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론(敎會論) VX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6/27 [14:55]
▲ 종교개혁을 이끈 프랑스 출신의개혁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인 존 칼빈.(1509-1564)     


지난호에서 보았듯이 개혁교회의 표지는 ‘말씀의 참된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집행’이 가장 중요한 교회의 표지임을 살펴보았다. 이것을 현대교회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오늘날 교회에의 적용

 

종교개혁 당시에 제기되었던 질문을 오늘날 교회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사실 현재의 로마 가톨릭교회가 참된 교회인지 아닌지를 결정 내리기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방대함과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개신교의 교회에 대하여 “참된 교회인가?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개신교의 다양한 교단과 분파를 고려해 볼 때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어떤 로마 가톨릭 교구에는 위의 두 가지 표지가 존재하는 교회가 있을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과 기도와 성경공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강조하여 복음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성례에 대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한 공적으로써의 행위가 아닌 상징적이고 기념적인면을 강조하는 사제와 교회도 있다.

 

이같은 경우에 어떤 교리에 대해서는 개신교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지만, 복음이 바로 전파되고, 성례가 건전하게 시행되므로 참된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개신교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목회자의 위장된 복음(?)과 성공, 축복 강좌만 증거되고, 거짓 확신만 무분별하게 팔아치우며, 교회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은 채 무조건 성례를 베푸는 목회자와 교회가 있다면 이것을 어떻게 참된 교회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실 오늘날 많은 수의 개신교가 이러한 그릇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교회에서 복음보다는 “성공”을 부추기고 진정으로 죄의 용서를 갈구하지 않는 자들에게 죄의 사유를 선포하며 권징과 징계가 없는 세례가 베풀어지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위의 두 가지 표지 외에도 ‘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교회의 중요한 표지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히페리우스, 마터, 우루시누스, 트렐카티우스, 하이데거, 벤델리누스 등은 ‘권징의 신실한 시행’까지 첨가해서 교회의 표지라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현대교회에서 잃어버린 게 있다면 “권징”이다. 왜 현대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졌을까? 그것은 교회의 본질이 자본주의 구조하에서 일종의 시장구조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권징을 받은 교인이 일정한 기간 동안 교회에 출석할 수 없거나 다른 교회에도 출입을 거부당하면 그 교인은 그때에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고통을 깨닫고 진정한 성도라면 회개하며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권징 받은 교인을 다른 교회에서 아무런 분변함 없이 받아들이는 현 교회 풍속에서는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개혁교회의 표지: 권징의 신실한 시행

 

 

벌코프에 의하면 “권징은 교리를 순수하게 유지하며, 성례를 거룩하게 보수하는 데 절대 필요하고, 권징을 등한히하는 교회는 불원 간에 진리의 빛을 상실하게 될 뿐만 아니라 거룩한 것을 남용하게 된다.”라고 지적한다.

 

성경 또한 올바른 권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마 18: 15-18, 롬 16:17, 고전 5:2, 9-13, 고후 2:5-10, 살후 3:6 14-15, 딛 3:10-11)

 

역사적으로 개혁교회는 권징을 시행하는 일에 탁월하였다. 개혁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독립된 정치와 권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순수한 교리를 수호하기 힘들고 교회의 거룩함을 유지하는데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작금의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개혁교회의 표지인 권징이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보게 된다. 한 가지 극단은 아예 교회에서 권징이 사라진 느낌이다. 권징을 하게 되면 성도들이 시험에 빠져 다른 교회로 옮겨갈 것에 겁을 내서 교회에서 권징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권징을 받았다고 쉽게 교회를 옮기는 교인들의 정서와 권징을 받은 다른 교인을 무분별하게 받아주는 현교회의 모습도 문제이지만,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바른 가르침을 주지 못하는 목회 현실 또한 서글프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가지 극단은 반대되는 현상인데 목회자의 권력 강화와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야망으로 자기 뜻에 반 대하는 세력들을 무더기로 권징하는 세태다. 이런 뉴스는 요즘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는데 목회자와 장로 간의 세력 다툼으로 목회자의 파워가 더 강할 때 성도들을 등에 업고 논리와 이치에 맞지 않는 권징을 남발하는 것이다.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 모두 권징의 바른 의도와는 어긋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권징의 보편적인 형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과 같이 가감 없이 바로 설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의 권징의 특징

 

종교개혁시의 칼빈은 권징의 주요 내용을 교정(correction)과 출교(excommunication)에 두고 교회를 보전하기 위해 세 가지로 권징의 목표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을 그대로 두면 하나님의 교회가 마치 악하고 타락한 자들의 단체인 것처럼 보여서 하나님께 불명예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이 강조한 것 중 하나는 무분별하게 성찬을 시행해 성찬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찬을 분배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성찬 받기에 합당치 못한 사람을 마땅히 돌려보내야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을 알고도 성찬에 참여시키는 것은 마치 개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던져 주는 것과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부도덕하고 악한 사람들과 계속 교제함으로써 선한 사람들이 타락하는 사태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 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먹지도 말라(고전 5:11).”

 

셋째, 칼빈은 바울이 범죄자를 일시적으로 정죄함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얻도록 한 것처럼 치리와 징계를 통하여 주 앞에 돌아오게 하려는 의도이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말을 순종치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저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살후 3:14).”

 

다른 구절에서는 고린도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 주었다고 하면서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고전 5:5).” 라고 한다.〠 (계속)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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