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의 민족주의는 중요한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한때 희생과 헌신의 언어로 설명되던 민족주의는, 점점 ‘계산된 민족주의’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형태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이 변화는 한국 개신교의 특정 흐름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신앙의 언어와 세속적 이해관계가 불안하게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낸다.
‘계산된 민족주의’란, 국민 다수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희생해야 하는가보다 국가와 제도가 개인과 집단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를 기준으로 국가와의 관계를 설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필자가 제안해 온 이 개념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분석틀이지만, 본 글은 그 논리가 종교적 극우 안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부식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 경우 계산의 기준은 공동선이나 국민 전체의 복지가 아니라, 특정 집단의 기득권 보존에 맞춰진다.
이론적 배경과 역사적 맥락
한국 민족주의는 오랫동안 국가를 하나의 ‘가족 공동체’로 상상해 왔다. 산업화 시기 국가 엘리트는 동질성과 동원을 강조하며, 개인의 희생을 국가 발전의 미덕으로 제시했다. 이는 위로부터 설계된 하향식 민족주의의 전형이었다.
그러나 고속 성장과 민주화를 거치며 민족주의 역시 변화했다. 이른바 ‘압축 성장’의 결과는 이전과 전혀 다른 풀뿌리 차원의 민족주의를 낳았다.
21세기의 시민들은 더 이상 일방적인 헌신만을 요구받는 존재가 아니라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성장한 국민국가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보장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이러한 계산적 시민 의식은 2016~2017년 촛불 혁명이나 2024년 말 빛의 혁명에서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문제는 이 논리가 종교 영역으로 이동하면서 나타난다. 일부 종교 집단은 민주적 시민 논리를 자신들만의 정치적‧경제적 계산으로 전환했고, 이는 신앙을 집단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길을 열었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적 특수성과 향수적 민족주의
이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 개신교의 역사적 위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개신교는 반공주의와 강하게 결합하며, 북한과 중국에 대한 절대적 적대, 그리고 친미·친일 중심의 지정학적 정렬을 유지해 왔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종종 국가 안보의 보루, 혹은 체제 수호의 전위로 자임했다.
이러한 배경은 민주화를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는 ‘향수적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이른바 ‘산업화 세대’는 자신들을 공산화 위기에 맞서 국가를 지켜온 주역으로 인식해 왔고, 일부 보수 정치 엘리트와 종교 지도자들은 이 정서를 적극 활용했다.
민주주의적 변화는 곧 국가와 전통 질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실험으로 묘사되었고, 위기 담론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다.
극우 종교 정치의 두 얼굴: 전광훈과 신천지
부정적 형태의 ‘계산된 민족주의’는 더 이상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전광훈 목사와 신천지 예수회를 통해 현실 정치 속에서 노골적으로 작동해 왔다. 이들은 신앙 공동체를 공공선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직 자산으로 활용했다.
전광훈은 정치적 갈등을 ‘신이 선택한 지도자’와 ‘공산화 세력’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하며, 민주적 절차 자체를 신앙의 적으로 규정했다. 코로나19 시기 방역을 “종교 말살 음모”로 몰아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행위는, 신앙이 더 이상 생명을 보호하는 윤리가 아니라 정치적 저항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그는 특정 정권과 지도자를 신적 섭리로 포장하며, 신도들의 물리적 행동까지 선동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종교가 민주 제도를 견제하는 수준을 넘어, 직접적으로 흔드는 행위였다.
신천지는 보다 계산적이고 조직적인 경로를 택했다. 이 단체는 대규모 당원 등록과 선거 개입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 대가로 제도적 보호와 정책적 편의를 기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앙을 공적 참여로 가장한 거래 행위에 가깝다. 신천지가 결합한 젠더 갈등 담론과 반페미니즘 정치 역시 신학적 신념이라기보다 유권자 동원의 기술이었다.
이 두 사례는 방식은 달라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신앙은 더 이상 초월적 기준이 아니라, 이익을 계산하는 언어로 환원되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종교 극우가 보여주는 계산된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신앙의 세속화: 그리스도와 문화의 불균형
이 위기의 신학적 근원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문화적 성공’ 사이의 균형 상실에 있다. 일부 대형 교회는 대기업 조직을 닮은 운영 방식을 채택하며, 양적 성장을 절대적 목표로 설정해 왔다.
그 결과 교회는 영적 공동체라기보다 성과를 측정하는 조직, 곧 ‘신앙 산업’처럼 기능하게 되었다.
이 구조 속에서 목회자는 영적 돌봄의 역할보다 권력과 자원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변모하고, 위계질서와 복종은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러한 흐름의 극단적 표현이 바로 교회 세습이다.
교회는 점차 공적 사명이 아닌 사유 재산처럼 취급되며 영적 유산은 가족의 경제적 안정과 맞바뀐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깊은 긴장을 낳는다.
맺음말: 민주주의와 신앙을 함께 살리기 위하여
한국 개신교 안에 확산된 ‘계산의 복음’은, 한때 민주화를 뒷받침했던 풀뿌리 종교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민족주의가 공동선을 향한 책임이 아니라 집단 이익의 계산으로 축소될 때 그것은 더 이상 건설적인 힘이 될 수 없다. 종교 극우의 정치적 편향은 신앙의 결과라기보다, 국가 권력과 사적 부를 보호하려는 거래적 선택에 가깝다.
이 위기를 넘어서는 길은 명확하다. 교회는 성장과 동원의 논리를 내려놓고, 지역과 사회를 섬기는 공동체성, 전인적 사명, 그리고 세상과의 성숙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이른바 ‘선교적 교회론’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영적 진실성과 공적 책임 사이의 균형을 회복할 때에만, 한국 교회는 민주주의 사회 속에서 신뢰받는 도덕적 주체로 다시 설 수 있다. 부정적인 계산에 저항하는 일은 단순한 신앙 내부의 갱신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이 글은 텍사스 대학에서 출판하는 Flow Journal에 “The Gospel of Calculation: South Korea’s Religious Far-Right and the Negative Form of Calculated Nationalism”의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저작권을 소유한 저자의 허락하에 번역하여 게재함.〠
한길수|호주 모나쉬대학교,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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