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그리스도인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5/24 [15:38]

신자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자녀’라고 번역된 헬라어 ‘테크나’(tekna)는 ‘태어난 자녀’를 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생명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이것을 ‘중생’, 또는 ‘거듭남’ 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중생의 단계가 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도 당시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3:3)

  

거듭남의 경험은 복음을 듣는 과정에서 죄를 자백하고 그 죄를 용서받는 일로 시작된다. 그러므로 죄사함이 없으면 거듭남도 없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녀 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그(예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요일 2:12)라고 편지했다. 

 

아기는 태어날 때 살아갈 신체를 모두 가지고 태어난다. 눈, 코, 입, 귀, 팔, 다리 등등 인간으로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난다. 

  

아기가 성장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눈이 생기고 팔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직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날 때부터 눈과 귀를 가지고 태어난다. 걸음마 할 때가 되어서 다리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미 다리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완전하게 태어난 아기라 해도 성장이 제 때에 이뤄지지 않는다면 지체 부자유아가 되기도 하고 바보가 되기도 한다. 3개월 된 아기가 말을 못하여 옹아리만 한다고 염려하는 부모는 없다. 그렇지만 7살 된 아이가 아직 제대로 말을 못하고 옹아리 밖에 못한다면 부모에게 큰 근심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이제 막 죄사함을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새생명으로 태어나게 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미리 갖추고 태어난 것이다.

  

만일 예수님을 영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의 일을 버리고 밝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면 태어남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 성장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적 출생은 그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신자의 영적 출생권은 성령으로 보증되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미숙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성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낳았다고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기에 자녀를 낳았으면 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책임이 뒤따르게 된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음식을 공급해 주어야 하고 나이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서 스승보다 위대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내가 너희를 복음으로 낳았다고 말했다(고전 4:15-16). 그러므로 교회에는 바울과 같은 아버지가 많아야 한다. 아버지가 많은 교회가 성숙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을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개인의 아버지가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분’로서의 아버지로 알게 된다. 

  

아이도 아버지를 안다. 그러나 어린이가 아는 아버지와 그가 자라서 결혼하고 아이의  아바지가 된 이후에 알게 되는 아버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영적인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초신자 일 때에는 내 필요를 채워주는 아버지, 내 고통을 위로해 주는 아버지 정도로 알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가난한 자, 고통받는 이웃에게 더 큰 관심을 갖고 계신 아버지를 알게 된다. 단순히 나의 아버지에서  우주의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으로서의 아버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아버지 모델이 절실하다. 따르고 본받을 만한 영적인 아버지들이 필요하다. 오늘날 우리는 어린이, 청년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아버지의 자리까지 성장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 강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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