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삼경 목사 /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본지 편집인
|
|
|
▲ 최삼경 목사 |
서론: 필자는 지난 40여 년 동안 실수 없는 이단연구를 하였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필자는 40여 년 동안 이단을 연구하고 대처하였고, 100여 종 이상의 이단 연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한 사람이며, 필자는 필자 소속 교단(통합)에서 이단 문제 상담소 소장으로 6년, 한기총 이단 문제 상담소장으로 9년간 일하였다. 돌아보면 하나님 앞과 정직한 양심 앞에서 아쉬운 점 내지 반성할 점이 없지는 않으며, 더 성숙한 이해와 판단이 아쉬움으로 종종 남는다. 그러나 편협되고 잘못된 이단 연구를 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교리적, 법리적, 윤리적, 논리적 실수를 하지 않았음을 자부하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필자에게도 많은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연구에서 그 약점으로 인하여 결정적 실수를 하지 않게 하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은 필자가 누구를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하여 안달난 사람이라고 하고, 이단이 아닌 자들을 이단으로 만든 대표적 사람으로 필자를 지목하고 공격하지만, 아니다. 그건 이단들과 이단옹호자들의 전적인 모함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
|
|
▲ 전광훈 씨(너알아TV 캡쳐) |
먼저 한국교회는 넘치는 이단들에 비해 연구와 대책이 오히려 부족하다. 부족해도 많이 부족하다. 쓰레기는 넘치는데 그것을 담을 쓰레기통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리고 필자가 참여하거나 필자가 쓴 공적인 연구 보고서를 보면 “이단”이란 말을 필자처럼 적게 사용한 이단연구가는 없다. 교회사적으로 볼 때 100% 정치성이 배제된 이단연구는 없었듯이, 필자의 연구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정치적으로 이단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 일도 없고, 반대로 이단의 칼로 누구를 정치적으로 죽이려고 한 일도 없다.
전광훈 씨의 이단성을 취급하는 것에 대하여, 당사자는 물론 그의 추종자들의 극렬한 저항이 예상된다. 아니 그러기를 바란다. 보나마나 두 가지 중에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내용 자체에 대한 것이고, 하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그 추이를 지켜보며 대처하겠다. 본 글은 전광훈 씨에 대한 비판의 글 네 번째, 그리고 이단성에 대한 글 두 번째 글이다.
본론: 전광훈 씨의 꿈, 환상, 예언 등의 계시관에 나타난 이단성은 무엇인가?
성경은 꿈을 하나님의 뜻과 계시를 전하는 한 가지 수단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꿈을 어디까지 인정하고 어디까지 부정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목회 현장에서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꿈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경직된 보수주의자이거나 교리주의자일 확률이 높고, 반면에 또 꿈을 계시처럼 사용하는 사람은 신비주의자이거나 이단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꿈을 이용하여 한 쪽으로 이단성을 막아내고 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는 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꿈이다. 그런 관점에서 전광훈 씨의 꿈 계시, 환상 계시를 분석해 보겠다.
꿈, 환상 계시를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전광훈 씨.
전광훈 씨는 자신을 스스로 “자칭 선지자”라는 이상야릇한 말도 하고, 또 ‘자칭 선지자로 앞으로 될 일을 먼저 본다’고도 하며(2020년 4월 28일, 옥중서신 70회), 그리고 그가 꾼 꿈이나 환상을 계시처럼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자이다. 그는 환상으로 천국을 보았다고 간증도 하고(2019년 10월 15일), 천국에서 대한민국을 보았다고 하기도 하였다(2020년 1월 25일). 그의 입으로 그것을 계시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계시적 효과를 거두기에 충분하다.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을 수밖에 없고, 불신자는 오히려 더 그러하다.
이 번 선거에서 보수가 참패를 당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 중에 하나는 전광훈 씨 같은 사람을 보수가 의존한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지난 2019년 12월 23일에, 보수 통합을 추진하려는 <국민통합 연대> 출범식에서 전 씨로 축사를 하게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조차 전 씨는 꿈 계시를 말하여 그곳에 참여한 의식 있는 정치인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는 또라이 내지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겠지만, 그를 신뢰하는 자에게 그는 신격화할 가능성도 있고, 그의 꿈은 계시가 되었을 것도 분명하다. 전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어느 날 그 하나님의 성령의 충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짧았습니다. 말이, ‘대한민국 망한다’ 이와 같은 음성을 제가 듣게 되었습니다. …”
그의 꿈에 의하면, 제일 먼저 대한민국은 망해야 한다. 만일 망하지 않으면 그 꿈을 주신 하나님이 가짜일 것이고, 아니면 그 꿈을 꾼 사람이 사탄의 꿈을 꾼 사탄의 자녀일 것이다.
또 전 씨는 이번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수감 중에도(지금은 옥에서 나와 있지만) 또 꿈 계시를 말하였다. 전 씨는 자기가 사도 바울이라도 되는 듯 ‘옥중서신’이란 것을 무려 70회나 발표하였는데, 그 마지막 옥중서신(70회)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의 주장을 직접 소개하고 비판해보겠다.
“제가 얼마 전 감옥에서 신비한 꿈을 하나 꾸었다. 꿈속에서 김정은을 만났습니다. 김정은이 하는 말이 ‘목사님은 부흥사면 부흥회만 할 것이지 왜 광화문에 모여 소리치느냐’고 하면서 내가 지시해서 목사님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이미 청와대에서 제가 투쟁할 때 북한의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말할 수 없이 저를 위협해 왔습니다. 오히려 생각난 게 제가 감옥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 같은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꿈이 다 사실인 것은 아니지만 세상 되어 가는 것을 보면 이미 대한민국은 김정은이 통치하고 있으며, 문재인이 하수인으로 주사파들이 수종을 드는 것을 보여집니다.”
꿈이란 맞으면 계시가 되고, 안 맞으면 개꿈이 된다.
신사도들은 꿈, 예언 내지 계시를 주로 말하지만, ‘다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탄적 주장을 동시에 한다. 물론 전광훈도 “꿈이 다 사실인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연막술을 편 점에서는 신사도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꿈 계시가 다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이단논쟁을 피하려는 꼼수 논리라고 본다. 그 꿈과 환상을 분명한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다면, 그것이 맞든 안 맞든 끝까지 하나님의 계시라고 해야 오히려 정직한 사람일 것이다. 꿈 계시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이 없게 되고, 단 그 꿈을 적용할 때는 절대적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절대적 순종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맞으면 계시적 효과를 거두어 이익을 볼 것이고, 혹 맞지 않아도 어떤 피해도 없다. 성경은 꿈이 계시의 한 가지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반면에 거짓 선지자의 수단임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 점에서 신명기 13:3처럼 선명한 말씀은 없다.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성경은 꿈 계시가 하나님의 계시인지 사탄의 계시인지 구별하는 핵심을 그 꿈의 성취 여부라고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모든 것은 성경에 답이 있고, 성경에서 답을 얻으면 충분하다. 성경은 꿈 계시를 긍정적으로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통한 사탄의 역사도 동일하게 경계하고 있다.
역시 신명기를 통하여 주신 말씀이다. 꿈과 환상 계시를 말하는 사람에게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없을 것이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신 18:22)
한 마디로 그 꿈이 사실에서 모순되거나 성취되지 않으면 그는 거짓 선지자란 말이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전광훈 씨가 “꿈이 다 사실인 것은 아니지만”란 말부터가 잘못이다. 꿈과 환상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 꿈과 환상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옳은 일이 아니다. 사탄의 방법이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맞지 않을 꿈이나 환상이나 계시를 무조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맞지 않을 가능성을 두고 그 꿈과 환상과 계시를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악한 짓이다. 전 씨처럼 그러면서도 자기를 ‘선지자’라느니, ‘자칭 선지자로 앞으로 될 일을 먼저 본다’느니 하는 것부터가 도저히 참 하나님의 종으로 할 수 없는 소리다. 전 씨는 자기 스스로 자기를 “자칭 선지자”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님이 분명하다. 자칭 선지자로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없다. 자칭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그야 말로 자칭 선지자다.
위 신명기서는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증험도 없고”라는 말과 “성취함도 없고”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말하여도 성취되지 않는 예언이나 꿈은 그가 누구이든 다 거짓 선지자란 말이다. 따라서 거짓 선지자의 판단 여부는 그 예언한 말씀의 성취여부라고 하고 있다.
성경 두 군데에서 이를 증명해 보자. 먼저, 열왕기상 22장에 400명이나 되는 가짜 예언자와, 미가야라는 진짜 예언자가 나온다. 400명의 가짜 예언자는 아합왕과의 전쟁에서 이길 것을 예언하였지만, 진짜 선지자 미가야는 좋은 예언을 해 달라는 부탁까지 받고도 전쟁에 패한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결국 미가야의 예언처럼 아합은 전쟁터에서 화살을 맞고 전사하고 말았다. 이 때 아합왕이 가짜 선지자 4백명의 말을 듣지 않고 미가야의 말을 들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은 예레미야 28장에도 가짜 선지자 하나냐와 참 선지자 예레미야가 나온다. 하나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과 성전 기구들이 2년 내에 돌아올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했고,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예언이 틀린 것을 예언하였다. 물론 백성들은 비록 가짜 선지자 하나냐가 한 예언이 마음에 좋고 행복과 기쁨을 주었지만 결국 그 예언은 성취되지 않아 저들은 더 비참하게 만들고 말았다.
전광훈 씨의 예언은 결국 가짜 예언자 400명과 같고, 가짜 선지자 하나냐와 같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과 환상을 마음대로 지껄이는 전광훈 씨는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분란과 혼돈 등의 큰 손해를 줄 것이며, 대신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무당 종교가 되고 단다는 점이다.
전광훈 씨는 서로서로 모순된 꿈 계시를 말한다.
원래 이런 유(類)의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예언의 소리를 아무렇게나 내 뱉는 것이 그 특징이다. 전광훈 씨는 처음에 법정에서 구속이 기각되자 대한민국 헌법이 자기를 지켰다고 의기양양하였다. 그 후에 구속되니까 그것은 이 주사파 정권의 핍박이요 악처럼 하였다. 그리고 감옥의 꿈으로는 자신의 구속은 북한의 김정은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하였다. 전 씨는 그렇게 감옥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정작 감옥에 들어가자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해주었다고 하며 감사하다고 하였다. 이 주장이 맞다면 그는 그 감옥에서 보호를 더 받으며 더 감사해야 옳을 터인데 가장 확실한 신변보호의 피난처(?)를 벗어나려고 병보석을 신청하여 위험한 세상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현령비현령 논리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편리한 계시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객관적인 기준도 없는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전광훈 씨는 가짜다. 가짜 선지자며, 가짜 꿈쟁이이며, 가짜 예언자다. 아니 이단이다.
결론: 전광훈 씨의 계시관 하나만 살펴보아도 그에게 이단성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앞선 글에서 전광훈 씨가 ‘모세 오경만 성경이고, 나머지는 해설집이다’라고 한 주장의 이단성을 밝혔고, 본 글에서는 그의 ‘꿈 계시’, ‘환상 계시’, ‘직통 계시’ 중에 일부를 밝혔다. 계속해서 이단성을 더 상세하게 밝혀갈 것이다.
전 씨는 위와 같은 이단적 계시관을 가졌기에, 한국교회로부터 ‘극단적인 신비주의자’로 규정된 이단자 변승우 씨를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해지해 준 것이다. 변승우 씨를 이단으로 규정한 교단 중에 예장 통합측과 예수교 성결교의 내용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장 통합측(2009년 94회 총회)은 변승우 씨를 “극단적 신비주의 형태 비성경적 이단”이라고 하였고, 예수교 성결교(2012년 91회 총회)는 변승우 씨에게 “개인체험에 의한 성경해석”과 “급진적 신비주의 촉구”를 그의 이단성으로 지적하였다. 한 마디로 유유상종이란 점이다.
몇 개 교단으로부터 이단헌의를 받은 전광훈.
전광훈 씨의 이단성을 밝혀 달라고 헌의된 교단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교단들마다 객관적 연구를 할 것으로 믿는다. 9월 총회를 기대한다. 그러나 필자의 글들이 교단 연구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진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고, 진리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 진심은 주관적인 것이고, 진리는 객관적인 것이다. 그런데 전광훈 씨는 이 두 가지에 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기사 제휴사/교회와신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