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톰과 오빌의 황금 심장

정지수/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8/23 [15:31]

▲ 1869년, 금괴를 발견한 존 디슨과 리처드 오츠가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금괴를 발견한 장소에서 가족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금덩어리를 발견해 호주의 골드러시 시대를 연 윌리엄 톰(William Tom)의 삶과 그가 발견한 오빌의 황금 심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1851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즈(NSW)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호주로 몰려오는 골드러시 시대가 열렸다. 

  

당시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 죄수들이 이주해 정착했다. 영국 정부는 호주 식민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영국에서 멀리 떨어진 호주의 발전은 더뎠다. 

  

유럽과도 거리가 멀어서 무역업을 발전시키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인구도 빨리 늘어나지 않았고, 경제도 빨리 발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금광이 발견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유럽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몰려들었다. 광부들뿐만 아니라, 대장장이, 정육점 종사자, 농부, 상인, 의사, 변호사, 성직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품고 호주로 몰려 왔다. 

  

호주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가 유입되며 호주 사회에 큰 활력을 불어 넣었다. 골드러시로 인해 호주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고, 이로 인해 상업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호주 사회가 전반적으로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수와 함께 금을 발견한 윌리엄 톰     

 

▲ 1851년 오피르에서 발견한 하트 모양의 금 심장.     

 

한편, 호주 식민지 정부 관리들은 금광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호주 식민지 사회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해 처음에는 이 사실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미국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를 위해 떠나가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호주 식민지 정부 관리들은 금광이 발견된 사실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뉴사우스웨일즈(NSW)주에서 금광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광물학자였던 윌리엄 티플 스미스(William Tipple Smith, 1803-1852)다. 

  

그는 호주에 금광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영국 지질학자들의 주장을 믿고 금광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s)의 서쪽 바써스트(Bathurst) 마을 인근에서 금광을 발견했다.

  

한편, NSW주에서 최초로 커다란 금덩어리를 발견한 사람은 윌리엄 톰(William Tom, 1791~1883)이다. 그는 1791년 5월 25일 영국 콘월주 블리슬랜드 (Blisland, Cornwall)의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는 1817년 12월에 앤 레인(Ann Lane, 1796-1870)과 결혼했고, 1823년에 가족들과 함께 호주로 이주했다. 호주로 이주해 오면서 그는 호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윌리엄 가족은 처음에 파라마타(Parramatta)에 정착해 살았다. 하지만, 곧 블루 마운틴에 위치한 바써스트 마을로 이주했다. 이들은 좀 더 나은 땅을 찾아 내륙으로 이주한 것이다.

  

한편, 모험심이 강한 그의 두 아들들은 맥콰리 강(Macquarie River)을 건너 서쪽 지역으로 탐사를 떠났다. 그들은 지금의 오렌지(Orange) 지역 인근에서 살기 좋은 땅을 발견했다. 이곳은 현재 스프링필드(Springfield)로 불리고 있다. 

  

윌리엄은 가족들과 함께 스프링필드로 이주해 집을 짓고 정착했다. 윌리엄 가족들이 스프링필드 개척에 많은 공헌을 했다.

  

감리교 신자였던 윌리엄은 자신의 영국 고향 마을에 살던 감리교 신자들이 스프링필드에 정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윌리엄 레인(William Lane)과 존 글라슨(John Glasson)이 영국 콘월(Cornwall)주에서 호주로 이주해 왔다. 

  

이후 영국 콘월주에서 여러 감리교 신자들이 스프링필드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스프링필드는 콘월 사람들의 정착촌(Cornish Settlement)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감리교 신자였던 콘월주 사람들은 스프링필드에 감리교 교회를 세우고 윌리엄 톰(William Tom)을 초대 교회 목회자로 임명했다. 

  

윌리엄은 교회에서 설교를 하며 성도들을 돌보았다. 그는 호주 개척자로서 농부로서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했다.

  

윌리엄의 아들들은 성장해 주변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막내아들인 웨슬리(Wesley)는 남서쪽으로 이주해 가축을 키웠다. 또 다른 아들 존(John, 1820-1895)과 윌리엄(William, 1823-1904)은 깁스랜드(Gippsland)로 이주했다.

  

한편, 윌리엄 톰은 그의 형제 제임스(James)와 두 아들들과 아들들의 친구인 존 리스터(John Lister)와 함께 1851년에 호주 최초로 금덩어리를 발견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성실하게 교인들을 돌보고 영국 고향 마을 사람들이 호주에 정착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도운 윌리엄 톰에게 황금을 선물로 주신 것 같다.

  

이들이 발견한 금덩어리는 심장 모양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금덩어리를 오빌의 황금 심장(Ophir’s Gold Heart)이라고 불렀다. 오빌(Ophir)은 지명으로 구약성경에서 금이 생산되는 지역이었다. 

  

윌리엄이 오빌의 황금 심장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수많은 사람들이 호주로 몰려들었다. 오빌의 황금 심장이 발견된 사실이 알려진 다음 해에 약 37만 명의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호주로 몰려왔다.

  

윌리엄과 그의 형제 제임스(James) 그리고 윌리엄의 두 아들들과 아들들의 친구인 존 리스터는 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도구를 이용했다. 이 도구는 미국 캘리포니아 광산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도구로 금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들은 에드워드 하그래이브(Edward Hargraves)의 조언을 받아 이 도구를 제작했는데, 그들은 이 도구를 사용해 어렵지 않게 오빌의 황금 심장을 찾을 수 있었다.

  

▲ 1852년 호주 빅토리아주에서 발급된 금광 채굴 면허증.     

 

하그래이브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찾다가 호주로 돌아와 윌리엄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리스터와 함께 금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금을 찾는데 유용한 도구를 만들었고, 윌리엄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리스터와 함께 금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오빌의 황금 심장을 찾자 하그래이브는 금을 발견한 지역을 오빌(Ophir)이라고 불렀다. 하그래이브는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펼쳐 정부로부터 금광 탐사 후원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금광 개발을 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정부를 설득한 하그래이브도 호주 골드러시에 공헌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윌리엄 톰은 자신이 발견한 오빌의 황금 심장을 팔지 않고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의 후손들은 오빌의 황금 심장을 잘 보관해 오다가 1972년 오렌지 지역 역사 유물 협회에 기증했다. 

 

 한편, 오빌의 황금 심장을 찾는데 사용되었던 도구는 시드니에 있는 박물관(Museum of Applied Arts and Sciences)에 보관되어 있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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