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했던 사람들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1/29 [14:41]
▲ 지난해 성탄절을 앞두고 시드니중앙역 인근에서노숙인들과 성탄의 기쁨을 나눈 사역 현장. 시드니주마음교회, 시드니온누리교회, 벤디고은행 스트라스필드지점, AIM등이 함게 했다    © 크리스찬리뷰


몇 사람들이 모여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가구점 주인, 시장 안의 재단사, 작은 봉제 작업실에서 셔츠를 만드는 사람, 고물상 주인, 광산의 막장에서 일하던 광부가 모였다. 그중 대학을 나온 사람은 없었다. 모두 가난한 편이었다.

 

그들은 쟝발잔같이 감옥에서 나와 당장 먹을 밥도 잘 곳도 없는 사람을 돕기로 마음이 연결됐다. 조금씩 돈을 내놓아 쌀과 배추를 사서 김치를 만들었다. 가구점 주인이 변두리 뚝방 근처의 낡은 집을 하나 얻어 잠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그곳에 쌀 두 가마를 사가지고 가면서 그들과 합류하게 됐다. 시장 안 재단사는 매달 삼만 원을 낸다고 했다. 작은 돈이지만 속이 따뜻해진다며 기뻐했다. 어느 순간 그 단체가 커지기 시작했다.

 

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법인으로 되어 국가의 보조금을 받게 됐다. 그 단체를 관리하게 된 사람이 변호사인 내게 물었다. 내가 그곳의 법률고문이 된 셈이다.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기부금을 끌어모으는 게 전문인 사람이 있어요. 자기가 재벌그룹에 가서 떼를 써서 돈을 받아오면 그중 이십 퍼센트는 자기 수고료로 달래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 단체의 관리하는 사람이 내게 또 이런 말을 했다.

 

“정부 돈을 받으니까 주인이 공무원이 된 것 같아요. 수시로 감사가 나오는데 모든 걸 다 간섭해요. 그리고 하는 말이 정부 보조를 받으면 그 액수만큼 기부를 받아야 형평에 맞지 않느냐는 거예요. 이 일을 시작한 분들이 모두 가난한 분들인데 어떻게 그런 돈을 낼 수 있겠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저기 기부를 받으러 다니는데 정말 힘들어요. 서울의 대형교회에 도움을 받으러 가면 어떤지 아세요? 서류는 산만큼 내라고 하고 나중에 십만 원을 주기로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차라리 안 받고 싶은 마음이예요.”

 

따뜻하던 단체가 어느새 얼음같이 냉냉해졌다. 처음에 그 단체를 이룬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모두 떠나가 버렸다. 나도 그 단체를 떠났다. 전혀 생각이 없는 그 단체의 장 자리를 내가 할까봐 다른 사람들이 나를 견제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전할 때 나는 내가 존경하는 스승인 백 년 전 현자 노인의 경험을 들어본다. 그 역시 단체를 이끌었고 잡지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는 이렇게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의 일을 할 때 정부의 보조도 교회의 보조도 다 거절했소. 보조금이라는 건 그분이 아닌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오.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책임을 방해하는 것이었소.

 

나는 사람들로부터 추호의 속박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보조를 받지 않았소. 그렇다고 일제의 돈을 거절한 것은 아니오. 자발적 호의에서 우러나온 것은 받았소. 아무런 조건이 붙지 않는 순수한 사랑에서 온 것 말이오.

 

그런 돈은 하늘에 계신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었소. 내가 밀실에 앉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거요. 그분에게만 감사하면 되는 거지. 하나님에게는 불경기가 없소. 언제든지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가 필요한 것을 보내주는 분이오.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소. 나는 큰 재벌총수를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마음으로 대담하게 처신했소. 그렇게 살아냈소.”

 

나는 사회의 눈치를 보고 세금같이 내는 기부금을 거절하기로 했다. 따뜻한 온기가 담긴 돈을 가지고 직접 사람을 찾아가 내 손으로 전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전 이따금씩 탑골공원 뒷골목 무료급식소를 찾아간 적이 있다. 이백 명분의 급식이 끝나 밥을 먹지 못하게 된 한 노인이 하늘을 향해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걸 보았었다. 그 노인에게 국밥 한 그릇 값을 주면서 말했다.

 

“저 위에 계신 분이 전해주라고 하시네요.”

 

눈물을 그치는 노인이 아이 같았다. 그렇게 말하는 내 속에서 따끈한 아랫목처럼 온기가 솟아올랐었다. 그분이 즉석에서 주는 큰 보상이었다. 어떤 기부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가리나 소리나는 구리판이 아닐까. 〠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엄상익 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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