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억 원을 드릴께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2/29 [10:36]


어제 저녁 그 부부가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하나님이 일억 원을 주셨어요. 그걸 엄 변호사님한테 모두 드리려고 해요. 알아서 해주세요.”

 

그들 부부는 원래 셋집조차 없이 가난했다. 선교사로 삼십 년을 외국으로 흘러 다녔다. 그들 부부는 개방되기 직전 러시아로 갔었다.

 

남편은 빵통을 메고 모스크바 역 앞의 노숙자들을 찾았다. 병으로 온몸에서 고름이 나오고 악취가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부부는 또 전쟁 중인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다.

 

성경 속의 유대광야 미디안 광야 등을 순례자같이 이십 년을 돌았다. 그들은 어떤 돈 있는 단체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도 했다. 십 년 전 우연히 광야에서 그들을 만났었다.

 

나는 그들 부부를 보면서 사람이 종교적으로 미치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월이 흐르고 그들 부부는 육십대 중반을 넘긴 노인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들 부부는 철저히 무소유였다. 그래야만 진리를 전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철학이었다.

 

“그 돈이 어떻게 생긴 돈입니까?”

 

내가 이상해서 물었다. 그의 아내가 나를 보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정읍에 사는 어떤 분이 우리가 살아온 걸 알고 하나님이 주는 퇴직금으로 생각하라면서 돈을 일억 원 주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특이한 조건을 붙였어요. 그 돈을 정읍과 장성지역에서 노후에 집필을 하면서 보낼 집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라는 거죠.”

 

그 지역에서 작은 아파트를 구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에 세계를 흘러 다닌 체험을 글로 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국내로 돌아와서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저희같이 평생 해외를 선교사로 떠돌다가 나이를 먹거나 병이 들어서 온 사람들이 참 많아요. 그런데 그들이 다 버려진 셈이예요. 그들을 보냈던 교회조차 책임지지 않아요. 같은 입장에 있는 저희들 몇 명이 남쪽 끝에 있는 섬으로 들어가 봤어요.

 

빈 집이 많은 데 일 년에 몇십만 원만 주면 빌릴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일거리도 있었어요. 양식장에 가서 전복을 까주면 한 달 생활비를 벌 수 있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을 모아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웃사랑을 부르짖는 종교단체의 내면이 그렇게 차구나 하고 놀랐다. 그게 자연의 법칙인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는 중에 이십대 초 봤던 한 광경이 떠올랐다.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서 공부할 때였다. 방앞 마당 구석에는 구멍 뚫린 둥근 나무토막에 벌떼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점심 무렵 무심히 벌통을 보니까 그 바닥에서 벌들이 꿈틀거리며 기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까 늙고 지친 벌들이었다. 더 이상 일을 못하니까 벌집에서 쫓겨난 것 같았다. 순간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젊고 싱싱한 벌 두 마리가 바닥에서 기는 벌의 양쪽 날개로 다가가 입으로 날개를 물고 번쩍 들어 어디론가 가는 것이었다. 버리러 가는 것 같았다.

 

그 절의 주지를 하던 스님도 구석방 한 구석에 유폐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보였다. 밤새도록 끓는 기침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늙고 병들어 버려진 선교사들도 비슷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남편을 보면서 내가 물었다.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싶습니까?”

 

“지금 해외에서 돌아온 늙고 병든 선교사들이 만 명이 넘어요. 먼저 그들을 돕고 싶어요. 돈을 보내주면 그들을 위해 함께 쓰고는 싶은데 선한 어려움이 좀 있네요.”

 

“나라도 또 그들을 보낸 교회도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돕겠다구요? 더구나 아무것도 없고 이제는 노인이 된 분이? 이제는 도움을 받을 때가 아닌가요?”

 

나는 그의 끝없는 이웃사랑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예수도 가난한 사람들은 영원히 있을 거라고 하면서 한 여인이 비싼 향유를 발라주는 걸 허락했다. 옆에서 그걸 본 유다는 그걸 돈으로 만들어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그 선교사 부부는 숨은 덕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이 일하는 시리아 난민촌을 가본 적이 있었다. 그들 부부는 남들이 모르게 난민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남편은 한번은 내게 샤워할 때 물은 십초 정도 쓰고 비누도 한 번만 살짝 문질러 바른다고 했다. 그 정도 아끼는 사람이었다.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선을 행하는 부부였다. 나는 그들 부부가 이기적이 될 걸 진심으로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인간을 보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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