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대대, 가평 퍼레이드, 가평길

글/주경식 사진/정성택 | 입력 : 2022/05/30 [10:47]

 

▲  6/2022  표지             © 3RAR

 

▲ 타운스빌에 있는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일명 가평대대)는 매년 4월 24일 가평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금년에는 24일이 일요일이라 23일에 개최했다. ©3RAR     

 

▲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 목동리에 세워져 있는 호주전투기념비     © 크리스찬리뷰


Kapyong, 희생과 영광

 

호주 군인들을 포함 그들의 가족 그리고 호주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평, Kapyong’이라는 지명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가평’이라는 단어가 ‘희생과 영광’을 상징하는 말로 호주인들에게는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주는 1950년 한국에서 6.25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에 이어 영연방 국가로 두 번째로 연합군을 보낸 한국의 혈맹국가이다.

 

1950년 6.25가 발발한지 이틀 후 6월 27일 곧바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한국에 대한 군사원조’안이 결정되었다. 그 후 호주 정부는 한국과 수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이 안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곧바로 병력을 파견한다.

 

특히 호주는 영국과 뉴질랜드보다 몇 시간 전에 파병을 공식 발표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표명하였다. 그 일환으로 호주는 먼저 6월 30일 영연방 극동해군 사령부에 파견되어 있던 2척의 구축함을 파견하였고 그리고 뒤이어 7월 1일 왕립호주공군(RAAF)소속 제77전투비행대대를 미 극동공군 사령부로 급파하였다.

 

그리고 9월 27일에는 960명의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 제1진으로 부산에 상륙하여 군사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호주는 한국전쟁 기간중 2개 보병 대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9척의 함정, 그리고 1개 비행대대와 1개 수송기편대를 파견하는 등 연인원 1만7,164명을 한국전쟁에 참전시킨다.

 

당시 로버트 멘지스(벨레 멘지스 선교사의 조카, 크리스찬 리뷰 2022년 3월호 참조) 호주 수상은 연설에서 "우리의 참전 결정은 결코 유엔헌장의 규정에 얽매여서가 아니라 그 정신을 존중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며 국제평화를 추구하고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당시 제1진으로 한국전쟁에 파병되었던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10월 10일 개성 북동쪽에서의 전투를 시작으로 영유리전투, 정주-박천 전투, 가평지구 전투와 마령산 전투 등에 참전하여 용맹을 떨쳤다. 그 중 호주군이 참가한 전투중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전투는 바로 가평지구 전투이다.

 

▲ 6.25 한국 전쟁에서 행군하는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군인들. ©AWM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으로 구성된 영연방 군 27여단이 서울을 탈환하려고 춘계 대공세를 퍼부은 중공군과 가평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춘계 대공세를 펼치며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특히 한국군 6사단을 격파한 중공군 118사단은 4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전략적으로 용이한 가평천 골짜기를 통해 서울-춘천 간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연합군의 전선을 갈라놓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려고 했다.

 

▲ 2022 가평 퍼레이드에서 백파이프 연주에 맞춰 제3대대 장병들이 입장하고 있다. ©3RAR     

 

대공세를 펼치며 남하하던 중공군 118사단 선두 연대는 가평을 신속히 점령할 목적으로 가평 계곡을 따라 진격하던 중 호주군의 방어에 기세가 꺾였다.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가 가평 504 고지에 배치되어 10배가 넘는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중공군은 가평전투에서 4천 명 이상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호주군 1개 대대가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던 중공군 1개 사단을 이틀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치는, 전쟁 역사에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린 것이다. 한국 전쟁사에서는 당시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 가평에서 중공군을 막지 못했다면 한국전쟁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투로 가평 전투에 참여한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미국의 트루만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훈장을 받았다. 이후로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는 ‘가평대대’(Kapyong Battalion)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리고 ‘가평, Kapyong’은 호주인들에게 ‘희생’과 ‘영광’이라는 단어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타운스빌로 옮긴 가평대대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가평대대는 원래 시드니 남부 홀스워디(Holsworthy)근교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1년 말에 현재의 타운스빌로 부대를 옮겼다. 가평대대는 타운스빌로 옮긴 후에도 해마다 ‘가평 퍼레이드’를 개최한다. 작년에는 가평전투 70주년 기념으로 퍼레이드 행사가 성대하게 개최되었는데 그만 참석하지 못했다.

 

크리스찬리뷰 ‘가평 프로젝트 다큐 팀’은 지난 3월 호에서 약속했듯이, 타운스빌에 있는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가평대대가 매해 4월 23일에 개최하는 가평 퍼레이드를 취재하기로 결정하고 제3대대에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제3대대 안에 있는 ‘Kapyong Lines’도 사진을 담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다려도 취재 허락이 오지 않았다.

 

▲ 2022 가평의 날 퍼레이드 홍보물  ©3RAR     

 

연락을 취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타운스빌에 한국인이 같은 부대는 아니지만 호주군 장교로 복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하여 가평 퍼레이드를 담당하는 정훈장교 다이아나 대위(Captain Diana Jennings)를 소개받게 되었고 오랜 기다림 끝에 취재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오전 6시 30분에 출발하는 첫 번째 비행기라 그런지 타운스빌행 비행기는 연착없이 제시간에 정확히 출발했다. 그리고 정확히 2시간 40분 만에 타운스빌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일찍 나오느라 비몽사몽했던 컨디션은 타운스빌의 청명한 아침 공기를 들이 마시자 상쾌해졌다.

 

미리 예약한 렌터카를 공항에서 받아 예약한 호텔로 향했다. 타운스빌은 브리즈번에서도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5만 명의 광산업이 발달한 퀸즈랜드의 중견 도시이다. 이곳에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가평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이다.

 

타운스빌에는 제3대대 말고도 호주 왕립 연대 제2대대가 주둔하고 있다. 오전 10시경 호텔에 도착한 기자 일행은 짐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타운스빌 시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호주군 장교로 왕립연대 2대대에서 근무하는 허 대위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허 대위는 마침 타운스빌에 있는 타운스빌한인연합교회(서명희 목사)에 출석하고 있었다.

 

허 대위는 기자 일행과 서명희 목사 부부를 초대했다. 서명희 목사 부부는 17년전 이곳 타운스빌에 와서 교회를 개척하고 광산회사에 근무하는 주재원들과 캡틴 쿡 대학(James Cook University)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목회를 해오고 있다.

 

라바락 병영, 왕립호주 제3여단 그리고 가평대대

 

▲ 훈련중인 가평대대 병사  ©3RAR    

 

타운스빌로 출발하기전 이메일로 가평 퍼레이드 취재를 담당하는 정훈 장교 다이아나 대위와 행사 당일 라바락 병영(Lavarack Barracks, 3rd Brigade, 호주 왕립 3여단) 부대 정문 앞에서 오전 9시 15분에 만나기로 미리 약속을 했었다. 군 부대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마음대로 부대안을 다닐 수 없고 자신이 동행하는 조건으로 취재를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다이아나 대위를 따라가 검문소에서 출입증을 세 개 받았다. 하나는 차량용 다른 하나는 각자의 목에 거는 개인용 출입증이었다. 차량 출입증은 차 앞유리에 부착하고 개인용은 각자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다이아나 대위 차를 따라 부대안으로 들어갔다.

 

왕립호주 제3여단의 병영은 굉장히 넓었다. 전체 병영 크기가 400헥타르에 달한다고 하니 쉽게 여의도 크기만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이곳 제3여단안에 왕립호주제3대대, 1대대가 포함되어 있고, 이외에도 호주 왕립 포병 제4연대와 제2기병연대, 제3전투 지원대대, 제3전투 공병연대 등 무려 3천800여 명의 군인들의 숙소와 병참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다.

 

제3여단 병영의 크기가 여의도 크기라고 하니 대강 상상이 갈 듯하다. 라바락 병영을 돌아보기 위해서는 걸어서는 며칠이 걸릴 듯 싶었다. 가평대대인 제3대대는 3여단 소속의 기계화 부대이다.

 

그리고 이 제3대대가 한국전쟁시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투르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 전체가 상을 받고 ‘가평대대’란 별칭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인 가평대대가 해마다 가평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것이다.

 

그 후 제3대대는 보병이지만 1985년 낙하산 점프를 할 수 있는 낙하산 대대로 선정되고 베레모를 쓰는 호주군에서 가장 용감한 부대로 인정받게 되었다.

 

가평 퍼레이드

 

다이아나 대위를 따라 퍼레이드가 펼쳐질 연병장 근처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다이아나 대위는 다른 부대 소속이지만 정훈장교이기 때문에 이번 가평 퍼레이드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퍼레이드가 열릴 연병장에 도착하자 이미 제3대대 군인들이 행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이아나 대위는 기자 일행에게 취재시 주의해야 할 사항을 공지해 주었다.

 

정확히 오전 10시가 되자 에이미(Amy) 소령의 사회로 가평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굿모닝 신사 숙녀 여러분,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가평의 날 퍼레이드를 관람하기 위해 라바락 병영 가평라인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퍼레이드를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으시거나 적절한 장소에 자리를 잡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에이미 소령의 환영인사가 이어졌다.

 

“우리 제3대대 가평대대는 이 땅의 주인인 애보리진 빈달족(The Bindal)과 울구루카바족(The Wulgurukaba)을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제3대대는 오늘 우리가 모인 이 땅의 전통적인 수호자들이며 과거와 현재의 모든 장로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곳에 있는 원주민과 토레스 해협 섬 주민들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이 땅의 원주민인 애보리진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가평 퍼레이드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계속해서 에이미 소령은 약 10분 정도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가평대대의 약력과 그동안 가평대대가 참전한 전투역사에 대해 소개했다. 에이미 소령의 소개가 끝나자 바로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장갑차들의 시범에 이어 가평 퍼레이드가 진행되었다.     © 크리스찬리뷰

 

연병장 중앙에 세워져 있던 장갑차들의 시범이 먼저 시작되었다. 3대대는 기계화부대이다. 그래서 3대대 안에 장갑차 및 기계화된 무기들을 운용하고 있다. 장갑차의 시범은 3대대 기계화부대인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비쳐진다.

 

4대의 장갑차가 굉음을 내면서 급정거와 급커브 등을 선보이면서 마음껏 묘기를 선보였다. 장갑차는 3대대가 대대의 진군을 준비하는 ‘거점’이라고 에이미 소령의 안내가 들려왔다. 장갑차의 시범이 끝나자 군악대의 행진과 더불어 3대대의 퍼레이드가 약 1시간 10분에 걸쳐 진행되었다.

 

3대대는 다양한 모습의 열병과 사열을 보여줌으로써 행진을 이어 나갔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퍼레이드가 펼쳐질 동안 감사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정성택 감독은 단상 밑에서 포즈를 잡고 다양한 각도에서 가평대대가 행진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기자는 괜찮은 스틸사진을 한 장이라도 건지기 위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 타운스빌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연병장에서 펼쳐진 2022 가평 퍼레이드. ©3RAR     

 

군대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기에 가평 퍼레이드를 준비하기 위해 흘렸을 3대대 병사들의 땀과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슴을 활짝 펴고 자랑스럽게 행진을 하는 병사들의 얼굴들을 보면서 그들이 3대대 부대의 일원인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읽을 수 있었다.

 

퍼레이드가 끝난 후 부대 캔틴에서 간단한 뒷풀이가 있었는데 그때 3대대 사령관인 크리스 존슨(Chris Johnson) 중령은 스피치 도중 3대대가 한국전쟁 중 가평에서 보여준 그들의 전과를 소개하며 3대대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부대인지를 연설하자 부대원들은 휫바람과 소리를 크게 지르며 크리스 사령관의 연설에 환호했다.

 

가평대대 사령관 크리스 존슨 중령

 

기자 일행은 미리 이메일을 통해 정훈장교 다이아나 대위에게 퍼레이드가 끝난 후 3대대 사령관인 크리스 존슨(Chris Johnson) 중령의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다행히 크리스 사령관은 흔쾌히 퍼레이드 후에 인터뷰를 하겠다고 연락을 주었다. 퍼레이드 후에 그의 사령관실에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키가 192cm되는 장신에다가 준수한 미남이었다.

 

-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사령관인 크리스토퍼 존슨 중령입니다. 3명의 자녀와 아내와 함께 현재 타운스빌에서 살고 있습니다. 군인이 된 지는 정확히 20년 되었습니다”

 

- 특별히 군인이 되고자했던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2001년 9월 12일에 호주국방 신병모집 장교로부터 콜링을 받고 그 이듬해인 던트룬(Duntroon)에 있는 로얄 군사 학교(The Royal Military College, Duntroon)에서 장교훈련을 받았습니다.”

 

- 제3대대 가평대대 사령관으로는 언제 오시게 되었는지요?

 

“금년 1월에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 사령관으로 취임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제3대대 사령관으로 2년의 복무기간이 남았습니다. 제가 군인으로 처음 복무를 시작했던 곳은 왕립호주연대 제2대대였습니다. 그리고 제3대대에는 2015년에 왔습니다. 제3대대에서는 중대장과 2016년에는 작전장교로 근무했습니다. 그리고 캔버라 국방부에 가서 여러 보직들을 거친 후 금년 초 제3대대 사령관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 제3대대는 한국 전쟁 특히 가평전투에 참전해서 혁혁한 전과를 세워 가평대대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3대대는 가평대대란 별칭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1951년 한국전쟁시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군인들의 희생과 충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후배들인 제3대대 부대원들은 이 역사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3대대원 모두 이사실을 알고 있고 전술공부도하고 있습니다.

 

▲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평대대) 사령관 크리스 존슨(Chris Johnson) 중령은 본지와 인터뷰를 마친 후 주경식 편집국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오늘 가평퍼레이드 또한 이러한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저희가 계속 이어가고 있는 행사입니다. 제3대대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영광을 기억하고 또한 저희는 제3대대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 호주 전역에 지금까지 10개의 가평길과 2개의 가평다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분명 한국전쟁시 가평전투에 참전했다가 돌아온 제3대대 부대원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호주는 자랑스러운 전쟁 역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호주 전역에 걸쳐 10개의 길 이름과 다리 이름에 가평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것에 먼저 제3대대 사령관으로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한국전쟁시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군인들과 연관되어 붙은 이름으로 호주의 커뮤니티 배경에 군사역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으로 여겨져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퍼레이드시 보여주었던 그의 강인함과 리더십과는 달리 그는 시종 부드럽고 친절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크리스 존슨 사령관의 인터뷰를 마친 후 서둘러 제3여단 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왕립호주 제3여단 내 가평 박물관

 

▲ 왕립호주 제3여단 병영 안에 있는 가평 박물관에한국전쟁 관련 각종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 크리스찬리뷰

 

기자일행은 이 부대 안에 가평 박물관이 있다는 소식을 입수했다. 그래서 이메일을 통해 다이아나 대위에게 크리스 중령과의 인터뷰 이후 박물관 큐레이터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놓았다. 다행히 이 일도 잘 진행되어 크리스 사령관 인터뷰후 박물관 큐레이터 봅 바커스 씨를 통해 왕립호주 제3여단(Bob Bakkers) 병영 안에 있는 박물관에 대해 안내를 받고 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봅 바커스 큐레이터는 원래는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제대 후에 박물관학을 공부하고 큐레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왕립호주 제3여단 병영안에 있는 작지만 진기한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의 박물관을 소중히 관리하고 있다.

 

▲ 가평퍼레이드를 관람하는 지역주민들(상)과 가평 박물관에 전시 중인 6.25 한국전 당시의 대포와 고사포, 그리고 38선 지계석.     © 크리스찬리뷰

 

▲ 한국 전쟁의 영웅 찰스 그린 중령의 붉은 피가 베어있는 찢어진 텐트.     © 크리스찬리뷰


실은 제3여단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에는 박물관이라 해서 다른 박물관처럼 대리석으로 지어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박물관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막상 기자 일행을 안내해 데리고 간 곳은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작은 공간에 전쟁물품이 보관되어 있는 구멍가게 같이 보였다. 그러나 봅 바커스 큐레이터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전시품들 가운데 귀한 역사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물품들이 많은 것을 보고 겉인상만 보고 선입견을 가졌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이곳 박물관에는 제3여단에 속해 있던 부대들이 지나왔던 전쟁의 상흔과 역사들을 담은 진귀한 물건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가평전투와 관련된 가평전투 코너가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제3대대가 가평에서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막아냄으로 서울을 방어하고 한국전쟁의 승기를 잡게 한 공로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표창장 원본을 볼 수 있었다.

 

봅 바커스 씨는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이 표창장은 미국 투르먼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원본 표창장이며 여기 보이는 사인은 그의 친필 사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표창장 밑에는 가평전투를 성공리에 수행한 기념으로 제작된 제3대대 가평전투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이 기념비 사진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에는 큰 기념비석으로 생각했는데 가평전투 코너에 전시되어 있는 기념비를 막상 보니 사이즈가 작은 것에 놀랐다.

 

전시된 물건 가운데 찰스 그린 중령이 사용하던 포탄에 찢어진 텐트가 있었다. 찰스 그린 중령은 제1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3대대의 사령관이었다. 1950년 9월 27일 왕립호주연대 제3대대가 1진으로 부산항에 입항하여 영연방 제27연대에 소속된 연합군으로 ‘연천전투’ ‘박천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며 북진을 계속했다.

 

그리고 10월 29일에는 ‘정주’에서도 치열한 전투 끝에 또 한 번의 승리를 일궈냈다. 그러나 다음 날 ‘달천강’ 근처에서 다음 전투를 준비하며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중 북한군이 쏜 포탄이 그린 중령의 텐트 옆에 터지며 포탄 파편이 그만 텐트를 뚫고 그린 중령의 복부를 관통하고 말았다.

 

그린 중령은 즉시 ‘안주’지역의 ‘미군 이동병원’에 후송되어 수술을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11월 1일 오후 8시 사망하고 말았다. 포탄 파편에 찢기고 그린 중령의 붉은 피가 배어 있는 그 텐트를 보고 있노라니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때의 찢겨진 텐트를 버리지 않고 가지고 와 전쟁 박물관에 전시한 호주군 베테랑 전우들의 역사의식을 보며 많은 걸 배우게 된다.

 

기자는 봅 바커스 씨에게 호주인들은 대단하다고 표현했다. 그린 중령의 죽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피묻고 찢어진 텐트를 어떻게 가지고 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그말에 봅 바커스 씨는 그게 호주인이라고 맞장구를 치며, 또 신기한 것을 보여 주겠다고 기자 일행을 야외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6.25 때 한국에서 가져온 3.8선 지계석이 있었다. 이 3.8선 지계석을 보면서 과연 한국에 이러한 지계석이 보관되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런데 한반도 중앙부를 가로질러 남과 북을 나누기 위해 1945년 세워졌던 북위 38도 지계석을 이억만리 떨어진 호주 땅 제3대대 병영 안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600kg에 달하는 남의 나라 3.8선 지계석을 이들은 왜 가지고 왔을까? 한편으론 이들이 한반도의 아픔을 담고 있는 3.8선 지계석을 보관해 주고 있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필로그

 

원래 계획으로는 가평퍼레이드 취재가 12시면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물관 촬영까지 끝나고 보니 시간이 2시간이나 초과해 버렸다. 우리를 안내했던 다이아나 대위도 오후에는 약속이 있다면서 퇴근을 재촉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 더 남은 미션이 있었다. 바로 제3여단 병영 안에 있는 ‘Kapyong Lines’를 카메라에 담는 일이었다. 사정을 구하고 한 번만 더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다이아나 대위도 이왕 돕는 것 끝까지 미션을 완수해야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재촉하며 자기 차에 기자 일행을 태웠다.

 

여의도 만한 크기의 땅이라 걸어서 모든 길들을 다 살펴보기는 힘들었다. 다이아나 대위는 이 병영에 익숙한 데 ‘Kapyong Lines’를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차를 타고 표지 사인 하나하나를 살피며 병영 전체를 다 돌아 보았다.

 

▲ 제3여단 병영내에 설치되어 있는 가평 라인스 표지판.     © 크리스찬리뷰

 

그러나 ‘Kapyong Lines’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이아나 대위도 이제는 포기한 듯, 약속시간도 다가오고 여기까지밖에 도울 수 없다며 이제는 부대를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알려주었다.

 

더 이상 그녀를 붙잡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만 남아서 부대를 돌아볼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그녀 없이 우리만 병영에 남아 있을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차를 돌려 정문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차를 세우더니 환호를 하며 손가락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Kapyong Lines’가 제3대대 안내판 돌담 위에 선명한 금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타운스빌 제3여단 병영 안에 있는 ‘Kapyong Lines’ 즉 가평길을 표시하는 표지판을 찾고 있었는데 ‘Kapyong Lines’는 일반적인 표지판이 아닌 특별히 제작한 돌담 위에 세워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Kapyong Lines’를 찾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정성택|크리스찬리뷰 디자인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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