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신앙인·정치인으로서 충성스러운 삶을 산 헨리 제임스 홀덴

글/정지수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3/29 [14:23]
▲ 주 최초의 현지 제작 차량인 홀덴(Holden) 48-215 출시. 당시 호주 총리였던 벤 치플리가 멜번 피셔 맨스 벤드 공장에서 첫 번째 홀덴 자동차를 출시했다.(1948)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호주인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호주의 대표적인 자동차 회사인 홀덴을 설립해 성장시킨 홀덴 가문의 이야기를 다루도록 하겠다.

 

특히, 기업인으로서 홀덴 회사를 잘 경영했고, 신앙인으로서 충성된 삶을 살았으며, 정치인으로서 지역 사회를 열심히 섬겼던 헨리 제임스 홀덴 제독(Sir Henry James Holden)의 삶을 살펴 본다.

 

홀덴 자동차의 역사

 

먼저, 홀덴 (GM Holden Ltd.)이라는 회사에 대해 살펴보자. 이 회사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들을 만들었던 자동차 회사이다.

 

이 회사의 시작은 영국에서 살고 있던 제임스 알렉산더 홀덴(James Alexander Holden)이 1852년에 호주로 이민을 와서 아들레이드에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는 1856년에 말을 타는데 필요한 제품들을 생산하는 마구 회사를 설립했다.(J.A. Holden & Co.) 1879년에는 그의 큰 아들인 헨리 제임스 홀덴(Henry James Holden)이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경영가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 1800년대 후반 미군이 사용했던 McClellan 안장.    

 

▲ 영국식 안장의 각 부품에 대한 설명.    

 

한편, 1885년에는 독일계 호주인인 프로스트 (H. A. Frost)가 회사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서 회사 이름이 Holden & Frost Ltd.로 변경되었다. 이때부터 이 회사는 마구뿐만 아니라 마차를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회사가 자동차 사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회사 설립자 제임스 알렉산더 홀덴의 손자인 에드워드 홀덴(Edward Holden)이 경영에 참여한 1905년부터이다. 1908년부터 이 회사는 자동차 커버 수리 사업에 뛰어 들었다. 이후 1917년부터는 차체(car body part)를 생산해 본격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 홀덴을 설립한 헨리 제임스 홀든은 호주의 사업가였으며, 남호주의 켄싱턴과 노우드 시장으로 8년 동안 지역사회를 섬겼다.    

 

▲ 제임스 알렉산더의 손자인 에드워드 홀덴 경. 에드워드는 1905년부터 본격적으로 홀덴 경영에 참여했다.   


한편, 헨리 제임스 홀덴 (Sir Henry James Holden)은 1917년에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1919년 2월 25일에 이 회사를 Holden's Motor Body Builders Ltd(HMBB)로 정부에 등록했다. 이 회사는 차체를 생산해 판매했다.

 

▲ 홀덴의 로고 변천사.    


1923년에 이 회사는 1만 2천 대의 차체를 생산했다. 1924년에는 호주 GM(General Motors)에 차체를 독점으로 납품하기 시작했다.

 

▲ 홀덴 초창기 승용차와 로고    

 

▲ 1949년에 생산된 홀덴 승용차. 1958년 7월부터 1960년 1월 사이에 생산된 홀덴의 FC시리즈. 1961년부터 생산된 Holden EK Special Station Sedan은 자동 변속기를 사용할 수있는 포드 팔콘에 대한 홀덴의 대응이었다.(위에서 아래로)     


1931년에 호주 GM은 홀덴 회사 (Holden's Motor Body Builders Ltd.)를 합병해 GM 홀덴(General Motors Hol- den's Ltd.)을 설립했다.

 

한편, 2차 세계대전 때는 군용 트럭, 보트, 대포 등 다양한 군수용품을 호주 정부와 미국 정부에 납품하기도 했다.

 

홀덴 회사가 처음으로 호주산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를 시작한 것은 1948년이다. 호주의 벤 치플리 (Ben Chifley) 수상은 1948년 11월 29일에 호주에서 처음 생산된 호주산 홀덴 자동차인 48-215를 소개했다. 이 자동차는 나중에 홀덴 FX로 불렸다.

 

▲ 1979 Holden UC Torana SL 세단(위). Torana는 Camira가 1982년에 출시될 때까지 4기통 버전의 Commodore로 대치되었다. 1978년에 첫 선을 보인 코모도어(아래)는 홀덴의 베스트셀러 차량이 되었다.    


이 자동차는 가족용 세단으로 호주 환경에 맞게 디자인되었다. 당시 가격은 세금을 포함해서 $733였다. 이 금액은 당시 노동자의 94주치의 봉급이었다. 18,000명의 사람들이 자동차가 생산되기도 전에 계약금을 지불하면서 구매 서류에 서명을 했다.

 

1950년대부터 홀덴 자동차가 호주 자동차 시장을 완전히 장악해서, 홀덴이 호주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다. 홀덴 자동차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은 코모도 (Commodore)이다.

 

이 모델은 1978년에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국민차로 큰 인기를 누렸다. GM 홀덴은 호주에서 2002년까지 자동차 판매 1위 회사였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와 한국 자동차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이 크게 줄었다.

 

한편 미국에 있는 GM 본사는 판매 부진과 경영 악화로 2009년 6월 1일에 파산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다행히 호주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해 GM 홀덴은 2017년까지 호주에서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었다.

 

2013년도 호주 파이넨셜 리뷰(Australian Financial Review)에 의하면 지난 14년 동안 호주 정부가 GM 홀덴에 쏟아 부은 예산은 약 22억 달러 정도이다. 이는 호주 정부가 연간 약 1억 5000만 달러를 GM 홀덴 회사에 투자한 것이다.

 

▲ 1979 Holden VB Commodore Sedan, 1988 Holden Calais (VN) Sedan, 1999 Holden Commodore (VT) SS Sedan, 2009–2010 Holden Commodore (VE) SS V Sedan, 2018 Holden Commodore (ZB MY18) Calais V Sedan (위에서 아래로)     

 

▲  아들레이드 공장에서 생산된 호주산 마지막 V8 세단. 2017 Holden VF Series  II SSV Redline은 지난 1월  Lloydss 옥션에서 1백5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하지만, 2012년에 GM 홀덴은 약 8,700만 달러의 이윤만 내는데 그쳤다. 계속되는 판매 부진과 재정적자로 GM 홀덴은 더 이상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졌다. 2020년에 GM 본사는 2021년 연말까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모든 자동차 관련 사업을 철수하기로 했다. 홀덴 자동차의 역사는 이렇게 끝나게 된 것이다. 

 

크리스찬 기업가 헨리 제임스 홀덴

 

헨리 제임스 홀덴 (Henry James Holden)은 1859년에 호주에서 알렉산더 홀덴 (J. Alexander Holden)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알렉산더 홀덴은 1852년 호주로 이민을 와서 1856년에 J.A. Holden & Co.라는 마구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가 크게 성장한 것은 그의 아들인 헨리 제임스 홀덴이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헨리는 회사 경영에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이후 1917년에 헨리는 자동차 차체를 조립하는 회사(Holden's Motor Body Builders Ltd)를 만들었다. 1923년에 그의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약 1천 명이 넘었고, 매주 240대의 차체를 생산했는데, 이는 호주 전국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분량이었다. 헨리는 생산라인을 확장해서 1924년에는 약 424대의 차체를 매주 생산하게 되었다.

 

▲ 남호주 엘리자베스에 있는 홀덴자동차 공장.    

 

▲ 아들레이드 런들 스트리트에 있는 홀덴 & 버크스 전경 (1875년경)    

 

▲ 1949년 Holden 48-215 생산 라인     


한편, 헨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25년 동안 노우드 (Norwood) 침례교회에서 집사와 주일학교 부장으로 섬겼다. 그리고 침례교 연합회 (Baptist Union)에서 21년 동안 회장으로 이 단체를 섬겼다.

 

1904년에는 노우드 코티지 홈즈 (Norwood Cottage Homes)라는 양로원을 설립해 가난한 노인들에게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그는 기독 남자 청년 연합회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회장으로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메리 엘리자베스 홀덴(Mary Elizabeth Holden)도 기독여자청년연합회(Young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와 적십자(Red Cross)에서 이사로 섬겼고, 여러 사회 봉사 단체들의 회원으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수고를 했다.

 

한편, 기독교인이었던 헨리 홀덴은 회사도 모범적으로 운영했다. 그는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썼다. 노사 협의체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의 의견을 청취했고, 노동자들의 복지를 향상 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제품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무단히 노력했고 노동자들에게 품질 향상에 대해 항상 강조했다.

 

▲ 1946년 홀덴 프로토 타입을 제작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호주 엔지니어 중 한 명인 잭 론슬리 씨  


또한, 그는 지역 사회를 발전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켄싱톤(Kensington)과 노우드(Norwood)의 시장으로서 8년 동안 지역사회를 섬겼다. 노우드 학교 이사회 (Norwood School Board)의 회원이었으며, 트램/전차 재단(Municipal Tramways Trust)의 회원으로서 트램/전차를 전기화하는 사업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1903년 이후에는 그는 치안 판사로 활동을 했고, 도시 계획 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1911년에는 영국을 방문했는데, 호주 정부는 그에게 영국의 정신 병원들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제출해 줄 것을 부탁했었다.

 

헨리 홀덴은 인생 말년까지 최선을 다해 회사를 운영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신앙생활에 충실했다. 죽기 얼마 전에는 당뇨병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건강이 악화되어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는 1926년 3월 6일에 노우드(Norwood)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했다.

 

헨리 홀덴에게는 두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이 있었다. 헨리 홀덴의 아들인 에드워드 홀덴 (Edward Holden)은 1885년 8월 14일에 College Town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관심과 후원으로 에드워드는 프린스 알프레드 컬리지(Prince Alfred College)를 졸업하고, 아들레이드 대학 (University of Adelaide)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다.

 

▲ 남부 호주 노우드 시청 (Norwood Town Hall)     


대학을 졸업하고 에드워드는 아버지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는 마차처럼 말들을 이용한 교통수단의 이용이 줄어들고, 자동차의 이용이 크게 늘어날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아버지인 헨리 홀덴에게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자동차 생산시설과 자동차 판매 시장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 홀덴은 2021년말까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자동차 관련 사업을 철수한다. 현재 홀덴 딜러상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사진은 현재도 영업 중인 고스포드에 있는 홀덴 딜러상.     © 크리스찬리뷰

 

▲ 홀덴은 호주의 상징인 Holden Ut의 70주년을 기념하여 TribUTE를 공개했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조언들은 홀덴 회사를 한 단계 더 크게 성장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먼저 홀덴 회사가 차체를 생산해 판매하도록 했다.

 

한편, 차체를 생산함에 있어서도 최첨단 자동 시스템을 도입해 많은 차체를 단시간에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에드워드 덕분에 홀덴 회사는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되었다.

 

홀덴 회사가 자동차 공장을 남호주(South Australia)에 건설하고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했다. 홀덴은 이 지역의 경제와 노동 시장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호주 자동차 생산 기술이 미국의 GM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홀덴에서 생산하는 자동차들은 호주 국민차가 되었다.

 

또한 홀덴 회사는 호주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호주를 대표하는 기업이었다. 호주의 자동차 시장은 크지가 않지만, 홀덴은 이 작은 시장을 석권하고 호주를 대표하는 자동차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GM 홀덴이 더 이상 호주에서 자동차 사업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홀덴 가문이 일으킨 홀덴이라는 자동차 브랜드는 호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 같다.

 

또한, 신앙인으로서 기업인으로서 정치인으로서 충성스러운 삶을 산 헨리 제임스 홀덴을 우리는 기억하고 본 받아야 할 것이다. 〠

 

글/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 홀덴에서 생산한 자동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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