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라이크 미 Black Like Me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9/26 [14:37]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라’,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이라 한다.

 

사람이 살다보면 각자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갈등이나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상대방의 처지에서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기적적으로 협의점을 찾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감정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공감(empathy)과 동정(sympathy)이란 말이 있다. 공감은 '안에서 고통'(em+pathy)을 느끼는 것이며, 동정은 '함께 고통' (sym+pathy)을 느끼는 것이다. 공통적으로 공감과 동정은 상대방의 고통에 대해서 알아가려고 하지만, 그 고통을 이해하는 위치에 따라서 공감과 동정의 차이점이 있다.

 

'Black Like Me'는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이 흑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역지사지하여 흑인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하여 쓴 글이다.

 

1959년 백인인 존 하워드 그리핀은 흑인으로 변장한 채, 약 50일간의 미국 남부 여행을 떠난다. 피부과 전문의의 협조를 받아, 색소 변화를 일으키는 약을 먹고, 강한 자외선을 온몸에 쪼이고, 머리를 삭발함으로써 중년의 중후한 흑인이 되었다.

 

그리고 흑백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딥 사우스 지역을 여행함으로써 ‘흑인’이 겪는 차별과 편견을 몸소 체험하였다. 이 책에는 그리핀이 흑인으로 살았던 경험을 적은 생생한 체험기와 그 후 그 일기가 출간되어 미국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세상의 모든 차별과 편견을 선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동시에 통합과 평등과 상호이해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한 신선하고도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그리핀이 흑인으로 변장하자 백인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백팔십도로 달라졌다. “지금 나는 비록 그때와 다름없는 식욕과 미각을 가졌고, 심지어는 지갑 사정까지도 똑같았지만 이 지구상에 아무리 힘 있는 자가 와도 나를 이 유명한 레스토랑 안으로 들여보내 식사를 하도록 해줄 수는 없다.

 

예전에 한 흑인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은 여기서 평생 살 수는 있지만 주방 잡일꾼이 되기 전에는 절대로 멋진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겁니다.’"

 

“사람들은 나를 판단할 때 다른 어떤 특성도 보지 않는다. 내 피부가 검다는 사실 하나면 내게서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생긴다.”

 

백인들의 눈에 흑인은 자기와 다른 종족이었다. 백인들 자신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흑인 그리핀을 마치 동물과 비슷한 그 무엇으로 취급했다.

 

백인들은 자신들 속의 혐오감과 불편함을 흑인에게 ‘투사’하고, 흑인들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서 자신들이 그런 존재임을 스스로 규정하기도 한다. 사실이다.

 

오래전 감비아에서 선교했던 이재환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15년 동안 감비아 사람들과 동고동락하였다. 그는 감비아 선교의 경험을 ‘검은색이 아름답다’라는 책자에 담았다.

 

“흑인은 흑인일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를 그들에게서 듣는다. 흑인은 구조 자체가 백인들과 다르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피부 색깔 뿐 아니라 모든 면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문명국가에서 온 사람이면 다 백인이다. 백인은 선호의 대상이다. 이들은 하얗게 되고 싶어 한다.”(이재환, 선우순애, ‘검은색이 아름답다')

 

 

이 선교사는 감비아 사람들이 ‘검은색의 열등감’을 가지고 사는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했다.

 

과거 미국에 흑인 전용, 백인 전용이 존재했었다. 흑인과 백인은 단순히 피부의 색 차이인데 말이다. 피부 때문에 ‘흑인은 백인 운전자를 추월해선 안 된다’던가 공공시설인 버스에서도 ‘흑인은 백인보다 뒤에 앉아야 한다’등 이상한 법이 존재했다.

 

피부색 때문에 노예가 되고 귀족이 되곤 했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둘의 피부색 차이 때문에 차별하며 폭력 난무했다. 인종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사전적 정의를 보면, ‘차이’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다.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특정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통제 형태’로 정의한다.

 

즉, 차이는 서로 다름에 대해 알고 그 상태로 인정하는 것이고, 차별은 차이에 대해 어떤 특정 가치판단을 기준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차별하는 것이다. 인종차별, 남녀차별, 학력차별은 모두 자신과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차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말투, 생김새 등이 서로 다르다. 겉에 드러나는 것뿐만 아니라 가치, 생각, 문화, 종교 등의 의견까지도 모두 다르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서로 구별하는 것을 차이라고 한다. 서로 같지 않고 다른 것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차별은 무엇일까? 차별이란 것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클라인은 편집-분열적 자리는 생후 6개월까지, 우울적 자리는 생후 6개월부터 1년 사이에 나타나지만 생애의 다양한 시점이나 심지어 순간순간마다 재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편집-분열적 자리에서 사용하는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투사, 부인 등이고, 우울적 자리에서 사용하는 성숙한 방어기제는 배상, 양가감정, 감사 등이다.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한 편집-분열적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차이를 차별로 착각하고, 다름을 틀림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백인들의 ‘투사’도 문제지만, 흑인들의 ‘투사적 동일시’도 문제이다. 가진 자의 교만도 문제지만, 없는 자의 열등감도 문제이다.

 

이재환 선교사의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왜 이들은 검은 색 열등의식을 가지고 살아갈까? 무엇이 이들의 마음까지 검게 물들어 버렸을까? 검게 만든 것이 햇빛일까? 나도 모른다.”(이재환, 선우순애. p. 156)

 

이 선교사는 ‘검은색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 격려하고 용기를 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이들의 무의식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검은색의 열등의식을 쉽게 뽑아낼 수가 없었다. 이들은 백인들의 '잘못된 투사’를 극복하거나 승화하지 못하고, ‘투사적 동일시’를 통하여 자포자기하며 고착되었다.

 

투사적 동일시에 매어 있는 사람들은 미묘하지만 투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정해 놓은 방식대로 행동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강력하게 조정한다. 조정의 대상자는 투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부인한 측면을 동일시하도록 유도된다. 투사자는 투사적 동일시를 하면서 대상자의 반응을 보고는 자신의 원래 신념을 확인하고 병리를 지속시킨다. 

 

1961년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한때 “저속하고 외설적”이란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금서도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미국 학생들의 권장도서로 꼽히는 저작이다. 그리핀은 이렇게 책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기 전에 먼저 머리로 인식하고 그런 다음 마음속 깊이 감정적인 차원에서 깨달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타자'는 없다는 것, '타자'란 중요한 본질적 면에서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어야 한다.

 

나처럼 검은(Black like me) 사람이란, 바로 우리와 같은 인간(Human like us)을 의미한다.”〠

 

김환기|본지 영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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