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공자의 책인 ‘논어’에서 나오는 글이라면서 교과서에 실린 문장이 있다.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문장으로서 “도(진리)는 목숨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비록 성경 구절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도를 깨닫는 것이, 진리를 얻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복된 것이라는 것을 잘 말해주는 좋은 가르침의 글이다.
그래서 기독교 목사인 내가 그 글로 지금의 이 글을 시작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서 현대인들은 이 글을 접할 때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라는 의문이 많이 든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머리가 숙여지고 그렇다고 크게 긍정하게 될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요즘 사람들을 보면 그 문장에 대해서 머리가 숙여지고 그렇습니다고 긍정하는 사람들을 잘 보질 못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글을 대한다 해도 무감각하지 않은가?
참으로 현대인들은 점점 도(진리)에 무감각하고 깨달음에 무감각하다. 이 무감각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무감각한 것도 큰 문제인데 그 정도에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런 가르침에 마음을 주는 것을 공박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돈 안 되는 그런 가르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가난하게 살게 된다고 핀잔을 준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처음부터 또는 겉에서는 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이대면 그때는 도를 구하고 진리를 구하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뒤로 들어가서 만나면 아침에 도를 얻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가르침 따위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돈이야말로 실제적인 해결자라고 태도를 바꾼다. 그런데 요즘은 중간이나 나중이나 뒤에서가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도가 아니라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현대사회는 이런 사람들을 오히려 당당하다고 칭찬하고 그런 태도를 모방한다.
현대인들의 모든 관심은 돈에 있다. 기 승 전 돈이다. 구도자들은 드물고 구돈자들이 온통이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24). 하나님과 재물은 같은 레벨이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재물이 하나님과 같은 레벨이기는커녕 이미 하나님 위에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고 돈을 찾는 사람들은 지천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쓰는 나는 돈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 자신을 보아도 돈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하지만 인생의 시간이 꽤 흘러 여러 가지를 겪어보니 돈이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는 엄연한 사실을 또한 본다. 젊었을 때는 돈이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행복할 것으로 여겼다.
아마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나의 시절보다(소위 나의 관점일 수 있다) 더 그런 생각으로 충만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보니 돈이 있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소통의 도구가 최고로 발달되어 있다. 누구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할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 전보다는 많이 할 말을 하고 산다. 그러나, 우리의 대화가 더 좋아졌고 그래서 관계가 더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누군가 말했듯이 고독은 영적인 암인데 지금의 시대는 그 고독으로 말미암은 우울증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할 헌신과 충성은 이제는 고전에서나 나오는 것이 되었다.
예를 들어보자. 도로에는 큰 차와 작은 차들이 함께 다닌다. 그런데 그 도로에서 내 권리만 주장하고 그저 법만 지키면 된다고 한다면 아마도 차도는 늘 긴장과 혼란으로 험악해질 것이다.
요즘 호주 도로에서도 점점 이런 일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신호 변경의 간극을 과도하게 악용하거나 작은 차들은 큰 차들의 낮은 기민성을 조롱하듯이 끼어들거나 큰 차들은 작은 차들을 거칠게 압박하는 일들이 자주 보이고 있다.
내 권리만 주장하고 법만 지키는 것만으로는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없다. 그저 법만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강자가 약자들을 배려하고 나아가 서로를 존중하는 정신(도)이 준비되지 않으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는 충돌들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정신, 이런 도를 지키는 일은 당장은 돈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도를 오랫 동안 존중하고 지킴으로 얻어지는 사회적 유익을 건강한 사회학자들이라면 결코 폄하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힘써 도를 구하고 도를 지켰지만 나는 그 도를 구함으로 얻는 유익을 누리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인생을 마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조문도 석사가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할 지라도 도(진리)를 깨닫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돈은 영원으로 가는 유익을 주지 못한다. 진리가 영원으로 데려가는 유익을 준다.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음을 믿는다.〠
이명구|시드니영락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