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휘파람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1/27 [09:49]
▲ 본지 편집인 김명동 목사     © 크리스찬리뷰


요즘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건강에 관한 문안 인사이다. 간단하게 ‘몸이 어떠세요’부터 시작해서 ‘많이 회복되셨나요’ ‘기도하고 있습니다’ 등등 나를 환자 취급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9개월간 내가 어쩔 수 없이 환자 노릇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4월 큰 수술을 받았다. 위와 간 일부를 절제하는 대수술이었다. 암이 재발되어 네 번째 수술이다. 수술 후 상처를 치료하는 약물과 항암치료로 그 매서운 추위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했을 정도로 병치레를 하였고, 아직까지도 완전하지 못해 하루하루 환자 노릇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많은 환자들은 처음에 의사로부터 중병을 선고받으면 어떻게 내게 그런 불행이 닥쳤을까 하고 회의하면서 자신의 병을 부정한다고 하는데, 나는 처음 의사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는 순간부터 병을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죽음도 인생의 일부가 아니던가.

 

수술 전야에는 얍복강을 건너던 야곱처럼 기도하여 하나님과의 담판을 하려고 했지만 주사를 계속 놓는 바람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와 하나님만의 만남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우선 그간 저지른 죄와 불충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기도 하고 구원의 확신이 약해지는 듯 우리 주님과 앞서간 형제들 그리고 빛난 그 영광의 보좌에 갈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몇 시간 나의 심령을 어둡게 하여서 괴로웠다. 그러면서 그간 살아오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중에 특별히 히스기야 왕의 기도(사 38: 3)를 생각해본 것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히스기야의 기도를 드릴 수 없었다. 히스기야 왕은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서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하였는데 나는 이 같은 기도를 할 수 없었던 것이 나의 불행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기도하기로 했다.

 

‘내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한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주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친 것도 사실이 아닙니까?’라고 떼를 쓰다시피 소리 내어 기도하고 싶었지만 이 또한 조용한 침묵으로 기도를 아뢰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다시 곤고한 자의 기도처럼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시 102: 24)라고 기도하고 싶었으나 내가 60세만 돼도 이같이 기도할 것인데 내 나이 70이 넘은 노년으로 이것 또한 기도할 수 없는 나의 한이라면 한이었다.

 

그런데 이제 막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한 지인이 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만약 김 목사가 죽으면 난 하나님 안 믿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의료진에 실려서 수술실로 밀려들어간 다음 다시 깨어났을 때는 내가 계속 살아있다는 생각보다는 다시 태어난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은 채 회복실로부터 입원실로 옮겨졌는데 수술의가 찾아 들어와서 처음으로 웃음을 띠면서 하는 말이 “수술은 잘됐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행운을 타고 난 분입니다.”라는 전언이었다.

 

창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소낙비가 그렇게 신비할 수가 없었다.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아서 지상에 내려지는 하늘의 소식이고, 그 빗속에서 다가오는 봄을 보게 되니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글로 다 적어두지 못했지만 병원 창문을 통해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꿈꾸고 생각했던가.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라는데

그보다 더 생광스런 말이 또 있을까

어느 날 몸이 아파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발견이 된 암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억울한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벽을 보며 통증으로 몸부림쳤다

숨을 쉴 수 없어 호흡기를 매달았다

네 번의 수술, 죽는다는 것이

환한 실감으로 다가왔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

건강할 때 좀처럼 쓰지 않았던 단어들

나눔, 배려, 용서, 기쁨, 감사

젊은 날에는

그것들이 왜 보이지 않았을까

고통 속에 복이 있다는 말

거짓이 아냐

 

<달라진 인생관>

 

골짜기를 폭풍우로부터 지키려고 메워버린다면 자연이 새겨놓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게 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질병의 고통 없이 살기를 바라지만 질병의 고통이 없다면 우리 인생의 골짜기도 하나님이 새겨 놓은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퇴원을 하면서 떠올랐던 소감이다.

 

병원에서의 투병은 큰 배움의 기회였다. 인생을 네 글자로 요약해 생로병사라고 하는데,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하는 ‘병’과 ‘사’ 역시 우리의 영혼을 더 풍요롭게 하는 생의 조건이라는 것, 피할 수 없는 것은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렇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영혼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점에서 병원은 단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장소인 것만이 아니라 삶을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배우고 죽음마저 받아들이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도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병의 은총을 내려주신 것이다.

내가 쓴 <나 죽어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읽으며 초심으로 돌아간다.

 

나 죽어 하나님 앞에 설 때

여기 세상에서 한 일이 무엇이냐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물으시면

나는 맨 끝 줄에 가 설 거야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슬그머니 다시

끝 줄로 돌아가 설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

끝 줄로 가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

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

정말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 보라시면

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할 거야

하나님, 교회 앞 유리 조각 주워

쓰레기통에 넣은 것밖에 없습니다.

 

한 달 전쯤 나뭇가지 위에서 울고 있는 새를 보았다. 나는 새에게 말을 걸고 싶어 무심코 입술을 모아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새는 내 휘파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싶더니 후드득 날아가 버렸다. 그 순간 내가 휘파람을 불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수술을 받은 이후에 나는 휘파람을 불 수 없었다. 수술 부위가 당기고 통증이 와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였다.

 

“이- 소리를 내보세요.”

 

수술이 끝났을 때 젊은 인턴은 그렇게 명령하였다. 나는 ‘이 -’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그러나 배가 아파 발음이 새어나왔다.

 

“자꾸자꾸 걷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수술 부위가 호전이 되면서 휘파람도 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휘- 하고 휘파람을 불 수 있었던 것이다. 어느 덧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아, 내가 새해의 휘파람을 불고 있구나.

 

내 몸은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 내 다정한 아픈 사람들아, 그대의 병을 대신 앓고 싶구나.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그리고 엄마야 누나야, 창밖을 보아라. 2022년 새해(설날)가 일어서고 있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