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뮤어 선교사와 행복한 만남

네빌 무어 목사를 추모하며

박영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2/22 [15:04]
▲ 국제농아인선교회(DMI) 대표 네빌 뮤어 선교사. 지난해 11월 하나님의 품에 안긴 뮤어 선교사는 한국과 호주, 중국 등 23개국에서 농아선교 및 구호 활동을 펼쳤다.     © 크리스찬리뷰


내가 처음 네빌 뮤어(Rev. Neville Muir) 선교사를 만난 것은 호주로 이민 온 후 대학시절로 기억된다. 같은 대학 농아 동창생를 따라 처음으로 호주 농아인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네빌 뮤어 목사와의 만남

 

농아인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데 나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남한(South Korea)에서 왔다고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

 

그때 농아인교회 한 성도가 “아~ 그러면 한국에 있는 호주 선교사 네빌 뮤어 선교사가 보냈겠군요?”라면서 모두가 기뻐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무슨 말인지? 네빌 뮤어가 누군지?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나는 네빌 뮤어 선교사가 누구인지, 왜 한국에 있는지 물었다.

 

네빌 뮤어 선교사는 호주인 선교사로 부름을 받아 한국 인천에서 농아인 사역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드니 농아교회에 책상 위에 놓여진 한국에서 온 농아 선교 소식을 읽고 너무 기쁜 마음으로 손 편지를 써서 한국에 있는 네빌 뮤어 선교사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무렵, 한국에 있는 네빌 뮤어선교사로부터 반가운 답장을 받았다.

 

“박영주 자매님, 호주에 한국인 농아가 살고 있다니 놀랍군요. 다음에 호주에 가게 되면 꼭 만나요.”라는 내용이었다.

 

그 후 시드니에 있는 호주 농아인교회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에 초청을 받아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곳에서 네빌 뮤어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과 한국에서 함께 온 농아들을 처음 만났다.

 

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네빌 뮤어 선교사는 한국 수어와 한국말을 너무나도 유창하게 잘 하였다. 성품마저도 너무나 한국적이었다. 겉 모습은 호주 사람이지만 마음은 인심 많고 자상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다.

 

지금도 오래전 네빌 뮤어 선교사와 첫 만남이 어제 일같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후 2001년경 네빌 뮤어 선교사는 한국에서 시작된 국제농아선교회 본부를 호주 멜번으로 이전하고 온 가족들도 같이 귀국하였다. 나는 국제농아선교회 후원회에 참여하면서 시드니와 멜번을 여러 차례 왕래하며 네빌 뮤어 선교사와의 친분 관계를 신앙으로 돈독하게 쌓았다.

 

DMI 홍보대사로 위촉받다

 

2013년 9월에는 시드니에서 국제농아인선교회(DMI, Deaf Ministries International)를 위한 수어 자선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그때 나는 네빌 뮤어 선교사와 함께 이휘진 전 시드니 총영사를 만나 아주 특별한 교제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뮤어 선교사는 시드니에서 활동 중인 대양주의료선교협회(OMMA) 모임에서 국제농아선교회를 홍보하고 설교도 하였다.

 

열린문교회에서 있었던 수화 자선음악회를 통해 모아진 후원금을 네빌 뮤어 선교사에게 전달하였고, 그곳에서 나는 국제농아선교회 홍보 대사로 위촉을 받기도 했다.

 

네빌 뮤어 선교사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아주 특별한 격려사를 해 주었다.

 

“박영주를 농아로 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한국에서 호주로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고 격려와 축복해 주었다.

 

몇 해가 흘러 나는 멜번에서 가야할 특별한 일이 있었다. 시드니에서 오웬 그린 여사와 친분을 쌓았었는데 그녀가 딸의 집이 있는 멜번으로 거처를 옳긴 것이였다. 오웬 그린 여사는 한국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남편이 호주 육군 장교였는데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 유엔군으로 편입해 전투 중 전사한 것이다. 그 때부터 오웬 그린 여사는 갓 태어난 딸과 일생을 홀로 살아 온 것이였다.

 

오웬 그린 여사는 부산 유엔군 공원묘지에 전쟁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을 가보고 싶었지만 노년에 거동이 불편해 가지 못 하고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약속을 했었다. 만약 내가 다음에 한국에 가면 꼭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에 가서 사진 영상을 담아 오기로 한 것이다.

 

오웬 그린 여사와 민보은 선교사

 

나는 그해 호주 농아 두 명의 지인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부산에 있는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전쟁 박물관 자료를 사진과 영상으로 준비했고 호주로 돌아와 멜번으로 달려가 오웬 그린여사에게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고 자료들을 전달하였다.

 

오웬 그린 여사는 나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평생 미망인으로 살아오면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으로 쓴 자서전 ‘아직도 당신의 이름은 찰스’라는 책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멜번에서 또 한 분의 훌륭한 여 선교사를 만났다. 한국 이름으로 더 익숙한 민보은(Dr. Barbara Martin) 선교사이다. 그녀는 젊은 나이게 멜번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근무하다가 한국의 열악한 의료시설 부족 소식을 듣고 의료 선교사로 지원하여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30년 넘게 의료선교를 하고 은퇴를 하여 멜번으로 돌아 온 것이였다.

 

아주 특별한 멜번 방문을 통해 존경하는 두 사람을 만날 때 네빌 뮤어 선교사와 오세황 선교사가 동행해 주었다. 내가 가는 곳마다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 주시고 동행해 주신 아름다운 시간 속에 항상 행복이 넘쳤다.

 

2년 전 12월, 크리스마스 때 잠깐 멜번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때도 잠시 네빌 뮤어 선교사의 가정을 방문했다. 당시 네빌 뮤어 선교사는 나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호주식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를 차려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오면 더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그 식사가 마지막일 줄이야…

 

향년 75세 일기로 하나님 품에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네빌 뮤어 선교사는 향년 75세의 일기로 지난해 11월 12일 7년 동안 앓아온 지병으로 인해 하나님 품에 안겼다. 코로나19로 인해 장례식은 18일이 지난 후 11월 30일 하나님의 은혜로 장례식을 마쳤다. 나는 주 경계 봉쇄로 참석하지 못하고 온라인 방송을 통해 장례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DMI 홍보대사 임명식을 마친 후 네빌 뮤어 목사 부부와 박영주 집사. 오른쪽은 한국 담당 코디네이터 오세황 목사 (2013. 9.6)     © 크리스찬리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작년 7월 말쯤 멜번에 계신 네빌 뮤어 선교사의 병문안을 가려고 계획했지만 코로나19로 주국경이 막혀 그 계획이 성사되지 못했다.

 

잠시 네빌 뮤어 선교사를 회상해 본다.

 

네빌 뮤어 선교사는 내가 멜번에 갈 때마다 친정집에 온 것 같이 편하게 맞아주었다. 그가 하나님 품에 안기기 전 우리는 코로나 시기에 록다운 되어 만날 수 없어 급하게나마 병원에서 영상 통화 통해 수어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네빌 선교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기쁨의 사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선교사님을 만나 정말 감사했습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남은 내 인생속에서 네빌 뮤어 선교사 같은 분을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박영주|DMI 홍보대사,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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