사님에게 드려도 아깝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그 성경책까지 가지고 가서 드리고 왔어요.”

 

그는 단단히 은혜를 받았다. 은혜를 받고 나니 아버지가 기도한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지나고 보니 아버지의 기도가 다 이루어졌는데 아내를 통해서 이루어진 거에요. 돈이 없어 유학할 형편도 안되고 연예인 지망을 하며 허송생활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내를 만나 아내 때문에 호주에 오게 되었고 공부도 하고 지금 이렇게 선교사님들을 도울 수 있도록 쓰임을 받게 된 거에요.

 

▲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대학을 운영하며, 낙후한 숨바 지역과 자카르타의 한센인을 섬기는 함춘환, 김성혜 선교사 부부.함 선교사가 양쪽 다리가 없는 한센인에게 의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상담하고 있다.(2018. 4)     © 크리스찬리뷰

 

은혜를 받고 나서 아버지께서 통성기도 밖에 못하세요.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에 교인들로부터 불평도 많이 들으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하나님 사랑이 뜨거워서 소리내지 않고는 기도를 못하시겠다고 하세요.

 

매일 새벽예배에 다녀와서 저희들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소리내서 늘 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저에게 늘 말씀하셨어요.

 

‘병민아 너는 하나님이 귀하게 쓰실 거야. 병민아 너는 선교사 1백 명을 파송하는 사람이 될 거야.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그말이 믿기지 않았거든요, 호주에 와서도 너무 힘들어서 그 말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주님을 경험하고 나니까 아버지의 기도가 생각난 겁니다.”

 

그때부터 그는 앞으로 선교사 1백 명을 돕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다. 그리고 먼저 함춘환 선교사를 평생 후원하겠다고 마음으로 결정했다.

 

“아버지의 기도가 믿어졌어요. 그래서 결단했어요. 이제부터 일주일의 한 시간을 함 선교사님께 보내 드려야겠다. 그때 저의 한 시간 시급이 25불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함 선교사님께 7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보내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선교사님, 세 번째 선교사님을 돕기 위해 일주일의 세 시간 시급을 따로 떼어 놓아 매주마다 세 명의 선교사님께 보내드렸어요.

 

그런데 앞으로 100명의 선교사님들을 도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100명의 선교사님을 돕기 위해서는 제가 일주일에 100시간을 빼서 선교사님들을 후원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주님 저의 가정은 어떻게 하나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기업을 주시겠다는 마음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주신 기업

 

그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데 주님의 약속을 믿고 일단 회사(Pty, Ltd)부터 등록했다. 기업 이름도 GIIC (God is in Control House라고 지었다. 엉뚱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믿음이 좋은 것일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것은 기자의 기우에 불과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전혀 생각치 못한 방법으로 그가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하신 것이다.

 

▲ 시드니 시내 월드 스퀘어에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유지혜 자매.     © 크리스찬리뷰

 

▲ 유병민·유지혜 부부가 꽃집에서 포즈를 취했다.     © 크리스찬리뷰


“제가 일하던 곳의 사장님께서 어느 날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그동안 10년 넘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믿으셨던 것 같아요.

 

‘병민아, 너의 부인이 florist 공부도 했으니 부인이 꽃집을 차리는 것을 내가 도와줄께’ 그리고는 상상할 수 없는 큰 액수의 돈을 아무 조건 없이 빌려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시드니 시내 월드 스퀘어 안에 꽃집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집이 너무 잘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꽃집을 통하여 빚도 갚고, 다음 비즈니스를 위해 자금을 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물론 일하던 곳의 사장님께서 자신을 신용하고 무보증으로 그것도 선뜻 먼저 사업을 해보라며 돈을 빌려주셨지만, 이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렇잖아요. 사장님께서 선뜻 먼저 이렇게 제안하신 것은, 물론 제가 그곳에서 오래 일을 했고 아버님처럼 생각하시는 분이지만 쉽지 않잖아요. 하나님께서 사장님을 통해 일을 하신 것이죠.

 

그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석쇠 1호점을 시드니 공항근처 신도시 울리 크릭(Wolli Creek)에 열 수 있었습니다. 그 장소가 원래 스시 가게였는데 제가 아무리 돈을 모았어도 가진 돈으로 쉽게 들어갈 형편이 안되었어요.”

 

지면상, 그리고 개인 비즈니스의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 라이드에 위치한 석쇠 2호점     © 크리스찬리뷰

 

▲ 새롭게 단장한 석쇠 2호점 내부     ©크리스찬리뷰

 

공항 근처에 새롭게 조성된 울리 크릭은 벌써 몇 만 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와 있는 신도시이다. 이곳에는 젊은 인구가 많아 시장이 안정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권리금들이 비싸다. 그는 이곳에서 식당을 열고 싶었지만 아무리 돈을 모았어도 그 권리금을 채우기에는 턱도 없이 모자랐다.

 

그런데 건물 사장은 다른 임차인들을 뒤로 하고 돈이 부족해 오히려 가장 출자를 할 형편이 안되는 병민 형제에게 건물 임대를 계약해 준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세상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지금 울리 크릭 석쇠 1호점은 식사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요. 하루에 치킨만 5백 마리가 팔릴 정도로 너무 잘되요. 울리 크릭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 되었어요.”

 

그리고 자신감을 얻어 톱 라이드에 있는 마루식당을 인수하여 석쇠 2호점을 개점한 것이다. 이 인터뷰는 그의 사업확장을 소개하기 위해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니라고 앞에서 이미 밝혔다. 오히려 그를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 병민 형제의 소망이다. 그는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 기업 이름부터 짓는다.

 

선교사 Matching 기업

 

선교사들을 돕고 싶지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어 고민하던 시절, 아버지의 기도대로 그 자신을 통하여 선교사 100명을 파송하고 돕게 하시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하실 거란 믿음으로 GIIC House(하나님이 다스리는 가정)란 기업 이름을 먼저 등록했다.(월드 스퀘어 꽃집 기업 등록 이름이 바로 GIIC House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3년이 지난 어느 날 기적 같은 방법으로 그의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기업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선교와 선교사들을 돕는 사역을 시작한 것이다.

 

병민 형제는 두 번째 비즈니스를 시작하기전 이름부터 생각해 놓았다. 두 번째 이름을 그는 잠언 31장을 중심에 두고 지었다. 그래서 영어로 등록한 이름이 ‘Prov31 erbs’이다.(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기업을 하자는 의미이다) 이것이 그가 대박을 터트린 울리 크릭 석쇠 1호점(Grilled Korean BBQ) 비즈니스 등록 이름이다.

 

그리고 세 번째 기업 이름을 정했다. 바로’Restaurant for Christ’이다. 이 기업은 톱 라이드 마루에 오픈한 석쇠 2호점 비즈니스 등록 이름이다.

 

▲ 푸짐하고 맛난 메뉴로 입맛을 돋구는 석쇠의 한상 차림.    © 석쇠     

 

그는 석쇠 2호점을 기점으로 안정적으로 한 선교지에 한 비즈니스를 매치시켜 후원하고 있다. 현재 후원하는 선교지는 인도네시아, 호주 원주민, 북한, 라오스이다. 그는 모든 비즈니스에 선교지를 매치하여 후원하고 있다.

 

톱 라이드 석쇠 2호점을 방문하여 뒤쪽 주차장에 주차를 하신 분들은 식당 건물이 지하층과 1층으로 지어진 건물인 것을 보았을 것이다. 현재 1층은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지하층은 전 주인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석쇠 2호점이 들어와서는 이 지하층을 석쇠 1호점, 2호점 치킨 소스공장과 치킨 손질 주방으로 사용하면서 네 번째 비즈니스 이름을 등록하였다.

 

바로 ‘The Manna’이다. 하나님께서 매일 공급하신다는 의미이다. 이 기업을 통하여는 시드니에 있는 가정폭력 가정과 청소년들을 돕는 선교사와 선교사역을 후원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어느 곳에 주실지는 모르지만 다섯 번째 기업 이름을 벌써 지어 놓았다. 바로 ‘Psalms 16’이다. 여호와가 나의 기업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이 어디에 주실 지, 쇼핑센터 안에 주실지, 백화점 안에 주실지는 아직 모르지만 믿음으로 이미 이름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속 다섯 번째, 여섯 번째, 기업들을 확장시켜 나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을 통하여 1백 명의 선교사들을 후원하기 위해서는 매칭 기업을 세워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제가 인터뷰를 해야 하나 아직도 걱정이 많아요, 아직 그럴 때도 아닌 것 같고,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는데 인터뷰 같은 것을 하고 나면 제가 교만해질까 염려가 되기도 해요. 저는 그저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한 거 밖에 없어요. 저의 모든 것은 제가 한 건 하나도 없어요.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하나님과 순애보에 빠져 있는 그의 순진한 믿음이 부럽게 다가온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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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29 [15:0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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