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가를 작곡한 피터 도즈 맥코믹(Peter Dodds McCormick)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4/25 [14:57]
▲ 호주 국가를 작곡한 피터 도즈 맥코믹     


호주의 국가(國歌)인 ‘Advance Australia fair’를 작곡한 피터 도즈 맥코믹(Peter Dodds McCormick)은 1833년 1월 28일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글래스고에서 보낸 맥코믹은 성인이 된 후에 소목장에서 목동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호주로 이민을 떠나 1855년 2월 21일에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에서 이민의 삶을 시작한 맥코믹은 1863년에 성 매리 국립학교 (St. Marys National School)의 교사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그는 함께 근무했던 에밀리(Emily)와 결혼을 했지만, 그녀는 1866년 3월에 사망했다. 이후 맥코믹은 엠마(Emma)와 재혼을 했다.

 

맥코믹은 1867년부터 울루물루(Woolloomooloo)에 위치한 장로교 교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878년부터는 다우닝 스트리트(Dowling Street) 공립학교에서 은퇴할 때까지 가르쳤다. 그는 장로로 울루물루(Woolloomooloo)에 위치한 성 앤드류 장로교회 (St. Andrew's Presbyterian Church)를 섬겼으며, 나중에는 웨이버얼리(Waverley)에 위치한 그래햄 메모리얼 교회 (Grahame Memorial Church)를 섬겼다.

 

맥코믹은 1896년에 ‘4명의 학교 친구들 (Four School Mates)’이란 제목의 이야기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학생들에게 도덕적인 삶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노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붉은 얼굴과 백발을 가진 스코틀랜드 출신의 호주인’이라고 했다.

 

한편 맥코믹은 애국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음악과 찬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호주장로교단의 찬양 담당자로 여러 교회에서 성가대를 조직했으며, 1880년에 열린 주일학교 기념행사에서 만 명의 어린이와 천 명의 교사가 함께 하는 초대형 성가대의 지휘를 맡기도 했다. 또한 빅토리아 여왕 동상의 초석을 놓는 행사에서 1만 5,000명의 학생 합창단을 지휘하기도 했다.

 

맥코믹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스코틀랜드식의 노래 30여 곡을 작곡해 발표했다. 그중에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곡은 지금의 호주 국가가 된 'Advance Australia Fair’였다. 이 곡은 1878년 11월 30일에 하일랜드 소사이어티 (Highland Society)가 주관한 성 앤드류의 날 (St. Andrew's Day) 기념 행사에서 가수 앤드류 페어팩스 (Andrew Fairfax)에 의해 처음 불려졌다.

  

나중에 1절부터 4절까지의 가사가 포함된 이 곡의 악보가 출판되기도 했다. 유명세를 탄 이 곡은 국가적 행사에서 자주 불려져는데, 호주가 연방국가가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만 명의 합창단이 이 노래를 불렀으며, 캔버라가 호주의 수도로 지명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에서는 대형 음악 밴드에 의해 연주되기도 했다. 1907년에 호주 정부는 이 곡을 작곡한 맥코믹에게 격려금으로 100파운드를 수여했다.

 

1913년 8월 1일에 맥코믹은 이 곡의 작곡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호주를 위한 노래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어느 날 오후에, 갑자기 그에게 음악적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버스 안에서 이 노래의 1절 가사를 작사했고, 집에 돌아온 후에 그 가사에 맞추어 작곡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 맥코믹은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했다. 이렇게 해서 호주 국가가 작곡된 것이다. 한편, 그는 1915년 9월 3일 공식적으로 이 곡의 저작권을 등록했다.

 

맥코믹은 1916년 10월 30일에 웨이벌리(Waverley)에 있는 자택에서 생을 마쳤으며, 록우드(Rookwood) 묘지에 묻혔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노래 'Advance Australia Fair’를 호주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호주는 영연방 국가로 1984년까지 영국 여왕을 칭송하는 영국 국가인 ‘God save the Queen’을 국가로 불렀다

 

▲ 휘틀람 정부는 국민들 사이에 널리 애창되는 곡들 중에서 국가를 선택하기로 하고, 1977년에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 국민투표에 7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참여했는데, 'Advance Australia Fair’가 43.2%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맥코믹의 ‘Advance Australia Fair’가 호주 국가로 공인되기까지의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3년 휘틀람 (Whitlam) 정부는 공모를 통해 국가를 정하려고 시도했지만, 심사 위원들을 만족시킬 만한 곡이 1천400여 응모곡들 중에는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국민들 사이에 널리 애창되는 곡들 중에서 국가를 선택하기로 하고, 1977년에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이 국민투표에 70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참여했는데, 'Advance Australia Fair’가 43.2%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Waltzing Matilda’와 ‘God save the Queen’은 각각 28.3%와 18.7%를 얻었다. 이후 수정 작업을 거쳐 1984년 4월 19일에 밥 호크 (Bob Hawke) 정부가 호주 총독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호주 국가로 선포했다.

 

한편, 호주 정부는 2021년 1월 1일에 1절 가사의 ‘We are young’을 ‘We are one’으로 변경했다. 호주가 하나의 국가, 즉 원주민과 여러 이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국가임을 강조한 것이다.

 

'Advance Australia Fair’ 가사

 

Australians all let us rejoice,

(우리 함께 기뻐하자, 호주인이여)

For we are one and free;

(우리는 하나이고 자유로우니)

We’ve golden soil and wealth for toil;

(우리가 땀 흘려 이룬 풍요로운 황금빛의 땅)

Our home is girt by sea;

(우리 고향은 바다에 둘러싸여있네)

Our land abounds in nature’s gifts

(우리 땅을 가득 채우는 자연의 선물은)

Of beauty rich and rare;

(아름답고 풍요롭고 귀하여라)

In history’s page, let every stage

(역사의 한 순간, 역사의 모든 순간)

Advance Australia Fair.

(전진하라, 아름다운 호주여.)

In joyful strains then let us sing,

(즐거운 마음으로 다 함께 노래하자)

Advance Australia Fair.

(전진하라, 아름다운 호주여.)

 

Beneath our radiant Southern Cross

(빛나는 남십자성 아래에서)

We’ll toil with hearts and hands;

(한 마음으로 함께 일하리)

To make this Commonwealth of ours

(우리 호주 연방의 명성을)

Renowned of all the lands;

(전 세계에 떨치기 위해)

For those who’ve come across the seas

(바다 건너 넘어온 자들을 위해)

We’ve boundless plains to share;

(우리가 나눠 줄 드넓은 평원이 있네)

With courage let us all combine

(용기를 갖고 우리 모두 함께 뭉치자)

To Advance Australia Fair.

(아름다운 호주의 전진을 위해.)

In joyful strains then let us sing,

(즐거운 마음으로 다 함께 노래하자)

Advance Australia Fair.

(전진하라, 아름다운 호주여.) 〠

 

정지수|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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