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사랑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Nick Fewings    


나는 그녀의 사랑을 보면서도 정말 믿을 수 없다. 식물인간같이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단 한 명의 여성을 위해 스물네 시간 그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오줌을 누게 하고 관장을 해서 똥을 긁어 내기도 했다. 말을 못하는 그의 입이 되어주었다. 코와 이마에 똥이 묻어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

 

피가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다.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한 명의 외로운 장애 여성을 하나님같이 모시고 있었다.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대학 불문과를 나오고 프랑스 어학 연수도 마쳤다. 교사 자격증도 땄다. 그녀는 무역상사의 사원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파리의 빈민가로 들어가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 난민들은 대부분 알파벳도 모르는 문맹이었다. 그녀는 아프리카 흑인 할머니와 아이들에게 불어의 기초를 가르쳤다. 그렇게 파리의 빈민가에서 육년의 세월을 보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날아갔다. 그곳의 낡은 병원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러다 이천팔년 경이었다. 그녀가 알고있던 장애를 앓고 있는 한 여성 시인의 상황을 알게 됐다.

 

뇌성마비인 그 시인이 쓴 시가 유명한 찬송이 되어 널리 불려졌었다. 중학교 시절 그 찬송가를 듣고 장애를 앓는 그 시인이 나오는 집회에 가서 그녀는 감동을 받았었다. 그 이후 이메일 등을 통해 서로 소통을 하며 정을 나누었다. 그 시인이 곤경에 처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서울에 있는 시인의 작은 아파트로 가 보았다. 식물같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시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시인만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버려진 갓난아기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밥을 먹을 수도 물을 마실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는 그런 존재였다. 요양원으로 보내면 한쪽 구석에 정물같이 던져져 긴 사멸의 과정만 기다릴 게 분명한 것 같았다.

 

그녀는 시인의 살아있는 로봇이 되기로 했다. 그때부터 스물네 시간을 함께 지냈다.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런 생활이 십오 년이 흘렀을 때였다. 나는 그런 사랑과 희생을 눈앞에 보면서도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보통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자신의 삶을 포기한 것 같다. 그녀와 장애를 앓는 시인 둘이서만 사는 작은 아파트를 찾아가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어요?”

 

“뭐가요? 난 이분을 존경하고 사랑해요. 같이 죽을 거예요.”

 

그녀가 환한 얼굴로 내게 대답했다. 그녀는 목숨을 걸었다. 그녀는 뭔가 씌인듯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기쁨이 충만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신적인 요소가 그녀의 영혼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물었다.

 

“불란서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활동을 했었잖아요? 이건 뭐죠?”

 

선교사라면 차라리 공식적인 명목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서울의 한 귀퉁이 작은 아파트에서 빛도 없이 소리도 없이 십오 년 이상을 그렇게 살고 있었다.

 

“단 한 명한테 이렇게 하는 것도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면 천사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는 다른 말도 들렸다. 아파트를 탐을 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아파트의 상속권자는 결혼해서 따로 사는 입양했던 동생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역회사 사원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녀가 하루 이십사 시간씩 십오 년을 일했다면 그 정도의 작은 아파트를 보상으로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재물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면서 작은 아파트를 탐낸다는 것은 어설픈 모함 같았다.

 

하늘의 명령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화 ‘러브 스토리’처럼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만 희생하는 걸 아름다운 사랑으로 여겼다.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청계천의 빈민굴로 들어가 평생을 그들과 함께 산 사람도 있다. 소리없이 나환자촌으로 들어가 일생을 그들과 함께 한 분을 보기도 했다. 하나님은 사랑을 받으라고 하지 않고 하라고 했다. 사랑할 사람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도 사랑해야 하는 것 같다.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아담에게 하와가 주어졌던 것처럼 사랑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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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4/25 [14:49]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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