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눈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5/25 [15:50]
 ©Nick-Owuor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 (욥기 25:5)

 

해 질 녘, 아직 해 떠 있는 하늘 한편, 있는 듯 없는 듯 반투명 달이 수줍게 자리했다. 밤이 되면서 하늘 옷걸이에 걸려 있던 별이 각기 다른 밝기와 모양으로 하나둘 드러나고 눈에 총총 와 박히는 별을 맞는 기쁨이 쏠쏠하다.

 

기억의 창고를 넘나드는 어릴 적 추억이 가슴 가득 차올라 마음을 따뜻하게 할 즈음, 밤하늘에 수놓은 듯 반짝이는 영롱한 별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무리를 지어 쏟아져 내리는 별에 파묻힌 나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성경은 사람이 별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아 경배하고 섬기는 행위를 금한다(신명기 4:19; 열왕기하 23:5). 오히려 사람이 미혹되어 섬기기 쉬운 해, 달, 별을 향해서 명령한다.

 

“너희가 조물주 여호와를 찬양하라”(시편 148:3). 상상만으로도 벅찬 감동이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찬양하는 우주의 하모니, 이 태곳적부터 계속되어온 큰 무대의 아름다운 노래가 귀에 들리고, 멋진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지는가?

 

매년 호주에서 4월 25일 안작 데이(Anzac Day)를 보내면서 이제 안작 데이가 종교적 기념일이 됐다는 생각을 넘어 안작이 이제 하나의 종교가 됐다고 생각하게 된다.

 

6월에는 현충일도 있고 해서 위대하거나 아니거나 사람이 유난히 빛난다. 그것도 이미 영면하신 분들이… 순국선열, 역사 속에서 빛난 참 대단한 분이 많다. 존경하고 자랑스럽다. 그러나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람도 숭배의 대상은 될 수 없다.

 

일생동안 별처럼 빛나는 순간을 바라며 사는 사람이 많다. 빛나 보이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조차 스스로 잊고 지우고과장한다. 또한 자신의 현재는 열심히 감출 것 감추고 보여줄 것 보여주면서 연기하듯 산다. 이는 가상의 미래에 설정한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 과거를 천국으로 미화하고 현재를 지옥으로 사는 꽤 지난한 작업이다.

 

자칫 반딧불처럼 희미하게 빛나고 불똥처럼 사라질 꿈의 시간을 소비하고, 소진하느니 지금 지나가고 있는 황금의 시간을 붙들라.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바로 지금 지나가고 있는 많은 기회의 순간이다.

 

이 순간을 잡는 자 그리고 그 순간에 영원처럼 머물며 큰 기쁨 충만하여 풍성한 감사로 풍요롭게 사랑을 행하는 자가 가장 빛나는 사람이다.

 

달과 별을 보며 자신이 달과 별이 되기 위해 살려고 노력하는 일도 분명 가치 있고 귀하지만 빛나는 달과 별의 영광을 완전히 지워버리는 하나님의 영광 그분의 빛나는 눈앞에서 살도록 하자. 하나님의 눈은 달도 별도 무색게 하는 불꽃 같은 눈이다.

 

허니,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보면서 저렇게 많은 눈이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그분의 지켜보심 앞에서 살고 있다.

 

그다음 절을 보라.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지금 누구와 비교하는가? 누구와 대적하여 서려고 하는가? 타락한 신분과 오염된 본성의 딱지가 붙은 당신의 얼굴과 이력을 어디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영광 앞에 명함으로 내미는가?

 

그 앞에서는 달의 밝음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의 빛남도 빛나지 못한다. 이것이 팩트다. 그러니, 인생아~, 피조물의 영광으로 창조자의 영광을 가리려는 오만을 넘는 착각에서 벗어나라. 같은 처지의 인생끼리도 도토리 키 재기하며 살지 말고, 조용히 비켜나, 그냥 숨죽이고 지내라.

 

성경에는 영이신 하나님을 마치 인간의 육체나 성정을 가지고 계신 분처럼 표현한 부분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하나님의 팔, 발등상 등, 이를 신학에서 ‘신인동형론’ (anthropomorphism)이라고 한다. 이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에서 고안된 우리 처지에서의 하나님 이해인 셈이다. 하나님의 눈도 마찬가지다. 정말 눈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는다.

 

그러니 하나님의 눈은 쌍꺼풀일까? 인조 속눈썹을 붙였을까? 마스카라, 아이섀도와 아이라이너는 사용했을까? 이런 속절없는 질문하며 시간 끌거나 논점을 피하지 말고 그냥 그분 앞에서 부끄러우나 지금 이 순간을 부끄럽지 않게 살면 된다. 〠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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