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3/25 [16:06]

 ©Myriams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는 미안했던 일이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첫 미팅을 할 때였다. 넥타이가 없었다. 우연히 옆방에 세든 남자가 벽에 걸어 놓은 멋진 넥타이가 눈에 띄었다. 그는 며칠에 한 번씩 자기 방으로 왔다. 

 

잠시 쓰고 그 자리에 돌려놓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걸 매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필이면 그와 마주쳤다. 그의 눈길이 내가 맨 넥타이에 꽂히면서 멈칫했다. 순간적으로 불쾌한 표정이었다. 

 

나는 머리속이 하얗게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모른 체 해주었다. 오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지 못한 게 그렇게 후회가 될 수 없다.

 

어머니의 강한 교육이 내 머리 속에서 굴절되고 왜곡된 탓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항상 남자는 어디 가서 비굴하게 머리를 굽히면 안 된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미안할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둔한 나는 어머니 말의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고 그냥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만 해석했다. 

  

중학교 때 나는 밴드부원이었다. 여러 명이 긴장해서 연주를 해야 했다. 나는 집중을 못해 간간이 실수를 했다. 한 번은 전체 밴드반 원 앞에서 상급생이 나를 앞으로 나오게 했다. 

  

나는 엎드려뻗쳤다. 길다란 몽둥이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리더니 엉덩이에 날카로운 통증이 깊게 박혀 들어갔다. 그렇게 다섯 대를 맞았다. ‘미안합니다’라고 했으면 그렇게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뒤늦게야 나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일본에 가니까 엘리베이터를 탈 때나 길가에서나 사람들이 ‘스미마셍’이라고 하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미국을 가도 어딜 가나 ‘아이엠 소리였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하지?하고 의아할 정도였다. 한 번은 여행을 하다가 아내에게 이런 주의를 받았다. 

  

“당신은 공항에서나 길거리에서 남에게 덜컥덜컥 묻는 일이 많은데 먼저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이라도 남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니까 미안한 일이죠. 그 말을 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에 묻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아내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훈련이 되어있지 않아서 그런지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그런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비굴할 정도로 머리를 굽히고 사죄하듯 미안합니다를 연발했다. 어떤 때는 비겁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남에게 철저히 고개를 숙이는 겸손과 예의는 상대방의 마음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의 글 중에 “납작 엎드려 비는 절은 쇠도 녹인다”라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다. 그건 겸손이고 예의였다. 예의는 사람에 대한 존경이고 경건의 표현이었다. 나의 어설프고 잘못된 의식을 고치겠다고 마음먹었다. 골프연습들도 열심히 하는데 ‘미안합니다’라든가 ‘감사합니다’라는 연습을 못할 게 없었다.

  

입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심을 담아야 진짜라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미안하다는 말에 진심이 담기는 것 같았다. 놀라운 효과가 나타났다. 보는 사람마다 나를 대하는 눈빛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임종 때였다.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후회가 가슴을 쳤다. 어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해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울면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어머니는 그윽한 눈길로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었지만 나는 열심히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며칠 

전 저녁 아내와 다투고 난 후 각자 자기의 방에 자러 들어갔다. 매듭이 오래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의 방문을 열었다. 아내가 침대 위에서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어제 내가 미안했어”

  

그 한마디에 지난밤 다툼은 순간 증발해 버린 것 같았다. 젊어서부터 그런 연습을 했더라면 인생이 훨씬 편했을 것 같다. 〠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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