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전장 역사 전문가와 가평전투를 이야기하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1/11/29 [11:23]
▲ 안작 전쟁기념관 선임 학예사 브래들리 마네라 씨. 그는 호주인들에게 참전용사들이 아직 살아 있으며, 호주는 참전용사들과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 11월 3일 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안작 기념관(Anzac Memorial) 선임 학예사(senior curator)인 브래들리 마네라(Bradley Manera, 이하 브레드로 호칭)씨를 만났다.

 

브래드 학예사는 한국 커뮤티니와 친근한 인물이다. 브래드 씨는 지난 4월 21일 시드니 한국문화원(원장 김지희)에서 개최되었던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전 오프닝 행사에도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행사를 개최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잘 알고 있듯이 호주는 한국에서 6.25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 다음으로 참전한 혈맹국가이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호주군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리 한국전쟁에 우방국으로 참전했다.

 

영연방국가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3rd Battalion, Royal Australian Regiment - 3 RAR) 는 가평에서 중공군의 대공세에 맞서 큰 전과를 세웠다.

 

가평전투는 6.25가 발발한 후 다음 해인 1951년 4월 23일, 유엔 연합군으로 참가한 호주군이 중공군의 대 공세에 맞서 가평지역에서 사흘 동안 격렬히 맞붙은 전투이다. 특히 가평전투는 물밀듯이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 탈환을 막은 호주군이 수행한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전투로 알려지고 있다.

 

▲ 시드니 시내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안작 전쟁기념관(가운데) 왼쪽 도로는 엘리사벳 스트리트이며 멀리 시드니항이 보인다.©Anzac Memorial     

 

이뿐만이 아니다. 호주군은 그해 10월 첫째 주에 마량산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유엔군 사령부가 중공군의 연속되는 반격으로 위기를 당했을 때 임진강부터 마량산까지 이어지는 방어선을 구축하고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을 막아냈다. 이 두 전투는 한국 전쟁 중 호주 육군이 보여준 가장 뛰어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호주에 있는 가평길 (Kapyong Streets)

 

이제 6.25전쟁의 아픔이 가신지 71년이 지났다. 한국전때 가평지역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한국을 지켰던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6.25 전쟁 이후로 가평대대(Kapyong Battalion)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래서일까? 호주에 ‘Kapyong’이라는 길 이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지는 현재 호주 전역에 ‘가평 길’ 10개와 1개의 가평 다리(Kapyong Bridge)가 있는 것을 찾아냈다. 왜 호주의 길에 ‘가평’이라고 하는 한국 지명이 붙은 것일까? 의아심을 품었던 권순형 발행인은 맨 먼저 시드니 벨로즈(Belrose)에 있는 가평 길(Kapyong Street)을 확인하고 사진을 담았다.

 

그 후 참전용사와 호주 교민들의 도움으로 호주 내 ‘가평’(Kapyong)이라고 이름이 붙은 길을 10곳을 찾아냈다(크리스찬 리뷰 2021년 6월 호 참조).

 

▲ 시드니 북부 벨로주 지역에 있는 가평 길(Kapyong Street). 호주 전역에 가평(Kapyong) 길이 10개, 가평 다리가 1개 있는 것으로 본지는 확인했다     © 크리스찬리뷰

 

권 발행인은 “가평길은 분명히 한국전에 참전했던 호주 군인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호주 전역에 있는 ‘가평길’(Kapyong Street)을 찾아 이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한국전쟁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고 전장 역사 전문가인 안작 전쟁기념관의 선임 학예사인 ‘브래드 마네라’를 인터뷰하게 된 것이다.

 

- 브래드씨, 먼저 자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현재 시드니 하이드 파크에 있는 안작 전쟁기념관(Anzac Memorial)의 선임 큐레이터입니다. 1960년에 서호주에서 태어났고 서호주에서 자랐으며 대부분의 직업 경력을 전쟁 기념관에서 일했습니다.

 

서호주에 있는 서호주(Western Australia)대학에서 역사 및 정치학을 공부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물관 연구와 교육학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부터 서호주 박물관(Western Australia Museum)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서호주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했고 그 후 캔버라의 호주국립기념관과 호주전쟁기념관 및 하이드 파크 병영 박물관(Hyde Park Barracks Museum) 등에서 큐레이터로 일을 해왔습니다.

 

▲ 브래들리 마네라 씨의 저서 ‘그 풍요로운 땅에서’ 안작 전쟁 기념관 온라인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39.90 ©Anzac Memorial    


 

이외에도 저는 공공 역사가로 전 세계의 전쟁지역 투어를 진행했고, 다양한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In That Rich Earth’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현재 아내와는 사별했고 자녀는 없습니다.”

 

- 큐레이터 일은 언제 처음 시작했고, 특별히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큐레이터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조금 전 말했던 것처럼 서호주 박물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처음 시작했고 그 후 여러 박물관 및 전쟁 기념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어렸을 때 저의 환경이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어머니 쪽 친척이 꽤 많았습니다. 어머니 쪽 가족은 서호주에 일찍 정착하여서 살았고, 가족들로부터 호주에 정착하며 살게 된 이야기를 듣고 특히 아시는 대로 서호주는 아웃백 등 자연 환경이 험하고 거친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캠핑을 위해 시골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을 개척한 탐험가들에 대한 이야기나 서호주 해안에서 발생한 난파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학교 졸업 후 서호주 해양박물관에 취직해서 난파선을 직접 탐험할 수 있는 행운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쟁역사와 전쟁물품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무래도 외조 할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외조 할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남태평양에서 공군으로 복무했습니다.

 

▲ 시드니 하이드 파크에 있는 안작 전쟁 기념관 실내 전시장과 외부 건물 전경.     © 크리스찬리뷰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는데 그때 할아버지 집은 오래된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옛날 사진들과 전쟁시 입었던 군복이나 수통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의 일본군 시체에서 가져온 칼빈 소총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군 월급 명세서(pay book)도 있었습니다. 그 물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집에서 이런 물품들을 보고 할아버지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 전쟁 이야기들을 듣고 자란 저는 조부의 영향을 받아 전쟁 역사와 전쟁 물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와 박물관 연구 공부를 하게 된 것입니다.”

 

- 한국과 한국 전쟁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동생이 다니던 시각장애인 학교의 버스 기사가 한국전 참전용사였는데 그의 이름은 레이 페리(Ray Parry)였습니다.

 

저는 동생을 돕기 위해 버스를 탔던 적이 있었는데 버스 운전을 하는 레이 씨의 자켓에 왕립호주군대 참전용사 뱃지가 달려 있는 거에요. 당시 나이가 너무 늙어서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어떤 전쟁에 참전했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 특히 가평전투에 참전해서 무공훈장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오래된 친구인 션 머피(Sean Murphy)의 아버지도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A중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시 가평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들 모두 한국전 참전용사들입니다.

 

그들이 자기들 스스로 한국전 참전용사들이라고 떠들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 꽤나 많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들이 당시 그들이 참전했던 한국 전쟁에 대해 이야기 해달라고 하면 그들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아마도 해줄 것입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레이 페리로부터 한국 전쟁 이야기를 처음 듣고 한국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캔버라 호주전쟁기념관에 근무할 때, 가평전투 기념식이 열릴 때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참전용사들을 만날 때마다 관심을 갖고 물어보았습니다.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어디 부대 소속이냐? 한국전쟁 때 어디에 있었느냐? 이렇게 물어 보다 보니 한국지형에 대해 듣게되고 당시의 실제 상황도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평전투와 마령산 전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에 설치되어 있는 가평 전투 기념비     © 크리스찬리뷰

 

▲ 한국 전쟁에 참전한 호주 제3대대(일명 가평대대) 군인들 ©Anzac Memorial     

 

- 호주 군인들이 참전한 가평전투와 마령산전투에 대해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미 알고 있듯이 가평전투는 한국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자 호주가 영연방 국가의 일원으로 한국전에 참전해 당시 중요한 전투였던 가평전투를 승리로 이끈 전투입니다.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영연방 27여단의 일원으로 1950년 10월에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호주는 추운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의 겨울은 얼마나 춥습니까? 한국전에 참전했던 노병(老兵)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의 겨울이 기절할 정도로 추워 무지하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주의 지형은 주로 평탄한 평지가 많은데 비해 한국의 산악지대는 얼마나 험준합니까? 그 고지와 계곡들을 넘나들며 진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생들을 한 것이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호주군은 당시 중요한 전투들에 참여해 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가평전투는 중공군의 대공세 당시에 숫적 열세를 딛고 아군이 방어선을 구축하도록 시간을 벌어준 기념비적 전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51년 4월 22일 중공군은 강력한 포격과 함께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중공군 대군이 서부전선을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오후가 되자 국군은 피해를 입고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영연방 27여단은 서울을 점령하려는 중공군을 저지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영연방 27여단은 그때 호주와 영국, 뉴질랜드, 캐나다군으로 구성되었는데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캐나다군과 함께 가평 계곡 양쪽에 포진하면서 진지를 팠습니다.

 

▲ 지난 4월 한국문화원에서 가평 전투 70주년 기념식을 마친 후 큐레이터 브래들리 마네라 씨(오른쪽)와 호주 공군 한국전 참전용사 레이 시버 씨.     © 크리스찬리뷰

 

4월 23일 영연방 27여단은 국군을 추격해 내려오던 중공군과 가평에서 맞닥트려 전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영연방 27여단은 사흘 동안 방어전을 전개하면서 자신들보다 무려 5배가 넘는 중공군을 막아냈습니다.

 

특히 24일 새벽 중공군은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를 상대로 공격하고 서울을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의 피해가 커져 갔음에도 불구하고 제3대대는 목숨으로 가평을 지켜냈습니다.

 

▲ 지난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한국 전쟁에서의 호주인’을 주제로 열린 온라인 전시회에 6.25 영웅들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 지난 4월 시드니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식에서 안작 전쟁기념관 큐레이터 브래들리 마네라 씨가 인사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마령산 전투 또한 호주군에게는 잊지 못할 전투입니다. 1951년 9월 연천 북쪽의 마령산에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 주둔해서 중공군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특공작전’을 펼쳐 미군도 수차례 실패한 마령산 고지(317고지)를 막강한 중공군으로부터 탈환하는 혁혁한 공훈을 세웁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대규모 중공군의 공세를 막기위해 마령산 산맥을 중심으로 고왕산(355고지) 등 여러 계곡과 고지들을 지켰습니다.

 

전투는 주로 밤에 많이 벌어졌습니다. 낮에는 중공군이 움직이면 미군 비행기가 와서 폭격을 하니까 안보이는 밤에 주로 공격을 해오는 것이죠. 마령산 줄기를 따라서 수많은 전투가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벌어졌습니다. 1953년 7월 휴전이 될 때까지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 용감하게도 중공군의 공세를 다 막아냈습니다.”

 

- 지난 4월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던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식 때 당신은 탄피를 가져와 보여주었습니다. 그 탄피는 당신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평고지에서 발견한 탄피라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한국 방문과 탄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캔버라전쟁기념관 큐레이터로 일할 때 호주가 참전했던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주요 전투들에 대한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그래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 현지의 산악지대와 지형들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현장을 실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호주군이 참전했던 가평과 마령산을 보기 위해 2002년에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후 2006년에 두 번째 한국을 방문해서 군사분계선(DMZ)과 가평, 연천, 북방 마령산, 고왕산고지 등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가평전투 60주년 기념 때에는 NSW 주 전체에서 역사학 장학금을 받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학생들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호주군이 방어선을 구축했던 가평계곡 전체를 도보로 걸으면서 현장 공부를 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 공부였습니다.

 

▲ 지난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달링하버 야외전시와 시드니 경전철에 캠페인, 그리고 금년 4월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전이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다     © 크리스찬리뷰

 

그런데 우리들은 올라갔던 언덕 정상에서 당시 중공군 방어를 위해 팠던 참호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참호를 보면서 당시 호주군이 어떻게 중공군과 대치하며 싸웠는가 상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RSL 참전용사 그룹도 같이 갔었는데 그 자리에서 목사가 집례하는 예배를 같이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데 고등학생 일행 중 한 명이 탄피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전 당시 미군과 호주군의 무기는 달랐습니다.

 

저는 당시 호주군이 사용하던 경기관총 및 무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학생이 발견한 탄피는 호주군 경기관총 탄피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무기에는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음각문양 기록이 남아 있는 데 제가 그 탄피를 보니까 제가 살던 서호주에서 1945년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실로 감격적이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무려 60년이 지난 지금 호주군이 방어했던 그 자리에 탄피가 남아있어서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가평전투 7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23일부터 7월 2일까지 한국문화원에서 열렸던 기념식과 전시회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호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6.25전쟁 중 맺어진 양국의 우정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으며 주력한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전 세계가 2년 동안 코로나 사태로 큰 고통을 당하고 많은 실내 행사들이 취소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평전투 70주년 기념 전시회와 기념식이 한국문화원에서 열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럽고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노력과 열정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념 행사를 위해 시드니총영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았습니다.

 

호주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식을 사진을 걸어 놓고 실외에서 하는 것보다 실내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고, 저희와 한국 정부가 함께 하면 좋겠다는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한국문화원에서 이 전시회를 맡기를 원했습니다. 한국문화원에서 장소를 제공해 주었고 저는 몇 분의 참전용사들을 통해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한국전쟁시 사용했던 군인용품들을 수집했습니다.

 

▲ 안작기념관 외관 전경과 반사의 웅덩이(pool). 안작기념관은 1934년 공모를 통해 건물이 완공되었고, 실업구제기금의 지원으로 성찰의 웅덩이가 완성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군복, 군모, 수통, 벨트, 손전 등 참전용사들이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던 물품들을 전달받아 정성껏 전시해 놓았습니다. 그 물품 하나하나가 역사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당시 사용했던 전쟁 물품들이 하나의 주제이자 사연들입니다. 한국전쟁은 한국 사람들은 물론 호주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해 6월 22일부터 7월 26일까지 참전용사들의 사진이 부착된 경전철이 시드니에서 운행되었으며, 온라인 '한국전쟁에서의 호주인: 1950-53(Australians in the Korean War 1950-53)’ 전시회와 6.25 전쟁을 ‘함께 기억해야 할 전쟁’으로 알리기 위한 취지로 특별 강연회와 대담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또한 8월 6일부터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소개하는 전시회가 달링하버에 위치한 시드니국제컨벤션센터(International Convention Centre Sydney, ICC Sydney) 건물 외관에서 호주 참전용사 20인의 사진을 전시하는 ‘한국전쟁에서의 호주인: 1950-53’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작업(전시)들도 브레드 씨가 주도하셨나요?

 

“호주는 한국전쟁에 1만 7천 명을 파병하여 340명이 목숨을 잃었고, 1천216명이나 부상을 당했습니다. 호주는 한국전쟁과 가평전투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시드니 경전철과 시드니국제컨벤션센터에 걸린 큰 사진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의 사진은 일종의 심볼들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호주 군인들을 호주와 한국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참전용사의 사진을 크게 걸어 놓고 그 밑에 이 참전 용사들이 누구이고 그들의 전쟁 경험을 짧게 캡션으로 설명했습니다.

 

사진의 참전용사들은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두 80대 후반이나 90대의 노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를 통해 호주인들에게 그들은 아직 살아 있으며 호주는 참전용사들과 한국전쟁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호주 참전용사들을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는 성명서입니다. 저는 이 전시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오랜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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