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 ‘제자들이 가는 길’ (6-하)
 
글/김명동,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1908년 호주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창신학교가 모태 - 창신대학교

 
기독교 정신의 바탕 위에 '자신에게 성실하고 남에게 봉사하자'는 교훈으로 1991년 개교한 창신대가 새 캠퍼스로 이전하고 캠퍼스 복음화와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제2의 도약을 하고 있다.

▲ 지난 10월 2일 개관한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전경. 3천여 평의 대지 위에 100평 규모의 단층건물로 지어진 기념관은 외벽을 유리로 마감해 외부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주요 선교사들의 활동과 호주 선교부의 역사를 담은 300여 점의 사진과 당시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유품 1천여 점이 전시됐다.    ©강민석

동마산 인터체인지 인근 팔용산자락에 자리잡은 창신대 새 캠퍼스는 10개동 4만 8천여 평으로 총 500여 억 원의 건설비를 들여 2003년 9월 28일 준공했다. 새 캠퍼스는 멀티미디어정보관, 공학관, 예술관, 학생회관, 외국인교수동 기숙사 등 학생복지와 편의를 우선시한 '모바일 캠퍼스'로 21세기 새로운 디지털 캠퍼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기숙사는 남녀별로 800명을 수용하는 최신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실한 일꾼, 능력있는 인재 양성'을 슬로건으로 해마다 90% 이상 취업률을 달성하고 있는 창신대는 짧은 역사에 비해 29개 학과로 급성장, 부산, 경남지역 명문사학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매년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모바일 전문인력 양성 우수대학, 주문식교육 우수대학, 실업계고교 교육과정연계 우수대학 등 각종 분야 우수대학에 선정됐으며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중소기업 기술지도대학과 창업보육센터 운영대학, 기술인력 양성교육 운영대학에 선정됐다.

이같은 여건 속에 교수와 학생들은 전국전산회계정보대회, 세계음식박람회, 뷰티콘테스트, 전국동아리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를 석권했다.

지난해는 호텔조리제빵 학생들이 서울에서 열린 '제 10회 한국국제요리대회' 학생단체 부분과 라이브 경연에서 6년 연속 금메달을 수상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1998년 경남 부산에서 처음 개설된 부동산학과는 신입생 모집 결과 정원을 넘길 정도로 인기가 높다.  부동산학과는 변호사, 법무사, 감정평가사 등 권위 있는 부동산 실무경력 교수가 포진해 있으며, 경남 각 지역 공인중개사 동문들과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다. 또한 부동산 전문학위(80학점)를 이수한 후 공인중개사(24학점)와 학점은행 36학점을 통해 4년제 학사학위를 받아 대학원에 진학할 수도 있다.

학교와 군 협력학과로 주목받고 있는 헬기정비과도 실제 헬기가 도입돼 학생들의 교육환경 수준이 높아질 전망이다. 창신대학은 항공군사계열 헬기정비과와 항공정비과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육군본부와 국방부의 승인을 거쳐 코브라헬기를 제공받았다. 코브라헬기는 현재 운용 중인 기종으로 초대속도 315km/h, 순항속도 230km/h, 최대항속거리는 507km인 공격용 헬리콥터이다. 또한 창신대학은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41년 만에 퇴역(2010년 6월 17일)한 F4-D팬텀기도 도입하여 설치했다.

창신대학 관계자는 "이번 헬기와 팬텀기 도입으로 인해 학생들이 실제 헬기와 팬텀기를 이용한 실습을 가능하게 함으로 현장감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21세기 새로운 디지털 캠퍼스 모델로 주목받고 있는 창신대학 제2캠퍼스 전경     ©창신대학

헬기정비과와 항공정비과는 육군본부와 공군본부 그리고 국방부와 협약된 특성화  학과이며, 군부대 부사관으로 전원 취업이 가능하다. 

또한 3년제 간호과가 신설됐다. 창신대학은 교육과학기술부의 허가를 받아 2010년도에 입학정원 25명의 간호과를 신설, 신입생을 모집했다.

학과장 강영희 교수는 "학생들의 임상현장적응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실제 병원과 유사한 최첨단 시스템을 갖췄다"고 말하고 "메디칼 시뮬레이터인 시맨( Simman) 인형을 비롯하여 간호 실무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첨단실습기자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호과 내에는 멀티미디어 강의실, 세미나실, 컴퓨터실, 수술간호실험실, 중환자간호실험실, 분만간호실험실, 신생아소아간호실험실 등 각종 실험실로 꾸며져 있다.

강 교수는 "호주 선교부에서 설립한 일신기독병원에서 민보은(Dr. Barbara Martin) 선교사님과 10년 동안 함께 섬겼다"면서 "이번 간호과 신설로 인해 도내 의료기관의 부족한 간호인력 공급에 다양성을 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한 의료선교도 할 수 있도록 모든 기자재들을 준비해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창신대는 독일 베르린기술대학과 중국 옌벤과학기술대, 미국 일리노이대, 호주 뉴캐슬대, 스위스 빈터투어공대 등 세계 13개 대학과 자매결연하고 활발한 학술교류 등으로 국제적인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창신대는 1908년 호주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창신학교가 모태다. 경남 지역 신교육의 효시인 창신학교는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요람으로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를 당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한 채 102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재단 내 창신중·고교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학생지도로 우수한 학생을 배출, 경남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최근엔 개방형 자율학교로 선정돼 교장 공모제를 도입, 사학 운영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창신대는 교내 교회와 교목실에서 매주 교직원 예배와 전교생 채플 등을 드리며 학원 선교와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창신대학 정문으로 들어서면 '더 높이 더 넓게' 라고 쓰여진 독수리탑을 볼 수 있다. 이는 웅비하고 비상하는 창신인의 꿈과 이상을 대내외에 표현하는 창신대학의 표상이다.

 
▲ 1.창신대학은 항공군사계열 헬기정비과와 항공정비과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헬기와 팬텀기를 육군본부와 공군본부 및 국방부의 승인을 거쳐 제공받았다. 사진은 토우 코브라(Tow Cobra)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공격형 무장 헬기(AH-1J)로 미국 벨(Bell)사에서 제작하였으며, 육군에 1977년에 도입되어 운용 중 2004년에 퇴역한 헬기임.  2. 관측 및 환자 수송용으로 미국 힐러(Hiller)사에서 제작한 레이번(Raven)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헬기는 1967년 육군에 도입되어 1995년에 퇴역한 헬기(OH-23G/T)임. 3.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14년 만에 퇴역한(2010년 6월 17일)한 F4-D팬텀기.  ©크리스찬리뷰
 
 
호주 선교사묘원 조성 -창신대학 명예총장 강병도 장로

경남 선교 120주년을 기념해 경남 부산지역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선교사 8명에 대한 묘원이 경남 창원공원묘원(진동면 인곡리) 안에 조성됐다. 호주선교사묘원은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태 감독)가 사업을 추진해 경남과 부산지역 교계가 힘을 모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진행해 지난 2009년 9월 19일 준공했다.

공원묘원 중심부에 위치한 선교사 묘원은 1,000평 규모로 300평의 묘역과 주변 공원묘지 700평으로 갖춰졌다. 이곳에는 한국 도착 6개월 만에 과로와 풍토병으로 별세한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당시 33세)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이전에 경남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8명의 선교사 기념비가 세워졌다. 묘비는 한글과 영문 2개씩 만들어졌으며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디자인에 최고의 원석을 도입해 제작했다. 또 경남 출신의 순교자인 주기철 손양원 목사 기념비도 함께 세워졌다.

묘원 공사는 창원공원묘원(이사장 신성용) 측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신성용 집사(가포교회)가 2천 600여 평의 부지를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 헌증했고 창신대학 강병도 장로가 총지휘를 맡았다.

▲ 1. 2010년 3년제 간호과를 신설한 창신대학은 임상현장적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제 병원과 유사한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었다. 사진은 신생아 소아 간호실험실. 2. 메디칼 시뮬레이션 시맨 인형. 3. 간호 실무 현장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실습실 4.  멀티미디어 강의실의 강의 장면 ©크리스찬리뷰

호주 선교사묘원 조성은 창신대학 강병도 장로의 관심과 열정으로 시작됐다. 그는 부산, 경남 지역을 위해 헌신하다 순교한 선교사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많았다.

"서울 양화진과 광주 호남신학대 선교사묘원 등은 잘 조성된 반면 부산 경남에는 선교사들의 이름 하나 남겨져 있지 않았습니다. 순교 정신을 기리고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경남 지역에도 그 같은 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자료를 수집해 왔고 호주를 수차례나 방문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강 장로는 2005년 10월 창신대 내에   '호주선교사 순직 기념비'를 세우고 제막 예배를 드려 이름까지 묻혀버린 선교사들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기념동산 부지는 창신대에서 희사했고 취지문이 담긴 기념비를 포함해 기념비 9개를 제작했다. 여기엔 호주 9개 한인교회도 도왔다. 

하지만 선교사들의 행적과 정신을 제대로 알리려면 선교사 묘원이 절실했다. 그러다 작년 초 마산 무학산 기슭에 홀로 묻혔던 맥피 선교사의 무덤 앞에 경고문 한 장이 붙은 것을 발견했다. 이장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맥피 선교사는 미혼 여성 선교사로 마산 의신여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해 여성교육과 선교에 헌신하다 홀로 별세하신 분입니다. 경고 문구를 보면서 선교사 묘지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도 미안한데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백방으로 자리를 물색하던 중 창원공원묘원 내 한 장소를 발견했다. 조용했고 자리도 안성맞춤이었다.

"도시계획 구역 내에는 법적으로 묘지를 쓸 수 없고 무단묘지를 하면 형사처분을 받게 되어 있어 부득이 마산공원묘지를 찾아갔던 겁니다. 사실 처음에는 문창교회 묘지가 있다하여 갔었는데 산위 높은 곳에 있고 또 1인당 1평반 밖에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공원묘원 중앙에 있는 부지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야, 바로 여기다  생각하고 사무실에 찾아 갔더니 그 땅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줘도 파는 게 아니래요. 한마디로 거절당했어요. 세 번째 찾아가서 이번엔 신성용 이사장님을 직접 만나 간곡히 설명을 했더니 한 번 생각하며 기도해 보겠다고 했어요.


▲ 호주 선교사 순직 기념비 건립을 추진한 강병도 장로는 비문에 새길 원고 작업을 위해 2005년 9월 초 호주를 방문, 캔버라에서 본지 편집진과 함께 변조은 목사를 만나 자료를 검토하고 고증을 거쳐 원고 수정 작업을 마무리지었다.(왼쪽부터 김명동 편집인, 변조은 목사, 강병도 학장, 권순형 발행인)  ©크리스찬리뷰

며칠 후 이사회에서 승인이 되었다며 만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때 너무나 감격해서 눈물이 났죠. 처음엔 맥피 선교사묘만 옮기려고 하다가  공사를 시작했는데 신 이사장님이 선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왕이면 선교사묘원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하며 선뜻 시가로 환산하면 수십 억 원이 되는 부지를 기증하셨어요. 그래서 8명의 선교사 묘를 옮겨 호주 선교사 묘원을 조성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호주선교사 묘원 좌우에는 경남출신으로서 한국의 대표적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이는 두 목사님이 경남 출신임을 알리고 우리고장 경남이 위대한 순교자의 모태임을 널리 알려 순례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강 장로는 "순직이라고 표현한 것은 호주 선교사들의 별세가 과로와 풍토병 등으로 인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박해에 의해서 목숨을 빼앗긴 사람이 순교자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그 시대에 한국에 올 땐 목숨 바칠 각오가 없이는 올 수가 없었겠죠. 순교하겠다는 각오 없이는 올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순교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순직으로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호주선교사묘원이 조성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많은 단체와 지역에서 이의를 제기했죠. 만나고 설득하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포를 놓기도 하여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수없이 반대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심지어 공문을 보내 공식적인 방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묘지 이장이 끝나는 순간까지 방해가 있었지만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은 중단되지 않고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준공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호주선교사들에 대한 감사 표시도 되지만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암울한 시대에 우리나라에 와서 목숨 받쳐 복음을 전했는데 그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우리 후손들에게 선교정신을 가르치고 계승하기 위해서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개인적으로나 우리학교 이름으로 할 것이 아니라 초교파적으로 하는 것이 은혜롭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경남성시화운동본부가 작년에 발족이 됐는데 하나님이 이 사업을 경남성시화운동본부에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강 장로는 "이제 호주선교사 순직묘원이 조성이 됨으로 마산을 중심으로 주기철 목사님 생가와  손양원 목사님 생가가 연결되는 기독교 유적지 벨트가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교회 부흥과 지역 관광자원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 말했다.

"마산서 동쪽으로 차로 30분 거리에 주 목사님 생가가 있고 또 마산 서북쪽으로 30분 떨어진 칠원면에는 손 목사님 생가가 있습니다. 기념관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마산 일대가 호주 선교사 묘역과 함께 기독교인의 순례지로서 각광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창신대학 명예총장 강병도 장로     ©크리스찬리뷰


강 장로는 "지금 호주선교사 묘원에 기념관을 세우고 있다"면서 "우선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과 휴식 공간 정도지만 앞으로 역사적인 자료나 유물도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이 될 수 있도록 관심과 기도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문득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얘야, 내가 그래서 너를 만든 거란다"

 
순직호주선교사묘원 앞에서

창원공원묘원 내 순직호주선교사 묘원.

이 땅을 ‘복음의 땅끝'으로 알고 찾아왔다가 순직한 8명의 선교사들이 묻힌 곳이다. 또 경남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기독교를 위해 순교한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순교 기념비도 나란히 함께 자리 잡았다.

암흑의 땅에 한 주기 빛을 던진 사람들이다.

 
▲ 창원공원묘원 이사장 신성용 안수집사     ©크리스찬리뷰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은혜보답의 차원에서 이곳에 묘원을 조성했다. 기념관도 이곳에 건립 중이다.

선교사들의 기념비는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가 되어 방문객들의 영혼을 두드린다. 예리한 표창처럼 가슴에 파고든다.

△조셉 헨리 데이비스 선교사는 호주 최초의 한국 선교사다. 40일간의 항해 끝에 1889년 10월 2일 한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복음서를 들고 걸어서 20일 만에 부산에 도착했으나 과로와 전염병으로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호주교회의 한국 선교 계기가 됐다.

△아서 윌리엄 앨런 선교사는 1913년 부임해 25년까지 진주 지역에서 활동했다. 서양악기를 도입해 창신학교에 영남지방 최초의 7인조 악대부를 창설, 지역 음악 공급에 힘썼다.

△아이다 맥피 선교사는 마산 의신여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 경남지역 신여성교육을 위해 26년을 봉사했다. 독신으로 살면서 여성교육과 선교에 헌신하다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윌리엄 테일러 선교사는 의료 선교사로 1913년 도착, 통영에서 활동했다. 섬사람을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이동진료를 다녔고 특히 통영의 한센병 환자 치료에 힘썼다. 이후 진주 배돈병원(경남 최초의 신식병원) 원장으로 일하다 풍토병을 얻어 신병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며칠 후 별세했다.

 
▲ 호주 선교사 순직 묘원 좌우에는 경남 출신으로서 한국의 대표적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의 기념비를 세웠다.     ©크리스찬리뷰


△엘리스 고던 라이트 선교사는 교육선교를 위해 여성교육에 주력했다. 1908년 부산 일신여학교 (현 동래여자중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직했다. 또 여성 한센병자를 방문해 선교하다 51세에 별세했다.

△가트루드 네피어 선교사는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고등하교 교사를 하다 선교사로 부름받아 간호사가 되어 한국에 왔다. 마산 모자진료소를 설립해 운영했고 진주 배돈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24년을 헌신했다.

△엘라이사 애니 아담슨 선교사는 남편 아담슨 선교사와 함께 부임했으나 1년 6개월 만에 심장병을 얻어 3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남편 아담슨 선교사는 슬픔을 이기고 1901년 마산 최초의 교회인 마산포교회(현 문창교회)를 설립했고 창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신식교육과 민족 개화에 힘썼다.

△사라

맥케이 선교사는 제임스 멕케이 선교사의 아내로 남편을 도와 의료선교를 하던 중 3개월 만에 풍토병을 얻어 임신 중 별세했다. 사라 멕케이 선교사는 6주간 병석에 있었으나 당시 병원이 없어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별세했다.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한국을 찾아온 벽안의 선교사들.

 
▲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구동태 감독, 본부장 이종승 목사)는 2009년 9월 19일 경남 창원공원묘원 내에 호주 선교사 묘원을 조성하고 한국에서 순직한 8명의 선교사들의 기념비와 주기철, 손양원 목사의 기념비를 세웠다.  ©크리스찬리뷰


순직호주선교사묘원은 한국교회의 심장이다. 한국교회의 역사가 꿈틀대는 현장이다.

순직호주선교사묘원은 우리가 전수받은 이 신앙이 누구의 피 값인지 아느냐고 조용히 묻고 있었다.

아아, 유한한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리는 일이야 말로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가!

 

▲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10월 2일 개관)     ©경남성시화운동본부


에필로그

답사의 대장정을 마무리 짓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자는 열차 안에서 봄의 아름다움을 참으로 오랜만에 만끽했다. 보면 볼수록 하늘과 산과 들과 강이 정겹게 다가왔다. 수많은 신앙선조들의 피와 땀, 그리고 죽음의 아픔을 안고 있는 저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든 우리 신앙선조의 발자취를 한 번이라도 둘러본 사람이라면 평소 느끼지 못했던 뿌듯한 자긍심을 갖게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하신 일들과 선조들의 영성을 깨우치는 일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풍성하고 여유롭게 해주는가는 직접 다녀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그동안 호주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를 찾아 답사하면서 기자에게 심겨진 영성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한 구절이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끝>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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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28 [14:30]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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