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귀중한 자유의 유산

정지수/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2/29 [11:26]
▲ 나치 다하우 강제 수용소 사령관이 1933년 크리스마스 무렵 사면 조치의 일환으로 석방될 수감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 영국의 종교인 윌리엄 틴데일     


"역사의 교훈을 배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 침울한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이 문구는 독일 나치가 운영했던 다하우(Dachau) 강제 수용소의 문 위에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얻으라고 침울하게 경고한다.

 

오늘날 호주인들은 역사의 교훈을 배우고 있는가? 우리가 오늘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된 역사적 이유를 알고 있는가? 우리가 역사적 교훈을 잃어버리고 무지해진다면, 우리 자녀들은 다시 자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얻은 자유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이것을 얻기 위해 이전 세대들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자들에게 대항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잃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유를 얻는 과정은 아주 고통스러웠다.

 

최초로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을 때,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말도 안되는 핍박과 처벌을 받았다. 영국의 종교인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4-1536)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고 당시 종교 권력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 윌리엄 틴들이 화형당하기 전에 "하나님, 영국왕의 눈을 뜨게 하소서"라며외치고 있다. 1563년 폭스의 순교사에 실린 삽화    

 

결국 그는 화형을 당했다. 오늘날 화형제도는 사라졌지만, 권력자들은 자신들에게 대항하는 자들을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암살한다. 부과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일반 개인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호주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자유가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졌는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이민자들은 호주 역사를 깊이 있게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호주 사람들이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는지를 모른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알지 못하면 다시 권력자들의 먹이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교훈을 얻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입헌군주제 국가인 호주에서는 정부 권력이 효과적인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사람들이 권력을 잡은 수상이나 정부의 권력을 헌법에 의해 제한시키는 제도를 만드는 데는 수천 년의 세월이 걸렸다. 입헌군주제를 만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각 개인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독특하고 매우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러한 믿음을 바탕으로 국가가 개인을 섬기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 즉 규칙을 만들었다.

 

이러한 규칙은 사법부에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법원에서는 동등한 12명의 배심원단이 엄격한 증거 규칙에 따라 유죄가 입증되었음을 만장일치로 받아들일 때까지 모든 개인은 무죄로 판명된다. 이러한 재판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판사의 감시 아래 진행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독교적인 견해를 버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에 물든 사람들은 한 개인이 한 종의 전체 개체군 중 하찮은 부분일 뿐이며 모두 우연히 태어난 존재라고 믿는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국가나 소수의 권력자들이 개인들을 지배하는 일을 쉽게 받아들인다.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와 스탈린이다. 이들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 사회를 통치했기 때문에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했다.

 

진화론은 과학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진화론은 반복 실험을 통해 증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라기보다는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 진화론이라는 종교적 신념을 소유한 자들은 개인 각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 1936년 5월 8일,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조사하는광기의 살인마 하인리히 힘러(앞 오른쪽, 죄수 옆)     

 

우연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 중에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자는 생존하게 되고, 적응에 실패한 자들은 도태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적응에 실패한 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관습법은 호주에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가장 강력한 법이다. 이것은 오늘날 의회가 만든 법률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 판사들이 만든 판례들이다.

 

수세기 동안 판사들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에 포함된 진정한 정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대체로 호주의 관습법은 성경에 기초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진정한 정의는 진정한 자유 사회의 초석이다.

 

호주의 많은 법들이 기독교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특정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면 안되며, 정부는 ‘세속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호주 법이 기독교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종교를 완전히 배제한 독립적인 세속 국가가 이 세상에 과연 존재하는가?

  

모든 국가에는 법이 있어야 한다. 모든 법은 옳고 그름(도덕)을 정의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모든 도덕은 믿음(즉, 종교)의 문제이다. 따라서 모든 법은 도덕을 바탕으로 제정된다. 한 나라의 법은 도덕성에 대한 누군가의 신념에 기초해야 하기 때문에 국가는 "세속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누구의 도덕성 위에 국가의 법을 세워야 하는가? 최근까지 판사들은 기독교 도덕과 자유와 번영의 반석에 관습법을 기초로 국가의 법을 세웠다. 하지만, 오늘날 점점 더 많은 판사들과 정치인들이 호주 국민이 알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도덕적 기반과 신념을 따르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념을 "세속적 인본주의"라고 부른다. 이들이 믿는 신념은 오직 인간의 이익과 가치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인간에게 도덕성을 부여한 하나님에 대한 모든 믿음을 배제하고 오직 인간의 현세적 안녕에만 관심을 갖는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무엇을 추구하는가? 그들은 국제 자본가들이 모든 시장을 독점하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하고 나아가 하나의 세계 정부를 만들고 싶어한다. 유전공학을 통해 새로운 인종, 즉 더 진화한 인간을 만들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새로운 종교를 만들기 원한다.

 

인본주의자들은 모든 제도가 인간 삶의 완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그러한 모든 제도를 지능적으로 평가, 변형, 통제 및 지시하는 것이 인본주의자들의 목적이자 그들이 추구하는 바이다.

 

일부 정치인, 판사, 대학 강사 및 기타 사람들이 세속적 인본주의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호주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기독교적 윤리와 도덕을 해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믿고 있는 세속적 인본주의를 호주 사회에 퍼트리는 것이다.

 

이제 호주인들이 깨어날 시간이다. 우리는 성경적 도덕에 근거해 법과 정책을 만들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자유는 지속적으로 제한될 것이다.

 

호주의 관습법에 내재된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는 현대 무신론을 따르는 정치인과 판사의 입법을 철회하려면 유권자들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 법의 기독교적 도덕적 기초를 무신론적 세속적 인본주의로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 UN 조약을 은밀히 사용하는 것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분산된 권력

 

개인의 자유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것 중 하나는 권력의 분산이다. 예를 들어, 영국 여왕은 우리 방위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우리 병사들에게 전쟁을 명령할 권한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전쟁을 하려면 먼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의회가 전쟁 비용에 관한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왕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다.

 

이뿐만이 아니라 호주에서는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가 권력을 나누어 가져 한 부서가 절대 권력을 갖지 못하게 되어 있다. 호주의 입법부인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입법부 시스템은 또 다른 형태의 권력 분산이다. 이처럼 개인이나 한 집단이 절대 권력을 보유하거나 행사하는 것을 방지하는 권력 분배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자유의 유산을 얻기까지의 호주 역사

 

호주 사람들이 오늘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은 지난 2천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 영국과 호주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2세기

개인의 자유에 대한 출발점은 영국의 루시우스(Lucius) 왕이 156년에 기독교를 국교로 삼을 때부터다.

 

6세기

에델버트(Ethelbert) 왕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정권이 소유한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법률을 도입한 최초의 절대 통치자였다. 이것은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였다.

 

9세기

▲ 영국의 영웅 알프레드 웨식스 대왕     

 

알프레드 (Alfred) 왕은 영국의 법을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의 법이라고 선언하고 왕과 법원 모두 이에 복종하며 변경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한편, 법원은 성경을 참조하여 새로운 문제를 결정해야 했으며 그들의 결정은 왕의 법령에 의해 무효화되지 않는 한 판례가 되었다. 의회와 같은 위원회는 새로운 관습법 판례를 검토하고 왕에게 성경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판례를 무효화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9세기부터 대관식이 기독교식으로 치러졌다. 왕의 대관식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주권을 인정해야만 왕위 계승자가 왕이 될 수 있었다.

 

11세기

영국 헌법 체계의 일부가 성경적 기초를 이해하지 못한 노르만인(프랑스 왕)에 의해 수정되었다.예를 들어 윌리엄 2세는 자신의 권력에 대한 헌법상의 제한을 인정하기 거부했다.

 

12세기

헨리 1세 왕은 헨리의 대관식 헌장으로 알려진 문서에서 자신의 권력 제한에 동의했다. 그 후 헨리는 "정의의 사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12세기 후반에 헨리 2세 왕은 관습법을 정리하고 그것이 효과적이고 실제적으로 영국 전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도록 하기 위해 왕실 법원 시스템을 다시 도입했다. 그는 또한 배심원 재판을 진정한 정의와 형평의 도구로 장려했다.

 

13세기

     ▲  대헌장     

 

13세기까지 영국의 왕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영국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왕의 출현으로 사람들은 이제 왕이 너무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1215년에 자신을 법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던 존 왕에게 그의 정치적 권한을 제한하는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게 했다.

 

대헌장으로 불려지기도 한 마그나 카르타는 왕의 권한이 법에 의해 제한된다는 내용이었다. 왕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는 고대 원칙을 문서화했다는 점에서 마그나 카르타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4세기

중세 시대에는 교황을 비롯한 소수의 사제들만이 종교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들만이 라틴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일반 성도들은 라틴어와 헬라어를 몰라 성경을 읽을 수 없었다.

 

성경을 읽을 수 있는 특권층은 날로 부패해 갔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존 위클리프는 일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전념하기로 결심하고 당시 일반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인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다.

 

영어로 된 성경은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들에게 큰 위로와 도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위클리프에 합류하여 세속적이고 위선적이며 억압적인 교회의 권력자들을 비난했다. 이는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 위클리프의 영향력은 영국을 넘어서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특히 존 후스 (John Huss)에게 영향을 미쳐 종교개혁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였다.

 

한편, 후스의 신앙과 설교는 후에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선교 교회들 중 하나인 모라비안 교회가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스는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가르치는 교황과 그의 사제들을 강력히 비난했다가 그들에 의해 1415년에 화형을 당했다.

 

종교 권력을 가진 자들은 후스를 죽여 종교 개혁과 자유에 대한 갈망의 불씨를 꺼트리려 했지만, 후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과 많은 성도들에 의해 더욱 강력하게 퍼져나갔고, 결국 그들을 통해 종교 개혁의 불길이 타올랐으며, 자유의 물결도 더욱 강력해졌다.

 

더 이상 왕이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없었다. 왕의 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었고, 일반 시민들의 대표인 의회가 왕이 가졌던 권한의 일부를 갖기 시작했다. 왕과 의회가 공존하는 새로운 모습의 입헌 군주 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독교의 복음만이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며 지속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추구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6세기

위클리프와 후스의 영향은 유럽 전역에 반향을 일으켜 결국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루터를 포함한 여러 종교 개혁자들을 따랐다. 그러나 당시 종교 권력을 장악한 교황과 그의 사제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내려 놓기 싫어서 종교 개혁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개혁과 개인의 자유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자들과 함께 하셔서 종교 권력자들의 무력 탄압을 그치게 하셨다.

 

성경을 유일한 믿음의 근거로 믿는 종교 개혁자들의 영향력은 영국의 정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영국 대법원장인 에드워드 코크 경(Sir Edward Coke)은 왕도 의회도 최고가 아니며 하나님의 계시된 법에 반대되는 법안을 제정한다면 그 법안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의 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세기

영국 왕인 찰스 스튜어트 제임스 1세(James Charles Stuart)는 왕의 권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며 절대주의적 왕권을 추구했다. 이 세상에서 절대주의적 권력을 가질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인간이 절대권력을 가지면 반드시 권력을 오용하거나 타락하게 된다.

 

결국 왕권신수설을 주장했던 영국의 스튜어트 왕조는 무너졌다. 왕이 가지고 있었던 신성한 권력은 이제 의회로 넘어갔다. 영국 국민들이 신 아래 모든 정의로운 권력의 근원이며, 그들이 선출한 의회는 국민을 대표하고 영국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한편,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중요한 법령인 하비우스 코퍼스 법령(Habeus Corpus Act)이 1679년에 만들어졌다. 이 법에 따라 아무도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기 전에는 감옥에 갇히지 않게 되었다.

 

18세기

성경에 근거한 자유를 추구했던 영국과는 대조적으로,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위해 신을 거부한 지도자들을 가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혁명의 파괴적인 고통을 견뎌야 했다. 프랑스 혁명에서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지만, 실상 그들은 나폴레옹이 권력을 갖도록 허락했다.

 

영국에서 프랑스 혁명과 비슷한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영국도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프랑스인은 계몽주의를 앞세운 무신론자들을 따른 반면, 영국인들은 성경을 믿는 지도자들을 따랐다.

 

그래서 영국은 프랑스가 겪은 폭력적 유혈 사태를 겪지 않았다. 특히 영국은 존 웨슬리를 비롯한 여러 목회자들을 통해 성경을 국가의 중심에 놓았고, 이를 통해 위대한 번영의 시기를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바탕으로 국가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윌리엄 윌버포스다. 그는 영국 의회의 회원으로 영국이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한나 볼 (Hannah Ball)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그녀는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읽기, 쓰기, 수학, 성경 등을 가르치기 위해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그녀의 주일학교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그녀의 영향력 때문에 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특권층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성경적 관점에서 교육은 교회와 가족의 책임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의 통로이고 가정은 하나님의 공급의 통로이다. 하지만, 오늘날 세속화된 정부는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 물론 기독교 사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면 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19세기

19세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회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의회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에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평범한 사람들은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을 해야 했다.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노동 운동에 참여했고,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그들은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누가복음 10:7)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처음 노동운동을 펼친 많은 사람들은 핍박을 받았다. 잔인한 처벌을 받았거나 호주로 추방되기도 했다.

 

20세기

20세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사망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국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운운하며 수 많은 사람들을 죽인 것이다.

 

그들이 막대한 권력을 갖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권력이 무신론과 유물론에 기초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신론에 기반을 둔 세속적 인본주의는 오늘날 세계 정부의 출현을 부추기고 있고, 종교 간의 동맹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기독교의 유산은 영국과 호주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개인에게 진정한 사랑과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 주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것과 오직 그리스도만이 절대 권력을 가진 주권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인 왕이나 헌법, 의회, 심지어 '국민의 뜻'에 의해 제한되면 안 된다. 오직 그리스도가 절대 권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다스릴 때 우리는 완벽하고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참고= 리차드 이어슨(Richard Eason)의 논문

 

정지수|크리스찬리뷰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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