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7/20 [15:27]
▲ 아들레이드에 있는 가평 다리 밑에서 가평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인터뷰를 가졌다. 왼쪽부터 한국전쟁 참전용사연합회 아들레이드지회 존 자렛트 회장, 문광식 목사, 가평전투 참전용사 록키 애녹옹. 참전용사들에게 전달할 가평 프로젝트 모자 1백 개를 호주한인복지회 이용재 회장이 후원했다     © 크리스찬리뷰


가평 프로젝트 다큐팀(이하 프로젝트 팀)은 호주에 있는 10개의 가평길(Kapyong Stree)을 취재하기 위해 그동안 콥스하버(Coffs Harbor), 골드코스트(Gold Coast), 브리즈번(Brisbane)을 위시하여 시드니의 벨로우즈(Belrose), 맥마스터 비치(Macmaster Beach)등에 있는 가평길을 카메라에 담았다.

 

동시에 프로젝트 팀은 호주의 각 도시에 있는 가평길을 방문할 때마다 생존해 있는 가평전투 참전용사들을 찾아 인터뷰해왔다. 작년 12월에는 브리즈번에서 가평전투 참전용사 미망인 패트리샤 캐너드(Patricia Cannard) 여사와 레이몬드 디드(Raymond Deed, 95)옹을 인터뷰(본지 2022년 1, 2월 호 참조)하고 금년 3월에는 가평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 조셉 베즈코프(Joseph Vezgoff, 93)옹을 인터뷰(본지 2022년 3월호 참조)했다.

 

현재까지 발견되기로는 호주 전국에 10개의 가평길(Kapyong Street)이 있으니 앞으로도 4개의 가평 길을 더 취재해야 한다. 그리고 2개의 가평 다리(Kapyong Bridge)가 아들레이드와 멜번에 있다.

 

프로젝트 팀은 먼저 아들레이드에 있는 가평다리(Kapyong Bridge)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7월 10일 아들레이드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시드니 공항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아들레이드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

 

프로젝트 팀은 시드니 공항에서 오전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전 10시 40분이지만 방학 기간이라 여행객들이 늘어 국내선임에도 불구하고 1시간 40분이나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

 

촬영 장비를 포함한 성화전시회 짐들을 먼저 부치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후 출발 게이트에 앉아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콴타스 앱을 확인하던 권 발행인이 우리가 타려는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문자가 왔다며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알려주었다. 기자는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는가 했는데 안내 방송이 나오는 것이었다. 우리가 타려는 아들레이드행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10시 40분 아들레이드행 콴타스 비행기를 타려는 승객들은 서비스 데스크로 가서 환불을 받던지 아니면 다른 비행편을 안내받으라는 방송이었다. 비행기가 딜레이된 경우는 몇 번 경험해 보았어도 이번처럼 비행기가 아예 취소된 경우는 처음이었다.

 

당장 오후에 예정되었던 아들레이드 약속들이 걱정되었다. 이번 촬영은 시나리오를 짜고 가평전투 참전용사들을 가평다리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기자 일행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 문광식 목사(아들레이드장로교회)가 공항에서 프로젝트 팀을 환영하는 장면을 포함, 한국전 참전용사 존 자레트 씨 자택을 방문하여 그분을 모시고 가평다리로 출발하는 장면까지 촬영하려고 계획해 놓았다.

 

그런데 예정된 일정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프로젝트 팀은 콴타스 서비스 데스크로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족히 20미터가 넘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모두들 어두운 표정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팀도 초조하게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미 안내를 받고 나오는 승객이 있어 혹시라도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물어보았다.

 

그 승객은 방학을 맞아 딸과 함께 아들레이드로 휴가를 갈 계획이었으나 망쳤다고 이야기하면서 내일 출발하는 아들레이드 항공편을 예약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일박 호텔권과 점심 쿠폰을 받았는데 케이스마다 다르니 당신들도 잘 이야기해 보라고 귀뜸해 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날 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우선 아들레이드에 있는 참전용사들과 약속도 있고 오늘 출발해서 내일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기 때문다. 또한 기자는 아들레이드장로교회에서 주일예배 설교를 할 예정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자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우리는 가평 프로젝트 다큐멘터리 팀인데 오늘 오후에 아들레이드에 있는 가평전투 참전용사들과 약속이 잡혀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오늘 오후 2시까지 아들레이드에 도착해야 한다. 가장 빠른 아들레이드행 비행기를 안내해 달라. 비즈니스석이라도 타고 가야한다”라고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

 

그러나 콴타스 서비스 직원은 심드렁하게 “오늘 출발하는 아들레이드행 직항은 모두 예약이 꽉 차있고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멜번 경유, 아들레이드행 비행기가 최선이라며 이것도 좌석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우리 팀은 하는 수 없이 그 비행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5시 멜번 경유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자 일행은 오전 9시에 시드니 공항에 도착해서 오후 5시까지 무려 8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 아들레이드장로교회 교육관에서 가평 다큐 제작 후원을 위한 성화 전시회가 열렸다.     © 크리스찬리뷰

 

아들레이드장로교회와 성화 전시회

 

아들레이드 공항에 도착하니 저녁 8시 5분이었다. 마중 나온 문광식 목사의 승합차에 짐을 싣고 호텔로 향하기 전 먼저 아들레이드장로교회로 향했다. 교회에 도착하니 성화 전시 설치를 돕기 위해 박상년 집사와 박진수 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아들레이드에 오후 12시 50분에 도착하여 가평다리에서 참전용사 인터뷰를 마친 후 오후에 여유있게 프로젝트 팀이 성화전시를 준비하는 일정이었는데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참전용사 인터뷰는 다음날 오후로 미뤄놓고 성화 전시는 오늘 저녁에 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번 아들레이드 방문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하나는 아들레이드에 있는 가평다리(Kapyong Bridge)를 카메라에 담는 계획이었는데, 단순히 가평다리만 촬영하는 것보다는 아들레이드에 생존해 있는 가평전투 참전용사를 가평다리에서 인터뷰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깊다는 생각에 문광식 목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침 문 목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일 년에 두차례 정기적으로 초대하여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그분을 모시고 가평다리에서 문광식 목사가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계획했다.

 

두 번째 목적은 이번 가평 다큐멘터리 제작비 지원을 위해 서정남 목사가 후원해 준 자신이 그린 성화를 아들레이드장로교회에 전시하고 판매하려는 계획이었다.

 

▲ 아들레이드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 용사 존 자렛트 옹.     © 크리스찬리뷰

 

▲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록키 애녹 옹.     © 크리스찬리뷰


이러한 이유로 성화 액자를 포장한 박스를 세 박스나 비행기에 싣고 와서 그날 저녁에 설치해야 했다. 다행히 두 분 집사의 도움으로 성화들을 교육관에 다 전시해 놓으니 밤 10시가 넘었다. 긴장이 풀리니 그제서야 배가 고팠다. 멜번에서는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그리고 아들레이드에 도착해서는 내일 있을 성화전시가 급선무인지라 저녁을 먹을 여유가 없었다.

 

프로젝트 팀이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문 목사는 승합차에 기자 일행을 태우고 아들레이드 시내로 향했다. 이미 10시가 넘어 대부분 식당들은 문을 닫았는데 이탈리아 식당 한 곳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다행히 그 시간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맥도날드를 예상했는데 이태리 음식으로 문 목사의 융숭한 저녁 대접을 받고 호텔에 들어오니 밤 11시가 넘어섰다.

 

기자는 문광식 목사와 다음날 오전 8시 45분에 호텔 입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가평전투 그 희생과 영광 그리고 성화전시회

 

문광식 목사는 주일 아침 약속시간보다 일찍 와서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자는 짐을 정리하느라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급하게 내려갔다. 문 목사는 기자가 아들레이드에 처음 왔고 그것도 저녁 늦게 도착해서 아들레이드장로교회와 가평다리만 보고 시드니로 돌아가게 된 것이 안타까워서 잠깐이라도 아들레이드 시내 구경을 해주고 싶어 일찍 왔다고 설명했다.

 

그의 차를 타고 아들레이드 시내를 돌아보니 도시가 깨끗하고 평화롭게 보였다. 기자가 도시가 깨끗하고 평화롭게 보여 인상적이라고 하니 문 목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아들레이드로 오라 그들에게 쉼을 주리라”며 즉석 캐치프레어를 읊으며 같이 웃었다.

 

기자는 1부 예배와 2부 예배의 설교를 통하여 한국전쟁 때 호주 제3대대가 가평을 지켜준 것과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흘린 피와 희생을 호소하며 크리스찬리뷰가 가평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협조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성화들을 구입해 주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호주 참전 용사들에게 보은하는 길인 동시에 다큐멘터리 제작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다행히 많은 성도들이 전시된 성화들을 관람하며구입 신청을 해주었다.

 

가평다리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인터뷰

 

문광식 목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존 자렛트(John Jarrett, 88) 옹을 픽업해서 권순형 발행인, 정성택 감독과 함께 가평다리로 먼저 출발했다.

 

기자는 성화 판매를 돕기 위해 30분 정도 남아있다가 문 목사의 막내 아들과 함께 가평다리로 출발했다. 가평다리에 도착해 보니 존 자렛트 옹과 그의 전우인 록키 애녹(Rocky Anoch, 95) 옹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뷰는 문광식 목사가 진행했다.

 

문광식: 오늘 가평 다리 앞에서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두 분은 몇살 때 한국전쟁에 참전하셨습니까?

 

존 자렛트: 저는 18세에 군대에 입대했고 한국전쟁에는 19세에 참전했습니다.

 

록키 애녹: 저는 1945년에 군대에 입대했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왕립 호주대대 제3대대에 소속되어 일본으로 갔다가 1950년 10월에 한국으로 파병되었습니다.

 

▲ 아들레이드 시 북부 고속도로 앵글 베일 로드에 위치하고 있는 가평 다리     © 크리스찬리뷰

 

▲ 가평 다리 밑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했     © 크리스찬리뷰


문광식:
실제 가평전투에 참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중공군을 보셨습니까?

 

존 자렛트: 저는 포병 병과여서 가평전투에 참전한 보병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가평전투가 끝난 한참 후에 한국에 도착하여 서울에 있는 포진지에 있었습니다.

 

록키 애녹: 저는 실제 가평전투에 참전했습니다. 1951년 4월 23일과 24일에 가평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가평전투가 있기 전 저희 중대는 안작데이가 바로 다음날이어서 안작데이 축하 행사 준비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수많은 중공군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제3대대원은 465명이었는데 1만 명이나 되는 중공군들과 전투를 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어서 중공군이 쉽게 우리를 공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숫자가 공격을 해왔기 때문에 저희 중대는 탄약이 떨어져 후퇴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저는 당시 A중대에 소속되어 싸웠습니다. 23일날 석양이 질 무렵 시작된 전투는 24일 하루 종일 이어졌습니다. 전투가 시작된 23일 밤에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때 기억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중략,……

 

문광식: 가평전투와 관련해서 더 하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지요?

 

록키 애녹: 실은 저는 당시의 전투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저는 아직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습니다.

 

문광식: 아 그러시군요. 아직도 그때의 일 때문에 정신과 상담을 받고 계시다고 하니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아마도 가평전투로 인하여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긴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다시 서울을 중공군에게 뺏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사드립니다.

 

록키 애녹: 네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가평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제3대 대원들은 가평전투가 한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전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고지를 사수했습니다.

 

▲ 614고지에서 587고지 공격을 위해 전진하고 있는 제3대대 C중대원들     

 

▲ 가평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왕립 호주 제3대대에게 미국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트루먼 대통령 표창을 수여한 후 제3대대 대원을 시찰하고 있다.(1952. 12,)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인터뷰를 포함해 프젝트 팀을 위해 수고해준 문광식 목사에게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원래 계획으로는 문광식 목사가 평소 친분이 있던 한국전쟁에 참전한 존 자렛트 옹과 가평다리에서 인터뷰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의도를 알게 된 존 자렛트 옹은 실제 가평전투에 참전한 그의 한국전 친구인 록키 애녹에게 연락하여 인터뷰에 초청한 것이었다.

 

문 목사도 록키 애녹 옹을 그날 처음 만났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록키 애녹 옹은 95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운전을 하고 가평다리로 찾아왔다. 존 자렛트 옹은 한국전쟁에 포병으로 참전했지만 가평전투에는 참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록키 애녹 옹은 24세 때 제3대대 A중대원으로 가평전투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때의 두렵고 아픈 기억을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았다. 그리고 그때의 충격 때문에 평생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희생에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아들레이드에 있는 가평다리

 

아들레이드에 와보니 실제 가평다리가 있었다. 그것도 다리 밑에 큼지막한 글자로 ‘Kapyong’이라고 큼지막하게 새겨진 가평다리가 아들레이드에 존재하고 있었다. 아들레이드에 오래 살고 있는 교민들 가운데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물며 다른 도시에 있는 한국 교민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가평 다리가 이곳 호주 그것도 아들레이드 도시에 세워지게 되었을까? 이것은 분명 한국전쟁시 목숨을 걸고 가평을 지킨 왕립 호주 3대대 병사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임에 틀림없다.

 

남호주에는 가평다리를 포함하여 호주군이 세계전쟁에 참전하여 자유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5개의 다리가 나란히 아들레이드시 북부 고속도로 위에 세워져 있다.

 

그 다리들의 이름은 바로 하멜(Hamel), 토브룩(Tobruk), 코코다(Kokoda), 가평(Kapyong), 롱탄(Long Tan)이다. 이 북부 고속도로와 다리들은 2008년 공사를 시작해 2010년 9월 13일 개통되었다.

 

44번째 남호주 총리로 뽑힌 마이크 란(Mike Rann)은 성명에서 하멜, 토브룩, 코코다, 가평, 롱탄 전투는 “모든 호주 국민에게 신성한 장소였으며 호주 국가의 미래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아들레이드에 살고 있는 교민들은 아들레이드 시 북부 고속도로 Angle Vale Road에 위치하고 있는 Kapyong Bridge를 방문해 보기를 권면한다. 그리고 가평다리 위에서 피흘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지켰던 호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남은 인생 타인을 위해 보은의 삶을 약속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권순형|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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