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의 성지순례(7)

김환기 사관의 성지학술연구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6/28 [16:20]
사모스 (Samos)

‘쿠사다시’에서 ‘사모스섬’까지는 배로 약 1시간 반 거리이다. 터키의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그리스 섬이다. 배가 출발하자 가판 위의 ‘터키 국기’가 내려오고 ‘그리스 국기’가 올라간다. 나는 배 안에서 ‘아들레이드’에서 온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사진작가이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작품 사진을 찍고 있다.  

 
▲ 사모스 항구     ©김환기

“어느 나라가 가장 아름답습니까?” 그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질문을 해요. 하지만 꼭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워요. 나라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리스는 유적지가 많아서 좋고, 터키는 사람들이 친절하여 좋고, 남미는 자연이 아름다워서 좋고…”  그녀의 말에 ‘좋다’(Good)란 의미는 비교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질문에 모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화제를 돌렸다.  내일 밧모섬으로 간다고 하니, “ 밧모섬으로 가는 항구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아시죠?”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자, 그녀는 책자를 꺼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사모스 섬에는 항구가 두 곳이 있다. 내가 입항하는 ‘바티항’의 반대 편에 밧모섬으로 가는 ‘피타고리온 항’이 있다. ‘바티항’에서 내려 ‘사모스 고고학 박물관’을 찾아 갔다. 박물관의 유물을 보며 사모스 섬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사모스’(Samos)는 성서에 ‘사모’(행 20:15)라고 표기되어 있다. ‘성지순례’를 다니며 혼돈되는 것 중 하나는 지명이다. 같은 지역인데 이름이 바뀐 곳도 있고,  다르게 발음하는 곳도 있다. 터키 지역은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후 대부분 지명 이름을 바꾸었다. 대표적인 곳이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 ‘에베소는 셀축',‘서머나는 이즈밀’ 등이다. 그리스의 경우는 이름은 같지만 발음이 다르다.

'국립국어 연구원’에서는 혼돈을 막기 위하여 현대 그리스의 지명을 표기하는데 다음의 원칙을 정했다.  “잘 알려진 지명은 현지 발음과 다르더라도 ‘국립국어연구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집』의 표기에 따른다. 단 현지 발음도 병기할 수 있다.”

나는 아테네에서  Thessaloniki ‘테살노니키’ (세살로니키, 성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기차를 타는데 조금 문제가 있었다. '데살로니가’ 기차표를 달라고 하니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것이다. 스펠링을 다시 확인하고 ‘테살로니키’라 하니 그때서야 알아듣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그리스어 발음은 ‘세살로니키’ 이다.  

사모스는 바울이 삼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잠시 들린 곳이다. 또한 유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피타고라스’가 이곳 출신으로 항구 이름도 그의 이름에 따서 ‘피타고리온’이라 지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아레아바고 언덕’에서 언급했던 철학자 ‘에피쿠로스’(행 17:18)도 이곳 출신이며, 이야기 꾼 ‘이솝’도 사모스에서 노예생활을 했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한 피타고라스는 기원전 569년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기원전 500년께 이탈리아 남단의 ‘크로톤’이라는 곳에서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소문난 피타고라스는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탈레스’ 밑에서 공부했으며, 이집트에서 20여 년간 지내면서 수학과 종교를 공부하다가 이탈리아의 크로톤으로 건너가서 ‘피타고라스 학교’를 설립했다.

▲ 알렉산드리호텔     ©김환기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원리를 수(數)에 두고, 세계를 수적 관계 또는 비례에 기초를 둔 음악적인 일대 조화로 보았다. 그리고 수에서의 조화의 관계에 의한 영혼의 정화(淨化)를 인생의 최대 목적으로 삼았고 오르페우스교적 신비주의에 의하여 영혼의 불멸과 윤회를 믿고 엄격한 금욕생활을 하였다.


그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피타고라스가 ‘영혼윤회’를 이야기하면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자 사모스인들은 이렇게 반응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여, 물고기에도 영혼이 있으니까 먹지 말라는 것입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먹는 물고기는 산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이오. 그 물고기에는 이미 영혼이 떠나 버린 것이오. 그러니 우리는 영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영혼이 떠나 버리고 남은 고기만 먹는 것뿐인데, 뭐 그리 죄가 되겠소.”

에피쿠로스 (Epicurus)

‘에피쿠로스’는 341년에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270년에 아테네에서 죽었다. 그에 의하여 발달된 학파를 ‘에피쿠로스 학파, 그의 사상을 에피쿠리안주의(Epicurea- nism) 즉 ‘쾌락주의’ 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사상은 흔히 ‘육체적 쾌락’으로 보는 것은 사실과는 다르다.  반대로 지속적이고 완전한 만족을 주는 ‘정신적 쾌락’에 강조를 둔다. 그 학파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것이 ‘Happi- ness’라는 것을 보면  ‘괘락주의’ 대신 ‘행복지상주의’ 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행복지상주의’를 이해하려면 두 단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첫째 ‘아타락시아’(Ataraxia) 이고, 다른 하나는 ‘아포니아’(Aponia) 이다. ‘아타락시아’란 두려움에서 벗어난 ‘자유와 평화’를 뜻하고, ‘아포니아’는 ‘육체의 고통’이 없는 상태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행복’(Happi- ness)이 기준이 되어 선과 악을 구분한다. 행복하면 선(Good)이고, 그렇지 못하면 악(Evil)이다.  “우리는 행복을 우리 안에 보유한 제1의 선으로 인식하여, 행복으로부터 선택 및 금지의 행위를 결정하고, 우리는 다시 행복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말에 의하면 행복이 진리에 대한 시금석이 되듯이, 행복이 선악에 대해 척도가 되는 것이다.

이솝 (Aesop) 

그는 거의 전설적인 인물에 가깝다. 고대에는 그가 실존 인물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BC 5세기의 ‘헤로도투스’는 이솝이 BC 6세기에 살았던 노예였다고 했다. AD 1세기의 ‘플루타르코스’는 이솝이 BC 6세기 때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소스’의 조언자였다고 했다. 그가 트라키아 출신이라고 하는 설도 있고 프리지아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1세기에 씌어진 이집트 전기를 보면 그는 사모스 섬에 살던 노예였고 주인에게 자유를 얻어 ‘리쿠르고스’ 왕의 수수께끼 푸는 자로 바빌론에 갔으며 마침내 델포이에서 죽음을 맞는 것으로 나온다. ‘이솝우화’는 대부분이 동물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로 삶의 교훈을 던져 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늑대와 양치기 소년’, ‘바람과 태양’, ‘여우와 신포도’  등이다.  

이솝은 노예 출신이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소년 이솝에게 대중목욕탕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다.  잠시 후 소년 이솝은 주인에게 목욕탕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보고하였다.  한가한 목욕을 꿈꾸며 목욕탕을 찾았던 주인은 목욕탕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려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주인은 이솝을 불러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이솝은 “목욕탕 입구에 큰 돌이 있어 매우 불편한데도 그것을 치우고 들어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에 그렇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피타고리온 항’으로 가는 버스에서 멜버른에서 온 중년 여인을 만났다. 사모스 출신으로 친척 결혼식이 있어 왔다고 한다. 그녀는 아테네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 마침 그녀의 친척이 호텔을 운영한다고 해서 그곳에 머물기로 했다. 이름은 ‘알렉산드라 호텔’이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손님도 없고 깨끗했다. 물을 사려고 슈퍼마켓에 가니 물값과 우유값이 비슷하여 이왕이면 우유를 마시기로 했다. 그날 밤 나는 우유만 4L를 마셨다. 새벽에 화장실을 갈 때마다 후회했지만, 사모스섬에서 소 그림이 있는 우유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김환기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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