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개척 초기 가장 존경받았던 기독여성 목축업자 엘리자베스 맥아더 여사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3/28 [14:43]
▲ 호주 개척 초기에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존경받았던 엘리자베스 맥아더 여사.    


엘리자베스 맥아더(Elizabeth Macarthur, 1766-1850)는 백인들이 호주에 정착하던 개척 초기에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그녀는 1766년 영국 데본 (Devon)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6살 때 사망했다.

 

이후 그녀는 교회에서 신앙 교육과 일반 교육을 받으며 자랐는데 그녀의 신앙은 이 시기에 크게 성장했다. 1788년 그녀는 육군 장교이자 목축업자였던 존 맥아더 (John Macarthur)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큰 아들이 태어났고, 그들은 호주에 이주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에서 출발한 그들은 긴 항해 후, 1790년 6월에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당시 새로운 개척지였던 시드니에서 그녀는 위대한 개척자로, 목축업자로, 어머니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그녀는 호주에 도착한 최초의 교육받은 백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성의 비율이 더 높았던 죄수 정착촌에서 우아함과 그리스도인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가끔씩 열리는 파티에 그녀는 아름답고 고귀한 모습으로 참석해 사람들과 친절히 대화를 나누었으며,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과 태도와 말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사람들은 없었으며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위대한 여인이라고 칭송하며 존경했다. 그녀는 개척지였던 시드니에서 헌신적인 아내, 어머니, 목축업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었다.

 

1793년에 그녀의 남편인 존 맥아더는 정부로부터 파라마타(Parramatta)에 있는 100에이커의 땅을 받아 농장을 만들었는데, 이 농장을 ‘엘리자베스 농장’이라고 불렀다. 이 농장에서 두 부부는 약 40년을 살았고 다섯 아들과 세 딸을 낳아 키웠다.

 

존 맥아더는 자신의 농장에 양들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양모를 생산에 영국에 수출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양모 사업을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이 영국으로 떠난 이후 농장에 남아 농장을 돌보고 자녀들을 키웠다. 그녀는 바쁜 농장생활 중에도 자녀들의 교육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주일마다 자녀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참 신앙인의 삶을 가르쳤다. 이후 자녀들을 영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녀는 농장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녀의 농장에는 양들이 건강하게 자랐고,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아몬드 나무가 잘 자라 많은 열매를 맺었다. 그녀의 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농장의 풍성한 열매들을 보며 감탄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게 자란 양들과 풍성한 열매들은 그녀에게 많은 수입을 가져다 주었다. 이후 그녀는 세븐 힐즈 농장(Seven Hills Farm)을 구매했고, 캠든 파크(Camden Park)의 땅을 샀다. 1820년에 그녀는 총 9천600에이커의 농장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소와 돼지를 4천 마리 이상 사육할 수 있었다.

 

그녀가 소유한 농장이 커지면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해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약 90명의 죄수들을 고용해 그들과 함께 농장 일을 했다. 사람들을 감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일꾼들 대부분이 영국에서 건너온 죄수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움이 처할 때마다 하나님께 건강과 용기와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했다.

 

▲ 엘리자베스의 남편 존 맥아더. 그는 호주 양모 개척자로 알려져 있으며, 영국 식민지인 NSW주에서 매우 영향력있는 인물이었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호주 원주민들이 그녀의 농장 주변에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해 그녀는 위험을 느꼈다. 무섭고 두려울 때마다 그녀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용기를 내어 농장을 지키고, 양떼들을 지켰다.

 

양모 사업을 하느라 영국에서 머물던 그녀의 남편인 존 맥아더는 아내의 수고와 노력과 헌신을 칭송하며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곤 했다. 특히, 그는 그녀가 양의 품종을 개선하고 양모 생산량을 크게 늘린 것에 대해 감사했다.

 

한편, 개척정부의 주지사도 그녀의 수고와 노력에 감탄했고, 그녀가 개척지의 농업과 목축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을 인정해 파라마타 (Parramatta)의 땅 600에이커를 그녀에게 상으로 주었다.

 

1816년에 그녀는 1만 5천 파운드의 양모를 생산해 팔았다. 엘리자베스의 성공적인 양모 생산은 호주 양모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녀가 양들을 돌보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양모 생산을 극대화할 때, 그녀의 남편은 영국에서 양모를 수입해 판매했다.

 

또한 그는 영국 정부가 호주의 양모 사업이 더욱 성장하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영국에서,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호주에서 양모 사업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했다. 그 결과 1821년에 존 맥아더는 호주에서 수입한 최고급 양모로 영국의 양모 품질 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엘리자베스의 수고와 노력이 이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들 부부는 멀리 떨어져 사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헌신적이었으며,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또한 그들은 함께 양모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당시 개척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부를 존경했으며, 이 부부처럼 살기를 소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 파라마타 강의 북쪽 강둑에서 본 엘리자베스 농장의 낭만화 그림. Joseph Lycett은 스케치와 그의 기억을 바탕으로 이를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렸다.   

 

불행히도 존 맥아더는 나이 들어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는 엘리자베스를 의심했고 그녀가 불성실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의 비난을 참고 견디었다. 그녀는 끝까지 남편을 돌보았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그에게 헌신했다. 그녀는 어려움과 환란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며 견뎌냈다.

 

그녀 안에 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녀에게 용기와 인내를 준 것이다. 그녀의 남편 때문에 어려움에 처할 위기 가운데서도 그녀는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정신이 이상해진 남편을 끝까지 돌보았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가정을 지켰고, 모든 가족들이 그녀를 믿고 따르며 존경했다.

 

모든 것이 힘들었던 개척초기에 엘리자베스 맥아더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고,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나님은 그녀의 삶에 복을 주셨고,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위대한 여성,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그녀는 1850년 사망했고 남편 옆에 묻혔다. 그녀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보여준 아름다운 삶의 모습은 호주인들 마음속에 길이 남을 것이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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