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무릎 꿇은 기도의 사람

글/김명동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3/28 [15:43]
▲ 고 정필도 목사     © 크리스찬리뷰

 

▲ 수영로교회 설립자인 고 정필도 목사의 유해가 천국환송예배가 열리는 수영로교회로 운구되고 있다. 층계에 오른 유해는 이규현 목사의 인도로 은혜홀로 들어갔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무릎 목회’로 알려진 수영로교회 설립자 정필도 원로목사가 지난 3월 21일 오후 4시 34분 부산 동아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2세. 2월 24일 급성폐렴으로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신실 사모, 아들 성은, 딸 은애, 은영이 있다.

 

무릎으로 황소처럼 일하셨던 분

 

고 정필도 목사 천국환송예배는 지난 3월 25일 오전 수영로교회 은혜홀에서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및 수영로교회장으로 드려졌다. 예배는 박정근 목사(부산성시화 이사, 영안교회 담임)의 사회로 허원구 목사(부산장신대 총장, 부산성시화 고문)의 기도, 사회자인 박 목사의 성경봉독, 수영로교회 연합찬양대의 찬양,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의 설교, 회고영상 시청, 김영식 장로(수영로교회 시무)의 고인의 발자취 회고, 특별영상 시청, 김종혁 목사(울산명성교회 담임)와 김상곤 목사(군목 동기)의 조시 낭독, 김종호 장로(수영로교회 은퇴)의 조사, 유족인사, 배광식 목사(예장 합동 총회장)의 축도로 치러졌다.

 

‘복된 삶 복된 죽음’(계 14:13)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김상복 목사는 “정 목사님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다. 그 죽음에는 영원한 쉼이 있다”며 “축복된 죽음이 있다는 걸 알고 살 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 목사는 “정 목사님은 황소처럼 일했고 무릎으로 일했다. 목사님으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다”며 “구원받은 자들이 가르침 속에서 성장하고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게 정 목사님은 복된 삶을 사시다가 복된 죽음을 맞으셨다”고 말했다. 김 목사가 설교 중 “내 장례식 때 우리교회에 ‘할렐루야’ 찬송을 부탁하려 했는데 정 목사가 먼저 해버렸다”라고 하자 슬픔에 빠져있던 교인들이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다.

 

설교 후 고 정필도 목사가 지난 3월 21일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라”는 마지막 유언기도가 담긴 영상이 상영되자 교인들이 눈물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사를 전한 김종호 장로는 “세파에 지친 성도들을 위해 밤새워 기도하시던 목사님, 그 따뜻한 음성을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과 배려를 잊을 수 없다”며 슬픔을 가누었다.

 

유족을 대표해 인사한 이항모 집사(사위)는 “병원에서 아버님의 임종을 지켜봤다”며 “고통 중에 힘들어 하시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산소마스크를 빼달라고 하시고, 침대 등받이를 세워 앉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시면서 ‘이제 나는 1시간 전의 정 목사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하게 선포를 하시면서 온 힘을 다해 교회를 향해 설교하고 기도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말씀을 다 마치고 나서는 다시 침대에 누우셨고, 그 뒤로 서너 시간 동안 너무나 평온한 모습으로 주무시면서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고 애도했다.

 

세계복음화 꿈꾸며 선교교회 일궈

 

▲ 시드니에서 열린 대양주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참석한 정필도 목사가 강의를 마친 후 이규현 목사(당시 시드니새순장로교회 담임)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2019 .10)     © 크리스찬리뷰

 

▲ 대양주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서 아내 박신실 사모에게 축복기도하는 정필도 목사.                  © 크리스찬리뷰

 

서울에서 출생한 정 목사는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리폼드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 목사는 강단이 기도로 채워지면 예배당이 채워진다는 믿음에 따라 목회했다. 전도사 시절 강단에서 눈물로 기도했고, 3개월 만에 성도가 107명으로 늘어나는 경험을 했다.

 

1975년 6월 연고가 전혀 없던 부산 수영로교회를 개척할 때도 기도로 결정했다. 정 목사는 버스 위에 올라가 확성기를 들고 노방전도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이를 통해 수영로교회를 36년 동안 담임하면서 성도 3만 5천여 명이 출석하는 지역 최대 교회로 키웠고, 부산을 성시화했다. 또 은퇴 후에는 중국, 캄보디아, 러시아 등 해외 선교에 힘썼다.

 

정 목사는 ‘청빈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차나 집이 없었다. 모두 교회 명의였다. 2011년 후임자를 세울 때도 투명한 절차에 따라 이규현 목사를 세웠다.

 

▲ 고 정필도 목사 천국환송예배가 수영로교회에서 드려지고 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부산성시화운동본부장,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재단이사를 역임하고 서빙더네이션(Serving The Nations)이사장, 부산기독교총연합회 증경회장, 부산세계선교협의회 이사장, 부산 CTS 이사장 및 극동방송 고문, 수영로교회 원로목사로 섬겼다.

 

저서로는 ‘교회는 무릎으로 세워진다’ ‘교회는 목사만큼 행복하다’(이상 두란노),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상 생명의 말씀사),설교전집 10권 ‘기도로 눈물로 은혜로’ (홍성사) 등이 있다.

 

▲ 고 정필도 목사의 유해는 창원공원묘원에 안장했다. ©부산성시화운동본부  

 

목사님,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천국환송예배 이후 고인의 시신을 실은 운구행렬은 수영로교회를 출발해 장지가 있는 경남 창원공원묘원으로 이동했다. 교인들은 연신 찬송가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불렀다. 정 목사의 운구 차량이 교회 밖으로 나와 사라질 때까지 교인들은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정 목사의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모두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목사님, 안녕히 가세요.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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