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

손성훈/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12/19 [11:36]

 ©Edward Cisneros     

 

나의 형 이름이 '성향'이다. 그 이름은 한국에서만 그렇게 불렸지 오래 산 미국에선 '데이빗'으로 불린다.

  

지금 형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의 성격, 기독교인의 성향에 대해 따져보자는 글이다.

  

성격과 성향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성격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나 본성, 성향은 성질에 따른 경향이다.

  

"성질머리하곤..."

  

이렇게 성격은 잘 안 변하지만 성향은 때때로 바뀔 수가 있다.

  

"저 인간이 오늘 웬일이야? 모처럼 교회 나오더니 설거지를 다하네."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이 교회 다닌다고 쉽사리 바뀌지는 않는다. 나이 들수록 더 나빠지기도 한다.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바뀌거나 용광로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단련을 통해 정금 같이 나오지 않는한 대부분 죽을 때까지 그 성격 그대로 가지고 간다.

  

물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하여 약간 나아지기도 하지만.

  

다시 말하면  성격이 뭣 같아도 끊임없이 노력하여 좋은 성향으로 나아가자는 얘기다.

  

나는 침대를 한쪽 벽에 옆으로 붙여놓았는데 자꾸 침대보가 벽 반대 쪽으로 몰려나와 과감히 방향을 돌려봤다. 그러자 이젠 침대보 끝자락이 붙인 벽 사이로 기어들어가는 게 아닌가.

  

즉 침대보는 한 쪽으로 쏠리는 성질이 있지만 놓이는 방향(성향)에 따라 상태가 바뀔 수 있다.

  

교회에 나와 교인이 되고 참 성도가 되면 좀처럼 바뀌기 힘든 성깔이 향기나는 그리스도인이 될 가망성이 농후하다 할 수 있다.

  

전에 몇 년간 방치해두었던 액자 다는 일과 불 나간 할로겐 전구 갈아끼우는 작업을 브리즈번의 두 집사님들이 와서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액자는 너무 무거운데다 사다리를 이용해야 하는데 나는 몇 계단 오르면 어지럼증이 몰려와 목숨을 걸어야 했다.

  

또 오래되어 녹이 슬었는지 옛 타입의 전구는 아내의 억센 손아귀 힘에도 돌려서 빼낼 수가 없었다.

  

이들은 함께 다니는 교회의 유년 주일학교 선생님이라 했다. 일하는 게 그야말로 '환상의 콤비'였다.

 

이런 분들이 우리 교회 다닌다면 진작에 집안의 하기 어려운 일들이 해결되었을 성싶다.

  

그들은 인상도 좋고 믿음도 좋아보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먼 길을 와서 도와줄 리는 만무하다. 어쩜 그들의 착한 심성으로 도움을 주는 성향이 계속되어 그들의 본질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 자기의 본성 말함에 자신이 없다면 당장 성향을 엎그레이드 해가기 바란다. 나를 포함해서.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을 능가한다'고 했다. 본질은 인간이라면 아담과 이브 때부터 다 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회개하며 그것을 향상 시킨다면 실제적 존재는 가치가 높아진다.

  

즉 하나님과 이웃 사랑, 교회에 충실하다면 어느 순간 칭찬받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죄 범벅인 옛사람 그대로 끌고간다면 그 개보다 못한 성질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런 성격의 사람은 대개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큰 문제다. 중병을 지니고 있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어 나도 내 자신의 믿음에 제대로 된 성찰을 하지 않았었다. 그저 되는대로 믿는 편이었다. 거듭 태어났다고 믿고 싶었지만 차마 양심상 그렇지를 못했다.

  

나의 본질은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뜨뜻미지근한 신앙,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 이런 것은 참 바꾸기가 어렵다. 모태신앙으로 평생을 교회 다니고 성경 공부하고 성령과 은혜를 받아 기도시집도 냈지만 실질적인 믿음은 별로 달라지질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22년 전 펴냈던 이 기도 시집조차 쓸 때의 감격은 사라진 듯 책을 펴낸 뒤 한 번도 정독을 하지 않았었다. 뭔가 문학적으로 어설프고 기독교적으로도 별로 은혜롭지 않게 쓴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주님의 크신 은혜로 뇌졸중 뒤 거듭 태어났다는 확신과 겨자씨 조금 만큼의 믿음을 가짐으로 신앙간증집 '지구에서의 마지막 밤'을 출판하게 되었다.

  

얼마 전, 펴냈던 기도 시집 '절망 가운데 임하시는 주님'을 완독하며 나 스스로 회개와 은혜의 눈물을 흘렸다. 아울러 기독교 문학적으로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도 갖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좋은 작품을 쓸 수 없다는 겸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즉 본성 또는 본질, 느낌에 얽매여 그 상태를 고집할 게 아니라 새로운 성향, 경향(trend)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쪽으로 기울여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탄의 방해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의 문에 제대로 다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최종 결론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그 못된 성질 어찌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 성향을 예수님 닮도록 하자는 것이다.〠

 

손성훈|골드코스트 영광교회 장로, 크리스찬 작가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