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일을 좋아해. 아주, 무척 좋아해. 그런데, 밤일 좋아하는 마누라 덕분에 내 ‘평생친구’는 늘 외롭지,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여기까지 세월을 타고 오다 보니 공유할 여자가 없어져 버렸는데… 나는 그저 사람만 남았거든,
여자는 소진된 지 이미 오래야. 아이 둘을 낳은 뒤로는 생물학적 여자를 스스로 버린 까닭에 나의 여자는 아마 더 급격하게 휘발되었던 것 같아.
나, 아직 현역이거든. 물론, 쨍한 아이디어와 예민한 감각, 정확한 일 처리가 필요한 분야다 보니 버거울 때가 많아. 글자 한 자라도 틀렸다가는 혹은 이미지 위치가 조금 잘못 놓여지기라도 하면 그 참담한 결과를 어찌…, 아이고 끔찍해라.
젊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어. ‘실수할 수 있지’ 이렇게들 이해해 주었는데, 반백 살이 지난 지금은 반응이 달라. ‘저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젊은 사람에게 자리나 내어주지 무슨 욕심이람’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
물론 내 자격지심일 수도 있고, 더러는 나이를 경력으로 봐 주는 고객이 없는 것도 아니야. 하지만 나라고 또 어쩌겠어, 하룻밤에 흰머리가 백 개씩 늘어나도록 정신을 부여잡을 수밖에.
낮에는 신경이 자꾸만 도망을 가. 전화벨은 수시로 울리고, 고객 상담도 해야 하고, 동료들의 모습에도 곧잘 눈과 귀가 쏠리거든. 그래서, 덩치가 크거나 납기가 촉박하거나 깐깐한 고객의 일감을 받아들면 일정표에 두말없이 밤으로 체크를 하지.
다행히, 반백 년 전의 칠월 어느 날, 우리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가 마침 저녁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하더라. 그러니까 나의 세상은 밤부터 시작되었던 거지. 그래서인지 밤이 몸에 딱 맞아. 무슨 일이든 밤에 하면 더 잘되고, 더 쉽고, 결과가 더 훌륭하더란 말이지.
근사한 점도 있어. 얼마나 자유로운지…, 누구도 그 시간을 침범하지 않아. 음악을 듣던, 빗소리를 듣던, 편한 추리닝을 입건 그 무엇이건 내가 원하는 걸 원하는 만큼 누릴 수 있거든.
회사건물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형 아파트 단지가 있어. 빈 사무실에서 혼자 밤일을 하고 있노라면, 창 너머에서는 삼십오 층 아파트들이 도미노 놀이를 해.
어둠살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좌우로, 혹은 아래위로 커다란 사각형의 오렌지색 퍼즐들이 줄줄이 일어났다가, 밤이 깊으면 하나, 둘 그리고 대부분이 검은 하늘에 잠겨 들지. 그리고 새벽 무렵이면 깜빡깜빡 다시들 일어서고.
개중에는 밤새 눈을 감지 않는 블록도 몇 개씩은 꼭 있어. 나는 생각해 꼭 풍등 같다고, 오렌지색 풍등 같다고. 모양만이 아니라, 남들 다 자는 밤에 저렇게 허공에 불을 밝히고 있는 건 간절한 무엇이 있다는 거니까 풍등이라고 보아도 아주 틀리진 않을 거야.
저 풍등 속에는 공부든, 고민이든, 시간 모자라는 어떤 이가 밤을 잘라 쓰는 것이든, 어디엔가 닿고자 하는 각자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니까.
시간, 그래 시간은 늘 모자라지.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처럼 나도 멀티테스킹으로 살지. 차에 오르면 손발은 운전하고, 입은 커피를 마시고, 귀는 라디오를 듣고. 밥이라고 그저 먹나, 스마트폰을 헤집고 다니던지, 어떤 활자가 되었건 활자라도 훑어 내려야 밥을 알차게 먹은 것 같다니까.
그중에서도 압권은 화장실이지. 아이들이 어릴 때였어. 자리 잡고 앉아 이미 거사를 시작했는데 눈 돌릴 책이 없는 거야. 앉은 채로 바깥을 향해 소리를 쳤지. 화장실에 책이 없는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아무것이라도 얼른 하나 가져오라 했더니 작은 아이가 차분하게 말했어.
엄마, 나는 책이 없으면 샴푸 통을 찬찬히 읽어, 거기도 글자 많아.
아뿔싸! 어미의 모습이 어느새 아이들에게도 체화되어 버렸구나. 조물주는 사람들에게 팔십 년이나, 백 년쯤의 시간을 주었는데 그만하면 충분하지 뭘 얼마나 더 늘여 살겠다고 두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남편을 독수공방시키면서 밤일까지 수시로 해 대었는지. 이 무슨 미친 짓인지.
하지만 나의 밤일은 시간 늘이기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어. 버티고 싶은 거지. 지난해는 지지난해와 같고, 올해는 작년과 다름없고 싶거든. 주민증 나이는 여기까지 왔지만, 정신과 감각과 업무처리는 이 책상에 처음 앉던 그 자리에 여전하고 싶거든.
지난밤, 꼬박 새워 일을 하고, 이른 아침 고객에게 교정 파일을 보낸 뒤 건물 셔터를 잠그고 회사를 나왔어. 자전거를 타고 부산교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꽃무릇이, 오렌지색 꽃무릇이 비슷한 키 높이로 가지런히 피어 있는 거야.
가늘가늘한 꽃무릇은 소나무를 몇 개나 지나도록 한참을 피어 있었어. 초가을 아침 쌀랑한 바람에 끝이 오그라진 꽃손들을 자르르르 떨면서. 아침 하늘은 또 왜 그렇게 온통 오렌지색이던지.
코가 시큰하더라. 이런 일에 이유는 없어. 그냥 가슴 한켠이 뭉긋하게 녹아나는 거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렇게 스무 시간 가까이 일을 하고 나면 나도 손이 떨려. 피로가 손끝으로 신호를 보내는 거지. 꽃무릇도 저 몰캉한 꽃대로 단단한 땅을 비집고 나오려면 좀 아니 힘들었겠어?
꽃손이 떨릴 만도 해. 사람도 그래, 손바닥을 반듯이 펴려면 힘을 딱 줘야 하잖아. 힘을 빼면 손가락은 곧바로 스르르 오그라들지. 밤새 일 한 내 손을, 분 단위로 나눠 놓으면 저 꽃무릇처럼 가득하지 않겠어? 저렇게 자르르르 떨리기도 할 것이고 말이야.
자전거를 밟아 오는 동안, 오렌지색이었던 하늘 가장자리는 옅은 회색으로 그러데이션 되었다가 점차 파랗게 밝아지고 환하게 맑아졌어. 나는 아침 하늘을 집 밖에 남겨두고 나의 밤을 새로이 시작하려 해. 도어록 숫자 여섯 개를 누르고, 나와 남편, 털쟁이 개딸 이렇게 셋이 사는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섰어.
아무도 나오지 않아. 열다섯 개딸이도, 아침에는 엄마맞이 세레모니를 생략하나 봐. 양털 방석에 파묻혀 꼬리만 툭툭거리네. 딸깍, 안방 문을 열었어. 모로 누워 등만 보이는, 아직은 그럭저럭 남자가 남아있는 내 평생친구의 등은 아직 밤으로 가득해. 집 바깥에서 밤일을 하고 온 마누라를 묵묵히 기다려 준 그 등이 말없이 말하네. ‘쉬어…’ 혼자 자느라 수고한 그에게 나도 말한다. ‘조금 더 쉬어도… 괜찮아요.’
나의 밤은 내가 일하는 밤에서 꿈이 일하는 밤으로 비로소 이어지고.〠
전성옥|부산 거성교회 집사 2012년 <월간문학>에 소설로, 2013년 <에세이문학>에 수필로 등단한 후 <에세이부산 동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삶의향기 동서문학상 대상'(2012년), ‘부산수필문예 올해의 작품상’(2023년)을 수상했다. 부산 거성교회 집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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