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을 이어주는 시드니의 옷걸이

글/김환기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1/27 [09:29]
▲   2월호/2022 표지  © 크리스찬리뷰

 

 

▲ 밀슨스 포인트에 있는 놀이공원루나파크에서 바라 본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 크리스찬리뷰


시드니 하버브리지(Sydney Harbour Bridge)는 북부와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로, 1923년 7월에 시공하여 1932년 2월에 최종 완공되었고, 3월 19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길이 503m, 너비 49m에 정점이 134m 높이로 솟아 있는 단일 구간 강철 아치교로 이루어져 있고 더운 날이면 강철이 팽창하기 때문에 높이는 최대 180mm까지 늘어난다. 중간 구간은 물 위 49m 높이의 갑판 위로 8차선의 도로 사이에 두 개의 전차 선로와 보행자 도로, 자전거 도로가 나 있다.

 

건설 당시부터 9년 동안 해마다 1천500명 이상의 고용이 이루어져 경제 대공황을 벗어나도록 도왔다. 아치교 특유의 디자인으로 인해 다리가 ‘옷걸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The Coat Hanger' 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시드니 남과 북의 연결을 제안

 

다리로 항구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자는 제안은 1815년 죄수 건축가 프랜시스 그린웨이(Francis Greenway)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19세기 전반부에 시드니가 시드니 코브(Sydney Cove) 주변에 형성되었고 이후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항구와 북쪽, 서쪽 및 남쪽의 지류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항구 북쪽에 대한 유럽인 정착은 1814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죄수였던 빌리 블루(Billy Blue)에게 토지를 부여한 후 곧 항구를 가로질러 첫 페리 서비스를 시작했다.

 

▲ 하버 브리지가 공식 개통된 날 시드니와 서큘러 키의 전경. (1932. 3.19)     

 

▲ 하버 브리지 남쪽에 기초석을 놓는 것을 축하하는 도스 포인트에 모인 군중들.     


워터맨(Watermen)은 1840년대까지 계속해서 북쪽 해안으로 가는 통로를 제공했으며, 이때 시드니의 첫 번째 차량 페리 서비스가 도스(Dawes)와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 사이에 설립되었다. 차량 및 여객 페리는 19세기의 나머지 기간 동안 시드니 항구에서 계속해서 중요한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19세기 내내 항구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하려는 여러 계획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는 주로 시드니 항구와 같이 갯벌이 드넓은 바다 위에 다리를 건설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드니 항구를 가로지르는 교량 건설은 조립식 강철 및 철근 콘크리트의 현지 제조 개발과 함께 국제적으로 교량 엔지니어링 기술의 발전과 함께 20세기 초에 현실이 되었다.

 

특히 강철의 장점은 비용 효율성과 별개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가단성이 있어 넓은 갯벌에 걸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Bradfield와 Dorman Long and Co

 

▲ 건설 중인 하버 브리지(1930년)와 개통 후 마차, 자동차, 트램과 기차가 지나고 있다.(1932년)     

 

시드니 하버브리지의 완성은 엔지니어 존 브래드필드(John Bradfield) 박사의 노력 덕분이었다. 시드니 하버브리지 건설에 대한 브래드필드의 오랜 참여는 다리 입찰을 검토하기 위해 설치된 자문 위원회의 비서로 임명된 1903년에 시작되었다. 브래드필드는 공공 사업 부서 내에서 꾸준히 승진했으며 1912년까지 시드니 하버 브리지 지점과 교외 철도의 전기화를 담당했다.

 

부서 내에서 브래드필드의 이중 책임은 다리(bridge)와 시드니의 대중교통 시스템이 통합적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시사했다. 그는 내구성 때문에 항구의 이상적인 교량으로 2개의 힌지 강철 아치 디자인을 제안하였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 법은 1922년 11월 24일에 통과되어 승인되었다. 이 법에 따라 도스와 밀슨스 포인트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기 위한 입찰이 요청되었다. 입찰은 1924년 1월 16일에 마감되었다.

 

낙찰된 입찰자는 Dorman Long and Co의 영국 엔지니어링 회사였다. 계약은 1924년 3월 24일에 서명되었다. 입찰 조건 중 하나는 재료를 NSW에서 조달하고 제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 건설에 사용한 철강의 79%는 영국에서 수입되었으며 나머지는 국내에서 충당했다.

 

페이스 북에 올린 시드니 하버브리지 사진을 보고 미국 사관학교 동기인 ‘노먼 그레니저’(Norman Graniger) 사관이 댓글을 남겼다.

 

“하버브리지의 대부분의 철은 내 고향인 미들즈브러(Middlesbrough)에서 가지고 왔다”

 

그는 영국인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의 고향인 ‘미들즈브러’는 영국의 북동부 노스요크셔 주에 있는 북해와 인접한 항구 도시이다. 많은 소도시가 모여 있는 산업 집합도시가 확대됨에 따라 이곳이 그 중심부가 되었다. 이곳의 철강 산업은 외곽에 있는 클리블랜드 힐스의 철광석 매장지 덕분으로 오랫동안 번창을 했다. Dorman Long은 철강 다리 건설의 세계적인 회사이다.

 

요크에 살고 있는 딸아이가 뉴카슬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시드니 하버브리지와 유사한 작은 브리지를 보았다. 다리 이름은 ‘Tyne Bridge’로 1928년에 Dorman Long 회사가 건설했다. 이외에도 Dorman Long 회사는 세계 각국에 많은 철강 다리를 건설하였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 건설

 

1923년 7월 28일 하버브리지 건설을 위한 역사적인 첫 삽을 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호주인이었지만 노동력은 다국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석공이나 철공과 같은 숙련된 노동자들은 해외에서 데려왔다.

 

▲ 1928년 건설된 영국 뉴카슬의 타인 브리지(Tyne Bridge).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유사하다.     

 

▲ 하버 브리지 철교 위에서 보수 작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1949년)     

 

다리 건설 중 16명이 사망하고 작업의 위험한 특성으로 인해 작업 중 사고가 빈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량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좋은 임금과 조건으로 일했고 노동조합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다리를 완성하는 데 걸린 9년 동안 최소한의 쟁의행위만 있었다.

 

1928년 10월 26일 아치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초대형 크레인이 동원되었고 양쪽에서 동시에 중앙을 향하여 조금씩 전진하기 시작했다.

 

1930년 8월 19일 처음으로 두 아치가 정확하게 중앙에서 결합되는 결실을 맺었다. 곧이어 도로 데크가 깔렸고 다리의 양쪽 끝을 고정하는 주탑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교각과 주탑의 화강암은 NSW 남부 해안의 모루야(Moruya)에서 채석되었다.

 

1932년 2월에 다리가 완성되었다. 3주 동안 다리의 동쪽에 있는 철로를 따라 96대의 기관차를 연결하여 테스트한 후, 공사 9년 만에 드디어 1932년 3월 19일 시드니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하버브리지가 개통되었다.

 

▲ 하버 브리지의 주요 제안자로 가장 잘 알려진 호주 엔지니어 본 브래드필드. 설계와 건설을 모두 감독했던 그가 기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면서 시험 주행을 하고 있다.(1932. 1.19)     

 

하버브리지는 시드니의 남과 북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흩어진 호주 국민들의 마음도 연결해 주었다. 1982년 처음으로 하버브리지 5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고, 1988년 시드니 하버브리지는 국제적으로 역사적인 토목공사의 랜드마크로 선포되었다. 하버브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넓은 철제 아치 다리이다.

 

하버브리지의 남은 이야기들

 

1932년에 하루에 1만 1천 대가 다녔고, 지금은 16만 대가 넘는 차량이 다닌다. 매년 약 4천 대의 차량이 브리지에서 고장나 옮겨진다. 매일 100여명 이상의 직원이 브리지 유지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34미터이고, 다리의 총 길이는 503미터이다. 철은 5만 2천 톤이 사용되었다.

 

▲ 빈센트 켈리가 1930년 시드니 하버 브리지 공사 중 55m 아래로 추락한 후 기적같이 생존, 그에게 수여된 금도금 메달.     

 

브리지 꼭대기에 서 있는 호주 국기는 4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교체한다. 다리의 표면은 15년마다 교체한다. 영국에서 차관으로 빌려온 돈은 1988년에야 다 갚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일을 했기 때문에 별명을 ‘Iron Lung’이라고 부른다. 다리에서 작업하다가 죽은 사람이 14사람이고, 2사람은 채석장에서 죽었다. 작업 중 바다로 떨어진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았고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 1998년 10월 3일, 브리지 크라임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아름다운 시드니항을 볼 수 있다. ©Bridge Climb     

 

1998년 10월 3일, 하버브리지에 '브리지 크라임(Bridge Climb)이라는 새로운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아름다운 시드니항을 내려보는 것이다. 얽히고 설킨 복잡한 구조물을 통해 다리를 걸어서 올라가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사업가인 ‘폴 케이브’이다.

 

브리지 클라임’은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하는 시드니의 인기 관광상품이다. 검푸른 바닷물 위에서 탁 트인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50층 높이의 아치 중앙부분에 있으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코로나 여파로 35%까지 할인해 주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성인이 $198-$248, 어린이가 $139이다.

 

▲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에 시드니에 영희 인형이 설치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2021년 10월 말,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흥행을 이루면서, 호주 넷플릭스 측은 하버 브리지가 있는 곳에 한국에서 제작된 4.5m 높이와 3t 무게의 영희 인형과 분홍색 제복을 입은 진행 요원 2명을 배치해 시민들에게 ‘오징어 게임’에서 소개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시드니 시장, 클로버 무어(Clover Moore)

 

클로버 무어(Clover Moore)는 시드니 시장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사람이다. 그녀는 시민이 선출한 최초의 여성이며, NSW의회와 시 및 사우스 시드니 의회에서 일을 했었다. 그녀와 인터뷰를 약속했으나, 갑자기 발생한 오미크론 사태로 방문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서면 인터뷰로 진행했다.

 

 ©Morris Mclennan    

 

- 먼저 본인 소개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17년 동안 시드니 시장으로 역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시장 선거에서 재선이 되어 앞으로 4년간 더 시드니 시를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호주의 상징인 새해 전야 불꽃놀이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하버브리지는 1932년에 개통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멋진 항구 중에 하나이며 호주의 상징입니다. 시드니 하버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새해 전야 불꽃놀이를 주최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See Sydney Shine'이었습니다. 5대의 바지선, 2만 5천 개의 폭죽과 9천 개의 공중 포탄, 8만 개 이상의 불꽃 효과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의 4곳 돛에서도 폭죽을 터트렸습니다. 하늘을 수놓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고래, 정육면체, 해바라기, 회오리 모양 등 새로운 모양의 불꽃놀이는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 준비기간과 총예산은 얼마나 되나요?

 

“불꽃놀이를 디자인하고, 준비하고, 발사하는데 3천 시간(약 125일) 이상을 투자했습니다. 기획은 ‘Foti International Fireworks’ 팀이 담당했습니다. 올해 예산은 586만 달러였습니다.”

 

▲ 하버 브리지 위에서 바라 본 시드니항의 새해 전야 불꽃놀이와 ‘클로버 무어’ 시드니 시장.©Moore Main     

 

- 코로나 사태 이후 시드니에 관광객들이 입국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관광 종사자에 대한 어떤 지원이나 대책이 있습니까?

 

“팬데믹 이전의 상태로 지역 기업과 거주자를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다시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지속적인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Covid-safe 이벤트, 콘서트, 공연 및 기타 활성화 프로그램에서 주정부와 협력하여 CBD를 재활성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보조금 프로그램을 통해서 기업 등을 돕는 광범위한 무료 야외 식사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2021-2022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를 기획한 ‘Foti International Fireworks’ 팀 ©Chris Southwood    

 

▲ 2021-2022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는 원주민 예술가‘블락 더글라스’(Blak Douglas)가 아름답고도 강렬한 공연으로 디자인했다.©City of Sydney    



- 아름답고 안전한 시드니를 만들기 위한 특별한 계획은 무엇입니까?

 

“지난 17년 동안 우리는 도시가 활기차고 역동적이며 안전한 목적지가 되도록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거리와 골목길을 녹색으로 만들고 자전거, 도보 및 교통 수단을 확장하고 서큘러 키(Circular Qua)에서 센트럴(Central)까지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의 보행자 전용 도로를 완성할 것입니다.

 

공원, 정원, 놀이터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계속될 것이며 밤의 유흥, 창의적, 문화적 제안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약속도 계속될 것입니다.”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

(Sydney New Year’s Eve Fireworks)

 

▲ ©Matt Lambley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는 매년 호주 시드니에서 새해 전야에 열리는 세계적인 축제이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포트 잭슨 주변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 행사는 두 번의 불꽃놀이로 진행된다. 오후 9시 가족 불꽃놀이와 자정 불꽃놀이는 두 가지 모두 전국적으로 중계되며 더 인기 있는 자정 불꽃놀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계된다.

 

▲ 시드니 하버 브리지 야경(위)과 하버 브리지 위에서 바라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시내 전경.     © 크리스찬리뷰

 

▲ 하버 브리지 관광 전망대에 비친 원주민 영상 ©City of Sydney   


과거와 현재의 대중음악의 사운드 트랙에 동기화된 불꽃놀이는 오페라 하우스, 인근 도시 건물 및 다리 양쪽에 고르게 분할된 최대 7개의 바지선을 포함한 하버브리지의 아치, 좁은 통로 및 도로에서 폭발한다.

 

매년 새로운 주제가 선택되고 항구 주변에서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관람하고 미드나잇 불꽃놀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이 관람한다. 2010-11 이벤트의 경우 150만 명의 청중이 시드니 항구에서 디스플레이를 시청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11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시드니 불꽃놀이 축제는 1976년에 시작되었으며, 1995년 12월 31일에 처음 TV로 방송되었다. 오후 9시 가족 불꽃놀이는 원래 약 20분 동안 지속되는 메인 쇼였으며, 한밤중 불꽃놀이는 약 3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1999년부터 자정 불꽃놀이는 두 행사의 메인이벤트가 되었다. 2020년에는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가족 불꽃놀이가 중단되고 자정 불꽃놀이도 단축되면서 축제가 축소되었다.

 

 

▲ 밀스 포인트 선착장에서 바라 본 시드니 하버 브리지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 크리스찬리뷰


2021-2022의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 축제는 오미크론 바이러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2022년에 90번째 생일을 맞는 시드니 하버 브리지를 축하하며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올해의 주제는 'See Sydney Shine'이다.

 

오후 9시 불꽃놀이는 원주민 예술가에 의해 큐레이터가 되었다. ‘블락 더글라스’(Blak Douglas)가 디자인한 ‘Welcome to Country’ 쇼에서는 에버리진 악기인 디저리두(Didgeridoo)와 휘파람 소리 등을 이용하여 사운드트랙에 맞춰 현지 원주민 관리인과 댄서들의 공연이 아름답고도 강렬한 공연이 펼쳐졌다.

 

코로나 사태로 어려웠던 2021년을 보내고 대망의 2022년의 첫 시간에 하버 브리지 위로 쏘아 올린 웅장한 축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새해를 향한 희망의 불꽃을 쏘아 올렸고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 주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클로버 무어(Clover Moore) 시드니 시장은 또 다른 도전적인 한 해를 계기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신 시드니 시, NSW 경찰, 응급 서비스 및 정부 기관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감사를 표했다.

 

“어젯밤 어려운 지난해에 작별을 고하면서 시드니는 정말 감동과 희망으로 빛났습니다. 2022년이 우리와 세계를 위해 더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드니 새해 불꽃놀이 축제는 시드니 시와 NSW 정부 기관이 긴밀하게 협력한 결과입니다.

 

특히 올해 우리가 직면한 많은 어려움을 감안할 때 이 행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어젯밤 행사에 참석해서 마스크 착용, QR코드 등록,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서로 배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특별히 코로나 사태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정에서 TV를 시청하며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글을 마치면서, 그녀를 직접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시드니 시는 호주의 가장 크고 상징적인 도시이다. 그녀는 1945년생으로 올해 77세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17년째 시장으로 봉직하고 있다.

 

2021년 12월 4일에 있었던 NSW 지방선거에서 재선되어 다섯 번째 임기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친환경주의자이다. 시드니 중심 지역을 관통하는 경전철을 만들어 자동차의 매연을 줄였고, 시드니 시를 녹색의 도시로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시드니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볼 것을 기약하며 이만 글을 줄인다.〠

 

글/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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