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4/27 [11:04]

“우리가 눈이나 팔을 잃으면 그걸 모를 리가 없지만,

우리가 자아를 잃게 되면 그걸 자각할 주체가 없다.”

- 올리버 삭스 -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위대한 철학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질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다양한 문제들은 수없이 많은 다른 문제들과 복잡하게 얽혀 단순하게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요즘 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철학에서 답을 찾겠다고 하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운동이나 하라는 충고를 들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인간의 본성이란 보거나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동서양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은 ‘도대체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이라는 책에서는 각 종교가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잘 정리하고 있다. “유교는 인간이 운명을 제어할 수는 없어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정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다.

 

또 힌두교는 인간의 본질을 우주의 본질(브라마)과 동일시하며 숨 쉬는 나 (아트만)를 나의 실체로 본다. 불교에서는 내가 나를 나라고 인식하는 자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규정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의 저자는 인간에 대한 이런 견해들이 다양한 관점 속에서 서로 보완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적 ∙ 문화적 맥락에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는 서로 보완적일 수 있을까?

 

종교와 과학의 조화는 과연 가능할까?

 

일부 종교계에서는 “과학 기술의 결과들이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를 위협하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학을 제한하는 것이 더 낫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과학은 양날의 칼이다.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며 시대 정신을 반영한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로마는 많은 사람들이 꼭 가고 싶은 유명 관광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로마에 가면 '캄포 데 피오리’ (Piazza Campo de'Fiori)라는 광장이 있다. 이곳은 과학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사람, 즉 지동설을 지지해 화형대에서 처참하게 죽었던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를 기리는 장소다.

 

교회가 새로운 과학 지식을 거부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사를 보면 오히려 당시 최고 지식인 그룹인 수도원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천주교 사제였던 멘델은 수도원에서 완두콩을 이용한 7년간의 실험 내용을 정리하여 1865년 최초로 유전 법칙을 발표, 오늘날 ‘유전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교회가 정해놓은 선을 넘지 않을 때만 가능했다.

 

하나님은 무한한 존재,

우주 역시 무한하며 생명체는 다른 별에도 존재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가택 연금을 당하기 오래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했던 조르다노 브루노는 산 채로 불에 태워져 죽었다. 그의 죽음은 1572년과 1577년 어느 날 밤하늘에 나타난 신성과 혜성 때문이었다.

 

갈릴레오는 이것들이 우리에게 보이는 우주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왔다고 주장했고 브루노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브루노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크며 태양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드넓은 우주의 수많은 별 중 하나라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교회는 경악했다. 왜냐하면 무한 우주론은 지동설보다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태양마저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 셈인데, 이것은 그 당시 인간이 신의 손에서 태어난 유일한 창조물이자 지적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브루노는 교회로부터 자신의 이론을 완전히 철회하라는 회유와 협박에 시달리다 사제복을 벗고 개신교인 칼뱅파로 개종했다.

 

교회는 브루노를 종교 재판에 세워 모진 고문과 심문을 했으나 그는 하느님이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가 만든 우주 역시 무한할 수 있으며 생명체 또한 다른 별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의 견해가 기독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루노는 사슬에 묶인 채 가로와 세로 각각 2미터인 지하 감방에 무려 8년을 더 갇혀 있다가 결국 1600년 2월 17일 화형대에 세워진다. 집행관들은 그의 사악한 혀를 벌하기 위해 쇠꼬챙이 두 개로 혀와 입천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 위에 쇠로 만든 재갈을 채웠다. 브루노는 발가벗겨진 채 수레에 실려 로마 시내를 돌면서 조롱거리가 됐다. 그리고 화형대가 세워진 ‘캄포 데 피오리’ 광장으로 옮겨졌다. 불이 붙기 직전 누군가가 화형대 위로 올라와 십자가를 내밀었다. 마지막 회개를 종용하는 것이었겠지만 십자가를 본 브루노는 단호히 고개를 돌렸다.

 

그 이후 392년의 세월이 흐른 1992년 10월 31일, 로마 가톨릭교회를 대신해 공식적으로 지동설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교황 존 폴 2세 (Pope John Paul II)는 "브루노 처형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과학의 본질과 신앙의 메시지를 모두 포함한다.

 

언젠가 우리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는데, 이는 과학과 교회 양측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역량이 부분적일 뿐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인 듯 하면서도 왠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왜냐하면 브루노 주장이 갖는 역사적 진실을 안다면 “언젠가 우리 자신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교황의 말은 우리도 브루노처럼 될 수 있다는 종교 권력의 협박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 “양측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 대한 지식과 역량이 부분적일 뿐”이라는 것 역시 그 당시 지식과 역량이 부족했던 것은 종교 재판소였지 브루노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태어난다”(Der_Traum, der_Vernunft_erzeugt)라는 말은 화가 고야가 카프리초스 (Caprichos, 스페인어로 변덕의 의미)라는 판화 작품 (No. 43)에 붙인 타이틀이다. 종교 재판이 여전했던 18세기 시대에 성령보다 악령을 그려냈던 고야는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몇 세기 동안 이루어 온 과학의 업적은 사람들에게 가장 신뢰할만한 믿음의 근거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창조론자와 창조과학자 중에서는 “과학적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건을 바라볼 수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주의 생성도, 인간의 탄생도 모두 ‘창조’의 섭리로 해석하는 건 물론 종교적 신념으로써 그 나름대로 존중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을 종교의 영역으로 끌여들어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과학을 설명하려고 하지만 “과학은 영원히 최종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 않다.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끝없는 ‘과정의 학문’

 

종교는 이미 결론이 난 것을 무조건 믿으라고 요구하는 반면, 과학은 진실을 찾아가는 끝없는 ‘과정의 학문’이다. 특정 종교의 경전 내용을 전제로 ‘지적 설계’로 둔갑한 창조과학'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그 의도와 속이 들여다보인다.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으면 그것은 이미 과학이 아니다.

 

변하지 않는 정설에 기초하여 계속 절대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과학 활동이 아니라 포교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아를 버리고 의심하지 말라’고 너무도 쉽게 주문한다. 그러나 과학은 그 출발점이 ‘의심’이기 때문에 ‘의심’을 빼면 더 이상 발전이 있을 수 없다.

 

나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아(自我/Ego/self)를 부인하라는 말로 이해되지 않는다. 사전상의 의미대로라면 우리가 생각(의식)하면서 행동하는 모든 것이 자아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아를 잃게 되면 자아를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주체가 없어지며, 종교재판소 따위의 지시를 받고 따르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예수가 원했던 것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 깨달았을 브루노에게 과학이 가야 할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길이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대는 더 이상 브루노가 죽었던 그때가 아니다.〠 <계속>

 

*자아(自我/Ego/self) 표준국어대사전

 

1. (심리학)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 2. (정신 분석학) 이드(id), 초자아와 함께 성격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이드의 원초적 욕망과 초자아의 양심을 조정한다.

 

2. (철학) 대상의 세계와 구별된 인식ㆍ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여, 작용ㆍ반응ㆍ체험ㆍ사고ㆍ의욕의 작용을 하는 의식의 통일체. (예) 자아성찰의 시간을 갖다. 자아실현

 

양지연|분자생물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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