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와 가지

서을식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1/12/29 [11:3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

 

호주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 채플 시간에 한 초청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켈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대립하여 양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말하지만, 나는 기도할 때는 켈빈주의자이고 설교할 때는 알미니안주의자이다.” 그분의 설명은 이랬다.

 

기도할 때는 전적으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입장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설교할 때는 청중에게 스스로 결단하면 무엇이나 할 수 있듯이 ‘말씀대로 살라’고 외치고 있으니, 자신은 켈빈주의자인 동시에 알미니안주의자라는 말이었다.

 

목회자로 나도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이고, 아마 엄밀한 선택을 강요받지 않는다면, 많은 목회자의 공통적인 고백이라고 본다.

 

오늘 성구는 예수님과 우리가 맺는 밀접한 관계와 열매에 관한 말씀이다. 믿음 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핵심이다’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균형을 잡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다. 목회자로서 나는 ‘교회를 위해서’ 때로 균형을 깨고 한 방향으로 힘 있게 나가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성도 개인들을 위해서’ 균형 잡힌 믿음을 강조하는 중요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기에 기다리면서 천천히 가는 길을 선택할 때가 많다. 무엇이 균형을 잡아야 할까?

 

기독교 역사를 보면 여러 운동이 있었다. 은둔, 침묵, 하나님과의 교제가 특징인 명상 운동(초대교부들, 4세기 성 오거스틴), 병든 자, 가난한 자를 향한 동정과 자비가 특징인 사회정의 운동(12세기 말 프랜시스), 성경, 설교, 전도, 가르침이 특징인 복음주의 운동(15세기 마틴 루터), 성령의 능력, 치유, 사역이 특징인 은사 운동(17세기 조이지 폭스, 퀘이커교도), 덕, 온전함이 특징인 도덕주의 운동(18세기 존 웨슬리) 등등. 나름 공헌한 바가 크지만, 어느 한쪽을 치우쳐 강조하면 다른 것들을 간과하는 문제가 생긴다.

 

시대에 따라 ‘어느 각도에서 예수님을 보느냐’에 따라 달리 나타날 수 있으니, 한쪽에 치우친 성향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정의가 잘 조화된 전인적 인격을 형성해야 하듯, 신앙의 다양한 강조점들이 잘 조화를 이뤄 건강한 전인적 신앙을 갖는 일이 개인과 교회 모두에게 아주 중요하다. 전인적 인격 안에 전인적 신앙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의 성구가 말하는, 믿음 생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와 열매를 보자.

 

‘거한다’라는 말은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는 말이 아니고, ‘머문다’라는 말이다. ‘붙었다 떨어졌다’ 한다는 말이 아니고 ‘계속 참고 남아있다’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중단 없이 지속하는 동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면 자연스럽게 열매를 많이 맺는다.

 

마치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기대하고 무화과 나무에서 무화과를 기대하듯, 세상은 마치 자신의 당연한 권리이듯 크리스천들에게 열매를 기대한다. 우리는 그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등경 위에 두신 빛인 동시에 그들 중에 뿌려져서 거하는 소금이기에, 그들 가운데서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

 

요한복음 14장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에 관한 가르침 후에 15장의 교훈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정리해본다.

 

‘길, 진리, 생명인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기억하며 사십시오.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처럼 예수께 꼭 붙어 동행하여 열매를 맺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사랑의 계명을 지키므로 예수님의 친구가 되고 또한 무엇이든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 기도의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핍박도 함께 받습니다.’

 

크리스찬의 영적 여행이 어찌 이리 잘 묘사되어 있는지 감탄할 따름이다. 한 해가 시작됐다. 선물로 주어졌으니 감사한 동행을 통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는 말씀 따라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 삶을 풍성히 누리며 살자.

 

또한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누가복음 13:8~9)라는 포도원지기의 말도 충분히 의식하자. 이 또한 균형 잡힌 모습이리라.〠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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