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길’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첫 걸음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1/27 [10:26]
▲ ‘가평길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제작 팀’이 브리즈번에서 참전용사 미망인 패트리샤 캐너드 여사와 공군 참전 용사 알버트 베이커 옹을 인터뷰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한국은 2014년부터 주소 표기를 전면 개정했다. 이전의 지번(번지) 주소 표기에서 도로명 표기로 바꾼 것이다. 기존의 지번(일제 강점기시대 부터 사용) 주소를 이용하여 건물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고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면서 지번 배열이 무질서하게 이루어져 행정상 문제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호주를 포함해 대부분의 서구 도시들은 주소가 도로명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호주는 도로(길)명 주소로 집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호주의 길(도로)에 붙는 도로명을 보면 여러 종류가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Road(Rd)는 한 마을에서 다른 마을로 가는 대체적으로 큰 길, 큰 도로에 붙여진다.

 

Street(St)는 주로 한마을 안에 있는 길 이름으로 집과 빌딩이 있는 일반적인 도로명이다.

 

Drive(Dr)는 주로 스트릿(Street)보다 작은 도로로 빌딩보다는 집이 있는 곳에 있는 길이다.

 

Avenue(Ave)는 자갈을 깔거나 돌로 만들어진 스트릿(Street), 또는 길 양옆에 나무가 심어져 있는 길로 주로 부자 동네에 많은 이름이다.

 

Way는 시티나 다운타운이 아닌 작은 동네에 있는 작은 도로이다.

 

Court는 아주 짧은 길을 일컫는다. Glade는 나무가 많은 숲이나 삼림 안에 열려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 한국전 정전 기념식이 무어파크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광장에서 매년 열린다. 사진은 65주년 기념식 (2018. 7.27)     © 크리스찬리뷰

 

Highway(Hwy)는 고속도로 등 아주 넓고 교통량이 많은 넒은 길을 의미한다. 이외에 Motorway, Freeway, Expressway 등도 있다.

 

Boulevard(Blvd)는 Avenue와 비슷하지만 Avenue보다 넓은 길을 의미한다. 길 중간에 꽃과 나무 등 조경이 잘되어 있고 경치가 좋은 길을 의미한다.

 

이외에 길의 모양에 따라 Cirsus, Circle, Circuit, Close: 길이 동그랗거나 막힌 곳을 말한다. Square, 이 길은 말 그대로 네모나 모양의 길을 의미한다.

 

이렇듯 호주의 길(도로)은 같은 길이라도 특징과 의미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길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그리고 길(도로) 이름 앞에 붙는 명칭은 주로 사람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호주 마을의 길 이름이 서구인들의 이름 대신 한국의 지명인 ‘가평’(Kapyong)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주에 웬 ‘가평 길’(Kapyong Street)이

 

호주 마을 곳곳에 한국식 이름의 길 이름이 있다. 바로 ‘가평 길’(Kapyong Street)이 그것이다. 왜? 호주의 도로명에 한국의 지역이름인 ‘가평’(Kapyong) 이름이 사용되었을까? 그것도 호주 전국에 10개나 되는 ‘가평 길’(Kapyong St)이 있고, 2개의 ‘가평 다리’(Kapyong Bridge)가 존재하는 것일까?

 

본지 권순형 발행인은 “가평길(Kapyong St)은 분명히 한국전에 참전했던 호주 참전용사들이 붙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한국 전쟁시 호주군이 혁혁한 공을 세웠던 ‘가평전투’(Kapyong Battle)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확신했다.

 

▲ 바르디아(Bardia NSW) 지역에 있는 가평 스트리트 안내판     © 크리스찬리뷰

 

호주는 한국과 피로 맺어진 혈맹국가이다. 6.25가 발발하자, 호주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전쟁에 우방국으로 참전해 많은 공을 세웠다. 그중에서도 1951년 4월 23일 벌어진 가평전투는 서울을 빼앗고자 물밀듯이 내려오는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서울 탈환을 막은 호주군이 수행한 전투 중 가장 위대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가평 전투에 참여한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훈장을 받았다. 이후로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가평대대’(Kapyong Battalion)라는 별칭이 붙었다.

 

▲ 퀸즈랜드 주 국경 통과 증명서. (Queensland Boarder Pass)     © 크리스찬리뷰

 

적어도 호주 참전용사들에게는‘가평’(Kapyong)이 한국인들보다 더 생생하고 익숙한 이름이 된 것이다.

 

현재까지 호주 전역에 걸쳐, 시드니에 3곳, 캔버라 1곳, 콥스하버 1곳, 브리즈번 3곳, 골드코스트 1곳, 타운스빌 1곳, 퍼스 1곳 이렇게 10개의 ‘가평 길’이 확인되었고, 아들레이드 1곳, 멜번 1곳 등 두 개의 ‘가평 브릿지’가 있는 것이 사실로 인정되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억만리 호주에 그것도 한국의 지역이름이 호주의 마을 길(도로)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감동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이 기사가 지난 6월 호 ‘크리스찬리뷰’의 기사로 나가자 ‘연합뉴스’를 비롯 한국의 주류 언론에서 권 발행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 다음 포탈 사이트에 올려진 기사에는 6월 25일 하루 동안 365개의 댓글과 함께 ‘감동’이란 클릭 숫자가 1천4백여 개에 달했다. 고국에 있는 많은 동포들이 그 기사를 보고 ‘감동’에 젖어 호주를 생각하고 특히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들을 전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크리스찬리뷰’로 하여금 호주에 있는 ‘가평 길’(Kapyong Street) 취재와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야겠다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그 일환으로 지난 2021년 12월 호에서는 먼저 호주 전장 역사가인 브래드 마네라 학예사와 가평전투에 대해 인터뷰했다(2021년 12월호 참조). 그리고 그 첫 번째 일정으로 콥스 하버, 골드코스트, 브리즈번에 있는 가평길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 12월 16일 북쪽으로 향했다.

 

‘가평 길’ 다큐멘터리를 위한 첫 번째 발걸음

 

▲ 무어파크에 있는 한국전 참전기념비 광장에 ‘가평’ 전투를 알리는 지명이 기재되어있다.     © 크리스찬리뷰

 

‘크리스찬리뷰’는 2023년 한국전 정전 협정 체결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년 4월까지 호주에 있는 ‘가평 길’을 취재하고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사진전을 개최하는 계획을 세웠다.

 

6.25전쟁이 발발한지 이미 70년이 지났다. 당시 20대 초반에 한국전에 참전한 호주 군인들이 이미 90세를 넘었고 생존해 계신 분들도 많지 않다.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들의 살아 생전에 인터뷰를 담아 놓는 것은 다큐멘터리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한·호 우호관계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퀸 즈랜드 주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차량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 가평 프로젝트 다큐 팀이 콥스 하버(Coffs Harbour) 가평 글레이드 지역 주민들에게 촬영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지난해 12월 16일 크리스찬리뷰 ‘가평 프로젝트 다큐 팀’(권순형 발행인, 주경식 편집국장, 정성택 디자인실장)은 호주 안에 있는 10개의 가평 길(Kapyong Street)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일차적으로 콥스 하버, 골드코스트와 브리즈번에 있는 ‘가평 길’을 취재하기로 결정하고 브리즈번을 향해 출발했다.

 

영상 장비가 많고 현지에서 이동할 장소가 많은 까닭에 비행기보다는 직접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때마침 호주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기승하는 바람에 퀸즈랜드 주 국경을 넘는 일이 간단하지 않았다.

 

72시간 전에 PCR 테스트를 통해 음성임을 증명해야 하고, 퀸즈랜드 주 국경 통과 증명서(Queensland Boarder Pass)를 받아야 했다.

 

‘가평 프로젝트 다큐 팀’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16일 오전 9시 30분 마운트 쿠링가이를 출발했다.

 

콥스 하버의 가평 길( Kapyong Glade)

 

마운트 쿠링가이를 출발한 다큐팀은 정확히 오후 3시 30분에 콥스하버(Coffs Harbour)에 도착했다. 네비게이션이 표시해 주는 대로 콥스 하버 ‘가평 길’(Kapyong Glade)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콥스 하버의 ‘가평 길’은 영어로 ‘Kapyong Glade’로 표시되어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Glade’ 도로명은 나무가 많은 숲이나 삼림의 열려 있는 장소를 일컫는 말인데,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은 예전에 숲이 있었던 장소로 짐작되어진다.

 

콥스 하버의 ‘Kapyong Glade’에는 표지판에서부터 원추형의 구릉형으로 8채의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촬영 장비를 셋팅하는 동안에 기자는 인근 주민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콥스 하버 ‘가평 길’에 살고 있는 몇 집의 문을 두드렸다. 감사하게도 지역 주민인 제이 거스리(Jay Guthrie) 씨와 델 그룬디(Del Grundy) 씨가 흔쾌히 취재에 응해 주었다.

 

▲ 시드니에서 약500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콥스 하버 지역의 가평 글레이드     © 크리스찬리뷰

 

▲ 가평 다큐 팀과 인터뷰 중인 델 그룬디 씨     © 크리스찬리뷰

 

▲ 가평 다큐 팀과 인터뷰 중인 제이 거스리 씨     © 크리스찬리뷰


먼저 제이 거스리와 짧은 인터뷰를 했다. 이곳에 언제 이사왔는지, 이사올 당시, 또는 그 후 이곳에 살면서 ‘Kapyong Glade’ 길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등 간단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초등학교 학생들 럭비 코치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따라 저는 7년 전 멜본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러니까 가평 그레이드에 거주한 지는 7년이 됩니다. 맨 처음 ‘가평’(Kapyong)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사실 지금 당신에게 설명을 듣기 전까지 이 이름이 한국의 지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듣고 보니 아주 의미가 깊은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네요.”

 

제이 거스리 씨와는 달리 델 그룬디 씨는 비교적 ‘가평 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저는 사우스 오스트레일리아, 아들레이드에서 6개월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제가 아들레이드에 살 때 매일 가평 브리지를 지나 다녔는데, 어머나(Oh My goodness!), 이곳에 ‘가평 길’(Kapyong Glade)이 또 있는 거예요. 믿기 힘들었어요(Unbelievable!).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제가 아들레이드 살 때부터 가평 브리지를 매일 건너 다녀서, 호주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가평전투’도 알고, ‘가평’이 남한의 지명인 것을 알고 있었어요. 참 놀랍고 반가웠습니다.”

 

우연인지, 델 그룬디 씨는 아들레이드 살 때부터 ‘가평 다리’를 매일 건너 다녔고 은퇴를 한 후 6개월 전에 이곳 콥스 하버로 이사를 왔는데 그만 그가 새로 사는 동네가 바로 또 ‘가평 길’동네에 살게 된 것이다.

 

인연치고는 한국과 이런 깊은 인연이 있을 줄이야, 본인도 놀랬다고 고백한다. 델 씨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가평’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에 더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녀도 자신이 ‘가평’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듯 힘주어 취재에 응해 주었다.

 

이곳에 도착하자 마자 ‘가평 글래이드’ 표지판을 촬영했지만, 주민들 취재 후에 다시 한번 여러 각도에서 ‘가평 길’ 사인판을 카메라에 담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인 발리나(Ballina)는 이곳 콥스 하버에서 2시간 20분 정도의 거리이다. 발리나에 숙소를 정한 이유는 퀸즈랜드 국경이 12월 17일 열리는 까닭에 퀸즈랜드 국경 가까운 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다음날 아침 출발해서 바로 퀸즈랜드의 다음 목적지까지 가기 위함이었다.

 

가평 제3대대 전우회 회보’Old Faithful’과

미망인 패트리샤와 공군 참전용사 고든 씨

 

다음날 다큐팀 일행은 오전 8시 50분 발리나(Ballina) 모텔을 출발했다. 듣기로는 ‘발리나’는 NSW의 유명한 휴양 도시 중 하나이다. 콥스 하버도 유명하지만 발리나 역시 바닷가를 끼고 있는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하지만 빽빽한 일정 때문에 발리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다만 하룻밤 숙박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음날 오전 일찍 퀸즈랜드를 향해 출발했다.

 

▲ 콥스하버 가평 글레이드 거리를 취재하는 정성택 카메라 감독.     © 크리스찬리뷰

 

참전용사들을 인터뷰하는 계획은 쉽지 않다. 모두들 연세가 90세 이상 되신 분들이라 그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계획이 변경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을 세우기로는 발리나를 출발하여 다음 목적지인 퀸즈랜드 질미어(Zillmere, QLD)에 살고 있는 가평전투 참전용사 마이클 서보스(Michael Servos) 씨를 인터뷰할 계획하였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무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멀지 않은 동네인 퀸즈랜드 무룸바 다운스(Murrumba Downs QLD) 양로원에 거주하고 있는 가평전투 참전용사 미망인 페트리샤 캐너드(Patricia Cannard, 89)와 알버트 베이커(Albert Baker, 93)를 인터뷰할 수 있게 되었다. 발리나에서 두 시간 거리인 퀸즈랜드 질미어(Zillmere QLD)를 향해 출발했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발리나에서 퀸즈랜드 주국경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이다. 열심히 달려 퀸즈랜드 주국경이 가까이 오자 차가 밀리기 시작했다. 퀸즈랜드 주국경을 10km 정도 앞두고 M1 고속도로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퀸즈랜드 주정부는 뉴사우스웨일즈주에서 오는 사람들이 퀸즈랜드 주 국경을 넘기 위해서는 차 유리 앞에 퀸즈랜드 주 국경 통과(Queensland Boarder Pass) 증명서를 게시하도록 했다.

 

경찰관이 그 통과 확인증을 일일이 확인하는 관계로 주 국경을 통과하는데만 거의 45분 이상 지체되었다. 덕분에 차에서 내려 코로나로 인해 벌어진 차량 행렬의 주 국경 통과 진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퀸즈랜드 무룸바 다운스 양로원에 예상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패트리샤 캐너드(Patricia Cannard) 미망인 자택에 알버트 베이커(Albert Baker) 참전용사가 와서 다큐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버트 베이커 참전용사는 올해 93세로 거동이 많이 불편해 휠체어로 움직였다.

 

▲ 한국전 참전용사 어네스트 캐너드(Ernest Cannard)의 미망인 패트리샤 캐너드 여사.     © 크리스찬리뷰

 

먼저 패트리샤 캐너드 여사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한국전 참전용사 어네스트 캐너드(Ernest Cannard)의 미망인으로 20년 동안 퇴역한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수기들을 담은 회보(Old Faithful)를 편집했고 매 년 발행된 회보들을 묶어 두 권의 책(The Digers’ Own Stories)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저는 패트리샤 캐너드(Patricia Cannard)입니다. 제 남편은 어네스트 캐너드(Ernest Cannard)로 한국전에 참전한 참전용사입니다. 남편은 10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하고 돌아온 남편하고는 제가 1952년에 부대에서 행정 담당 요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나 결혼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남편은 한국 전쟁 이야기를 가끔씩 들려주었습니다. 남편은 1988년부터 호주 가평 제3대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수기를 편집해 회보를 만들어 동료 베테랑들과 교제를 해왔는데 제가 행정과 타이핑을 맡아 전우회 회보를 만드는 일을 많이 도왔습니다.

 

이것들을 모아 두 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이 책과 함께 관련 자료들을 드리겠으니 갖고 가셔서 가평 다큐를 제작하는데 도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기들을 읽어보면 슬프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도 있고 그 가운데 보람되고 흐뭇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옵니다.”

 

▲ 패트리샤 캐너드 여사는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수기들을 담은 회보를 묶어 두 권의 책(The Digers’ Own Stories)을 발행했다.     © 크리스찬리뷰

 

▲ 가평 전투 기념식과 한국전 정전 체결 기념식 관련 자료들     © 크리스찬리뷰


90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했고 건강해 보였다. 그녀는 타이핑을 잘하는 기술 덕분에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한국전 참전 전우들의 수기들을 모아 회보를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봉사해왔다.

 

뿐만 아니라 이 회보들을 모아 책으로까지 편찬해 냈다. 참 대단한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여력이 된다면 이 책들을 한국말로 번역해 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70년 전에 저 은둔의 나라 한국에 와서 젊음을 불태우고 한국을 구한 호주의 젊은 병사들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이어 알버트 베이커 씨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특이한 전력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전 당시 공군 헌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7개월 정도 김포에 근무하며 공군병사들의 음주와 군기들을 점검하고 관리했다.

 

그는 군대에 입대하기전 멜번에서 형사(Detective)훈련을 받은 경찰 공무원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공군에 자원하여 공군 헌병으로 근무하며 전쟁에 참전한 공군 병사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들을 담당한 것이다.

 

▲ 왕립 호주 공군 77 항공대 공군 헌병으로 참전한 알버트 베이커 씨     © 크리스찬리뷰

 

“저는 1928년 퀸즈랜드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세에 왕립 호주 공군 77 항공대에 공군 헌병으로 입대한 후 한국전에 참전했습니다. 한국에 가기 전 일본에 먼저 도착한 후 적응훈련을 마치고 1951년도에 한국 김포에 도착했습니다. 오래돼서 정확히 몇 월인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주로 병사들의 알코올 밀수 등 음주와 군기들을 관리하는 헌병일들을 하다가 호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전쟁에 공군 헌병으로 참전한 알버트 씨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호주 공군 병사들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직책으로 한국 김포에 근무하다가 호주로 돌아온 조금은 독특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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