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왜 우리 아버지를 데리고 가셨을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선다싱 전집을 읽다가 선다싱과 같이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될 것을 결심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이어서, 집안 어른들에 의하여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이는 자라서 신학교에 입학했다. 1983년 어느 날, 하태식 전도사는 광화문을 걷는 중에 우연히 노방전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사무실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예수전도단의 창시자인 오대원 선교사(Rev. David E. Ross)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하태식 전도사의 운명을 바꾸었다. 하 선교사는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년 동안, 예수전도단의 간사로 시작하여 본부 사무실 행정 책임자를 역임했다.
하태식·정선 선교사 가족은 호주 예수전도단의 초청을 받고 1994년 1월 1일 호주에 도착하여 지금까지 28년 동안 호주 내 한국인 책임자로 사역하고 있다.
예수 전도단과 YWAM
오대원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1961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왔으니 한국 이름을 갖기를 원했다. 마침 함께 살던 한옥집 주인인 오복교 장로의 성인 ‘오’와 'Ross' 비슷해서 ‘오’씨로 하기로 하고, 이름을 ‘대원’이라고 했다. 대원군은 기독교를 박해했지만 자신은 기독교를 잘 전파하겠다는 의미의 역설적인 이름이다.
오대원 선교사의 사역은 젊은 층, 특별히 대학생 중심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선교는 1967년 서울공대 기독학생회 사역으로 시작되었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오히려 말씀으로 돌아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 뜨거운 열정을 주께 돌이키면 좋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1972년 예수전도단의 출발이 되는 화요기도모임을 시작했다. 1973년에 YWAM과 관련없이 오대원 선교사가 한국에서 ‘예수전도단’(Jesus Evangelism Team)을 발족하였다.
1979년 하와이에서 오대원 선교사가 안식년 중 코나의 열방대학에서 CDTS를 받으면서, 9월 28일에 예수전도단 사역을 YWAM과 연합하기로 결심하였고, 이에 따라 1979년 말에는 남장로교 선교사 직분을 사임하였다.
이후 1980년초 태국 치앙마이 봄 선교대회에서 통합이 이루어졌고, 오대원 목사가 한국 대표로 임명되었다. 정식 한국어 이름은 ‘예수전도단’으로, 영어 이름은 YWAM Korea로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YWAM은 180개 국을 3지역으로 나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아프리카 유럽, 남미 북미 지역이다. 2년에 한 번씩 정기 총회를 갖는다.
호주에는 25개의 지부가 있다. 호주의 수도인 캔버라에 본부가 있고, 열방대학도 있다. 일 년에 두 차례씩 돌아가면서 정기 총회를 갖고 있다.
“저는 정기 총회가 기다려집니다. 총회에서는 6개월간의 한 일과, 6개월간의 할 일을 보고합니다. 지역 사정이 다르다 보니 사역도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그레노리(Glenorie) 시대를 열다
예수전도단은 Faith Mission을 한다. 본부에서는 재정지원을 따로 하지 않는다. 믿음으로 스스로 재원을 만들어서 사역해야 한다. 하 선교사는 호주에 도착하여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루하루의 삶 자체가 모험과 기적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때는 누굴 만나든지 돈을 줬어요. 수표도 끊어주시고 만 불도 선뜻 주시고 천 불도 주시고 20불도 주시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기간에 하나님께서 15만 불을 채워주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렇게 기도했거든요. 이 센터가 호주를 위한 거니까 호주에서 하나님이 돈을 주셔야 됩니다. 그렇게 기도했어요. 그렇게 해야 이 땅이 축복되고 이 땅이 다음 세대에게도 축복이 되는 거지요. 그러면서 은행 돈을 빌리고 보태서 지불하고 1999년 12월 18일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12월 매입할 때에는 황량한 언덕에 달랑 작은 붉은 벽돌집 한 채였다. 사역이 확장되면서 그는 성전과 숙소가 필요했다.
2000년 믿음으로 새로운 건물을 짓기 시작했지만 재정 문제와 건축법 문제로 진행이 더디었다.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건물을 완공할 수 있었다.
시드니 318 베이스
호주에 오면서 하 선교사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 있다. 창세기 14장 14절 말씀이다.
시드니 318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예수제자훈련학교(DTS 12주 강의와 10주 선교여행), 선교영어마을학교(ESLM), 청소년 영어와 문화, 영성캠프(YEC), 총체적 선교학교(SOFM 12주간), 사역자훈련학교(SOM 12주), 귀납적 성경연구학교(BCC, 12주), 예배, 중보기도, 영적전쟁학교(SOWIW 12주), 독수리예수제자훈련학교(BEDTS) - 왕의자녀들(KiING'S KIDS)과 화요 찬양 예배를 대신하여 목요 찬양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기초는 DTS(Disciple Training School)이다. 이 과정은 하와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열방대학(University of Nations)의 1학년 1학기 과정이다. 국가마다 베이스마다 혹은 대상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3개월의 강의와 3개월의 전도여행으로 이루어진다.
새 성전과 기도실
시드니 318은 호주내의 한인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오고 있다. 아웃리치로 갔었던 동남아에서도 예수를 믿고, 호주에서 훈련 받기 원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드니 318에서는 영어권과 한국어권으로 이원화 체제로 구축이 되어 언어 문제는 전혀 없다. 다만 훈련 공간이 부족하여 2010년부터 성전과 기도실의 건축을 시작했다. 건축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인내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올해 안에 건축을 마무리 지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의 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셔서 지금까지 온 겁니다. 까마귀를 통해서 엘리야를 먹이셨던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벽돌 몇 장을 보내 주시면 쌓고, 시멘트를 주시면 바르며 하나님의 은혜로 천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공사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완공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사기간이 길어진 것은 특별히 지원해 주는 사람이 없이 자비량으로 하는 탓이다. 지금도 건축은 진행형이다. 여기저기 건축 자재들이 쌓여있었다. 기자는 5년 전 시드니 318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공사 중이었는데, 여전히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하 선교사 가정은 1994년 호주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한 주에 일인 당 100불씩 거두어 최소한의 경비로 생활하고 있다. 예수 전도단의 생활양식은 ‘Keep is simple and small’이다.
인터뷰 내내 함께한 부인인 정선 선교사는 담대하게 선포한다.
“올해 안에는 반드시 새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숨겨둔 누군가를 통해서 반드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기자는 정 선교사의 강력한 믿음의 선포에 고무되어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드니 318 베이스를 떠날 수 있었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권순형|본지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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