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와 포스트 모더니즘

김환기/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0/26 [12:15]
 ©Kate Trifo     

 

2021년 6월 말부터 시작된 델타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시드니는 락다운(Lockdown)이 시작되었다. 무려 네 달 가까이 일상의 자유가 사라졌던 시드니는 백신 접종률 70%가 넘으면서 지난 10월 11일 락다운의 일부 규제를 해제하였다.

 

백신 접종 속도의 가속화로 10월 16일 16세 이상 성인의 백신 접종 완료율의 80% 선을 넘었다. NSW주는 10월 18일부터 추가 완화 조치하여 교회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지역사회의 스포츠 동아리 활동이 재개되며가정 방문객과 야외 모임 인원 제한이 대폭 완화되었다.

 

10월 19일부터 유효한 여권을 갖고 있는 누구나 국제 코로나19 예방접종 증명을 받을 수 있다. 임시비자를 소지한 외국인을 포함해 호주에서 코로나19 예방접종을 한 경우 호주 예방 접종 등록부(Australian Immunization Register, AIR)에 등재되어 호주정부가 발급하는 예방접종 국제 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국제증명서에는 코로나19 예방접종 상태를 전 세계 출입국 당국에 증명할 수 있는 QR 코드가 포함되어 호주인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

 

도미닉 페로테이 NSW 주총리는 11월 1일부터 2차 백신 접종을 완료한 해외 입국자들은 도착 후 격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호주 모리슨 총리는 한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와 출입국 규제완화를 조만간 시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현재 호주는 12월 1일부터 예전과 같은 상태로 완전 개방할 것을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Back to Normal’이 아닌 ‘Forward to New Normal’의 상태가 될 것이 확실하다. 뉴노멀은 경제용어로써 경제위기와 경제침체를 거친 후 예전과는 아주 다른 경제 질서가 형성된 새로운 경제적 기준을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 (post corona)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는 ‘포스트’와 ‘코로나’의 합성어로 ‘코로나 이후’란 뜻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것은 2019년 말이다. 불과 2년여 사이에 믿겨지지 않을 만큼 인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왔다. 이전에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던 신종 용어들조차 이제 너무나 당연하게 들려온다.

 

뉴노멀 시대의 핵심 키워드는 '언택트'(untact)라고 할 수 있다. ‘언택트’는 접촉을 뜻하는 ‘콘택트’(contact)에 부정적 의미를 더하는 ‘언’(un)이 붙은 말이다. 우리말로는 ‘비대면’ 또는 ‘비접촉’이라 할 수 있다.

 

온택트(ontact)란 말도 있다. 온택트는 '언택트'(untact)에 ‘un’ 대신 온라인을 뜻하는 'on'을 더한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으로 하는 각종 활동을 의미한다.

 

코로나가 쉽게 종식될 거 같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로 '위드 코로나'(with corona)라는 말도 나왔다. 코로나의 종식을 기다리기보다 백신 접종률을 높여 코로나와 더불어 사는 시대이다.

 

코로나를 중심으로 ‘코로나 전 시대’(pro porona), ‘코로나 시대’(corona), ‘코로나 후 시대’(post corona)로 구분할 수 있다. ‘코로나 전 시대’는 대면시대이고, ‘코로나 시대’는 비대면 시대이며, ‘코로나 후 시대’는 ‘대면과 비대면이 공존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하이브리드’(hybrid)시대이다. 다른 표현을 쓰자면, 코로나 전 시대는 ‘off line’ 시대, 코로나 시대는 ‘on line’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all line’ 시대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는 급변하고 격동하고 있다. 내일을 예측할 수가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변하는 몇 가지의 단어가 있다.

 

1. 변동성(volatility)

 

변동성이란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과거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미래를 짐작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변동성이 작다면 우리는 미래를 계획하기가 쉽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변동성이 높기에 미래를 설계하기가 어렵다.

 

2. 불확실성(uncertainty)

 

미래에 전개될 상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어떤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명확히 측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숨어 있는 변수들이 너무 많다. 앞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3. 복잡성(complexity)

 

복잡성은 단순성의 반대개념이다. 복잡성은 분명하지 않은 일련의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복잡한 상태이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표면에 나타난 한 가지의 이유나 원인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한 결과이다.

 

4. 애매성(Ambiguity)

 

애매성은 그 의미가 단일하거나 명백하지 않고 복합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다. 선과 악, 흑과 백, 남과 여 등의 개념이 명료하지 않아 가치의 혼돈을 초래한다. 특별히 기독교의 절대 가치에 도전하는 상대가치를 조장한다.

 

포스트 모더니즘 (post modernism)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맞물려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이란 말에 '뒤'나 '후'를 뜻하는 포스트(post)라는 접두어를 붙여 만든 용어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시대정신 자체가 용어에 대한 '정의'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적 구분도 불분명하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시대정신이다. 철학적으로는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외칠 때이다. 니체를 일명 ‘망치 철학자’라고도 한다. 그는 모든 '절대가치'를 망치로 쳐서 부셨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절대가치’가 사라지고 ‘상대가치’가 지배하는 ‘절대란 절대로 없는 시대’로서, 단순한 철학적 용어가 아닌 서구의 역사, 문화, 정치, 예술, 건축 등 모든 분야에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본래 '건축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 중심의 모더니즘 건축양식과는 다르게, 본래의 목적이나 기능과 상관없이 새로운 모양과 형태로 건축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프랑스와 리요트르'가 문화에 접목하면서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리요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대담론들'(meta-narratives)에 대한 불신'이라고 정의했다. '거대담론'이란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권위, 사상, 이념, 진리 등을 말한다. 이 시대는 '거대담론'이 해체되고, '주관적, 상대적, 다원적, 복합적' 등의 단어로 대체되어 혼합주의(syncretism), 다원주의(pluralism), 세속주의(secularism), 상대주의(relativism), 해제주의(deconstructionism) 등의 사상들이 지배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기독교와 상반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종교 혼합주의'와 '종교 다원주의'이다. ‘종교 혼합주의’란 특정 종교가 다른 종교와 서로 혼합하여 하나를 이루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하여 종교는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오늘날 교회에도 샤머니즘과 혼합한 기복주의, 불교의 고행주의와 혼합한 수도원주의의 명상 운동, 감정과 직관주의와 타협한 신비주의, 이성과 합리주의와 혼합한 자유주의 등이 있다. '종교 다원주의'는 참 종교를 하나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을 인정한다.

 

따라서 '구원'은 종교의 다양성에 따라 다양한 길이 있다. 산의 정상에 올라가는 길이 다양한 것과 같다. 하지만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믿는 기독교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이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 한명회와 관상가 내경이 만난다. 한명회가 수양대군에게 충성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묻자 내경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다.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건만…."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에게 시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께서는 천지의 기상은 분변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분변하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책망하셨다.(눅 12:56)

 

복음의 진리는 불변하지만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시대를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시대를 선도할 수 있겠는가? 복음은 시대의 옷을 입었고, TEXT는 CONTEXT 속에서 기록되었다.

 

칼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신문을”〠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구세군라이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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