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매코헤이(1835-1919)는 호주의 농업 혁신가이자 자선가로, 호주 농업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특히 목축업, 관개 시스템, 그리고 농업 기술 개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업적은 호주의 농업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알아보기로 한다.
사무엘 매코헤이는 1835년 7월 1일 아일랜드(Ireland) 북부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6명의 자녀를 낳아 키웠다. 그들은 자녀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특히 자녀들을 장로교 신앙으로 훈련시켰다. 매코헤이도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주일에는 주일학교에 참석해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배웠다. 사춘기 때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였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코헤이는 장로교 신앙 교육을 통해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했고 윤리적으로 올바른 삶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희생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1855년 매코헤이는 20세의 나이에 호주로 이주했다. 그는 처음에는 뉴사우스웨일스(New South Wales) 지역에 정착하여 삼촌이 운영하던 농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당시 호주는 농업과 목축업이 중심 산업이었으며, 이주민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호주에 정착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매코헤이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호주에 잘 정착했다.
호주의 토질과 기후 등을 알게 된 매코헤이는 농업 분야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독창적이고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특히 그는 건조한 호주 환경에 적합한 관개 시스템 개발에 관심을 가졌다. 19세기 후반, 매코헤이는 뉴사우스웨일스의 남부 지역에 위치한 ‘노스 얀코’(North Yanco)라는 대규모 목장에 투자했다. 이 지역은 물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매코헤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모색했다.
매코헤이는 머레이-달링 유역(Murray-Darling Basin)에서 물을 끌어오는 대규모 관개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했다. 그는 기존의 자연 하천과 호수를 활용하여 물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배분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 관개 시스템은 당시 호주의 농업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으며, 특히 목축업과 곡물 재배에서 큰 성과를 거두게 했다.
그는 이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목장에서 양을 50만 마리 이상 키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양 목장이었다. 매코헤이의 혁신은 호주의 울 산업(wool industry)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매코헤이는 양 사육에 있어서도 많은 혁신을 도입했다. 그는 품종 개량에 관심을 가지고 양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메리노 양(Merino sheep)의 품질을 개선하여 더 질 좋은 양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목장은 호주에서 최고 품질의 울(wool)을 생산하는 곳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또한 매코헤이는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로 여겨졌던 농업 기계를 도입하여 농업 생산성을 높였다. 그는 트랙터, 수확기, 그리고 새로운 양털 가공 기계를 사용하여 더 효율적인 농업 환경을 조성했다.
이와 같은 기술적 도입은 그의 목장이 호주의 선도적인 농업 모델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한편, 그는 어렸을 때 성인이 되어 많은 재산을 모으면 반드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는 어렸을 때의 다짐을 실천에 옮겼다. 목축업을 통해 많은 부를 쌓은 그는 지역 사회와 그 부를 나누는데도 적극적이었다.
교육, 의료, 종교 기관에 많은 기부를 했으며, 이는 지역 사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매코헤이는 지역 학교와 대학교에 기부금을 제공하여 젊은 세대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특히, 그는 농업 교육을 중요하게 여겨 농업 대학 설립과 연구 프로젝트에 기부했다. 이러한 노력은 농업 분야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매코헤이는 지역 병원 설립과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해 기부했다. 그는 특히 농촌 지역 주민들이 기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의 기부는 병원의 시설을 개선하고 의약품과 장비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었다.
1919년, 매코헤이는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동안 농업 혁신과 지역 사회 발전에 헌신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업적은 호주 농업의 근대화를 이끌었으며, 특히 관개 기술과 목축업에서 그의 영향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매코헤이의 목장과 관개 시스템은 현재도 호주의 농업 역사에서 중요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그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자신의 부를 나눈 선구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삶은 근면, 혁신, 그리고 나눔의 가치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매코헤이가 가진 신앙과 그의 삶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정지수|본지 영문편집위원, 캄보디아 지사장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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