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 (누가복음 12:6-7)
힘들겠지만, 기죽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기억하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돌보시고, 주변 이웃의 심장은 아직 따뜻하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예수님께서는 싼값에 팔리는 참새와 자기의 신세를 동일시하는 서민의 고된 일상, 공허한 마음, 황폐한 영혼을 어루만지며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기 위해 말씀하신다. 몇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고 늘 기억하신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8)라고 하셨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반면에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 허물, 죄는 빨리 잊으신다. 기억도 안 하신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편 103:12).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43:25).
이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밀히 알고 계신다. 건성이 아니다. 8~15만 개까지도 된다는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세신다는 표현은, 그만큼 우리 개개인에 대해서 빈틈없이 자세히 알고 계신다는 말이다.
모든 걱정 혼자 끌어안고 염려하기보다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야 할 이유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언 16:3).
셋째,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 사람 사이에서는 설사 부부일지라도 통상 알면 알수록 실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추상적 관계가 아니고, 온전한 지식에 기초한 사랑으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으시고 귀히 여기신다.
또한 자신이 위하는 자신의 백성을 중심으로 세상사를 운행하신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이사야 43:4).
펜데믹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과소비와 허영심의 포로로 살아왔는지 보여줬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 좁은 문을 이야기하셨다. 실생활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잘 저축하여 부자 되자’는 말이 아니다.
각자 근면 절약하여 살고 서로 돌아봐야 한다. 2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와 자신의 신세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당신 주변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돕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 두신 하나님의 손길은 당신일 수 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브리서 13:16).
기억하자. 잊지 말자. 예외없이 우리는 모두 귀하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된 그 세심함으로 인생을 지켜 돌보신다. 박탈감을 가지고 사는 이들에게 오늘도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잊지 않았다. 너희를 귀히 여긴다.’ 그럼 우리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받은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시 사회에서 2앗사리온은 품꾼 하루 임금 1데나리온의 1/8, 1시간 노동의 가치에 해당한다. 참새 다섯 마리와 두 앗사리온이라는 숫자에 집중하면, 핵심을 놓친다.
관계로 보자. 이 값을 치르고 참새 다섯 마리를 색다른 영양 보충용 간식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반대로, 마리당으로 계산해, 참새처럼, 2앗사리온의 1/5 즉 10분 정도 일하는 헐값에 팔리는 귀한 한 사람의 전 존재가 너무도 애처롭게 당신 앞에 있는데, 그 참새 꼭 사 먹어야 하는가?
사람이라면, 현재 수중에 있는 내 형편보다 값이 더 들더라도, 주막 주인에게 나중에 갚을 테니 돌봐달라고 강도 만난 이웃을 부탁했던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죽기 전에…죽어 내 앞에 놓여 팔리기 전에 살리자. 〠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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