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민 기업, 콜스 이야기

글/정지수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04/27 [10:12]
▲ 콜스 슈퍼마켓을 설립한 조지 제임스 콜스 경. 조지 콜스가 시작한 콜스는 호주 국민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렸고, 신뢰도가 높은 회사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기업가가 이룬 놀라운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호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콜스 슈퍼마켓(Coles Supermarkets)에서 구입하는데, 콜스 슈퍼마켓은 조지 제임스 콜즈 경(Sir George James Coles, 1885~1977)에 의해 1914년에 설립되었다.

 

조지 콜스는 1885년 3월 28일에 빅토리아 주 머토아(Murtoa) 근처의 중중(Jung Jung)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1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조지 콜스가 첫째 아들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1번째 자녀를 낳고 사망했다.

 

조지 콜스는 빅토리아 주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에 다녔으며, 비치워스 고등학교(Beechworth College)를 다닐 때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는 멜번과 지방에서 다양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1910년에 빅토리아 주 세인트 제임스(St. James) 타운에 있는 자신의 작은 가게 (6.1m x 5.5m)를 장남인 조지 콜스에게 4천500파운드(£)에 팔았다. 조지 콜스는 3년 동안 이 가게를 운영했다. 이후에 그는 소매업을 운영하는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미국과 영국을 방문했다.

 

▲ 1914년 4월 9일 빅토리아 주에 위치한 콜링우드(Collingwood)의 스미스 스트리트에 콜스 첫 매장이 문을 열었다.   

 

▲ 개장 초기 문전성시를 이룬 콜스 매장 앞 풍경    


미국에서 그는 당시 유행했던 ‘5센트 매장’과 ‘10센트 매장’을 보고 큰 도전을 받았다. ‘5센트 매장’에서 파는 모든 제품들은 가격이 5센트를 넘지 않았고, ‘10센트 매장’에서 파는 모든 제품들은 가격이 10센트를 넘지 않았다.

 

호주로 돌아온 그는 사업에 대한 큰 꿈을 꾸기 시작했고, 미국에서 본 것들을 기초로 해서 소매업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그는 동생들과 함께 자본을 모았다. 그리고 1914년 4월 9일에 빅토리아 주에 위치한 콜링우드(Collingwood)의 스미스 거리(Smith Street)에 소매 매장을 열었다. 그는 매장을 열기 전에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매장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을 해야 매장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에게 매장에 대한 자부심을 불어 넣어 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 조지 콜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작성한 지원 문서.   


한편, 조지 콜스는 제1차세계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1917년 6월 18일 호주 군대에 입대했다. 그는 프랑스 전선에 투입되었는데, 1918년 4월에 치러진 치열한 전투 중 무릎에 총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를 위해 영국으로 후송되었고 이후 호주로 돌아와 1919년 3월 1일멜번에서 제대했다. 한편, 그와 함께 군에 입대한 동생들 중에서 짐(Jim)과 데이빗(David)은 전사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조지는 그동안 운영해왔던 매장을 삼촌에게 팔았다. 그리고 1919년 6월에 동생 아써(Arthur)와 동업해 좀 더 큰 건물을 얻어 다른 매장을 열었다. 이 매장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고, 매출은 점점 늘어갔다.

 

▲ 조지 콜스는 멜번 큐에 위치한 성삼위교회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한편, 조지 콜스는 1920년 2월 7일, 멜번 큐(Kew)에 위치한 성삼위교회 (Holy Trinity Anglican Church)에서 마가렛 허버트(Margaret Herbert)와 결혼을 했다. 조지와 마가렛은 결혼 후에 5명의 자녀를 낳았다.

 

▲ 호주 최초의 콜스 셀프 카페테리아.(멜번, 1950년)    


조지 콜스는 1921년 7월 1일에 동생과 함께 정식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G. J. Coles & Co. Pty Ltd였다. 1924년에는 조지 콜스의 형제들인 에드가(Edgar)와 케네쓰 (Kenneth) 등이 사업에 동참하였다.

 

▲ 2014년 화재로 소실된 콜스의 초기 매장    

 

▲ 콜스는 1987년 멜번에 본사 건물을 신축했으며, 밥 호크 호주 수상이 완공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었다.     

 

▲ 콜스는 1928년에는 멜번 버크 스트리트에 위치한 아케이드(Coles Book Arcade)를 구입했고, 미술용품을 파는 매장도 열었다.     


같은 해에 조지 콜스는 멜번의 중심가인 버크 거리 (Bourke Street)에 새로운 매장을 열면서 사업을 조금씩 확장해 나갔다. 새롭게 문을 연 매장에는 호주 최초로 셀프 서비스 카페 (Self Service Cafe)가 운영되었다. 콜스 회사는 점점 더 성장했고, 1927년에는 매장이 9개로 늘어났으며, 매출액도 84만 파운드(£)로 늘어났다.

 

1928년에는 멜번 버크 거리 (Bourke Street)에 위치한 아케이드(Coles Book Arcade)를 구입했고, 미술용품을 파는 매장도 열었다.

 

▲ 매일같이 신선한 야채를 공급하는 콜스.   


1929년부터 호주에 경제 공황이 불어 닥쳤다. 하지만, 조지 콜스는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했고, 콜스 회사는 나날이 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콜스 회사는 전국에 86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많은 매출을 올렸다.

 

1931년도에 조지 콜스에게 어려움이 찾아왔다. 그의 건강이 나빠진 것이다. 조지 콜스는 모든 경영을 자신의 동생인 아써(Arthur)에게 넘기고 자신은 회장직만 유지했다.

 

▲ 남호주(SA) 리버랜드에 있는 콜스 매장.    

 

▲ 호주 전역의 콜스 매장에 상품을 운반하는 트럭.   


운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지 콜스는 1933년부터 알프레드 병원(Alfred Hospital)에서 명예 회계사로 일했다. 그는 병원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병원의 확장을 위해서 10,000 파운드(£)를 병원에 기부했고, 병원 증축 위원장이 되어서 병원 증축에 큰 공헌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멜번 지역 간호협회(Melbourne District Nursing Society)에도 많은 기부금을 내었다. 또한 그는 지역 사회를 섬기기 위해서 1934년에 멜번 로타리 클럽(Melbourne Rotary Club) 회장이 되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 1935년도에 그의 동생들이 조지 콜스를 회장직에서 몰아내려고 시도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어났지만, 조지 콜스는 회장직을 굳건히 지켜냈다.

 

▲ 멜번 북부 에핑에 있는 오로라 빌리지 쇼핑센터 내에 있는 콜스 매장. 지난 2018년 12월, 콜스는 중국 투자자에게 4천4백만 달러에 매각했다.    

 

▲ Asquth지역에 있는 콜스 매장 입구     © 크리스찬리뷰


세계 제2차 대전은 콜스 회사의 판매 전략에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전쟁이 다시 시작되자 많은 기혼 여성들이 직장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기혼 여성들은 요리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들은 콜스 매장에서 가공된 식료품들을 더 많이 구입하기 시작했다.

 

콜스 회사는 이러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깨닫고 더 많은 가공된 식료품들을 판매해 매출을 늘렸다. 1946년부터 콜스 회사는 다리미와 토스터 같은 가전 제품들을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1948년부터는 화장품 판매를 시작했다.

 

1950년대는 콜스 회사가 급속도로 성장한 시기였다. 콜스 회사는 다른 소매 매장들을 인수하거나 합병하면서 콜스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또한 매장의 숫자를 늘릴 뿐만 아니라, 물류, 창고, 유통 시스템 등에도 적극 투자해 호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중요한 슈퍼마켓 체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 콜스 매장들     © 크리스찬리뷰


1956년에 조지 콜스는 회장직을 사임하고 이사직만 유지했다. 회사의 일에서 벗어난 그는 지역 사회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거나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투락 (Toorak)에 위치한 성 존스교회 (Saint John’s Anglican Church)의 운영위원으로 섬기면서 교회의 성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또한 그는 1946년부터 68년까지 호주 내셔널 은행 (National Bank of Australasia)에서 임원으로 일했으며, 1966년부터 1968년까지는 부회장으로 섬겼다.

 

조지 콜스가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기부를 많이 한 것이 알려져 1957년도에 기사 작위를 받게 되었다. 기사 작위를 받은 후에도 조지 콜스는 기부를 많이 했는데, 1963년에는 멜번대학에 많은 기부금을 내었다. 그의 기부금은 멜번대학 내에 의료학부 건물을 건축하는데 사용되었다.

 

1977년 12월 4일, 그는 투락(Toorak)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

 

▲ 콜스의 개발 요리사들.    


한편, 콜스는 1960년대에도 계속해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매장 수가 많이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호주 최초로 주차장을 갖춘 독립 건물에 콜스 대형 매장을 열었다. 콜스는 이때부터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품들과 식료품들을 파는 대형 슈퍼마켓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콜스 회사는 할인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약 7천 개 품목의 가격을 획기적으로 인하했다. 1980년대에는 호주 달러가 강세였던 시기인데 이때 콜스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1982년부터 콜스는 전자 스캐너를 도입해 항목별로 구입한 물건들을 분류한 영수증을 인쇄해 주기 시작했다.

 

▲ 콜스는 2004년부터 호주 전국에 콜스 주유소를 열고 휘발유와 편의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 크리스찬리뷰

 

▲ 콜스는 1993년부터 플라이 바이스(Flybuys)라는 고객 보상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1985년도에는 마이어(Myer) 회사를 인수해 합병했다. 회사 이름도 콜스 그룹(Coles Myer Ltd)으로 변경했다. 1987년에 본사 건물을 신축했는데 밥 호크 (Bob Hawke) 호주 수상이 완공식에 참석해 축하해 주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와 바코드를 통한 물류 관리로 비용이 많이 절감되었다. 콜스 회사는 이 절감된 비용을 제품 가격 인하에 적용하였고, 1993년부터 플라이 바이스(Flybuys)라는 고객 보상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일 년 만에 약 350만 명이 플라이 바이스 회원으로 등록했다.

 

또한 1999년부터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콜스는 주유소 사업을 시작했다. 콜스는 2004년부터 전국적으로 콜스 주유소를 열고 휘발류 판매와 편의점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콜스는 대표적인 호주 국민 기업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편, 콜스 그룹은 1922년부터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했다. 이 기부금들은 병원과 양로원의 발전을 위해 쓰여졌고, 실업자들을 구제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조지 콜스는 “지역 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사업체들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했다. 이러한 조지 콜스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 날에도 콜스는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조지 콜스가 시작한 콜스는 호주 국민들의 삶 속에 뿌리를 내렸고, 신뢰도가 높은 회사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는 하나님을 믿는 기업가가 이룬 놀라운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

 

글/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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