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아프간 악몽을 말하다
인터뷰|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글|김명동,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교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살해되고 21명이 42일 만에 생환하는 전무후무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58)가 3년 전의 악몽 같은 아프간 피랍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시드니중앙장로교회(담임목사 오성광) 초청으로 부흥사경회 인도차 시드니를 찾은 박 목사는 인터뷰에서 난무했던 오해와 진실을 포함한 당시 이야기를 공개하는 한편 ‘건강한 교회 만들기’ 노력에 대해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 많아 샘물교회가 국민들로부터 “그렇게 엉터리로 하면서도 너희가 교회냐, 너희가 국민이냐”는 식의 형언할 수 없는 비난과 질타를 당했음을 차분히 설명했다.

 
▲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진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박 목사는 3년 전 탈레반에게 납치된 아프카니스탄 피랍사건과 관련, 당시에 난무했던 오해와 진실을 공개하며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크리스찬리뷰


 샘물교회, 1998년 서울영동교회에서 분립개척

박 목사의 표정은 밝고 온화했다. 피랍 당시 마주쳤던 날카롭고 긴장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는 고신대학교(B.A)와 고신대 신학대학원(M..Div) 그리고 영국 London Bible College(M.A)와 영국 All Nations Christian College(Dip. Miss.)에서 훈련을 받았다. 미국 Fuller 신학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서울영동교회에서 17년간 사역한 후 1998년 분당 샘물교회를 분립개척해서 섬겨오고 있다.

-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3개 교회를 분가시킨 뒤 4번째 분가 시에는 직접 나와 샘물교회를 개척하셨을 때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세간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었습니다.  그 당시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서울영동교회에 부임한 것이 81년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90년 3월에 첫 분립개척교회를 세웠지요. 교회가 부흥하는데 강남에서 비싼 땅을 사서 교회를 확장하는 것이 여러 가지 무리가 많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방향을 정하기를 이 자리에서 계속 교회를 확장하지 말고 분립교회를 세우자, 그 후로 2개 교회를 더 세우고 네 번째 교회가  샘물교회입니다. 그때 제가 나오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목사 한 사람을 파송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부담을 주셨습니다. 전 안 갈려고 피해 다녔는데 결국 하나님께서 너무도 분명하게 제가 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98년 10월 말에 분립개척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분당 샘물교회가 시작이 된 거죠.”

▲ 박은조 목사는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로 섬기면서 3개 교회를 분가시킨 뒤 4번째 분가 시에 자신이 나와 샘물교회를 개척했다.     ©크리스찬리뷰

- 교회분립 개척에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요?

 “제가 보기에는 옛날 개척이 쉬울 때는 개인이 개척을 하기도 했고 또 열매도 많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개척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역자를 세우고 교인들을 좀 떼어주고 재정지원을 해주고 그렇게만 해주면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높으니까 분립교회가 교회개척의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지난 20년 동안 서울 영동교회로부터 시작을 해서 지난 9월에 우리 샘물교회 두 번째 분립개척교회가 판교에 세워졌습니다. 아홉 번째 교회입니다.

제가 사역을 시작한 지가 29년 째입니다만 한 교회만 계속 있었으면 교회가 그렇게 많이 자라지 못했을 것이고 또 그렇게 건강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제 30년이 지나는 동안에 9개 교회로 확대되면서 물론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러나 비교적 건강하게 교회가 세워지고 또 건강하게 자라가는 교회가 여러 개 있어서 대체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 분립개척 시 보통 성도들을 얼마나 보냅니까?

 “그때그때 다릅니다만 지역이 결정이 되면 파송하는 목사님이 결정이 되고 또 장로님들 중에서 한두 사람 결정이 됩니다. 그렇지만 다 자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광고를 하는 거지요. 어느 지역에 언제 교회를 시작한다,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쪽으로 가면 좋겠다. 또 하나님이 개척에 부담을 주시는 분들은 그쪽으로 옮겨라 그렇게 해서 많이 갈 때는 한 100명도 가고 50명도 가고 20명도 가고, 우리 판교 샘물교회 경우는 어른들만 한 200명이 갔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지 마세요, 형제라도 안 됩니다

언젠가 일간지 ‘국민일보’에 작은 광고가 하나 실렸다. 서울 소년원에 있는 고봉소망교회에서 30년 가까이 목회하고 있는 김원균 목사가 낸 광고이다. ‘참! 잘하셨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 남서울산본교회 이문식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를 거명하면서 “세 분 목사님께서 타 교회에서 옮겨오는 교인의 등록을 거부키로 하신 결정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라는 간단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무엇을 잘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마음이 얼마나 흐뭇했으면 자기 돈을 들여서 이런 광고를 냈을까?  다름 아니라 이 세 교회 목사들이 ‘기존 교인 전입 거절’ 방침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방침이 계속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 “그리스도의 제자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샘물학교를 설립했다”는 박은조 목사는 “기독교학교는 대안학교”라고 밝혔다.     ©크리스찬리뷰

 “예, 우리 샘물교회는 2007년부터 가정교회를 시작하면서 믿는 사람이 교회 등록하는 경우는 받지 않고 불신자만 받는 것으로 규정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지금 4년이 지났는데 교인이 많이 줄었습니다. 현재 출석인 수는 어른 2,300여 명 아이들 1,000여 명으로 모두 3,300여 명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직계가족은 기존 교인이라도 등록이 가능하지만 형제의 경우는 안 된다는 규정을 정했다. 마침 교회를 제대로 안 다니는 동생을 간신히 설득해서 교회에 데리고 온 교인이 있는데 형제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니 ‘동생을 받아 달라’고 울며 하소연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한다.

- 샘물학교를 소개해 주시지요.

 “목회를 하면서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 교회나 가정에서 아이들을 키우지만 그 아이들이 변화가 잘 안 되고 특히 인본주의적인 학교교육을 받으면서 진화론에 의해서 세속화의 바람 속에서 신앙을 어느 정도 잃느냐 미국과 한국의 통계가 비슷합니다만 아이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후 교회를 다니던 아이들이 80% 믿음을 떠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50%가 떠납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있던 아이들이 대학을 갈 때 쯤 되면 열 명 중에 아홉 명이 교회를 떠납니다.

하루 종일 학교에 가서 앉아있지요, 학교의 문화가 있지요, 아이들에게 파고드는 세속적인 사고방식이 있지요, 그래서 한 15년 전에 학교를 직접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아이들에게 기독교적인 문화와 환경을 주고 아예 학교를 우리가 점령을 해야 되겠다. 그래서 처음에는 미션스쿨을 생각하고 시작을 했는데 진행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기독교학교로 인도를 하셨습니다.

기독교학교는 대안학교입니다. 기독교적인 커리큘럼을 가지고 기독교 신자 선생님들이 지도합니다. 기독교학교와 미션스쿨의 차이가 뭐냐 하면 미션스쿨은 불신자도 들어와서 전도의 대상이 되는데 기독교학교는 믿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작정하는 부모의 아이들만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과외를 안 하기로 약속을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하지 못하도록 부모님들이 약속하고 또 한 달에 상당한 돈을 내야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유치원이 9년 전에 설립이 됐고 6년 전에 초등학교가 설립이 됐고 지금은 중학교가 설립이 되어 현재 8학년 까지 올라왔습니다. 12학년까지 계속 할 겁니다.”

샘물교회는 지난 4월 교회 1층에 ‘올 커피 앤 티’ 카페를 열었다. 장애인 고용 창출을 위해 말아톤복지재단과 함께 꾸민 커피 전문 매장이다. 지난해 6월부터 준비 과정을 거쳐 카페 매니저 2명을 배치하고 장애인 직원 8명을 채용, 교육해 왔다. 퇴직금 제도를 도입하고 4대 보험에도 가입했으며 능력과 근무시간에 따라 상당한 급료를 지급하고 있다. 토요일 오후에는 지역 주민들을 초청해 사랑의 음악회를 연다. 박 목사는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바람직한 장애인 일터 문화의 표본으로 성장시켜 이를 확산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 3년 후 지금 샘물교회는?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회 해외 선교팀 21명이 탈레반에게 납치된 사건은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당시 배형규 목사(41)와 심성민 씨(29)가 탈레반에게 끝내 희생당했고, 나머지 19명이 만 42일 만에 극적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3년이 훌쩍 흘렀다.

▲ 본지 김명동 편집인과 인터뷰 중인 박은조 목사.     ©크리스찬리뷰

- 아프가니스탄 피랍 3주년을 맞아 추모관 건립을 추진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추모관이라기보다 저희가 교회를 새로 모델링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방 하나를 마련한 것이지요. 저희 교회 순교자가 세 명입니다. 2002년 중국으로 파송된 선교사 한 분이 그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명, 그래서 저희교회 입장에서는 파송 선교사들이시고 선교지에서 복음 때문에 돌아가셨으니까 그 분들을 순교자로 결정을 하고 방 하나를 마련해서 그 분들의 관련된 사진이나 그 분들을 소개한 자료들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추모관이라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정도로 조그만 방입니다.”

피랍자와 당시 사건 관계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물 한 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은 돌아오기 전에 정신과 의사께 자문을 구했을 때는 그런 사건이 났을 때 10%- 20%는 평생 정신적 장애를 안고 살아간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굉장히 걱정을 하면서 기도를 많이 하고 오기 전에 신실한 믿음이 있는 정신과 의사 분들로부터 우리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온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도착하고 기자회견을 하지말자. 극심한 고통 속에 있다가 오는데 기자들 앞에서 온갖 질문을 다 받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정부가 하자고 했는데도 부모가 우겨서 안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병원으로 바로 들어가 2주간 병원치료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육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먹지를 못해서 좀 쇠약해져 2주간 영양보충하고 또 피부병, 일부지만 맞아서 약간 상처가 난 분 들이 있었습니다. 개종하라고 하는데 개종을 안 하니까요. 여러 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한 팀만 그랬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한 주간은 설악산에 있는 한경직 목사 기념관으로 들어갔는데 온누리교회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온누리교회 치유팀이 와서 나흘 동안 치유집회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주간 같이 지내고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그 후에는 정신과 의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동안 치료를 했습니다.

일 년 후에 정신과 담당의사로부터 받은 보고서는 깨끗하고 한 사람도 문제가 없다, 아주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지금은 전혀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인 문제없이 직장으로 학교로 이미 선교지로 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또 선교지로 다시 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송병우(36), 임현주(35) 씨는 2년 전 백년가약을 맺었다. 임 씨는 간호사 출신의 현지 선교사였고, 통역을 맡았었다. 임 씨는 피랍 당시 스스로가 아닌 자신(임씨)을 위해 기도해 주던 송 씨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송 씨는 임 씨의 용기있는 대처와 지혜로운 태도에 마음이 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한 아이의 부모로 일반 가정과 다름없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먼저 석방됐던 김지나(35) 씨도 샘물교회 성도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유경식(58) 장로는 현재 샘물교회 강도사로 일하고 있고 유일한 두 자녀의 엄마였던 김윤영(38) 집사는 출판 ‘빛나는 새벽 별’ 대표가 됐다. 1인 출판사로 지난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토이바’를 출간했다. 

 
오해와 오보  

박 목사는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지금 편집인이 지적하신 그 몇 가지가 대표적인 건들이지요. 허가없이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정식으로 비자를 받았고 우리 정부의 안내까지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외무부 장관이 언론 책임자들 앞에서 브리핑을 하면서 샘물교회가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안 갔으면 좋았을 것을 불상사가 생겼다, 그러니까 언론 책임자들은 이 교회가 정부가 가지 말라는데도 들어간 이상한 교회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 42일 동안 탈 레반에 의해 납치, 감금되었던 아프칸 피랍자들. 맨 오른쪽이 순교당한 배형규 목사이다.    

2007년 5월 말에 외무부가 주관을 해서 NGO 대표자들을 모아놓고 정부가 안내를 하겠다, 거기에 아프가니스탄 안내가 들어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면 수 만 명이 나가지 않습니까? 제가 이사장으로 있던 선교단체 책임자가 참석을 했고 그 분이 분명하게 제게 얘기를 해준 겁니다. 

그러니까 정부에서 외무부 관리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갈 때는 남쪽 국경을 넘지 말라, 이렇게 들어가라, 우리는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사고가 딱 나니까 외무부가  당황한 겁니다. 그리고 곤경이 정부쪽으로 돌아오니까 걱정을 좀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허가도 안 받고 들어간 것처럼 거짓말시켰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지요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와 있었으니까요. 국민 23명이 억류가 돼 있는데 정부가 무엇을 했느냐고 비난이 언론에서 쏟아질 것을 걱정해서 그 분이 한마디 한 건데 그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에 아프가니스탄에는 한인 선교사만 100여 명이 들어가 있었고요, 우리교회 선교사만 해도 7명이 들어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우리팀만 들어간 게  아닙니다. 합법적으로 비자 받아서 들어간 팀이 2백 명이 넘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느냐, 서울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 한국인 한 사람이 저에게 그 여름에 발급된 비자 건수가 2백몇십 건 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남쪽 칸다하르에 내려가기 전에 전주 예수병원 팀이 내려갔다 왔고 안양 열린문교회팀이 내려갔다 왔고요. 한동대학팀이 내려갔다 왔고 우리가 네 번째입니다. 그 다음 주에도 내려갈 팀이 여러 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걸린 겁니다. 상황이 그러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무도 안 가는데 샘물교회가 허가도 안 받고 들어간 것처럼 언론에 설명을 한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사실이 아니니까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이미 다 지나가버린 거지요.

또 벤츠 자동차를 탔다고 우리 언론에서 비난했습니다만 제가 인솔 선교사한테 처음 질문한 것이 왜 벤츠를 탔느냐는 것이었어요. 사실 저도 의심이 됐습니다. 벤츠버스를 탄 것은 확인이 됐거든요. 그랬더니 선교사가 카불에는 모든 전세버스가 벤츠 밖에 없고 그나마 그 벤츠가 십수 년 된 고물이었다는 겁니다. 에어컨도 안 나오고 엉망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벤츠 버스라고 공격을 했는데 그 공격의 이유가 바로 외무부장관 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되니까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막 공격을 한 겁니다.

뭐 호화쇼핑 했다고요? 사실무근입니다. 쇼핑을 하러 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북쪽에서 사흘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카불에 와서 식사를 하고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잡혔습니다. 쇼핑은 무슨 쇼핑입니까. 그런데 그 말이 왜 나왔느냐 짐을 다 뺏기고 나오니까 우리 정부에서 티셔츠 하나씩을 줬습니다. 그런데 입고 있던 옷을 넣을 봉지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쇼핑백을 구해서 하나씩 나눠준 겁니다. 그걸 들고 입국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걸 보고 욕하고 싶은 사람들이 쇼핑해서 들고 들어온다고 비난을 한 거지요.

그 외에도 민소매를 입고 시장거리를 돌아 다녔다. 그건 회교권을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면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회교권에서 여성들이 민소매를 입고 다니는 것은 우리에게는 발가벗고 다니는 거와 똑같습니다. 더군다나 봉사팀으로 간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일 없습니다. 그리고 배형규 목사의 건강문젠데 원래 배 목사가 식성이 까다롭습니다. 선교지에 가서는 뭘 잘 먹지를 못합니다. 그 정도 문제 말고는 없는데 다만 배 목사가 억류됐다는 것을 알고 차에서 내릴 때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순간적인 충격 때문에 그렇게 됐던 거고 아주 괜찮은 상태로 있다가 억류 된지 닷새 만에 죽은 겁니다.” 

 
피랍 당시 42일간의 악몽

- 피랍 당시 현장 상황과 42일간의 구금생활 등을 들고 싶습니다.

 “ 탈레반이 23명을 4명 씩 6팀으로 분산해서 민가에다 맡겼습니다. 한 팀만 산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탈레반 군대 같은 곳으로 데리고 간 거지요. 물론 대부분 생명의 위협을 느꼈지만 큰 압박은 없었습니다. 다만 산으로 끌고 간 한 팀이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이었는데 개종하라고 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어렵게 하지 않고 잘 대해 줬습니다. 아마 위에서 명령을 그렇게 받은 것 같아요. 나머지 분들은 민가에 다 흩어져 있는데 가난한 집에 가면 감자 하나씩 주고 잘사는 집에 가면 좀 많이 주고 자유로웠습니다.

▲ 아프카니스탄 사건으로 인해 선교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박은조 목사는 “단기선교 활동을 꾸준히 진행해 오고 있다”며 “선교지에 나가면 오히려 도움을 받고 돌아 온다"고 밝혔다.     ©크리스찬리뷰

어떤 팀은 방에 가두고 지키는 팀도 있었고 어떤 팀은 그 집 식구들과 손짓 발짓하며 얘기도 하고 같이 노래도 부르게 하고요. 그리고 하루 이틀 지나면 새로운 곳으로 끌고 가고 무엇보다도 화장실도 없고 물도 귀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탈레반이 23명을 잡아갈 때 외국인을 잡은 목적은 자기들 포로들과 교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잡아가지고 맨 처음 질문이 차이니스냐 저패니스냐 물었답니다.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는데 그런 후 자기들 탈레반 포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에서 안 된다고 하니까 배 목사를 죽인 겁니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여자 두 명을 무조건 풀어줬습니다.

그 때는 아무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계속 요구하기를 자기들 포로를 풀어 주되 장군급을 풀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 정부나 미국에서 못 들어 주잖습니까? 그런 식으로 만약 풀어주면 앞으로 계속 풀어달라고 그럴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이 사람들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정부 측에서는 저에게 남자 7명을 다 죽이면서 압박을 가할 것 같다. 여자는 손을 안 댈 것 같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국정원에서 나와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들려주고 갔거든요. 남자 7명이 다 죽어야 될 것 같으니까 마음의 각오를 하라고 했어요. 탈레반이 두 명을 죽이고 나서 이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풀어주기로 결정을 한 것 같아요.”

- 왜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였을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배 목사는 목사이고 인솔자이니까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을 하고요, 성민이는 모르겠어요. 성민이보다 나이가 많은 청년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다만 유일하게 짐작이 가는 것은 그곳에서 나흘 동안 일을 할 때 배 목사와 성민이가 기타를 치고 인도를 했답니다. 이 사람들이 그 사진을 보고 성민이를 리더로 생각하고 살해했는지 모릅니다.”

- 얼마 전 유족들이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위반한데 대한 책임이 있다’며 국가를 상대로 3억 5천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는데 샘물교회에 영향은 없는 지요?

 “성민이 아버지인데 그 분은 불신자입니다. 우리가 하지 말라고 권했는데도 결국 소송을 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길 수 없는 소송인데 나이 먹은 아들이 자기 의지로 가서 사고를 당했는데 정부에 책임이 있다, 글쎄요, 법원이 과연 어떤 판결을 할 것인지 두고 볼 일입니다만 욕 많이 먹었습니다.

언론에서 어떤 식으로 기사를 썼냐하면 샘물교회 유가족 심성민의 아버지 누구가 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을 본 사람은 심성민의 아버지가 샘물교회 교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함께 그 소송을 제기한 걸로 생각하고 또다시 욕을 엄청 들었습니다.”

-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급식소와 두유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저희가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요. 사실은 2003년부터 미국에서 그 쪽에 사역을 하는 팀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거기에서 농부들에게 콩을 심게 하고 그것을 사서 두부를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역을 지금 7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우리를 보고 같이 일을 하자고 해서 동참하게 되었고 몇 개 두유공장 중에 우리가 하나를 지원해서 만들어 줬습니다. ‘별급식소’라는 것이 바로 그건데 그 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분들이 하는 걸 우리가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인데 저희들이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참여를 해오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보내준 사진으로만 봤습니다.”

 
대형교회 아들에게 세습

직분자 세울 때 헌금 등은 세속화 징후

-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지요.

 “아프가니스탄 사건 때문에 선교가 비판을 많아 받았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단기선교운동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교회 같은 경우는 필요한 용품만 교회가 부담해주고 비행기 티켓은 자기들이 사게 합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가는 돈이면 태국 가서 일주일 동안 신나게 놀 수 있는  돈입니다. 그런데도 단기봉사활동을 보내는 이유는 거기 가면 도전을 받고 옵니다.

저희교회 파송 선교사만 61명인데 선교사들이 보내달라고 하지 않는 곳은 우리가 안 보냅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 같은 경우는 우리 선교사 일곱 분이 난민촌에서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을 하고 있었고 학교를 하고 있었고요. 그곳에 단기 봉사팀이 들어가면 아이들 머리도 깎아주고 아이들과 축구도 하고 컴퓨터도 가르치고 건물 외벽에 페인트칠도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 농촌봉사하는 것하고 비슷합니다. 칸다하르에 가면 병원에 약품 가져가고 진료행위는 참여 못하지만 길거리에 있는 아이들 데려다가 먹이는 일을 지원하고 그렇게 다녀오면 아이들이 변합니다. 그래서 저희교회는 단기선교 활동을  12년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사람이 선교사로 헌신을 합니다.

▲ 박은조 목사는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심각한 수준인 이른 것에 비해 천주교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신부와 수녀들의 헌신과  섬김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크리스찬리뷰

혹 어떤 사람은 일주일 열흘 가면서 돈을 많이 쓰고 왜 가느냐고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일 년에 두 차례는 꼭 선교지에 다녀옵니다. 가서 지원하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도움을 받고 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꾸준히 보내고 있고 저희 교회는 그렇게 해서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준비되지 않은 단기선교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러 가는 것처럼 가면 그건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일주일 가기 위하여 4-5개월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일각에서는 주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이 그런 주장을 했습니다만 왜 자기 종교 가지고 잘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굳이 가서 선교를 하느냐 이런 얘기를 하는 신학자들도 있고 목사들도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사람들의 문화를 비판하고 그 사람들을 모욕하는 이런 방식은 절대로 안 되겠지요. 저희 선교단기팀이 아이들에게 할렐루야를 가르쳤다고 그러고 그런 동영상이 올라오는데 전부 조작입니다.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유트브에 회교 사원 앞에서 워십댄스하는 동영상도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전부 조작입니다. 옷도 공항 나가기 전에 미리 사놓습니다. 가서 사는 게 아니고요. 외국인 여성이지만 여성이 길에서 얼굴 내놓고 다니면 창녀인 줄 알거든요. 그런 사회를 가면서 어떻게 그냥 가겠습니까? 비행기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출국장을 나갑니다. 그런데 어떻게 민소매를 입고 어디 쇼핑센터를 가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우리 한국의 단기 선교팀들은 그렇게 준비를 합니다.”

-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는 심각한 수준에 와있다고 얘기들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한국교회의 위기론까지 들고 나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커서 답하기가 간단치 않습니다만 근본적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너무 세속화 되어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교회가 자꾸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속사회보다 돈을 더 추구하고 교회가 더 큰 권력을 추구하고 그러면서 세상이 교회를 볼 때 복음에 대해 적대적이어야 되는데 그러기보다는 세속화된 모습을 보면서 적대적이잖아요.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초대형 교회 목사들이 아들에게 세습을 하고, 그건 교회의 본래 모습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윤리, 이런 것들 때문에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신임을 잃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한 30- 40년 전만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 그러면 그래도 우리보다 나은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다 이런 인상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 우리가 그런 것을 다 놓쳐 버린 것은 결국 우리가 복음의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알고 주의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제대로 걸어간다면 세상이 복음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겠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 참 괜찮다 믿을 만하다, 이런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천주교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거든요. 그것은 신부와 수녀들이 그만큼 헌신과 섬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 대목과 관련해서 직분자는 어떠해야 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교회 직분이라는 것이 사실은 복음을 위해 섬기는 종을 뽑는건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세속화 되어가고 있는 가장 뚜렷한 징후 가운데 하나가 직분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리더로 세움을 받으면 그 축하의 형태가 세상의 직분을 얻은 것 하고 너무 흡사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 직분자를 세울 때 헌금하게 하는 것 절대 안 합니다. 이것이 직분을 보는 잘못된 관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가 오히려 선물을 합니다. 섬겨야 될 사람들이니까요.” 

 
한 번 더 분립개척교회 하고 싶어

- 목회자가 되기까지 영향을 끼친 분들이 있다면 소개를 해 주시지요.

 “저는 전혀 예수 안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형님이 전도 받으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교회를 처음 나갔습니다. 그 땐 놀러 다녔다고 봐야죠. 그러다가 중학생이 됐는데 교회에서 강의를 하는데 초등학교 때 들은 성경 얘기가 실제라고 하는 겁니다. 그 때부터 충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분이 그냥 책 속에 나오는 분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 했던 분이고 에덴동산도 실제로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고민을 하면서 중학교 1학년 때 일기에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이건 참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내가 목사가 돼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야 되지 않을까 그런 것을 글로 썼습니다.

▲ 3년 전 아프칸 사태의 진실을 밝힐때 날카롭고 긴장된 모습은 사라지고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박 목사의 표정은 밝고 온화했다.     ©크리스찬리뷰

교회를 계속 다니면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3학년 때 성령체험을 하게 됐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전적으로 신학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고신대학을 가게 됐고 대학 마치고 군대 갔다 와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3년 공부를 마치고 81년 말 첫 사역지가 서울영동교회였습니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좋은 교수님들을 만난 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역지로 나갔을 때 저를 가르쳐 주신 윤종하 선생님, 손봉오 박사님,  20대부터 영향을 받았던 이만열 교수님, 이런 분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유학의 기회를 주셨는데 영국에서 2년간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교수님들,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목회를 할 때 최근에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님이 결정적인 멘토이셨고요,

그래서 제가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됐고 제자훈련을 가지고 16년을 축복 가운데 했습니다. 그리고 홍정길 목사님, 김진홍 목사님 같은 분들을 가까이 모시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최근에 와서는 소그룹에 관하여 새롭게 도전을 하면서 휴스톤에 있는 최영기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분을 멘토로 하여 가정교회와 소그룹 운동을 하고 있는데 교회가 강해지고 건강해지는 것을 많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2년 3개월이 지나면 샘물교회 임기가 끝납니다. 원래 교회 시작할 때 7년 임기, 한 번 신임 받으면 한 번 더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제 14년이 되면 끝납니다. 2년 3개월 후에 어떻게 할 거냐, 우리 교인들이 질문을 하는데 제가 그렇게 답을 합니다. 한 번 더 분립개척교회를 하고 싶다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그래서 2년 3개월 되면 제가 딱 60이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학교운동을 더 발전시키는 것 또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남북문제를 위해서 남은 생애 동안에 하나님이 주신 과제로 생각하고 그 과제를 안고 앞으로 살아 보려고 합니다.”

박 목사는 “3년 전의 일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사건 때문에 염려를 많이 끼친데 대해서 죄송하다. 그리고 그때 함께 아파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여러 동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교회가 교회답게 예배는 예배답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걸어가면 우리 시대의 과제를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김명동|크리스찬리뷰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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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10/28 [15:06]  최종편집: ⓒ christianre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