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으로 출범한 호주 연방 의회
OPENING OF THE FEDERAL PARLIAMENT OF THE COMMONWEALTH OF AUSTRALIA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호주 연방 의회가 1901년 5월 9일 최초로 멜번에서 개원되었다.     


이번 호에서는 호주 연방 의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영국 제국이 호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호주 전국을 6개의 식민지 주(state)로 나누었다. NSW주가 가장 먼저 1788년에 영국 제국의 식민지 주가 되었으며, 이후 타즈매니아,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 주가 추가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영국 제국의 식민지 주들이 1901년 1월 1일에 연합하여 호주 연방 국가를 설립하였다. 같은 해 3월 29일과 30일에 연방 의회 총선이 있었고, 1901년 5월 9일에 호주 연방 의회가 최초로 멜번에서 개원되었다.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은 당일 오후 12시에 당시 영국 제국이 파송한 조지 5세 (George V) 왕자가 입장하면서 시작되었다. 상원 의원들과 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의회 서기가 상원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상원 선언문은 헌법이 정한 총독의 권한으로 연방 의회가 열리는 것을 설명했고, 상원 의원과 하원 의원이 첫 번째 연방 의회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절차에 따라 상원 선언문이 선포된 이후 조지 5세 왕자는 영국 왕실을 대표해 호주 연방 의회의 개원식에 참여함을 알렸다. 이후,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찬송가 시편 100편이 불려졌고, 존 호프툰 (John Hopetoun) 초대 호주 총독이 대표 기도를 낭송했다. 다음은 그가 낭송한 기도문을 번역한 것이다.

 

▲ 호주 초대 총독 존 호프툰 (John Hopetoun)    

 

“오 주님, 높으시고 전능하신 우리의 아버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모든 사람들의 유일한 통치자시여, 주님의 보좌에서 지상의 모든 거주자들을 보시고, 우리의 가장 은혜로운 에드워드 왕을 보시기를 간구합니다.

 

또한 에드워드 왕을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사, 그가 항상 주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의 길을 걷게 하소서. 그에게 하늘의 선물을 넉넉히 주시며, 건강과 재물을 허락하시고, 오래도록 장수하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여 모든 원수를 무찌르고 이기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 생 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얻게 하소서. 아멘.”

 

▲ 센테니얼 파크에 있는 연방 파빌리에서 취임선서하는 호프툰 호주 초대 총독.     

 

▲ 콘윌과 요크의 공작과 공작부인     


“모든 선의 근원이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은혜로운 여왕 알렉산드라, 콘월과 요크의 조지 공작, 콘월과 요크의 공작부인, 그리고 모든 왕실을 축복하시기를 겸손히 간구합니다. 그들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옵소서. 하늘의 은혜로 그들을 풍성하게 하소서. 모든 행복으로 번영케 하소서. 그리고 그들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의 영원한 왕국으로 인도하소서. 아멘.”

 

▲ 콘윌 공작과 요크는 1901년 5월 9일 최초의 연방의회를 열었다.    

 

▲ 호주의 국장    


“전능하신 하나님, 이제 하나의 영연방으로 연합된 이 땅의 백성을 당신의 자비로운 은총으로 돌보아 주시기를 겸손히 간구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종인 총독, 주 총독, 그리고 그들의 여러 직책을 관리하는데 그들과 연관되거나 연관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회기를 위해 모인 연방 의회에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를 바라며, 주님의 영광과 모든 국민들의 진정한 복지를 위해 상원 및 하원 의원들의 모든 협의를 기쁘게 인도해 주시고, 이 연방 의회가 번영하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문을 낭독한 이후에 존 홉튠 (John Hopetoun) 총독은 주기도문을 낭송했고, 이후 축도를 낭송했다. 이후에 호주 연방 의회 서기가 에드워드 왕이 보낸 편지를 읽었다.

 

이 편지는 에드워드 왕이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에 참석하지 못함을 알리고, 대신 조지 5세 왕자가 참석한다는 내용과 호주 연방 의회의 개원을 허락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조지 5세 왕자가 공식적으로 호주 연방 의회의 개원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에드워드 왕이 보낸 전보를 낭독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27년까지 연방의회가 열렸던 빅토리아 국회의사당.     

 

▲ 멜번에 있는 왕립전시관. 1880년에 지어졌으며 호주에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최초의 건물이다.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저는 마음속으로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호주의 번영과 큰 행복입니다.”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을 마친 후에 조지 5세 왕자는 에드워드 왕에게 전보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방금 왕의 메시지를 전달했고, 왕의 이름으로 호주 연방 의회의 개원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왕께서 보내 주신 전보를 읽었습니다. 1만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진행된 연방 의회 개원식은 화려하고 인상적인 행사였습니다.”

 

한편, 영국 정부가 에드워드 왕에게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에 관련된 보고서를 보냈다.

 

“영국 정부는 오늘날 대영 제국의 위대한 입법 기관 중 하나가 된 새 의회를 환영하며, 호주 연방 의회가 자유롭고 충성스럽게 국민의 열망을 대변하는 의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호주 연방 의회가 논의를 통해 호주 대륙 전체의 행복과 번영과 화합을 촉진할 것입니다."

 

이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이후에 호주 연방 의회에서 낭독되었고, 상원과 하원 의원들의 환호성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이 어떻게 해서 멜번에서 치러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NSW 주와 빅토리아 주가 연방 의회 개원식 유치를 희망했다. 연방 의회를 유치하는 것은 주(state)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뿐만 아니라, 주 수도가 곧 호주 국가의 수도가 될 것이 틀림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1899년에 주 수상들이 모인 ‘비밀 회의’가 열렸다. 각 주의 수상들이 모여서 연방 의회의 소재를 어디로 할 것인가를 논의했고, 연방 의회를 빅토리아 주의 멜번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 호수 건너편에 구 국회의사당(흰색 건물)이 보이고 뒷편 캐피탈 힐에 1988년 문을 연 새로운 국회의사당.     

 

▲ 호주 연방 의회상원 회의실(상원)     

 

▲ 호주 연방 의회상원 회의실(하원)     


물론 이 결정은 임시적인 것이었고, 멜번은 호주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시드니도 연방 의회를 유치하고 호주의 수도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했기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임시로 멜번이 연방 의회를 유치했지만, 시드니도 호주의 수도가 되어 연방 정부와 연방 의회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수도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를 놓고 시드니와 멜번이 충돌한 것이었다. 1908년에 타협안으로 캔버라가 수도로 선정되었고, 1911년부터 본격적으로 캔버라 건설이 시작되었다. 1927년에 호주의 수도가 멜번에서 캔버라로 바뀌었고, 호주 연방 의회가 캔버라에서 열리게 되었다.

 

한편, 호주 연방 의회의 개원식이 열릴 도시를 결정한 후에도 장소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이 있었다. 멜번의 어느 건물에서 연방 의회를 개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상당히 심각하게 진행되었다.

 

어떤 언론인들은 호주 연방 의회가 멜번에 위치한 빅토리아 주 의회 건물에서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주 의원들은 자신들의 건물이 연방 의회 건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큰 유감을 표명했다.

 

빅토리아 주 의원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자, 빅토리아 주 수상인 알렉산더 피콕 (Alexander Peacock)은 호주 연방 정부 총리인 에드먼드 바튼 (Edmund Barton)에게 이 문제에 관련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1901년 4월에 보내졌는데, 그 내용은 연방 의회 개원식 장소로 멜번 전시관 (Melbourne Exhibition Building)을 추천하는 것과 이곳을 연방 의회 건물로 사용할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에드먼드 바튼 (Edmund Barton) 총리는 두 건물에 대해 깊이 고민한 후에 빅토리아 주 의회 건물을 연방 의회 건물로 사용할 것을 결정했다. 연방 의회가 전시관 건물에서 임시로 거주하는 것보다는 빅토리아 주 의회 건물을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한 것이었다.

 

이렇게 연방 의회가 빅토리아 주 의회 건물을 선호한 결정적인 이유들 중에 하나는 도서관 때문이었다. 빅토리아 주 의회 옆에는 빅토리아 주 도서관이 있었고, 연방 의회 의원들은 새로운 법안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 도서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연방 의회에게 건물을 빼앗긴 빅토리아 주 의회는 멜번 전시관 건물에서 모이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주 의회 의원들도 도서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멜번 전시관의 한 방을 도서관으로 만들고 일부 책들을 멜번 도서관에서 옮겨왔다.

 

1927년 연방 의회가 캔버라로 이주해 가기 전까지 빅토리아 주 의회 의원들은 멜번 전시관에 모여 회의를 진행했는데, 많은 의원들이 불만을 표시했다.

 

참고로 연방 의회 개원식은 멜번 전시관에서 열렸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개원식에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연방 의회 개원식만 멜번 전시관에서 열렸고, 연방 의회는 개원식 이후부터 빅토리아 주 의회 건물에서 1927년까지 열렸다.

 

▲ 호주연방의회좌석 배치도(하원)     

 

▲ 호주연방의회좌석 배치도(상원)     


원주민들이 살던 호주 대륙이 영국 식민지가 되었고,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가 1901년에 영연방 국가로 탄생하면서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호주 연방 의회 개원식이 기독교식으로 진행되었고, 이 땅과 국민들을 축복하는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

 

글/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빅토리아박물관, 호주국립기록보관소, 호주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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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7/26 [14:43]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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