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디도’
 
우명옥/크리스찬리뷰

이 시대의 ‘디도’

 

▲ 대장금 포스터    

 

호주에 사는 우리는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하는 외국 사람들을 자주 보며 한류의 영향을 쉽게 체험하다. 그 한류에 많은 드라마가 일조했겠지만 그중에서도 ‘대장금’이라는 드라마는 아시아권뿐 아니라 이란에서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였다고 한다.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으로 식당 이름 또한 ‘대장금’이 생겼고 호주에서 처음 사귄 중국 친구 또한 나에게 대장금에 대해 물어 보곤하였다. 대장금이 유행하던 그때 조카가 쓴 그림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8살 정도된 남자 아이가 쓴 일기이다.

 

“난 오늘 외할머니댁에서 사촌 누나들과 함께 대장금 놀이를 했다. 서진이 누나는 장금이, 선영이 누나는 한상궁, 서경이 누나는 최상궁이다. 나는 쇈네를 했다.”

 

처음에는 ‘쇈네’가 뭔가? 했다가 그것이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임을 알고 한참 웃었다. 이름도 없는 하인들이 “마님 쇈네입니다요.” 하는 소리를 꼬맹이가 듣고 ‘쇈네’를 사람이나 직분 이름으로 알았던 것 같다. 누나들 틈에서 어찌됐든 껴서 놀고 싶어 하루 종일 최선을 다해 ‘쇈네’를 감당한 아이처럼 성경에도 온갖 궂은 일을 다한 ‘쇈네’같은 인물이 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디도’이다. 한국어로는 디도, 영어로는 ‘Titus’이다. 호주에서 아이들 영어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 많이 짓는다.

 

스트라스필드에서 ‘다니엘’하고 부르면 다섯 명 정도 뒤돌아 볼 것이다. 그런데 이름이 디도(Titus)인 사람은 많이 못본 것 같다.

 

필자도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디도’에 대한 설교를 들었는지 가물거린다. 디도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이 바울은 안다. 위대한 전도자 바울 옆에는 그를 도운 수많은 동료(co-worker)들이 있었다. 바울 서신서에 13번 등장하는 디도 또한 바울 옆에서 함께 사역한 ‘쇈네’같은 사람이었다. 그럼 ‘디도’는 누구일까?

 

디도는 헬라인 그리스도인이었다

 

디도는 헬라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이다. 우리는 이 말이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지만 바울이 사역하던 당시 이 말은 이상한 말일 수 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구원은 유대인들만 받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바울이 그 복음을 이방인 즉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전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본 교회인 예루살렘교회에서 회의를 여는데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이다.

 

그 회의에 바울이 참석하며 디도를 데리고 간다(갈 2:1). 왜 디도를 데리고 갔을까?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 어디다 내놓아도,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인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헬라인이지만 구원받은 것이 확실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디도였던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이런 대표였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호주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찾을 때 누가 봐도 복음을 받아들인 것이 확실한 자랑스런운 대표 그리스도인이 우리 다음 세대이기를 소망한다.

 

디도는 교회 문제의 해결자였다

 

사도바울은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다. 바울이 세운 교회 중에서 바울을 재정적으로 가장 많이 도운 교회는 빌립보교회였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크고 똑똑한 사람들도 많지만 문제 또한 많은 교회를 뽑는다면 그 교회는 바로 고린도교회였을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분열 문제, 성적 문제, 우상, 제물 문제, 바울의 사도성 제기 등 은사도 많았지만 문제도 많았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그 해결자로 디도를 보낸다.

 

디도는 문제가 생긴 교회를 찾아가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시 하나가 되게 한 사람이다. 교회 좀 다녀 본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 있다. 교회가 깨지고 부서들이 어려워지는 것은 절대 능력이 없어서도 열심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은 크랙들이 커다란 공동체를 깨트린다. 공동체에 틈이 생기면 어떤 은혜가 부어져도 쏟아진다. 지금 이 시대는 어느때보다 갈라진 틈이 생긴 곳을 찾아가 그 틈을 붙이는 디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디도는 신실한 헌금 전달자였다

 

디도는 ‘헌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고 헌금을 모으는 일을 한 사람이다. 예루살렘에 기근이 들어 교회가 힘이 들 때 헬라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를 돕기로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대교회 때에도 헌금을 모으는 일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누구를 보냈을까? 바로 디도를 보낸다. 디도는 교회들을 방문해 헌금을 독려하고, 각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는 일을 수행한다. 만약 디도가 돈에 욕심이 나서 그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지 않고 어디 숨어서 이름을 ‘디도’ 대신 ‘나도’라고 고쳐서 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디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디도라는 이름의 뜻이 ‘충성’이라는데 디도는 정말 그 이름처럼 산 것이다.

 

성경에 보면 가난한 자를 도우라는 말이 163번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말보다 더 많이 나온다. 우리는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데 빈민에 대한 통계를 보면 우리가 상류층임을 알 수 있다. 일 년 동안 1천 불 이하로 사는 빈민은 46%, 1백 불 이하로 사는 절대 빈곤자는 전 세계 인구의 18%라고 한다.

 

세계 인구를 1백 명으로 축소시키면 50명은 영양부족, 20명은 영양실조, 그중 한 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이라고 한다. 빈곤과 기아는 절대 부족이 아니라 나누지 않음 때문이다. 이것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이며,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 기독교인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필자는 이 땅에서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연봉이 높은 직장에도 취직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서 돈 많이 벌어서 남 도우길 소망한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에 순종한 사람, 디도는 이 일에 앞장선 사람이었다.

 

디도는 또한 힘든 교회의 목회자였다

 

▲ 2020년도 세계 범죄율 지도   

 

상기 지도는 세계 범죄율 지도이다. 만약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그 당시 이런 지도가 있었다면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디였을까? 많은 곳이 있었겠지만 그 중 하나가. ‘그레테’섬일 것이다(디도서 1:13-14). 바울이 4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그레테 섬에 교회가 세워진다.

 

그리고 이 그레테섬의 담임목사로 디도를 세운다. 이런 디도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후 8:23)

 

디도는 바울의 파트너였고, 동료(fellow worker)였으며 교회의 대표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불렸다.

 

대장금, 한상궁, 최상궁은 알아도 ‘쇈네’는 기억못하지만 그 수많은 ‘쇈네’들 덕분에 수라간이 운영된 것처럼, 수많은 디도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있다. 다음 세대들이 빛나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반짝인다.

 

난 다음 세대들이 이 시대의 디도이기를 소망한다. 장금이는 알이도 ‘쇈네’는 기억 못하는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수많은 ‘쇈네’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불리울 것이다. 〠

 

우명옥|시드니한인장로교회 어린이부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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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27 [15:34]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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