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의 죽음과 호주 선교사들
2009년 10월 2일(금)에는 1889년 10월 2일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죠셉 헨리 데이비스(J. H. Davies) 목사가 조선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며 열린문교회(담임목사 주정오)에서 감사예배를 드렸고 이어 10월 3일(토)에는 기념세미나를 시드니제일교회(담임목사 조삼열)에서 가졌다. 장경순 목사(시드니산돌교회)의 사회, 노정언 장로의 기도(시드니제일교회)로 시작된 세미나는 3시간의 특강과 정철화 선교사(위클리프선교회)의 패널토의로 마무리되었다.
먼저 첫 번째 강의는 정병준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역사신학)의 "해방 이전의 호주 선교사 활동과 선교정책 연구"란 주제로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정 교수는 그동안 호주 선교 역사의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던 원인에 대해 미국 중심의 선교역사 연구관행, 평양과 서울 중심의 교회사 연구로 인한 지역교회사 연구의 부재, 호주와 한국 간의 연구 교류의 부재 등을 그 이유로 들면서 한·호 선교 120주년을 통해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들이 더욱 활발히 연구되기를 제안했다. 정 교수는 먼저 빅토리아 장로교회의 형성과 해외선교의 배경을 서두에 언급하면서 ^19세기 앵글로색슨 개신교 선교사들이 복음주의적 열정을 가지고 전 세계로 확장되는 시기였으나 호주는 19세기 초반에 식민지 개척기를 맞았기 때문에 호주교회가 해외선교에 관심을 돌리기에는 여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그러나 “1851년도 빅토리아 장로교회는 분열된 장로교회를 하나로 연합하면서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1860년대부터 빅토리아주의 이민자들을 선교하기 시작했고, 복음주의적인 청년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enry Davies, 한국명 덕배시)가 1889년 10월 2일 부산항에 입항하고 다시 출항하여 4일 오전 11시 제물포에 도착한 후 서울에서 5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운 후, 3월 14일부터 3주간 동안 선교여행을 했고 부산에 도착한 다음날 4월 5일 천연두와 폐렴으로 사망하게 되었으나 데이비스의 순교는 한국선교를 더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고 말했다.
데이비스 죽음 이후 두 번째 한국 선교팀은 존 메케이(J. H. Mackay) 목사 부부와 세 사람의 여선교사(멘지스, 퍼셋, 페리)였다. 정 교수는 이때 미국선교사들이 중산층의 삶을 유지했다면 호주선교사들이 친 서민적인 삶을 통해 선교정책을 수립한 것, 또 여선교연합회와 여선교사들을 통해 여성과 어린이를 우선시하는 선교정책을 세웠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리고 호주 선교사들의 신학적 특성은 전반적으로 복음주의적이면서도 에큐메니칼적인 특성이 강했는데 그러한 특징은 기독학생운동 출신 선교사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고 보았고, 호주 선교사들은 15명(20%)이 목사외 선교사의 자녀로 비교적 미국 선교사에 비해 학력이나 지력이 높았던 것으로 보았다. 한편 호주 선교사들이 담당했던 경남지역의 교회성장이 가장 느렸던 이유로 바다로 둘러싸인 배타적인 지리성, 교육과 문명의 혜택이 적었던 경제성, 유교적 배타성, 여성에 대한 억압, 잦은 인구 이동, 호주 선교사 인력의 부족 등을 꼽았으며, 호주선교사들의 활동적 특징으로는 의료와 교육전도분야에서 활발성을 들었다. 정 교수는 끝으로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적 특징을 ①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② 전도와 사회봉사를 크게 분리시키지 않은 점, ③ 선교사들의 뜨거운 복음주의 신앙과 함께 넓게 열린 사상과 신학, ④ 초창기 호주선교사들은 다수 석사학위를 소지한 최고 엘리트들로 선발한 점, ⑤ 한국에서 복음을 수용하기 어려운 경남 지역에서 봉사와 섬김을 앞세워 선교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발을 크게 줄이고 선교에 기여할 수 있었던 점 등을 언급하며 발표를 마쳤다. 엥겔의 신앙고백, ‘하나님이 가라는데!’ 두 번째 강의를 맡은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한국교회사)는 "하나님이 가라는데!- 호주장로회 선교사 엥겔의 선교사역과 신학사상"이란 주제로 연구발표 하였는데 엥겔(Gelson Engel, 한국명 왕길지)은 1900년 내한하여 1937년 은퇴하기까지 선교사이자 신학교수로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하였다. 엥겔은 '독일 출신으로 영국 국적을 갖고 인도에서 선교사역 후 호주로 이민와 한국 선교사'로 생을 살았던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엥겔은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기에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남으로 그의 모국과 본국인 독일과 영국이 전쟁 당사국이 되며 두 국가 사이의 민족적, 국가적 충돌로 인한 모순적 상황을 겪으며 내적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또한 엥겔의 삶의 무대가 다양하였듯 그의 신앙역정도 변화무쌍하였다. 그는 독일의 루터교회와 경건주의에서 성장하고 영국의 성공회와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전통 안에서 훈련받았고, 인도의 감리교를 거쳐 호주의 장로교 전통에서 선교사역을 전개하였다. 결국 그는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전개된 개혁교회의 다양한 신앙전통들을 골고루 체험한 셈이다. 그래서 엥겔의 신학에는 경건주의가 강조하는 구원의 '내적 확신', 성공회와 감리교회가 강조하는 이성과 체험과 전통의 조화, 장로교회가 강조하는 성경중심적 교리훈련 등의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교수는 엥겔은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민으로 살기보다는 수시로 장막을 뜯어 옮겨야 하는 유목민의 삶을 살았다고 보았고, 따라서 그의 삶과 신앙, 신학에 나그네 이주민의 정신과 문화가 깃들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엥겔은 이주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이끌렸다. 그가 선교 사역 40년을 마감하고 한국을 떠날 때도 여지없이 그 소명이 작용하였다. 엥겔이 한국사역을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작별을 인사를 나누자 박창목이라는 학생이 "아니 선생님 본국으로 돌아가시면 누가 우리에게 어학을 가르칩니까?"라고 하자 이때 엥겔은 마루에 꽝하고 구르더니 "하나님이 가라는데!"하였다. 이것이 호주를 거쳐 한국에 와서 선교사로, 목사로, 신학자로 한평생을 헌신한 엥겔의 마지막 신앙고백이었다. 후에 그는 호주 멜본에서 1939년 5월 24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복음의 빚, 북녘 동포들에게 전하자! 세 번째 강의를 맡은 변조은 목사(Rev. John Brown)는 ‘한호선교 120년 평가 및 전망’ 이란 주제를 가지고 유창한 한국어로 발표하였는데 먼저 호주 선교사들의 강점으로는 ① 호주교회가 대개 교회의 신학주류에서 유능한 사람을 한국에 파송한 것 ② 주한호주 선교회가 선교전략으로 선교사를 경남 전 지역과 서울과 평양에 파견하여 주둔시킨 것 ③ 호주선교사들이 대개 민중의 고통과 현실 생활에 깊이 동참하려고 노력한 것 ④ 선교회가 성도훈련과 함께 의사와 간호사 교육에 주력한 것 ⑤ 지난 120년간의 선교활동이 한국 국민과 호주 국민간의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 등을 높이 평가했다. 이어 다른 한편으로 발생했던 문제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숙하는 심정으로 설명했는데 ① 자주 인력과 재정이 모자라서 선교회가 작정한 전략을 효과적으로 다 실행하지 못한 것 ② 선교회가 일제의 사립학교에 대한 순응요구에 효과적 정책을 세우지 못해 학교를 잃은 것 ③ 해방직후나 6.25동란 전후에 필요한 경험 있는 선교사를 넉넉히 파견하지 못해 한국교회를 성공적으로 돕지 못했던 것 ④ 그렇기 때문에 경상남도에서의 교회분열이 더 심했을 것이라는 점 ⑤ 호주 선교사들이 불교나 타종교와의 대화를 거부하거나 진지한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것 등을 자숙하는 심정으로 설명했다. 변조은 목사는 끝으로 120년간 한국에서의 선교와 한국교회와의 협력의 역사가 호주교회를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으며 박해와 긴장 속에서 자란 한국기독교인들의 강인함과 신실함이 호주 교인들에게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호주에 이민 온 한국 기독교인들의 생동감 있는 영적 공헌에 힘을 얻는다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특히 한호 양 교회가 북한선교에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며 한·호 선교 120주년 평가 및 전망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패널토의를 인도한 정철화 선교사(위클리프선교회)는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세미나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통전적 선교의 확대와 호주선교사들의 역할을 더욱 연구하여 알리고, 부정보다 긍정의 선교역사를 강조하는 120주년이 되며, 호주선교사들에게 진 복음의 빚을 이제 우리의 형제인 북녘의 동포들에게 전하는 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호주 한인교계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요약하며 세미나를 마쳤다.
글/임운규(호주성산성결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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