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론(敎會論) VII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4/25 [15:33]
▲ ©Josh applegate   

 

앞서 설명했듯이, 개혁교회의 표지는 말씀의 참된 전파에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매주 교회에서 참된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마이클 호튼이 지적했듯이, 현대의 교회는 “세상의 포로된 교회”의 모습이다. 참된 말씀보다는 “성공신화” 나 “축복강좌” “긍정의 신념”이나 “성경내용과는 무관한 자기 스토리”등을 장사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아니면 성경말씀 한 구절 읽고 비정상적인 영적체험과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퍼포먼스도 종종 벌어진다.

 

참된 교회를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고 바르게 해석되고 선포되고 있는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의 기초 위에 세워진 동시에 말씀을 수호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씀이란 진정한 회개 없이 베푸는 ‘값싼 은혜’의 복음이나 성공한 자들의 ‘간증스토리’들도 물론 아니다. 성경내용을 정직하게 해석해서 가감없이 성도들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 어느 본문을 선택해서 설교해도 매일 결론은 ‘기도하라’ ‘주일 성수하라’ ‘말씀 읽어라’ 등의 결론으로 일관된다면 이것 또한 정직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그것보다 훨씬 풍성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어 선포되고 성경을 기초로 한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참된 교회가 있다.

 

종교개혁가들이 말씀의 순수한 선포를 교회의 표지로 강조했던 이유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이 제도나 조직이나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만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유일하고 유효한 수단으로 작정하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교회의 표지: 성례의 정당한 집행

 

두 번째 개혁교회의 표지는 성례(성찬과 세례)의 정당한 집행이다. 개신교회의 성례는 로마 가톨릭처럼 말씀과 분리된 성례를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례는 그 자체가 고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연유하기 때문이다. 말씀으로부터 분리된 성례는 공허한 형식적 예식밖에 되지 않는다. 성례가 말씀과 함께 바르게 시행된다면 그것은 복음의 가시적인 선포가 된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오히려 성례를 말씀의 유형적 전파로 생각한다. 어거스틴은 성례를 “가시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표현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구원의 메시지를 유형적인 형태로 확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례와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눈에 보이는 가시적 형태로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우리의 약한 믿음을 받쳐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의 약속을 우리의 마음에 인치시는 외형적인 표이고, 우리 편에서는 그 표에 의해서 주님과 주님의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주께 대한 우리의 충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1) 세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세례는 한 사람이 기독교 공동체로 들어감을 나타내며 확증한다. 세례를 통해 기독교 공동체의 정식 회원이 되는 것이며 가정, 학교, 교회, 사회, 삶의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된 삶을 나타내고 증거하는 것이다.

 

세례는 사실 구약성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연속성이 있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예식이라 할 수 있다(고전 10:1-4). 이스라엘에서는 할례는 언약적 공동체에 들어가는 예식이었다.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되었다는 상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았다.

 

예수 또한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으셨다(눅 2:2). 율법의 의를 성취하심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전 것을 완성하시고 새로운 세례의 선구가 되셨다. 할례는 세례로 갱신되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2:11-12)

 

세례의 긍극적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덞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18-22)

 

이처럼 세례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신을 고백하며 구원을 기뻐하는 예식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개신교의 예식 중 가장 큰 예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올 때 천국에서도 얼마나 큰 기쁨이 있을까? 교회는 이 세례식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의 잔치요 천국 환영파티로 성대하게 축하해 주어야 한다.

 

2) 성찬

 

성례를 의미하는 ‘sacrament’ 단어는 성경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는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헬라어 ‘Mystrion:신비’에 대한 라틴어 벌게이트 번역에서 유래했다. 이 성례전적 ‘신비’는 세례에도 적용할 수 있지만 성찬에 더욱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신약성경은 성찬의 의미를 다양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의 만찬’(고전 11:20), ‘주의 상’(고전 10:21), ‘유카리스트’(마 26:27) ‘떡을 떼는 것’(행 20:7), ‘축복의 잔’(고전 10:16)등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James Coleman     

 

바울은 잔과 떡을 나눔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교제(koinonia)를 가져다준다고 확증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 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고전 10:16,17)

 

이처럼 성찬이란 믿는 성도들이 같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기념하고 예수의 부활을 믿어 우리 또한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의지하여 영생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예식이다.

 

이 둘은 구원과 예배를 나타내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고 중요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일 년에 정해진 시기에만 몇 차례 절기를 지키는 식으로 이 예식을 치를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그러했듯이 주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올 때마다 교회는 세례를 베풀고 할 수 있는 한 성찬을 통해 교제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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