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부활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3/28 [14:21]

해마다 4월이 되면 부활절이 다시 돌아온다. 이날이 오면 교회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부활의 찬양을 힘차게 부르며 부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한다.

 

부활절은 교회가 기념하는 가장 아름다운 명절이다. 많은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연합 예배를 드리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 세상에 알린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에 자랑이요 생명이요 영광이다. 그러나 부활절이 해마다 한 번씩 지키는 절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활절이 아니라 부활, 그 자체이다.

 

사실상 부활의 축제는 매일 주일마다 행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에서는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여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왔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는 타락된 세상을 재창조하시고 구속사업을 완성하신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점을 두게 되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날을 우리는 일요일이 아니라 ‘주일’(主日), 주의 날이라고 한다.

 

우리는 주일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부활의 생명을 누리면서 감격에 넘치는 예배를 축제로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담긴 부활절이 되어야 한다.

 

어쨌든 ‘부활’이란 단어는 기독교만의 전용 용어이다. 어느 종교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교조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며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수가 무덤에서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예수님은 생명을 창조하신 생명의 주인이심으로 마치 잠자는 자를 깨우듯이 죽었던 사람을 일으키시기도 하셨다. ‘달리다굼’(소녀여 일어나라!). 이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소녀가 잠에서 깨어 나듯이 벌떡 일어났다.

 

심지어 무덤에 장사 되어 사흘이나 된 사람을 그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나사로가 무덤 속에서 걸어 나왔다. 시체가 썩어 흙이 된들 창조주의 명령 앞에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전 15:20).

 

이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서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생명들이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고, 그들이 모이는 집단이 바로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 성도는 그의 몸의 지체이고 세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날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말씀하시는 순간 무덤에서 깨어나 일어나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부활 공동체인 교회의 마지막 승리인 것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 15:55-57).

 

할렐루야! 예수 부활 – 나의 부활! 〠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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