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무엇인가

양지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09/27 [14:58]

 

“인간이라는 불운한 동물은 자유라는 타고 난 선물을 되도록 빨리넘겨줄 대상을 찾고 싶은 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중에서*-

 

200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의과대학 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 (Post doctoral fellow)으로 일하던 어느 날, “어머니의 건강이 위태롭다”는 형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울려왔다. 바로 그 다음 날 귀국해서 암 병동에 있는 어머니를 만났다.

 

얼마나 오랜만일까? 대학에 들어간 이후 부모와 떨어져 살기 시작했던 나는, 말기 암 소식을 듣고서야 멀리서 어머니를 찾아와 이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세월의 낯선 간격을 메워주는 시간이 되길 바랐다.

 

허락된 4주 휴가의 낮과 밤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면서 그동안 못다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과였다.

 

그때 어머니에게 이렇게 한 질문이 기억난다.

 

“되돌아보면 엄마 일생은 어땠어요?”

 

”희비극이 섞인 한 편의 영화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어떤 사건들인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 대화는 곧 바로 기억의 다른 페이지로 넘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얼마 후 죽음과 함께 자신의 고유하고도 내밀한 경험과 기억을 흔적도 없이 가지고 떠났다. 오늘도 나는 나의 어머니로만 알고 있던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사적인 영역을 지켜줄 때라야 인격적인 관계가 성립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두운 방의 유일한 창문 역할을 하는 화면을 통해 외부 세계와 연결되어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훔쳐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 속의 가장 은밀한 사생활까지도 관객 모두가 보고 있기 때문에 거기엔 극 중 인물의 프라이버시란 있을 수 없다.

 

작년 3월, 세계보건기구는 코로나 바이러스 (COVID-19) 상황을 펜데믹 (pandemic)으로 선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정부의 명령(Stay-at-home orders)을 잘 따르는 착한 시민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등의 유혹을 거부하지 못한 채로 넷플릭스*** 를 통해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 결과,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이 낯설어졌다.

 

“밖에 나갈 일도 없는데 좀 후덕한 모습이면 어때?”라고 스스로 위로했으나, 딸은 내가 슈렉(Shrek, 드림웍스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녹색 괴물)을 닮아가고 있다고 호접몽에서 흔들어 깨워 준다.

 

영화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그 순간 나 자신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알기 원한다. 앎에 대한 욕구는 알 권리로까지 격상되지만, 상대방의 삶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와 권리는 필연적으로 그의 프라이버시와 상충한다. 설령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일지라도 각자의 사적인 영역을 남겨둘 때 서로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만약 개인이나 국가가 일방적으로 상대편의 프라이버시를 침범한다면 그 관계는 결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없다.

 

사생활 영역은 개인의 가장 내밀한 자유 공간

 

사람들은 COVID-19 펜데믹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시행하는 감시 기술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 앞에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정부에 양도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한 개인이 큰 권력에 의해 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날 전 세계의 바이러스 감염병 학계는 거의 5년마다 주기적으로 발생한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COVID-19 경우를 볼 때, 설령 COVID-19를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해도 최소 5년 안에 또 다른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출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 각국은 전염병 감시를 위해 DNA 정보의 남용, 얼굴이나 신체 정보의 데이터 베이스화 등 프라이버시 침해 소지가 큰 다양한 조치를 합법적으로 제도화할 가능성이 짙다.

 

만약 감시가 장기적으로 일상화된다면 일반 시민들은 강압 없이도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감시자에 대해 알아서 순응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전제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의 사례를 굳이 들지 않아도 우리의 사생활이 얼마나 쉽게 침해당할 것인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하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은 프라이버시 정보가 악용될 경우 어떠한 참상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네덜란드 유대인은 유럽의 다른 나라 유대인보다 높은 비율(70% 이상)로 학살을 당했다. 왜 하필 네덜란드에서 처절한 유대인 학살이 저질러졌을까?

 

1930년대 네덜란드 정부는 복지 사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전 국민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종교, 인종 등 다양한 개인정보를 등록하는 포괄적인 인구 센서스를 시행했다.

 

이후 네덜란드는 갑작스럽게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으며, 인구 등록부에 있는 네덜란드 국민 수백만 명의 개인정보는 신원 식별용(ethnic profiling)으로 사용되었고, 추방된 소수를 제외하고는 유대인과 집시로 밝혀진 사람은 나치에 의해 대부분 학살되었다.

 

이 사례 속에서 정부에 양도한 개인의 프라이버시 정보가 공익이 아닌 강제단속, 차별, 격리 등 사회 통제의 도구로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역사는 일깨워 주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자유의 공간이며, 공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소멸되면 개인은 없고 전체주의만 남는다.

 

‘호주 프라이버시 헌장’(Australian Privacy Charter)의 두 번째 항목인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는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며, 국가와 사조직 모두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권력을 제한할 것을 요구한다(A free and democratic society requires respect for the autonomy of individuals, and limits on the power of both state and private organisations to intrude on that autonomy).

 

프라이버시는 기본적 인권으로 인간 존엄성과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핵심 가치들의 버팀목이며, 모든 사람의 합리적인 바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결코 쉽게 포기해서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한 인간의 탄생이 프라이버시의 영역에서 이뤄지고, 프라이버시의 고독 속에서 그의 자아가 형성되고 사유하는 능력과 자유의 씨앗이 잉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 의해 관찰되고 조종되는 개인의 삶을 우리는 더 이상 주체적인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혹시, 당신도 ‘자유’라는 타고난 선물을 되도록 빨리 넘겨 줄 대상을 찾고 있지는 않나요?

 

*에리히 프롬 (Erich Fromm, 1900-1980):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영역에서 활동했던 사회 심리학자, 정신분석학자, 인문주의 철학자.《자유로부터의 도피: Die Furcht vor der Freiheit》는 프롬이 1941년 출판한 책으로 나치즘의 이상 심리(異常心理), 성립 과정에 대한 사회 심리학적 분석이다.

 

**프라이버시(privacy): 사전적 의미는 ‘사생활’과 ‘사생활이 침해받지 않을 권리’이지만, 적용되는 영역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신체 프라이버시: 개인의 몸에 대한 유전 정보, 지문, 홍채, 약물 검사, 생식기 및 항문 검사 등 절차로부터의 보호

•영역 프라이버시: 가정, 작업장 또는 공공장소에서 수색, 비디오 감시, 신분증 검문 등으로부터의 보호

•정보 프라이버시: 개인의 신용정보, 의료 및 정부 기록 정보의 수집과 취급 방법으로부터의 보호

•통신 프라이버시: 개인의 전화, 이메일 등 정보로부터의 보호

 

***넷플릭스(NETFLIX): 인터넷(Net)과 영화(Flicks)의 합성어로 1997년 설립된 미국의 주문형 영화 콘텐츠 서비스 기업의 이름.〠

 

양지연|ANU 석사(분자생물학), 독일 괴테대학 박사(생물정보학), 카톨릭의대 연구 전임교수 역임

▲ 양지연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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