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인터넷신문 <교회와신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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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삼경 목사 |
서론: 필자는 글을 쓸 수밖에 없어 쓰고 있지만 분노와 고통을 동시에 느낀다.
필자는 지금까지 적지 않은 글들을 썼지만, 이단을 비판할 때보다 정통교회 목사를 비판할 때, 그 고통과 분노가 몇 배나 더 크다. 화가 나서 글이 잘 쓰여 지지 않을 정도다. ‘이단은 이단이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정통교회 목사가 어떻게 이단보다 못하느냐’라는 생각 때문이다. 도둑이나 마피아의 윤리와 선생과 대통령의 윤리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과거 ‘이종윤 목사의 표절 문제’와 ‘명성교회 세습 문제’를 취급할 때 그러했다. 그런데 전광훈 씨에 대하여는 그보다 더 하다. 한 편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전광훈 씨를 꼭 지금 비판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필자의 글이 어느 정당에 영향을 미칠까 고민이며, 그것이 혹시 기독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지금이 전광훈 씨를 비판할 가장 최적기라는 생각이 들어 기도하며 비판하기로 결심하였다.
전광훈 씨는 ‘막말하는 목사’, ‘학력을 속인 목사’ ‘제대로 안수를 받았는지 의심되는 목사’,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개자식이라고 부르는 위대한 목사(?)’, ‘자기 맘에 안 들면 누구나 주사파 내지 빨갱이로 몰아버리는 목사’, 거기에다 ‘여자의 절반은 사탄의 말이라고 하는 목사’, ‘모세가 쓴 5권만 성경이고 나머지는 해설서라고 하는 이단적 성경관을 가진 목사’, 심지어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는다)는 목사’ 등으로 유명하다.
자기 마음대로 지껄이고(?), 아무나 정죄하고, 미친 개(?)처럼 아무나 빨갱이로 몰아가는 사람으로 목사 망신과 기독교 망신의 원흉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오물을 뿌려도 문제인데, 그는 아예 공중에서 오물을 살포하고 있다. 필자는 확신한다. 전광훈 씨는 자기 목적을 위하여 꼴통보수주의 자들을 이용하고, 그들은 전광훈 씨를 이용하고, 결국 서로서로 속고 속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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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광훈 씨.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라는 발언을 했다 |
필자의 글이 그가 있는 감옥에도 전달될 것으로 믿는다. 측근들이 꼭 전달해주기 바란다. 전광훈 씨는 2019년 10월 15일에 필자를 영광스럽게도(?) 그의 주사파(빨갱이) 명단에 넣은 적이 있다. 필자가 보는 전광훈 씨는 ‘자기 버릇 개 주지 못할 사람’임이 분명한데, 그런 점에서 언제인지는 모르나 그가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이 전보다 더 험한 막말로 필자를 공격하려 들 것이다. 전 씨는 아마 필자를 김정은의 비서라니, 남파 간첩이라고 할 가능성이 있다.
필자도 이렇게 결심하고 전광훈 씨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데, 그와의 일전을 망설일 이유가 없게 되었다. 전광훈 씨뿐만이 아니라 그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목사 장로도 동일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고, 이해하여도 안 되는 전광훈 씨를 옹호하는 것은 전 씨와 목적이 같고, 또 가치관이 같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유상종이란 말이다. 또는 전광훈 씨의 그 더러운 막말과 그의 불법성과 나아가 그의 이단성을 모른다면 그나마 동정의 여지가 있겠지만,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고, 전 씨를 옹호하는 자들은 아무리 전 씨가 부도덕하고, 이단적 주장을 해도 개의치 않을 다른 목적과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는 정상적인 목사로, 바른 신학과 윤리관을 가진 자라면 절대로 이런 자를 옹호하거나 이런 자와 단상에 같이 서서 그를 옹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아무리 같은 보수라도 말이다.
이와 관련해 누구라도 필자와 어떤 형태의 논쟁을 원한다면 기꺼이 응할 것이며, 전 씨가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전 씨 대신 논쟁하겠다고 나서는 분이 있다면 필자는 기쁘게 응할 것을 약속해두겠다.
본론: 전광훈 씨는 그 더러운 입과 이단 사상까지 동원하여 지키겠다는 그 보수를 그가 죽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광훈 씨가 목사란 이름을 가지고 활동하지 않았다면 필자도 그냥 넘어갈 수 있다. 그가 목사란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않았다면 지금보다 10배 100배 비인격적이고, 비상식적인 짓거리와 막말을 쏟아놓았다고 하여도, 그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도 정치에 무관심할 수 없지만, 정치가 기독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리고 기독교가 정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목사란 이름으로 두 가지를 죽이고 있다. 하나는 보수를 죽이고 있고, 하나는 기독교를 죽이고 있다. 우선 본 글에서는 그가 죽이고 있는 보수에 대하여 생각하고 다음 글에서 기독교를 죽이고 있는 점을 취급하겠다. 만일 전광훈 목사가 이 두 가지를 다 죽이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그는 목사로 모든 것을 다 죽이는 악한 사람이란 말이다. 먼저, 그가 죽이고 있는 보수에 대하여 생각하겠다.
어떻게 전광훈 씨는 ‘빤스 목사’라는 더러운 별명을 가지게 되었는가? 필자는 그를 목사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씨”라는 일반 존칭어도 함께 사용하겠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그가 속한 예장백석대신총회(총회장 이주훈 목사)로부터 2019년 7월 30일에 목사 제명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 대다수의 건강한 크리스천들이 그러하듯, 어디를 보아도 그는 목사다운 목사라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목사 됨을 후회한 일이 없고, 아무리 어려워도 말이나 생각으로도 ‘못해 먹겠다’고 한 일이 없지만, 전광훈 씨를 보면서 목사란 직책이 이렇게 추하고 더럽고 무겁게 느껴질 때는 없었다. 뗄 수 있으면 떼고 싶다. 그가 목사라면 나는 목사가 아니길 바라고, 내가 목사라면 그가 목사가 아니길 바란다.
전광훈 씨가 ‘빤스 목사’라는, 일반인도 가질 수 없는 추하고 더러운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거룩한 강단에서 수차례 여자 빤스를 들먹이는 천한 예화를 사용하다가 얻은 치욕스런 결과일 뿐이다. 이것은 그가 평소에 거침없이 쏟아놓는 막말들과 직선상에서 보면 어쩌다 한 실수가 아니란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빤스 목사’라고 부르는 것이 고통스럽고 부끄러웠는지 자신을 ‘빤스’라고 한 분을 세상 법정에 고소하였다가 오히려 전 씨가 패소한 일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필자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자신을 ‘빤스 목사’라고 부르는 그 사람의 입술을 찢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입부터 찢어야 한다. 전 씨는 제단 숯불로 자신의 입부터 스스로 지지고 지저야 옳다. 그 입술로 한국교회에 끼친 해악이 하늘에 닿았다. 그가 공산주의와 싸우고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그 의지에 최소한의 주관적 진실이라도 있다면, 먼저 자신의 입술부터 지지고, 꿰매고, 닦아야 옳은 일이다.
다음은, 전 씨가 두 번이나 국법을 어겨 구속된 주제에, 자신은 지키지도 않는 그 법을 이용해 자기 명예를 지키려고 하는 것은 모순 중에 모순이며, 미련 중에 미련이며, 악 중에 악이다. 악법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자만이 그 법의 보호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 자기는 법을 어겨 두 번이나 감옥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꼴에 어떻게 법의 보호를 받겠다고 세상 법에 고소까지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기야 전 씨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하나님도 죽일 수 있는 분이니 적어도 하나님과 동격 정도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개자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용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전광훈 씨가 그렇게 싫어하는 북한에서 그가 진짜 빨갱이 김정은 씨를 향하여 ‘개 자식’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전 씨의 목이 10개라도 부족했을 것이다. 아니 이승만 대통령 시대나, 박정희 대통령 시대라고 해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개자식’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도, 그 일로 인하여 구속되지 않고 단지 선거법을 어겨 구속되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사실만 보아도 우리나라는 진짜 빨갱이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삼촌도 죽이는 북한 빨갱이에 비하면, 남한 빨갱이는 무능하던지 아니면 사랑이 많은 가짜 빨갱이란 생각이 든다.
전광훈 씨의 설교를 들어보면, 예배 시간에 여자 성도들에게 “이 년, 저 년” 하는 것은 보통인 것을 보고,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는 목사라는 생각이 든다.
막말과 이단 사상으로 살리겠다고 거품을 무는 그 보수를 사실상 죽이고 있는 최고의 공로자가 전 씨라는 점을 알아야 현명한 보수주의자이다. 특히 그를 의지하였던 정당이나 수구 보수인들은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를 통하여 얻은 것이 만이라면 잃은 것은 천 배, 만 배 더 크다는 것을 모르는 미련한 보수는 진보를 이기지 못한다.
사실 저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빨갱이라고 하는 이 정권을 만든 최고의 공로자는 누구인가? 한 마디로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한 수구 보수주의자들이다. 보수가 잘못하여 진보에게 정권을 넘겨 준 것이다. 당시 헌법위원회에서 박근혜 탄핵을 결정한 대법관들의 대다수는 박근혜가 지명한 보수주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고도 자기반성은 하지 않고, 해도 형식적으로 조금 하는 척하고, 이제 와서 60-70년대 논리인 ‘빨갱이론’으로 이기려고 하고, 정치꾼 주변에서 들러리나 하여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말이며, 젊은이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는 가장 악한 짓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광훈 씨 자신도 알아야 하겠지만(알 것 같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도 분명하지만) 그를 이용하여 보수를 지키겠다는 그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할 일을 하는 자는 하지 않을 일은 하지 않게 되고, 할 일을 하지 않는 자는 자연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게 된다. 전광훈 씨는 죽이지 말아야 할 것을 죽이고, 반대로 살려야 할 것을 죽이고 있는데, 그것이 그가 살리겠다는 바로 그 보수다. 그는 보수란 이름으로 보수를 죽이고, 보수의 품위를 시궁창에 떨어트렸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필자는 전광훈 씨가 ‘기독교’란 이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악하다고 본다. 전광훈 씨가 전 총선에서 ‘기독당’을 만들었을 때 기독교 이름만 팔고 한 사람의 국회의원도 얻지 못하였다. 당시 한교연의 최 모 목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국회에 진출한다고 떠들어 대기에, 필자는 ‘절대로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목사로 할 수 없는 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필자의 예상대로 단 한 사람의 국회의원도 얻지 못하였다. 그 때 필자를 그 당에 끌어드리려고 했던 이 모 목사가 찾아와 필자에게 “한 석도 얻지 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라고 묻기에 필자는 “빤스가 앞장서서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이 전광훈 씨는 반드시 살려야 할 보수를 죽이고, 기독교까지 더럽고 천하고 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보수도 필요하고 건강한 진보도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한계 안에서, 우파도 있고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어야 하고 좌파도 있어야 한다. 서로 경쟁도 해야 하고, 비판도 해야 하고, 때로 서로 돕기도 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에게 왼팔과 오른팔이 있는 것과 같고, 왼팔과 오른팔이 서로 다투지 않고 서로 돕는 것과 같다.
우선, 좌파나 우파라는 개념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상대적 개념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즉 왼쪽이란 오른쪽에서 볼 때 왼쪽인 것이고, 그보다 더 왼쪽에서 보면 그것은 더 이상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 되는 것이다. 이념도 시대의 가치관과 개인차에 의하여 달라졌고,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것이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있고, 필자도 이 두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 필자도 어느 쪽을 더 지지하고 어느 쪽을 덜 지지한다. 그러나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우(右)에서 좌(左)로 갈 수도 있고, 좌(左)에서 우(右)로 옮겨 갈 수도 있다. 필자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우측으로 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필자가 비록 좌(左)로 가더라도 우(右)를 사랑하고 가능하면 협조도 하고 돕기도 하고 배우기도 해야 하고, 반대로 필자가 우로 가더라도 좌를 사랑하고 설득하고 가능하면 협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때로 돕기도 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 대하여 그러해야 한다.
보라. 과거에 소위 좌파 활동을(소위 ‘빨갱이’) 하던 분들이, 보수로 ‘우향우’ 하여,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서0석 목사, 김0홍 교수, 김0홍 목사, 김0수 전 도지사 등이다. 이들은 젊어서 좌파 활동을, 그것도 극좌 활동을 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은 우로 돌아서도 너무 우로 돌아섰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좌도 우로, 우도 좌로 바뀔 수 있다. 특히 나이와 경험과 상황에 따라 그렇다. 노동자일 때와 주인일 때 달라진다. 백성일 때와 지도자가 될 때도 달라진다. 가난할 때와 부자일 때도 바뀐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달라진다.
다시 말하지만 한계 안에서 서로 용납해야 한다. 우는 우이기에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있고, 좌는 죄이기에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가진다.
예를 들어, 우로 가면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가 더 심해지고, 지금은 20:80 정도로 상위 20%가 하위 80%보다 더 가지고 있지만, 앞으로 이것이 15:85나 10:90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좌측 정권이 나타나서 분배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좌로 가면 갈수록 평등을 강조되는 장점이 있지만, 대신 자유를 무시할 가능성이 크고, 자유를 넘어선 평등을 강조하여, 진짜 빨갱이가 될 수 있고, 그러면 지구촌의 모든 공산국가가 다 망한 것처럼 망하게 된다. 이 좌파 정권은 지난번처럼 자유를 빼려고 하면 큰 일 난다. 의도적으로라도 자유를 더 강조하고, 평등도 자유 안에서 강조해야 진짜 빨갱이가 되지 않는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좌파는 ‘인권’이나 ‘평등’이란 이름으로, 필자가 목숨 걸고 막아내고 싶은 동성애를 합법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이 정권에서 그런 징후가 보이고 있다. 그래서 좌파로 가면 불안한 것이다.
물론 왼쪽 끝에도 벼랑이 있고, 오른쪽 끝에도 벼랑이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서로 비판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또 협조도 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전술적 지혜라도 얻게 된다. 오른쪽에서만 보면 왼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되고, 왼쪽에서만 보면 오른쪽에서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게 된다. 눈을 감고 코끼리를 어느 쪽에서 만지느냐에 따라 그 완전히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특히 젊은이들을 위하여, 위치를 바꾸어 보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맞물린 톱니와 같다. 건강한 보수가 있어야 또 건강한 진보가 있고, 건강한 진보가 있어야 건강한 보수가 있다. 정치인들은 고양이와 개처럼 서로 싸우지만 사실은 서로 공생관계이다. 사실인지 모르나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좌와 우가 서로 싸우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면 서로서로 호형호제한다고 듣는다. 그것은 정치적 이익을 정치인들이 쉽게, 너무나 쉽게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경우를 보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여당이 깨끗해지면 야당도 깨끗해지고, 야당이 깨끗하면 여당도 깨끗해진다. 보수가 깨끗해지면 진보도 깨끗해지고, 진보가 깨끗해지면 보수도 깨끗해진다. 반대로 보수가 타락하면 따라서 진보도 타락하고, 진보가 타락하면 보수도 타락한다. 보수가 성장하면 진보도 성장하고, 진보가 성장하면 보수도 성장한다. 왜냐하면 이 둘은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숫자가 너무 많고, 월급도 너무 많다고 생각해도 정작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로 서로 싸우지 않는 것은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진리와 진실 싸움이 아니라 정치 싸움이다. 거기에 기독교인들이 변하지 않는 진리로 포장하여 정권욕을 위하야 싸우면 결국 이용만 당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서 좋은 최고의 실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박정희 시대에 월남 파병 때의 일이다. 미군의 요구에 의하여 우리 군인들을 월남에 파병할 때, 누구라도 좀 반대를 해줘야 미국과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는데, 아무도 반대를 하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을 시켜서 반대 시위를 하게 하고 그것을 빌미로 유리한 조건의 파병을 하도록 써먹었다는 점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진짜로 반대를 위한 시위를 했다면 빨갱이로 몰릴 가능성도 컸다. 이렇게 서로 도와야 하고 서로 필요로 한다는 말이다.
다음은 지난 2007년 한미 FTA 협상 때 일이다. 온 나라가 FTA 반대 촛불 시위로 가득 찼을 때 FTA 협상 대표자들이 TV에 나와서 직접 했던 증언이다. 그 증언에 의하면 불리할 때마다 촛불 시위 사진을 들고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촛불을 든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면 유리한 조건을 얻어내려고 빨갱이들을 이용했다는 말이 되고 만다. 이렇게 서로 필요로 하고 그러기에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은 보수가 야당이 되고 진보가 여당이 되어, 보수가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느 때보다 건강한 보수가 더 필요한 때라고 본다. 그런데 보수가 보수란 이름으로 보수를 죽이고 있는 대표자가 바로 전광훈 씨다. 보수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못할 음식으로 배를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빨갱이라면 다음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일치해야 한다. 공산주의 즉 빨갱이라고 지탄을 받아야 하고 받으려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만이라도 여기에 속해야 한다. 첫째는 개인 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둘째는 일당독재를 해야 하고, 셋째는 돈이 되는 국가 주요 사업은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 우리 한국은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빨갱이라고 하지 말고, 그냥 좌파라고 해야 맞다. ‘빨갱이론’을 펴는 사람들 중에 논리적인 근거에 의하여 ‘빨갱이론’을 펴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기준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양해야 할 일이다.
요즘 극렬한 태극기부대는 ‘좌파’란 말과 ‘사회주의’란 말과 ‘빨갱이’란 말을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을 본다. 그러면 사회민주주의도 공산주의가 되고, 기독교 사회주의도 공산주의가 되고 만다. 사회 민주의의나 기독교 민주주의는 결코 공산주의가 아니다. 필자는 미국을 아주 좋아하지만, 미국식 민주의의만 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다. 사회민주주의도 민주주의다. 공산주의가 아니다. 중립국가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스위스처럼 중립국 선언을 하면 좋겠다고 보는데, 정치인 중에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전광훈 씨는 자기 맘에 안 들면 누구나 무조건 빨갱이로 단죄한다. 전광훈 씨는 자기 맘에 안 들면 주사파(빨갱이)라고 공격한다. 그래서 김명혁 교수도, 손봉호 교수도 주사파라고 하고, 거기에 필자까지 넣어주는 영광(?)을 얻었다. 그것은 전광훈 씨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은 누구나 빨갱이라고 했다고 보아야 맞다. 그렇게 보면 위의 분들이 전광훈 씨를 위하여 빨갱이가 되어 주어야 하고, 심지어 이 정권도 그래 주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투데이>라는 이단 옹호 언론도 그런 점에서는 전광훈 씨와 같다. 크리스천투데이 기자들은 전광훈 씨처럼 자기 맘에 안 들면 빨갱이로 몰아가려는 무식한 보수주의자란 점에서 같다. 필자는 노동운동을 한 일도 없고, 그런 사람을 만난 일도 없고, 그런 책을 읽은 일도 없는데도, 필자가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도 사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빨갱이론은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사실상 빨갱이를 돕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진짜 빨갱이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좁은 빨갱이론은 결국 진짜 빨갱이를 이롭게 하여 빨갱이론으로 빵갱이를 돕는 것이 된다. 전광훈 식 빨갱이론과 크리스천투데이 식 빨갱이론은 빨갱이를 이롭게 한다는 점에서 빨갱이보다 더 빨갱이란 비판을 받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 위에 세워진, 자유 위에서만 세워지는 집이다. 민주주의를 자유로 지키려고 해야지 민주주의를 공산주의적 방법으로 지키려고 하면 공산주의에게 지고 만다.
지금의 정권이 좌파 정권이란 말은 옳지만 빨갱이란 말은 옳지 않다.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북한에서 신경을 쓰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스텔스기 F-35A를 보면 그렇다. 왜 전광훈 씨가 말하는 빨갱이 정권인 현 정권이 F-35A를 구입하느냐는 것이다.
2019년 12월 17일에 스텔스기 F-35A 13대가 들어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2021년에는 14대가 더 들어오고, 앞으로 40대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군사 전문가 신인균 씨의 주장을 들어보니, F-35A 비행기 13대 만으로도 하루 밤에 북한의 2천여 곳의 군사 요충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앞으로 군산과 오산의 미군기지에 미군이 가져올 F-35A가 무려 120대라고 하니 참으로 든든하다. 그렇다면 군대를 더 줄이고 군대 기간을 단축해도, 그리고 38선의 지뢰를 다 제거한다고 해도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필자의 생각이 순진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https://youtu.be/yvu2hhG2Jn4
그런데 필자가 태극기부대 단톡에서 “그렇다면 왜 빨갱이인 이 정권이 천문학적인 돈을 드려 왜 F-35A를 그렇게 많이 구입하느냐”고 묻자,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광훈 씨를 비롯하여 다른 태극기 부대로부터도 들어본 일이 없다. 차라리 ‘북한에 헌납하려고 샀다’고 한다면 합리적인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진실과 용기를 가진 사람조차도 본 일이 없다. 그것이 좌파와 우파의 차이, 특히 빨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처리하고 대하는 방법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채찍도 쓰고 당근도 쓰고, 당근도 쓰고 채찍도 써야 한다면 그것을 보수와 진보가 역할 분담을 해 준다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론: 보수와 진보가, 진보와 보수가 서로 돕는 건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어느 교회에 있었던 일이다. 선거 때 아버지는 우파를 지지하고, 아들은 좌파를 지지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우파를 찍어라”라고 하자 아들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좌파를 찍으십시오“라고 하자, 화가 난 아버지가 ”그러면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재산은 받지 않아도 찍을 수 없습니다.“라고 한 일화가 필자가 아는 한 교회에서 있었다. 좌우의 갈등의 한 양상이다.
이보다 더한 갈등이 교회 안에 있다. 믿음 좋은 사람들이라도 보수 문제와 진보 문제만 나오면 싸우고 한 번 싸우면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한 이단 연구가는 ‘이단은 회심이 가능해도 이 문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건강하고 성숙하다면 교인들끼리 얼마든지 정치적 이념 문제를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들마다 정치 얘기를 교회에서 못하게 한다. 그리고 교인들은 목회자가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서 그를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전광훈식 빨갱이론’은 사회는 물론 교회를 분열되게 하고 나아가 빨갱이에게 지게 만든다.
서로 상대를 적대시하는 사회는 분열로 스스로 망하게 된다. 과거에 그런 것처럼 보수는 자기편에서 볼 때 왼쪽으로 가는 사람은 무조건 다 빨갱이라고 정죄하고, 좌파의 사람들은 우파를 무조건 꼴등 보수로 몰아가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왼손이 오른손을 잘라내려고 하는 것과 같고, 오른손이 왼손을 잘라내려고 하는 것과 같다. 좌파도 우파를, 우파도 좌파를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고 설득도 해야 하고, 배우기도 해야 한다. 적어도 대화할 정도의 인내와 지혜와 성숙함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교회도 더 건강한 공동체로 발전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보수는 보수이기에 가지는 장점이 있지만 또 그에 따르는 단점도 있고, 진보는 진보이기에 가지는 장점이 있고 또 그에 따르는 단점도 있다. 그런데 보수가 가진 장점이 아무리 커도 보수가 가진 그 힘으로 따르는 단점을 해결할 수 없으며, 진보가 가진 장점이 아무리 커도 진보가 가진 그 힘으로 따르는 단점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제일 좋은 방법은 보수의 단점을 진보가 해결해주고, 진보의 단점을 보수가 해결해주면 최고다. 북한 문제도 같다고 본다. 어떤 점에서 북한 문제는 방법의 문제만이 아니라 결과가 선을 말해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역사에 부끄러운 ‘나당 연합군’이란 것이 있었다.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내 동족 백제를 제거하려고 했던 부끄러운 역사다. 지금도 그것이 미국의 힘이든, 일본의 힘이든 그 힘을 빌려서 상대 당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정치인이 많다. 트럼프를 비난해야 하는데 반대로 상대 당을 비난하고, 일본을 비난해야 하는데 반대로 상대당을 비난한다. 나당연합군과 같은 죄악이다. 그들은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다. 이완용과 다를 바가 없다.
언제쯤 전광훈 씨와 같은 무지한 사람이 설 공간이 사라지는 성숙한 때가 올까 모르겠다. 다행이 정치와 기독교 진리를 혼돈하는 사람들과, 교회를 이용하여 정치를 하려고 하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들을 제하고, 기독교인들의 다수가 압도적으로 전광훈 씨를 싫어한다는 점이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이제 그가 감옥에서 나와 광화문에서 집회를 해도 아무도 나가지 않아서 자리가 텅텅 비는 모습을 그리며 펜을 놓는다.
기사 제휴사/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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