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을 지키는 사랑
두아디라교회 (계 2:18-29)
 
정지홍/크리스찬리뷰

두아디라는 직조, 염료, 모직, 가죽 등이 발달한 패션의 중심지로 세련되고 화려하고 부유했다.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루디아가 바로 이곳 두아디라의 자색 옷감 장수였다. 자색 옷감은 그 시대에 상류층 여인들이 즐겨 입던 것으로, 두아디라의 화려함과 부유함을 상징했다

 

두아디라의 모든 상거래는 길드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이 길드가 우상 숭배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었고, 길드마다 숭배하는 수호신이 있어서 매년 그 수호신에게 감사하는 길드 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시작되면 시민들은 길드의 수호신에게 절을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으며 음행을 행하는 축제를 즐겼다.

 

과도한 사랑의 문제

 

두아디라는 ‘사랑’이 많은 교회였다. 그것도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은” 날이 갈수록 사랑이 풍성해지는 교회였다. 에베소교회는 나중에 첫사랑을 잃어버렸지만 두아디라교회는 첫사랑보다 나중 사랑이 더 풍성한 교회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쳐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이세벨까지 용납했다.

 

이세벨은 자칭 선지자라고 하며 두아디라 교인들을 꾀어 행음을 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예수님의 종들까지 꾀었다. 이세벨이 자신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유혹하며 거짓 교리를 가르쳤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의 사역이 갈수록 풍성했던 두아디라 교회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을까? 지나친 사랑 때문이었다. 무작정 용납했던 과도한 사랑 때문이었다.

 

회개를 통한 믿음

 

예수님은 그냥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죄와 허물을 주님께 참회할 때 비로소 참되게 믿게 된다. 이방 신전의 여사제들은 그들의 종교 의식에 따라 신전을 찾는 남자들과 행음을 하며 우상의 제물을 먹었다.

 

이세벨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했다면 먼저 그와 같은 과거를 청산하고 회개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가 회개도 하지 않은 이세벨을 용납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결국 거룩해야 할 교회가 그녀의 꾀임에 넘어가 길드 축제에 참여해서 음행을 행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말았다. 거룩과 사랑의 경계에서 두아디라 교회는 거룩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사랑도 참된 사랑은 아니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전 13:5).

 

거룩을 지키는 사랑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하고, 이웃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거룩을 훼손할 수는 없다. 불의를 기쁘게 하는 사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이세벨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하지만 이세벨은 회개하지 않았다.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처음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작정 용납했다고 하더라도, 죄악의 문제가 남았다면,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그런데도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주님이 용납하시지 않는다. 병으로 치셔서 침상에 던지시거나 환난 가운데 던지시거나 아니면 죽인다고 하신다. 이세벨과 더불어 간음한 자들도, 그의 자녀들 즉, 그녀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회개한 척 주님을 속일 수 없다. 또 죄를 감출 수도 없다. 회개치 않으면 주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것이 거룩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유일한 길이다. 거룩은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진리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거룩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하다.

 

거룩한 믿음을 굳게 잡은 교회들에게 예수님께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철장으로 사탄의 세력들을 심판하는 권세를 함께 주신다. 그리고 새벽별처럼 영광스럽게 하신다. 참된 회개를 통해 거룩한 믿음을 굳게 하자. 샬롬! 〠

 

정지홍|킬라라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copyright ⓒ 크리스찬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입력: 2021/02/22 [15:1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배너
배너
배너
포토 포토 포토
사람이 행복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