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구원론(救援論) X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Regine Tholen  


구원론을 다시 종합하면

 

지난 10회에 걸쳐 구원론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외에도 구원에 대해 다루어야 할 내용이 많이 있지만 지면상 다 다룰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살펴본 구원론은 인간의 구원에 대해 살펴보았지만 사실 성경은 인간뿐만 아니라 피조물들도 구원을 고대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9-21)

성경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돌아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시 기회가 되면 창조세계의 보전과 발전 그리고 피조세계의 구원에 대해 나누어 보겠다.

 

지금까지 다루었던 구원론에 대해 간단하게 다시 정의를 해 본다면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이루신 속죄 사역(객관적인 구원 사건)을 성령께서 각 개인에게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을 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구원론은 성령의 사역에 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성취하신 속죄사역(객관적인 사건)을 인간 개개인에게 믿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도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사역은 인간 안에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인 개혁신학에서는 따로 성령론을 다루지 않는다. 성령이 하는 가장 중요한 사역은 인간 구원의 사역이고, 구원론을 다루면서 성령론을 다루기 때문에 별도로 성령론을 다루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위 전통적인 구원의 서정(order of salvation)에 맞추어 구원론을 살펴보았다. 유효한 부르심(소명),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성화, 성도의 견인 등이 그것이다.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구원의 서정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순서는 구원을 받을 때 시간적으로 이러한 순서를 거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시간적 순서라고 보기보다는 구원론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특징의 요소들 사이의 논리적 일관성의 문제를 확보하기 위한 순서라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서 구원의 서정에 대한 안토니 후크마의 묘사는 설득력이 있다. “구원의 서정에 나타나는 여러 단계들은 전자가 후자를 대치하는 일련의 연속적 단계가 아니라, 그것이 시작된 후에 동시적으로 함께 진행되는 다른 구원 과정의 다양한 측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

 

인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본질상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미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 할지라도 인간의 죽음을 비롯하여 인간이 당하는 고통과 질병, 한계등을 볼 때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구원에는 하나님의 절대적 개입과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과 호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죄로 철저하게 하나님께 반역하여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 먼저 인간에게 찾아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창세기에 처음 나오는 첫사람 아담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반역한 인간들을 계속해서 찾아오시는가를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때문이다. 그래서 존 칼빈도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구원론을 설명하기 위해 이렇게 설명한다.

 

“속죄사업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유래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으며 변함이 없다. 우리가 성자의 피를 통해서 화해를 얻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우주창조 이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도 독생자와 함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기독교강요 상, p.698)

 

다시 말해 구원론의 출발은 성부가 인생들을 향해 품으시는 사랑과 자비의 속성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사랑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자기의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셔서, 희생적 죽음을 치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성취된 구원의 은혜를 개인이 받고 향유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구원론이 중요하다.

 

존 칼빈은 인간 구원에 대해 설명하는 전통적인 방식(구원의 순서, 구원의 서정)보다는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그리스도에게 참여(participation in Christ)”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설명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관계론적 접근이다.

 

그리스도가 우리 밖에 머물러 있고 우리가 그와 분리되어 있는 한, 그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받은 고난과 행하신 모든 것이 우리에게 아무 유익도 없고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구주가 되고 우리 안에 거해야 된다. (기독교강요 중, p.1)

 

이처럼 칼빈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강조한다.

 

존 머레이 (John Murray)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구원론의 핵심적인 진리라고 강조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야말로 구원 적용과정의 단순한 한 국면이 아니라 구원 적용 과정의 모든 국면들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사실 구원의 서정에서 언급하고 있는 부르심, 중생, 회심, 신앙, 칭의, 성화 등은 부분적으로 다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관계가 있다. 하지만 구원의 서정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사슬 구조는 그리스도를 각 구원 순서의 축복들의 제공자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단지 제1원인자로만 바라보게 할 수 있다.

 

이것은 구원론에서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영적 축복들 가운데 예수님을 핵심적인 존재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구원론은 실제 적용하시는 성령의 사역으로만 인지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자세히 보면 구원에 대해 칼빈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원의 서정식의 논의보다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구원을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에는 이 연합에 대한 개념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행한 사역은 온 백성을 대표하여 행했던 사역이었다. 이것은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대표적인 연합 관계에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대표적인 연합의 관계에서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행한 사역들은 그가 대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한 행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또한, 이사야서에 나오는 고난당하는 종(사 53장)도 연합의 모습이다. 그는 죄인과 동일시되어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고난당하는 자로 묘사된다.

 

그 밖에 결혼 제도(창 2:24)도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연합(엡 5:22-33)이 신랑되신 그리스도와 신부된 우리와의 연합의 모습을 그려준다. 또한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 (요 15 장)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개념을 설명한다. 이처럼 구원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합되어 있는 그러한 관계의 개념인 것이다.

 

거듭난 신자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존재이며 그리스도께서 행하신(십자가 죽음, 부활, 성취하신 구속사역의 모든 단계) 모든 일들이 신자들의 생애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한 신자는 당연히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 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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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8/30 [15:0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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