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신학자 빅토리아주장로회 전총회장 그랜트 로리 목사

서로 배우는 영적 동지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09/04/30 [14:33]
 
▲ 빅토리아주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한 그랜트 로리 목사   ©PCV
호주의 한국선교는 호주장로교회, 엄밀하게 말해서는 빅토리아주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Victoria, 이하 PCV)의 손으로 시작되었다. 성공회 출신의 데이비스 선교사를 실제로 지원하고, 안수해서 파송한 곳도 PCV였고, 선교사들의 지역분할정책에 따라 경상도 선교를 주도한 곳도 PCV였다.

올해로 150주년을 맞는 PCV는, 1941년까지 총 78명의 선교사를 보냈고, 1941-2년 신사참배 반대로 학교들이 문을 닫고 마지막 5명의 선교사가 철수할 때까지, 1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복음적인 교회로 인정받는 현재의 한국교회의 기반을 제공했다.

PCV 150주년 기념예배가 한인연합성가대의 찬양이 울려퍼지는 가운데는 멜본 시내 스코츠교회(Scots Church)에서 지난 4월 4일 열렸다. 예배 후 주국회의사당 만찬실에서 열린 축하파티에는 고신대 이상규 교수의 해방 이전까지의 PCV의 한국 선교 역사(To Korea With Love)란 제목의 영어판으로 출간하는 기념식도 같이 열렸다.

기념식준비위원회 위원장 하만 박사는 이상규 교수의 책이 영어로 출간된 것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교회와 PCV의 특별한 인연을 환기시키고, 두 교회가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계기로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1977년 호주연합교회 설립과정 전후로, 한국교회와 PCV의 관계는 소월해 졌었다. 그러나 이상규 교수를 시작으로 장로교신학교를 거쳐간 한국 유학생들이 이어지고, PCV내 한국인 목회자들의 호주교회 목회가 자리를 잡아가고, 백인교회들의 한국인 사역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PCV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이끌고 불을 붙인 지도자가 바로 그랜트 로리 목사다. 그는 국내사역위원과 총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교회와의 관계 갱신의 필요성과 殮냠?좀 더 다문화사역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1950년 멜본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를 시드니에서 보내고, 멜본대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일했다. CU를 통해 사역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뒤, 유서 깊은 서레이힐 장로교회에서 25세의 젊은 장로로 섬기기 시작했다. 1988년 안수를 받고 1997년부터 캔터베리장로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해, 교단 안에 하나회같은 조직을 만들어 문제가 된 '휄로우쉽'사태를 처리하는 데 단호한 리더십을 보였고,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교회를 유학생 선교를 지향하는 다문화교회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캔터베리교회는 한국인 부교역자를 두고,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만 1백여 명이 넘게 모이는 다문화사역의 모델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아내 앤 사이에 청년이 된 세 딸과 아들 하나가 있다. 

- PCV가 올해로 150주년을 맞았습니다. 데이비스 선교사가 스코트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부산으로 간지도 120주년이 되었네요. 사역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으로 PCV 여성선교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지요.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관계가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PCV는 원래 남태평양선교에 관심이 많았지요. 그러나 데이비스의 순교로 한국선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자세한 자료는 고신대학 이상규 교수의 박사논문을 보시면 잘 나와 있습니다. 저희 교회 자료에도 1930년대에 한 명의 여성선교사를 파송하고 여러 재한 선교사들을 지원했던 것으로 나옵니다. 한국전때도 구호금을 모으기도 했구요."

▲ 이상규 목사(왼쪽)의 저서 To Korea With Love 출간의 의의를 설명하는 하만 박사   ©PCV
"그러나 한국전 이후 PCV의 선교는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신학교와 선교부가 복음적인 전도보다는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신학에 더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77년 호주연합교회 설립으로 열매를 맺지요. 당시 호주장로교회 중 빅토리아주는 70%, 퀸슬랜드는 60%, 뉴사우스웨일즈는 50%가 연합교회로 가고, 특히 신학교와 선교부는 거의 다 연합운동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복음주의자 중에서도 연합이라는 대의에 설득되어 연합에 동참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역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연합운동 안에 전통신학이 강조하는 속죄, 성경의 권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심각하게 무시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결국 교단 수호쪽으로 갑니다. 그러나 내부 갈등에 치인 나머지, 선교는 거의 명맥이 끊어지고 그나마 연합교회선교부가 이어간 한국선교도 사회참여 쪽에 집중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PCV의 내부가 정리되면서, 다시 남태평양, 특히 바누와투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이 다시 살아났고, 호주장로교해외선교회위원회는 독자 선교에서 기존복음주의 선교단체와 협력을 통한 선교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PCV의 한국교회와의 인연은 끊어졌고 지금까지 생존한 선교사 중 안타깝게도 PCV 소속이 아닌 경우가 많지요."

- 그래도 PCV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성경무오론, 계약신학을 강조하는 면에서 한국장로교 안에서 총신계, 합신계, 고신계와 신학적으로 비슷합니다. 특히 고신계와는 이곳 장로교신학교에서 박사과정을 하신 이상규 교수를 통해 많이 연결되고, PTC의 하만 박사가 고신대에서 특강을 한 적도 있었지요. 현재 PCV는 한국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PCV와 공식 관계를 가진 한국교단은 아직 없습니다. 고신계와 교류는 있었지만, 고신도 공식적으로 호주개혁교단과 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CV는 그동안 아프리카의 장로교회들을 돕는 일에 주로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살리는 일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 역시 PCV안에 한국장로교회의 발전과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소개한 바 있고, 이제는 교단지도자들 사이에서 한국장로교회와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야 할 때라는 공감이 퍼져있습니다."

- PCV는 소수민족교회가 적고, 백인 중심 교회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러나 현재 호주교회의 성장을 주도하는 힘은 주로 순복음계와 소수민족교회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점에서 좀 더 적극적인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것 같은데, 이민교회와 다문화사역에 대한 PCV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PCV가 현재 소수민족사역에 약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NSW주 장로교회와 비교해서 볼 때, 이민교회 수는 훨씬 적어도 이민교회들이 교단과 결합되고 협력하는 정도는 훨씬 깊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도왔던) 멜본한인장로교회도 현재 교단활동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 교단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이런 결과가 만들어지기까지 교단과 교회가 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을 해왔기 때문에, 비교적 적은 수만 남은 면도 있습니다."

▲ 아프리카 말라위장로교회 대표의 축사   ©PCV

"그러나 최근 PCV는 다문화사역 지원기금을 마련해서, 열심히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인 목사 4명이 호주교회에서 훌륭한 사역을 하고 있어서, 교단 내의 이미지도 매우 좋습니다. 이점에서 보다 많은 한국인 사역자들이 호주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다문화사역의 장을 열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캔터베리장로교회는 전형적인 백인, 중상층 지역에 있으면서도 일찍부터 다문화사역을 시도해, 지금은 상당한 진전을 이루신 것으로 평가됩니다. 성가대가 한국인으로 이뤄져 있고, 금요일 청년모임에 한인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백인목회자의 다문화사역, 특히 문화적으로 폐쇄성이 강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정설인데 어떻게 이겨내셨는 지 궁금하네요?

"저희 교회 당회가 선교에 열려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지만, 실제 시발점은 일본인 선교를 위해 미국에서 파송된 스티브 영 목사의 사역입니다. 1991년 그는 MTW 선교단 소속으로 호주로 와, 교단본부의 소개로 저희교회에서 일본인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기 전에 이미 시내 무 료영어강좌와 금요 청년모임을 중심으로 일본인 사역이 자리를 잘 잡혀있던 상태여서, 저의 청빙조건 중에는 다문화사역을 잘 이어갈 수 있은 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 PCV 150기념예배는 멜본 지역 한인연합성가대의 찬양으로 시작됐다.   ©PCV

"그런데 제가 부임한 후부터 한국인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교단 빌딩에서 시작한 무료 영어강좌는 한국 여행 가이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해졌고, 현재 교단 건물 개조공사로 장소를 교회로 옮기자 유학생 호스텔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이를 위해 저희 교회를 거쳐 간 교인들이 연결한 한국교회들이 경제적으로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이후 학생뿐 아니라 가족들이 정착하면서, 비로소 교회도 다문화적인 틀이 잡혀가고, 이 중에서 교회지도자도 나타나 지금은 교회운영위 안에 (전체 12명중) 3명의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한국인 장로도 세워질 분위기입니다. 일본어예배는 매주 따로 있고, 한국어예배는 매달 두 번씩 가집니다. 기존 셀 모임과 함께 네 개의 한국어 셀구룹이 운영되고,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요모임을 통해 식사를 하며 교제하고 말씀과 신앙 간증을 듣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러나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영어로 진행되는 본 예배인데, 설교는 반드시 한국어 번역을 준비해서 같이 볼 수 있도록 합니다. 최근 늘어나는 중국계에도 사역을 확대하는 중입니다."

- 최근에 호주목회자들의 다문화사역에 대한 관심은 부분적으로 호주인 전도가 힘들고, 아시아계가 권위에 순종적이라는 면 때문에, 혹시 '쉬운 대안'으로 끌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호주교회로 가지 않는 한국인들 중에서는, 결국 '동양인을 가르치는 대상, 돕는 대상'이상으로는 보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로서 설 기회가 거의 없고 언어장벽 속에 숨어 영적 성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진단에 동의하십니까? 다문화사역을 지난 10년 이상 해온 경험자로서, 다문화사역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저희 역시 속을 보면 많은 위기와 씨름이 있었습니다. 기존 백인 교인 중에 동양인, 특히 동양인 지도자들의 등장을 거북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어서 이들을 설득하거나 갈라서야 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교인 중 어느 민족의 수가 많아지면, 다문화의 균형이 깨질 위험도 있었구요. 내부 갈등이 있을 때, 언어소통의 문제로 판단에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각 그룹의 의견이 전체 의사 결정 과정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평도 있었고, 의사 결정 과정이 문화권마다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요.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각 문화권별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 의사결정에 참여하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당회원들은 자문위원회에 반드시 참여하구요. 어쨌든 지금도 새로운 이슈들이 계속 등장하는 형편입니다. 특히 이민 이세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도 많은 문제입니다. 현재는 호주인 교사들이 중심이지만, 다양한 문화권별 교사확보도 필요하구요."

▲ 기념예배 전경    ©PCV

"다문화 사역을 하려는 분들에게 드리는 조언은, 첫째로 두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연결하려는 사역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숙한 지도자를 세워 더 많이 맡기는 것도 중요하구요. 한 마디로 지도자를 바로 찾는 일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둘째는 신뢰와 믿음의 관계로 움직여야 합니다. 언어의 제약 때문에, 서로가 더 간섭하고 의심하면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점에서 무슨 일을 벌이기에 앞서, 서로 신뢰와 인격적인 관계를 만드는 일이 중요합니다. 셋째는 대화의 중요성입니다. 특히 다문화사역은 양방향에서 설득을 해야 진행됩니다. 어느 한쪽에만 이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자원을 잘 확보하는 것입니다. 다문화 사역을 한 마디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역입니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자활 대책을 마련해서 잘 준비해 놓는 것도 사역의 승패를 좌우합니다."

- 한국인 중에서도 다문화 사역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어느 호주 목회자가 '한국사람이 왜 호주교회에서 목회를 하려고 하지?'라고 묻길래, '그러면 왜 안되는데'라고 되물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의 영적 열기와 자신감은 독특한 데가 있지만, 현실은 만만하지 않지요. 한국인 사역자들이 호주교회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호주교단, 호주교회와 사역하길 원하는 분들은, 어쩔 수 없이 영어공부에 더 힘쓰셔야 합니다. 제 말은 영어발음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하려는 노력과 진정성이 더 중요합니다. 둘째로 호주문화를 이해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합니다. 경험적으로 호주에 장기간 있을 수록 다문화사역에 잘 정착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를 통해 내가 익숙한 것만 가지고 고집하다가는 결국 서로에서 상처만 입히는 문제를 피할 수 있지요. 셋째는 신학교육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한국인들은 이미 잘 준비된 분들이 많지만, 이곳 신학교육은 호주사역에 필요한 준비를 해 줍니다. 호주문화를 이해하고, 성경신학적으로 설교할 능력을 길러주고, 필요한 인력과 다리를 놔주고... 이 때문에 호주에서 충실한 신학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헌신과 열정, 기도에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저희교회에서 전도 받아 귀국한 한국 학생들로부터 이런 불평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 한국교회안에 신학과 강해설교가 별로 강조되지 않고, 내부적으로 너무 일방적인 대화 채널과 섬기는 리더쉽이 잘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호주교회, 한국교회가 서로가 도전하고 배울 점이 있는 것 같네요. 이를 위해 PCV도 더 마음을 열고, 한국교회를 배우고, 한국사역자들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이들을 지원할 것입니다. PCV 150주년을 맞아, 그동안 제대로 살리지 못한 호주와 한국 장로교회의 관계가 증진되기 원합니다. 이를 통해 호주교회도 기도와 성령으로 뜨거워지고, 세계를 선교하는 교회로 변화되길 희망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들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데이비스 선교사님도 더 기뻐할 것 같네요."

-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석원/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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